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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8화 (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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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1572년 5월 22일 일요일

“흐아아아압!”

요한이 생사대적을 향한 혼신의 일격이라도 날리는 듯 크게 고함을 지른다.

“웃샤!”

“오오. 드디어 빠졌다.”

거의 1시간가량 고생한 끝에 겨우 도랑에서 달구지 바퀴를 빼냈다.

“젠장. 전에 호위했던 귀금속상은 이런 마차 없이 작은상자 하나만 들고 다녔는데 그 상자의 가치가 100만 오션이었다고, 근데 식료품상은 이 큰 달구지 하나가 겨우 25,000오션이라니. 역시 식료품상인은 할 게 못돼. 아론. 너도 크면 꼭 이런 고생스러운 식료품상 하지 말고 귀금속상 같은걸 해라.”

요한이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여행 둘째 날 알크마르를 나서면서부터 조금씩 말하기 시작하더니 3일째인 오늘은 조금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고 있었다. 뭐. 불만을 쏟아낼 만 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달구지 바퀴가 빠지지 않아서 결국 짐을 전부 내려야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다시 짐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니 불만이 없을 수가 있나.

“...........”

평소라면 맞장구쳐주며 함께 대화를 나누었을 테지만 지금은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자체가 워낙 심심하니 말 많은 사람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고 좋지만 나는 어제부터 들리는 이명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토마스의 말을 믿고 겨우 잠을 청했건만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어제와 똑같은 이명이 들렸던 것이다.

“이런. 너 아직도 이명이 들리는 거냐?”

대답 없이 잔뜩 찌푸린 내 얼굴을 본 요한이 상태를 짐작하고는 물었다. 나는 대답할 기분이 아닌지라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너무 오래가는데? 단순히 갑자기 무리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 와봐라. 혹시 귀에 상처가 있는 건 아닌지 봐야겠다.”

이미 간밤에 토마스가 한번 살펴보긴 했지만 혹시 요한이 뭔가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햇빛 쪽으로 내 귀를 돌리고 안쪽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귓밥이 좀 쌓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상처는 보이지 않는데? 귓밥이 많이 쌓이면 이명이 들릴 수도 있나? 아냐. 저 정도에 이명이 들릴 정도면 난 매일 종소리를 듣고 살아야 돼. 혹시.....”

약간의 자학을 하며 냉철하게 판단한 그는 ‘혹시...’라는 말을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한참이 지나도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렇지만 혹시 모르잖아.’, ‘으음....’ 등의 혼잣말만 할 뿐 고조된 내 궁금증을 해소해주지는 않았다.

“혹시 뭔데요. 뭐라도 이야기 해주세요. 처음엔 버틸만했는데 계속 들리니까 짜증나 죽겠어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먼저 물었다.

“혹시... 혹시나 말이다. 그러니까...”

“네. 혹시.”

“혹시 네 머릿속에서 울린다는 이명. 일정한 주기로 들리다가 점점 빨라진다거나 점점 느려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냐?”

“어? 어떻게 알았어요?”

“저...정말이냐? 그래. 어떻게 변했냐. 빨라졌어? 느려지기도 하고?”

“와. 요한 아저씨 의사에요? 어떻게 알았대. 어제는 조금씩 빨라졌는데 아침에 야영지를 정리하고 떠난 뒤부터는 점점 느려지더라고요.”

나는 이명이 들려오는 주기가 점점 길어지는 것을 낫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짜증은 났지만 지금까지 참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만약 나아지고 있다는 조짐이 없었다면 진즉에 불안감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천사의 부름!”

내 말을 들은 요한이 크게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

“토마스. 천사의 부름이 뭐야?”

요한은 ‘천사의 부름’이라 소리 지르며 놀라더니 우리를 재촉해서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노새와 달구지를 그 자리에 버려둔 채로 말이다. 놀란 것은 달구지와 짐을 놓고 간다는 것을 토마스가 동의 했다는 것이다. 그 수전노 토마스가 말이다.

나는 천사의 부름이 뭔지, 왜 달구지를 버리고 이렇게 급하게 길을 되돌아가는지 요한에게 묻고 싶었지만 워낙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그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 천사의 부름은 ‘신의 축복’의 초대장입니다.”

“신의 축복? 신님이 축복을 내려준다고?”

‘신의 축복’ 원래라면 교회의 사제를 통해 받는 상징적인 의식을 칭하는 말이다. 신도들이 ‘성공하게 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 빌고 사제는 그 기도를 들은 다음 축복을 내려준다. 그러면 신도들은 자신이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며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 당연히 사제의 축복을 받기 전 헌금을 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가 커지니까.

