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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누군가가 나를 흔든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부가 깨운 것이다. 아마도 근처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일 테지. 그렇지 않으면 깨울 리 없으니 말이다. 사부가 자꾸 제자를 깨우게 만들다니. 죄송한 마음이 드네. 사부가 조용히 한쪽을 가리켰다. 사부가 가리킨 그곳에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검은 그림자 수십이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우리를 치자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선건가?
순간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우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반대쪽이었다. 그나저나 누구지? 슈탈 용병단이라면 큰 방패를 패용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방패는 없는 것 같으니 요앵 용병단이겠네. 왜 이 야밤에 움직이는 거지?
조용히 지켜보다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자 사부가 나와 토마스에게 하프아머를 벗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곤 조용히 요앵 용병단이 사라진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하프아머는 소리 때문에 벗으라고 시킨 듯하다. 아무리 상반신만 가리는 반쪽짜리 방어구라고 해도 어느 정도 소음은 불가피하니까.
요앵 용병단이 향하고 우리가 뒤따라가는 방향. 이쪽은 어제 사부가 슈탈 용병단이 자리 잡은 곳이라고 알려준 방향인데. 설마 공격하러 가는 건가? 숫자가 20명이나 부족한데? 이 야밤에 조용히 우회해서 상대방의 진영으로 간다는 것은 기습 외의 상황은 생각할 수 없기는 하다.
왠지 긴장된다. 전쟁. 전쟁.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수십 대 수십의 병력이 맞붙는 전투는 본적 없으니까.
***
요앵은 야습계획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미리 이야기했다가 첩자라도 있으면 계획이 들통 나 도리어 된통 당할 수도 있다. 아니 ‘첩자라도 있으면.’이 아니다. 요앵은 첩자가 있다고 100% 확신했다. 의심은 슈탈 용병단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던전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을 때부터 싹텄다.
보통 다른 용병단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는 다가가지 않는 것이 관례다. 만약 야영지로 쓸만한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근처로 오게 된다 할지라도 미리 사람을 보내서 양해를 구하거나 통보라도 해야 한다. 유서 깊은 용병단인 슈탈 용병단이 그런 관례를 잊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슈탈 용병단은 아무 통보도 하지 않고 바로 던전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요앵 용병단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전투까지 벌어졌다. 그것은 던전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이상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요앵은 부단장에게 보낸 전령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돈 받고 슈탈 용병단에 정보를 팔아넘긴 것 일거다. 다른 녀석들은 던전을 발견한 이후 이 근처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그 녀석밖에 없다. 그 용병은 요앵이 꽤 신임했던 녀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고 부단장에게 전령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런 녀석이 배반을 했다.
배신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거나 슬프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용병이다. 용병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파는 직업. 돈을 벌기 위해서 신의를 파는 것을 못할 리 없다. 그리고 그런 것은 요앵의 휘하에 있는 모든 용병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요앵의 휘하에 있는 용병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용병단을 배신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니 미리 습격계획을 알려주면 그 정보를 돈을 받고 파는 녀석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첩자가 없을지 모르지만 결정적인 정보를 알게 되는 순간 첩자가 되어버리는 녀석들이 있을 것이 두려워 야습계획을 알리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함께 야습을 계획한 간부도 믿지 못했던 요앵은 함께 습격 계획을 완성하자고 하며 습격 시작 전까지 자신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밤이 깊고 불침번을 제외한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 조용히 용병단 전원을 깨워 완전무장을 갖춘 상태로 집합하도록 만들었다. 이쪽 용병단 전원이 잠에 젖어들었다면 저쪽도 마찬가지일 터. 야습을 하기엔 지금이 적기다. 용병단 전원이 모이고 야영지를 떠났다. 요앵은 그 때까지도 부하들에게 습격계획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습격하기 직전까지도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이동시간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를 견제하며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멀지 않은 곳에 진지를 세운 두 용병단이다. 숲길을 통해 빙 돌아간다 하더라도 멀지 않은 거리였다. 요앵 용병단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천천히 이동했지만 30분 만에 슈탈 용병단 진지의 뒤에 위치할 수 있었다.
요앵은 100m 앞에 있는 슈탈 용병단의 진지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군데군데 화톳불과 보초들이 보였다. 대충 눈에 보이는 화톳불의 숫자는 10개. 돌아다니며 불을 관리하고 주변을 경계하는 보초의 숫자는 8~9명 정도가 보였다. 슈탈 용병단의 병력이 80명밖에 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보초로 10%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앵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을 녀석들까지 따지면 보초만 15~20%정도 될 것이다.
