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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아. 그랬던 거야? 와. 요한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나쁜 사람이었네... 그건 그렇고 우리 토마스는 역시 대단해.”
“아닙니다. 딱히 대단할 것은.... 요한이 중견 용병치고는 너무 약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때는 겸손을 떠느라 하는 말들이었지만 지금의 토마스는 진심이었다. 그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다니고 전투도 몇 번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냐. 토마스는 정말 대단하다니까. 역시 진정한 아프리카 영웅이야. 에흐몬트 영웅이 될 내 옆에 설 자격이 있어.”
“.... 아프리카 영웅이라니. 아프리카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습니다만..... 저 리스본에서 태어나 유럽 땅을 떠나본 적 없는 유럽토박이입니다.”
“몰라. 여하튼 토마스는 아프리카 영웅이야.”
“..... 그나저나 아까 뭔가 나중에 한다고 하시던데 유물 관련이라면 지금 당장 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혹시 뭔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음? 넘버127이 이야기 하는 거 못 들었어? 나중에 해도 괜찮다고 했잖아.”
토마스가 내 바로 옆에 도착하고 나서 나눈 대화다. 넘버127의 목소리가 작은 것도 아니었기에 토마스가 듣지 못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물의 이름이 넘버127입니까. 저에겐 넘버127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도?”
“네.”
“그럼. 나한테만 들리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여하튼 넘버127이 괜찮데. 일단 날이 어두워 졌는데 야영지 찾고 마차도 찾고 해야 하지 않아?”
“음... 그래도 괜찮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요한의 시체부터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요한은 구덩이를 파 신분을 알 수 있을 만한 소지품을 전부 회수한 후 요한의 시체를 묻었다. 소지품은 나중에 찾지 못하도록 파괴하거나 따로 처리할 것이다.
마차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에는 약 7시간 정도 걸렸지만 다시 마차로 돌아가는 데에는 3시간이면 충분했다. 이곳에 올 때는 길을 찾아가며 지그재그로 왔지만 가는 길은 토마스가 직선 길을 기억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마차는 다행이도 우리가 떠날 때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갔다면 치즈와 값나가는 물건, 그리고 마론까지 싹 사라졌을 텐데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나보다.
바닥에 아직 싣지 않은 치즈상자들이 있었지만 다시 정리하는 것은 다음날 일어나서 하기로 결정하고 따로 야영지를 만들지 않고 달구지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물론 나만. 토마스는 밤을 새우며 불침번을 섰다.
다음날 아침이 되고 동이 떠오른 후 우리는 아직 땅바닥에 쌓여있는 치즈상자는 전부 버리기로 결정하고 가벼운 달구지를 이끌고 빠른 속도로 위트레흐트로 향했다.
***
-가이드를 시작합니다.
“응.”
위트레흐트로 향하는 마차 안. 치즈를 전부 버려 상당히 가벼워진 달구지지만 달구지는 달구지. 애초에 빨리 달리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달구지를 끄는 것도 힘과 지구력은 좋지만 속도는 느린 노새 마론. 토마스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최소 2일 정도는 야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오늘 포함해서 앞으로 3일 정도는 시간이 남는다는 것. 난 그 시간에 넘버127이 이야기했던 가이드란 거나 해보기로 결정했다.
-가이드 시작 전 커넥팅 작업을 실시하겠습니다. 시스템 ‘대항해시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아론님의 신체 데이터에 접근,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신체 데이터에 대한 접근및 수정은 절대적으로 시스템 ‘대항해시대’에 관련된 항목으로 제한되며 아이템 규칙 1조 ‘아이템은 사용자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에 근거하여 절대 아론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론님의 신체 데이터에 접근,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겠습니까?
“.... 도대체 무슨 말인지.... 여하튼 나한테 도움주려고 뭔가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잖아.”
-네.
“그럼. 해.”
-신체 데이터 접근 및 수정권한 획득.
시스템 ‘대항해시대’ 신체 적용 시작합니다.
...
.....
.......
적용 완료.
가이드 시작합니다.
시각데이터 전송 시작.
“음? 이건 뭐야? 넘버127이 한 거지?”
갑자기 허공중에 글자 몇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글자들은 내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더라도 똑같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네. 맞습니다. 시스템 ‘대항해시대’의 서포팅 내용은 주로 시각 정보를 통해 명시됩니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을 제외하고도 앞으로 많은 정보들이 시각을 통해 제공될 예정이니 지금 어색함을 느끼시더라도 곧 적응 되실 겁니다.
우선 지금 보시고 계신 텍스트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글자들은 큰 글씨로 ‘레벨 0, 무재 0, 문재 0, 상재 0.’이라는 것과 그 네 가지 큰 글씨 전부의 밑에 작게 써져 있는 ‘다음 단계까지 남은 포인트 10’이라는 글자다.