원래 ‘신의 축복’이 가리키는 것은 위에 설명한 것이 유일했다. 하지만 약 100년 전부터 ‘신의 축복’의 뜻은 두 가지가 되었다.

“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내가 바본 줄 알아? 유물은 영웅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잖아. 빌럼공의 ‘침묵’이나 침략자 알바의 ‘강철’같은 거.”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혹시 유물이 주인을 스스로 선택하고 시험한다는 것도 아십니까?”

“응. 알아. 빌럼공이 ‘침묵’의 가디언인 붉은 와이번을 단칼에 해치운 이야기는 나도 안다고.”

에흐몬트 공 라모랄과 호르네 백작이 자신들의 영지에서 인민의 영웅이라 불리고 있다면 빌럼은 네덜란드의 영웅이라 불리고 있다. 신성로마제국, 에스파냐, 네덜란드 등, 유럽 땅의 3분의 1을 지배했던 위대한 황제 카를 5세의 제 1가신이며 네덜란드의 수호신. 현존하는 전설과 같은 존재다. 당연히 그의 이야기는 동화처럼 각색되어 네덜란드 전역에 퍼져있다.

“맞습니다. 단칼에 벤 것은 아니지만 빌럼공께서 붉은 와이번을 물리치고 ‘침묵’을 얻으셨죠. 유물이 빌럼공을 시험하기 위해 몬스터를 만들어냈고 빌럼공은 유물이 만들어낸 시험을 통과해 유물을 얻으신 것과 같이 유물이 주인을 선택하는 과정을 ‘각인’이라고 합니다.”

“각인... 왠지 멋진데.”

“멋지죠. 유물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각인’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 가지?”

“네. 세 가지입니다. 자세하게 분류한다면 수십, 수백 가지가 되겠지만 크게 분류한다면 세 가지입니다. 그중 첫 번째 방법이 빌럼공께서 ‘침묵’을 얻으신 것처럼 유물이 몬스터를 만들어내어 주인이 될 자를 시험하는 ‘헌팅’.”

두 번째는 ‘토너먼트’다. ‘토너먼트’는 유물이 던전을 생성하고 가장 먼저 던전의 마지막에 도착해 유물을 집는 자를 주인으로 선택하는 각인 방식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1등을 뽑는 것이기에 ‘토너먼트’라 이름 붙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신의 축복’. 앞의 두 방식은 강한 무력과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신의 축복’은 무력이 없는 갓난아기라도 유물을 얻을 수 있는 ‘각인’ 방식이다. 그저 자신을 부르는 유물을 찾아가 주인이 되기만 하면 되는 덕분이다.

여기서 유물이 주인을 부르는 과정을 ‘천사의 부름’이라고 한다. 신이 천사를 심부름꾼으로 쓰는 것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에... 그럼 나 유물 생기는 거야?”

“이명의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까?”

“응? 그러고 보니... 그러네? 아까는 점점 느려지더니 길을 되돌아가니까 점점 빨라지고 있어.”

“그렇다면 아직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요한님의 말대로 ‘천사의 부름’이 맞을 가능성이 높군요.”

“오오오.”

당시의 나는 아주 신났다. 속으로 ‘과연 모든 에흐몬트 인의 축복을 둘이 나눠 받은 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가자. 빨리.”

나는 신나서 빠르게 걷고 있는 요한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얼마 가지 않아 아침에 출발했던 그 장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침 먹고 출발하여 거의 3시간이나 이동했지만 달구지가 워낙 무거워 마론의 걸음이 느렸던 덕분에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떠냐. 이명의 주기는 여전히 빨라지고 있니?”

요한이 다가와 물었다.

“네. 확실히 아까보다 더 빨라졌어요.”

“다시 느려지진 않았고?”

“아직이요.”

“그래. 그럼 조금 더 돌아가 보자. 느려지기 시작하면 바로 이야기 하고.”

“네.”

야영지에서 얼마 가지 않아 이명의 주기가 약간이지만 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내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요한과 토마스 역시 동시에 멈췄다.

“왜 그래? 느려졌어?”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언제부터? 지금 느려지기 시작한 거야?”

“네. 지금이에요. 집중하고 있었으니 확실해요. 계속 빨라지다가 방금 약간이지만 느려지기 시작했어요.”

“그래. 그럼 여기가 시작점이다.”

요한은 칼을 꺼내 땅을 파낸 뒤 주먹크기만한 돌을 주워와 땅에 묻었다. 길 한가운데에 돌이 박혀 있으니 확실히 눈에 띄었다.

“여기를 시작점으로 일단 저쪽부터 가보자. 아론. 네가 우리의 길잡이이니 이명의 주기가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하는 것을 바로 알려주어야 한다.”

“네.”