요앵 용병단의 야습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다. 요앵은 고개를 돌려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는 용병단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지금쯤이면 다들 알겠지만. 지금부터 슈탈 용병단을 친다.”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어 근처에 있는 녀석들만 들릴 정도로 이야기했다. 그 정도로 충분했다. 야습을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다. 앞에 있던 자들이 뒤의 사람에게 요앵의 이야기를 전달해주었다. 요앵은 대열 끝까지 전달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들에게 우리 동료 30이 죽었다. 그리고 어제 10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형제나 다름없었던 동료들 40명이다. 40명이 저 빌어먹을 놈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실제론 7명이지만 10명이라 과장했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가자.”
요앵도 이런 식으로 형제애를 자극한다고 해서 진짜로 모든 용병들이 복수를 위해 목숨을 걸어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기 자신 부터가 그럴 생각이 없다. 하지만 63명 중 최소 4~5놈은 방금 전의 연설로 감정이 격앙되는 녀석이 있을 것이다. 그런 녀석들은 이 순간만큼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선두에서 공격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별로 습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녀석들도 몇몇이 앞장서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할 것이고 싸우다보면 알아서 감정이 격앙 될 것이다.
이번 연설이 제법 효과가 좋았는지 6명 정도가 요앵의 ‘가자’라는 말에 반응해 몸을 숨긴 채 빠르게 슈탈 용병단의 진지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뒤를 57명의 용병들이 뒤따랐다. 요앵은 가장 뒤에서 따랐다.
싸움이 무서워서 뒤에서 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용병으로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전투에서든 가장 앞장서서 적을 향해 돌격했다. 다만 그의 유물이 기도비닉을 유지해야하는 야습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뒤에 서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빠르게 나아가 최선두에서 적과 싸울 것이다.
“습격이다!”
진지에 거의 근접했을 때 요앵 용병단을 발견한 보초가 소리를 질렀다. 적에게 들켰지만 요앵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용병단이 기습 전문도 아니고 공격할 때까지 적에게 들키지 않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쉬익. 퍽
컥. 아악.
이렇게 공격 직전까지만 들키지 않으면 대성공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석궁을 들고 있던 녀석들의 공격에 모습이 드러나 있는 보초들이 저격당했다. 어두운 밤인지라 명중률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 4명밖에 맞추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죽여!”
으아아아아아아아!
요앵의 외침과 동시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용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상대의 진지로 돌격해 들어갔다. 요앵도 마찬가지로 전력을 다해 달려 나갔다.
“워리어 전투모드!”
요앵이 외쳤고 가슴을 보호해주고 있던 브레스트아머가 그의 말에 반응했다. 브레스트 아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와 요앵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빛이 요앵의 몸 전체를 감싼 후 크게 빛이 반짝하고 크게 빛나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곳에는 요앵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컴뱃아머가 있었다.
와아! 워리어 요앵! 워리어 요앵!
요앵 용병단의 용병들이 요앵의 별칭을 부르며 환호했다. 요앵의 유물 ‘워리어’. 평소에는 브레스트 아머의 형태로 있다가 본격적으로 사용하면 전신을 감싸는 컴뱃아머의 형태로 변한다. 보통의 컴뱃아머보다 방어력도 훨씬 높지만 그보다 더 주요한 기능은 신체능력을 2배가량 올려준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컴뱃아머를 입음으로서 더 무겁게 된 요앵이지만 달리는 속도는 더 빨라져 있었다. 몸놀림도 가벼워 보이는 것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종이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크하!”
빠르게 달려 어느새 후미에서 가장 선두로 위치가 바뀐 요앵. 그는 눈에 띄는 적을 향해 크게 점프해서 달려들었다. 그 적은 잠자던 인원이 아닌 보초였는지 방패에 아밍소드, 갑옷까지 완벽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 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요앵을 향해 방패를 내밀었다. 그냥 단순히 내밀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도 요앵이 누군지 알고 얼마 전 전투로 그의 위력도 체감한 상태였다. 그는 방패에 어깨를 밀착하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쾅!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충격에 대비 했는 대도 요앵과 부딪힌 충격에 뒤로 날아간 슈탈 용병단의 용병. 하지만 아직 무력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충격에 정신이 없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방패는 요앵의 검과 부딪힌 부분이 반파되어 있는 상태였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검격 한 번에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상대를 날려버리고 방패까지 반파시킨 요앵이지만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초인이다. 초인의 온힘이 담긴 일격을 맞고도 평범한 인간이 멀쩡하다니. 물론 충격에 다리가 덜덜 떨리고 방패를 쥔 손의 손가락 몇 개가 부러진 상태지만 요앵이 보기엔 멀쩡한 상태였다. 무조건 죽었어야 하는 일격인데.