-무재, 문재, 상재는 문자 그대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 무(武)에 관련된 재능, 문(文)에 관련된 재능, 상(商)에 관련된 재능을 가리킵니다. 밑에 작게 써져 있는 ‘다음 단계까지 남은 포인트 10’이라는 글이 보이실 겁니다. 앞으로 아론님께서 하는 행동 중 시스템 ‘대항해시대’의 기준에 부합되는 행동이 행해질 때마다 제가 포인트를 부여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재에 관련된 일정한 행동을 하여 10포인트를 얻게 되시면 무재 1이 됩니다. 그럴 경우 아론님의 무술이나 전투에 관련된 기술을 익히기 위한 재능이 실제로 늘어나게 됩니다.
“.... 잠깐만. 좀 이해가 안 되는데? 재능이 늘어난다니. 음... 전에 말했던 네 서포트 기능이란 거. 원래 10의 수련치를 얻을 것을 15만큼 얻게 해준다고 했던 이야기랑 같은 거야?”
-네. 맞습니다. 세 가지 재능으로 분류 되었다는 것과 포인트를 얻어 단계를 올리게 되면 서포트 효율이 늘어난다는 것이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그럼. 무재 1단계가 되면 얼마나 효율이 늘어나는 거야?”
-지금의 아론님을 기준으로 수련 효율이 23.42%, 수련 한계치가 31.39% 증가됩니다. 단계 하나가 올라갈 때마다 늘어나는 재능의 양은 절대치이기 때문에 재능이 높아질수록 효율이 낮아집니다.
“절대치?”
-네. 예를 들어 지금 아론님의 세부능력치 근력이 100이라고 쳤을 때 무재가 1단계 오를 경우 10의 근력이 추가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럴 경우 처음 늘어난 10의 근력은 10%의 효율이 됩니다. 하지만 무재가 2단계가 되어 다시 10의 근력이 늘어 110에서 120으로 근력이 바뀌면 9.09%만큼의 효율을 보이게 됩니다. 늘어나는 근력의 절대치는 그대로지만 효율은 약 0.91% 낮아지게 되는 거죠.
“으음.... 어렵지만 대충 이해했어. 그런데 세부능력치? 근력이면 힘 이야기하는 거 맞지? 지금 내가 가진 힘이나 다른 여러 가지가 세부능력치인거야?
-맞습니다. 세부능력치도 2가지로 나뉘는데 ‘근력, 체력, 민첩, 매력, 운세, 지력, 정신 등’의 상위 능력치와 ‘생명력, 통솔력, 조선술, 측량술, 회계술, 검투술, 명중력, 설득력, 모략술, 관찰력 등’의 하위 능력치로 나뉩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 외에도 수백 가지의 세부능력치 항목이 있습니다.
“알려줘.”
-제한된 정보입니다.
“에. 알려 줄 수 없는 거야?”
-네,
“나중에도?”
-네.
정말이었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았다. 치사한 것. 재능 1단계 올릴 때마다 어느 정도의 세부능력치가 오르는지 알 수 있으면 수련 계획을 짤 때 더 도움이 될 텐데 말이야.
-다음은 레벨입니다. 포인트는 무재, 문재, 상재에 관련된 포인트만 있고 레벨은 따로 없습니다. 대신 무재, 문재, 상재에 각각 들어가는 모든 포인트는 레벨에도 들어갑니다. 레벨은 무재, 문재, 상재가 각각 포인트를 얻을 때마다 레벨도 포인트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그럼. 레벨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거지?”
-없습니다. 레벨은 단계가 올라가도 딱히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 왜 있는 거야?”
-레벨은 단독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대신 레벨 1당 1개의 보너스 단계가 주어집니다.
“보너스 단계?”
-네. 보너스 단계는 아론님께서 원하는 재능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해당 재능은 1단계만큼 효과가 추가 됩니다.
“호..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재능을 키울 수 있다는 거네?”
-맞습니다. 보너스 단계는 원래 재능단계의 옆에 괄호가 생기고 그 안에 써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허공에 새로운 글씨 ‘무재 1(+1)’이라는 글씨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방금 그것은 무재 1단계에 보너스 단계 1이 추가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이것으로 레벨과 단계에 대한 기본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등급과 직업에 대한 설명입니다.
“등급? 직업?”
-새로운 정보를 출력합니다.
다시 허공중에 몇 가지 단어가 나타났다. ‘등급 - 초심자, 직업 - 수습상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글씨들은 사라지지 않고 레벨이나 단계처럼 내 시야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등급은 간단하게 계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후백자남과 같은 계급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새로운 서포트 기능이 제공되는데 이는 실제 현실에서 남작이 자작이 되었을 때 몇 가지 혜택이 추가되는 것과 같습니다. 등급은 초심자, 브론즈, 실버, 골드,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마스터의 총 7단계가 있습니다. 다만, 초심자 등급은 사용자에게 서포트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 등급이기 때문에 진짜 등급은 아닙니다. 진정한 등급은 브론즈부터이며 초심자를 제외한 총 6단계의 등급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등급이 올라 갈수록 혜택이 추가된다는 거지? 그럼 브론즈로 올라가면 어떤 혜택이 있어? 실버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새로운 서포트 기능은 규칙상 해당 등급으로 승급할 경우에만 공지됩니다.