요한이 길 왼쪽의 숲을 가리켰다. 우리는 요한이 정한 방향으로 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요한이 앞장서며 가지고 있는 검 중 작은 쪽을 꺼내 풀과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길을 만들었다. 요한이 검을 다루는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허리 양 쪽에 아밍소드와 일반적인 것보다 더 짧은 쇼트소드를 한 자루씩 차고 있었다. 나는 요한이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싶었지만 딱히 요한이 검을 들어 싸울 일이 없어 구경할 기회는 없었다.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다행이 요한이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지 이명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었다. 다시 20분가량 걸었을 때. 이명의 주기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요한에게 알렸다.

요한은 반경 1M정도 범위에 있는 풀을 전부 베고는 다른 곳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곧 작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풀과 나무가 가득한 숲속이다 보니 작은 공터라 해도 눈에 확 띄었다. 요한은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주변에 있는 나무에 검으로 큰 표식을 남기기까지 했다. 그리곤 다시 직각으로 방향을 틀고는 이동했다.

그렇게 걷다가 이명의 주기가 느려지기 시작하면 잘못된 방향이니 180도 선회해서 반대방향으로 걸었고, 새로운 분기점이 나올 때마다 요한이 표식을 남겼다.

우리는 점심을 굶어가며 계속 움직였고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까지도 계속해서 이동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다시 느려지기 시작한 거냐?”

“아니요.”

“음? 그럼 왜 멈췄지?”

“이젠 이명의 주기가 빨라지고 느려지고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이런 것이 없어도 어디로 가야할지 확실히 알 것 같거든요. 저기.”

나는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음? 뭐라도 보이는 거냐?”

“저 빛이 안 보이세요? 해가 져서 다른 곳은 전부 어두운데 저곳만 밝게 빛나고 있잖아요.”

“나는 보이지 않는데?”

“토마스는?”

“저도 보이지 않습니다.”

“... 여하튼 전 보여요.”

“그럼 저쪽으로 가보자.”

요한이 내가 가리킨 곳을 향해 다시 길을 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저물 무렵. 우리는 빛이 나는 지역에 도착했다. 내가 이곳이 도착지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요한이나 토마스도 그곳이 도착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네 이곳에 이런 유적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나?”

요한이 토마스에게 물었다.

“15년 동안 이 근방을 반복해서 다녔지만.... 들어본 적 없군요. 하지만 저희는 상단이라 거래에 집중하다가 못 들었을 수도....”

“아니. 아무리 상단이라도 이런 큰 유적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트레져헌터 녀석들이 항상 들끓었을 텐데 말이야.”

“그렇겠군요.”

“이런 규모라니.... 적어도 전설급이다.”

우리가 도착한 최종장소. 그곳에는 거대한 돌기둥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며 세워져 있었는데 그 규모가 거의 사방 2~300m정도에 달했다. 유물이 주인을 맞이하게 위해 만든 곳일 터인데 이렇게 큰 규모라니. 요한의 말대로 적어도 전설급일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응? 어디 가는 거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나를 보며 요한이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요한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했다. 내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었으니 말이다. 내 시선이 고정된 곳. 그곳은 요한과 토마스가 보지 못하는 빛의 근원이었다. 나는 마치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빛의 근원에 고정한 채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요한은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고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토마스도 마찬가지로 조용히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빛의 근원 앞에 도착해 손을 뻗어 그것을 만졌다.

화화확!

크게 빛이 일며 순간 눈앞을 가렸다. 하지만 눈이 아프다던가 나에게 해를 끼친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깐 하얀 빛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 잠시 후 크게 일어났던 빛이 사라졌을 때 내 눈앞에는 은은한 빛을 뿌리는 예쁜 펜던트가 떠 있었다.

“저것이 유물....”

뒤에서 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것보다 다른 소리에 더욱 집중하였다.

-아이템 넘버127. 예비사용자에게 인사드립니다.

바로 유물의 목소리에 말이다.

***

“요한님 덕분에 도련님께서 유물을 갖게 됐군요. 본가에 도착하는 대로 크게 사례하도록 하겠습니다.”

“....................”

“... ‘신의 축복’은 주인을 미리 정해놓는 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전승급 이상의 유물은 주인이 죽을 경우 사라져서 다른 곳으로 사라진 다는 것도 알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 유물의 주인이 되기 전에 주인이 될 자가 죽는다면? 아직 유물의 주인이 되지 않은 자가 죽는다 해도 유물이 사라질까?”

“그럴 겁니다.”

“아니. 난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

토마스는 요한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요한의 눈은 탐욕으로 물들어 있었다.

스르릉.

요한이 말없이 자신의 검 두 자루를 검집에서 꺼내 손에 들었다. 토마스도 마찬가지로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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