“빌어먹을 방패쟁이 놈들.”
그는 자신의 2m에 달하는 투핸디드소드를 양손으로 잡고 힘껏 휘둘렀다. 다시 방패에 막혔고 방패로 막은 남자가 2~3m가량 뒤로 날아갔다. 이제는 방패가 완전히 부서져서 반토막이 나버렸다. 요앵은 이정도면 됐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쓰러졌던 남자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빌어먹을 놈들.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요앵은 반토막난 방패를 들고 겨우 방어를 하는 시늉만 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
약 20명의 용병들이 속절없이 당했을 무렵 숙소에 있던 슈탈 용병단이 무장을 갖추고 밖으로 나왔다. 갑옷을 장착할 시간이 없어 방패와 아밍소드만 든 채였다.
슈탈 용병단 남은 인원 60명.
요앵 용병단 남은 인원 55명에 초인 1명.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고 시간이 흘러 동이 틀 무렵. 승리자로서 자신의 두발로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요앵 용병단이었다. 하지만 슈탈 용병단의 반항이 워낙 거세서 요앵 용병단도 꽤 큰 타격을 입었고 살아남은 자는 부상자를 포함해 15명에 불과했다.
***
“빌어먹을 슈탈놈들. 내가 전승급, 아니 전설급 유물만 얻어 봐라. 반드시 마지막 한명까지 쓸어버리겠다.”
이기긴 했지만 너무 뼈아픈 승리였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요앵 자신을 포함해 9명이 전부였다. 다른 6명은 살아남긴 했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그 중 3명은 중상이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총인원 200에 달하던 중상급 용병단인 ‘요앵 용병단’이 총원 110명에 불과한 중하급 용병단으로 내려앉게 되었다. 요앵은 그것이 너무 짜증났다. 원래대로라면 별 피해 없이 유물을 얻었어야 하는데 한순간의 판단실수로 용병단이 반 토막이 나버렸다.
이곳에서 유물을 얻고 가지고 있던 명품급 유물 ‘워리어’를 팔게 되면 다시 원래의 세력으로 회복하는 것을 뛰어넘어 더 큰 용병단을 꾸릴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것도 많은 시간이. 실력 있는 용병은 구하기 힘든 법이니까.
“전리품은 부단장이 온 후에 챙기기로 하고 우선 던전부터 공략한다. 부상자도 전부 던전 앞으로 옮겨.”
휴식이 절실한 요앵과 용병들이었지만 시간을 끌었다가 다른 놈들이 꼬이기라도 하면 이 고생을 하고도 유물까지 놓쳐버릴 수도 있다. 기회가 왔을 때 빨리 피해를 각오하고서라도 유물을 얻어놔야 했다. 그것이 이번에 얻은 교훈이다.
“힘내라. 이번에 얻은 전리품은 전부 너희들 차지다. 운영비 한푼도 떼어가지 않을 거다.”
오오.
기뻐하는 용병들. 원래 용병단에 속해 있는 상태에서얻는 전리품의 반은 용병단에서 운영비 명목으로 떼어간다. 요앵은 그 50%의 세금을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상대한 슈탈 용병단은 장비의 상태가 좋기로 유명한 곳. 그자들의 장비를 내다 팔면 꽤 큰돈이 나올 것이다. 질 좋은 무기는 비싼 법이니까. 용병들은 곧 들어올 돈에 기분이 좋아졌다.
던전 근처로 자리를 옮긴 요앵은 3시간의 휴식을 가진 후 스톤골렘 공략에 나섰다. 부상자를 포함한 모든 용병이 나선 공략이었다. 부상자는 멀리서 석궁을 쐈고 사지가 멀쩡한 요앵과 8명의 용병들이 근접해서 공격했다. 몸체가 돌로 이루어져 있어 공격이 잘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느려서 조금씩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고 2명의 용병이 죽고 난 후 스톤골렘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요앵은 쉬지 않고 부상자들에게 던전 입구를 경비하게 시키고 그나마 멀쩡한 6명을 데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쉬익. 쉭. 쉭.
세발의 볼트가 날아와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부상자들을 저격했다. 그리고 곧 루이웨, 아론, 토마스가 나타나 숨이 붙어있는 중상자와 부상자들을 처리했다.
“상황이 좋아. 유물은 우리가 가진다.”
“네.”
루이웨, 아론, 토마스 세 명은 거침없이 던전 안으로 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