이어서 직업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단호하기 그지없다. 넘버127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분명 나를 상급자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말해줄 수 없다거나 못한다고 말할 때 ‘죄송합니다.’정도는 붙여야 하는 거 아냐?
-직업은 재능과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직업은 아론님에게 특수한 능력을 추가해 줍니다. 예를 들어 가이드 직업인 ‘수습상인’은 ‘거래 시 호감도 약간 상승’이라는 효과가 주어집니다.
“호감도 상승?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야?”
-거래 상대방에게 아론님의 인상이 좋게 느껴집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해드리자면 상대방의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에피네프린을 합쳐 도파민을 생성하고 도파민을....
“잠깐. 아냐. 미안해. 그만해줘.”
-네.
“그냥 상대방이 날 더 좋아해준다는 거 아냐.”
-비슷합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아냐. 그만. 자세한 거 필요 없어. 그냥 직업에 대해 설명하던 거 이어서 해줘.”
예나 지금이나 넘버127은 설명을 어렵게 한다.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적응이 됐지만 이때는 넘버127의 설명을 알아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현재 직업인 ‘수습상인’은 아론님의 활동이 상인에 가깝기에 주어진 가이드 직업으로서 필요 재능은 ‘무재 0, 문재 0, 상재 0’입니다.
“아. 직업이란 걸 얻으려면 무재, 문재, 상재가 몇 단계인지가 중요한 거야?
-그렇습니다. 직업을 활성화 하는데 필요한 일정 재능을 얻게 되면 해당 직업이 활성화 됩니다.
“재능 몇 단계에 어떤 직업이 활성화 되는지는.... 당연히 안 알려주겠지?”
-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치사한 놈.
“계속 설명해봐.”
-네. 다음은 포인트 획득 방법입니다. 포인트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정해진 기준에 따라 아론님께서 일정한 행동을 할 경우 주어집니다.
“그 정해진 기준이란 게 뭔데?”
-설정된 기준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말로 설명 드리면 지금부터 정확히 17일 15시간 38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들으시겠습니까.
“....... 아니. 안 들을게.”
-단 어느 정도 개념이 잡히도록 몇 가지 ‘미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션’은 아론님께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행동이라 생각되는 것을 행하도록 제안하는 기능입니다. 대충 임무 혹은 숙제의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되며 성공 시 보상이 있습니다. ‘미션’의 생성은 전적으로 제가 담당하며 ‘미션’의 생성 이유나 근거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비밀도 많다. 좀 말해주면 어디 덧나는 걸까. 어차피 넘버127은 이제 내건데 말이야.
-미션을 생성합니다.
..
....
생성 완료.
미션 정보를 출력합니다.
다시 내 시야에 새로운 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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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시스템 대항해시대에 대해 알아보자-무재’
-토끼 한 마리 사냥.
보상-무재 다음 단계로 상승
조건-본인이 직접 잡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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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네. 토끼 사냥입니다. 주변에 서식하는 동물에 대한 검색 결과와 아론님의 현 상태에 대해 검토한 결과 토끼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뭐야 그 말은. 내가 겨우 토끼밖에 못 잡는다는 거야? 나 예전에 늑대도 잡은 적 있거든?”
-네.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가이드 미션입니다. 미션과 포인트에 대한 개념을 잡기 위한 것이기에 일부러 간단한 일을 미션으로 만든 것입니다.
“음... 알았어. 문재나 상재는?”
-미션은 동시에 하나만 주어집니다. 문재나 상재에 관한 미션은 이 미션이 끝난 후 적당한 임무를 미션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한마디로 주어진 미션을 안 하면 다음 미션은 나오지 않는다는 거네?”
-맞습니다.
“미션은 주어지면 무조건 빠르게 하는 게 좋겠네.”
-맞습니다.
“더 설명 할 거 있어?”
-미션을 완료하기 전까진 없습니다.
“좋았어. 그럼. 토끼를 잡아볼까?”
============================ 작품 후기 ============================
참고로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디아스대륙'은 신대륙을 뜻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이죠.
16~17세기에는 신대륙을 인도의 동쪽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신대륙이라 주장하는 탐험가도 있었지만 그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18세기경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 소설속에서 신대륙은 앞으로도 계속 '인디아스대륙'이라고 불릴예정입니다.
인도는 '인도', 신대륙은 '인디아스대륙'으로 구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