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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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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설, 전승, 명품.
유물의 등급을 나누는 명칭이다.
유물이 주인을 선택하며 ‘나 무슨 급입니다.’라고 알려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후에 초인이 갖게 되는 능력을 보고 저건 무슨 급쯤 되겠구나하고 사람들이 붙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아. 명확하게 정해지는 등급이 있기는 하다. 바로 명품급이다. 명품은 주인을 시험한다거나, 던전을 만들고 몬스터를 만들거나 하는 일이 없다. 그저 손아귀에 넣는 모든 이가 자격유무에 상관없이 주인이 될 수 있다. 유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도 간단하다. 손에 쥐는 순간 주인이 되겠는지 질문을 하니 말이다. 당연히 신화, 전설, 전승급에 비해 위력이 약하다.
전승 이상 급의 유물들이 주인을 정하는 방법은 앞에서 언급했듯 다양하다. 능력의 종류나 등급의 차이에 상관없다. 시험의 방법은 유물마다 다른데 등급에 따라 시험의 강도가 달라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물의 시험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전승급만 되어도 불러내는 몬스터가 완전 무장한 정예군인 50명은 있어야 겨우 퇴치가 가능할 정도니 평민들에게는 눈앞에 드래곤이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딱 한 가지 방법은 병사나 기사가 단 한명도 필요 없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 유물의 주인 선택방법. 최초에 여왕 이사벨라를 주인으로 선택했던 유물 ‘광휘’의 선택방법.
‘신의 축복’이다.
유물이 주인을 선택하는 과정을 ‘각인’이라 부르는데 이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각인’ 방법은 바로 ‘신의 축복’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신의 축복’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 책 ‘대항해시대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 1장 유물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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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이 힘들지 않을까?”
“속도가 좀 느려지긴 하겠지만 괜찮을 겁니다. 노새는 빠르진 않지만 우직하고 힘이 좋지요. 상단의 노새와 나귀의 숫자가 많을 때에도 마론 녀석의 힘이 가장 좋았습니다.”
갑자기 확 무거워진 달구지의 무게에 마론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 토마스에게 물었다. 마론은 달구지를 끄는 노새에게 내가 붙인 이름이다. 원래는 아무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지만 여행 첫날 너무 심심해서 별짓을 다하다가 노새에게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대충 생각한 것 치고는 제법 예쁜 이름이라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원래의 짐 50kg, 달구지 무게 100kg, 보통은 걷지만 간간히 번갈아가며 달구지에 올라타는 나와 요한, 토마스. 그리고 이번에 구입한 치즈와 치즈가 담겨 있는 상자의 무게를 합쳐 280kg. 마론은 최대 550kg 가량의 달구지를 끌게 된 것이다.
“원래는 10덩이정도만 사려고 했는데 이번 치즈가 워낙 품질이 좋아서 저도 모르게 32덩이나 사버렸군요.”
“‘항상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십시오.’라고 말하더니...”
“..... 죄송합니다.”
“훗.”
오랜만에 토마스의 사죄 멘트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마론은 프랑스가 고향인 몸높이는 160cm, 몸무게 700kg인 대형 종의 노새다. 암말과 수컷당나귀의 혼혈인 노새는 원래 대부분 힘이 좋다고 하지만 이 프랑스산 노새는 특히 더했다. 지금도 이렇게 무거운 달구지를 무리 없이 끌고 있지 않은가.
나는 마론의 어깨(라고 짐작되는 부분)을 토닥였다. 등이나 머리를 토닥이고 싶었지만 나에겐 너무 높다.
“어이구. 우리 마론 힘 좋다. 그래 힘내. 나중에 내가 맛있는 밥 줄게.”
끄어어억
“그래그래. 아주 아주 맛있는 먹이.”
노새는 힘도 좋고 지구력도 좋고 먹이도 가리지 않고 병도 잘 걸리지 않아 다 좋은데... 이 째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좀 문제다. 왜 너희 엄마처럼 ‘이히히히힝’하는 멋진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니.
“이것을 가져가면 대충 이익을 얼마나 얻나?”
용병 요한이 물었다. 원래 호위로 고용된 용병이 물건의 가격이나 시세 등을 물어보는 것은 금기다. 물건의 가격과 시세를 아는 것이 바로 상인의 무기이자 능력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엔 어린 나와 노예인 토마스밖에 없으니 거리낌 없이 물어본 것이다.
“대충 하나당 300오션에서 시세에 따라 플러스 마이너스 100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32덩이니까.... 음.... 하나.. 둘...”
손가락을 전부 동원해 계산하기 시작하는 요한. 저렇게 계산하면 하루종일 계산해도 틀린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는 셈의 천재인 내가 나서야지.
“9,600오션이요.”
“아. 그래? 알려줘서 고맙구나. 대충 9,000오션 정도의 이익이라... 위트레흐트에서 파는 거지?”
“그렇습니다.”
“손해군. 손해야. 시세가 안 좋을 때는 이익이 거의 반까지 떨어지는 거잖아?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군. 노새 먹이에 여관비, 여행에 필요한 소비품을 생각하면 대충 이익은 반 이하로 떨어지겠어. 시세가 나쁠 때는 이익이 없을 수도 있겠군. 맞나?”
“맞습니다.”
“역시 돈을 벌려면 바다야. 육지에서는 돈을 전혀 벌지 못하는군. 차라리 내 고용비가 상인 이익보다 많겠어.”
역시 나름 10년 동안 발트해 상인들의 호위를 해와서인지 복잡한 계산을 제법 그럴 듯하게 해냈다. 하지만 여기서 요한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원래는 한 번에 움직이는 짐마차의 수가 10개가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위도 요한처럼 고급용병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저렴한 용병을 고용하고 일꾼으로는 일을 쉬는 마을 사람을 고용하여 짐마차 2개당 1명이 관리하도록 한다. 그리고 전문적이고 세세한 관리는 토마스를 비롯한 상단소속 노예들이 한다. 그렇게 되면 제법 이익이 올라가지만 토마스는 그런 자세한 부분까지 요한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원래 식료품 상인이 그렇습니다. 치즈처럼 상하지 않고 취급이 쉬운데다가 평민이 주로 사는 품목은 큰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생산해 네덜란드에 파는 것이니 이익이 많을 수가 없지요. 큰 이익을 얻으려면 귀금속이나 보석, 무기나 갑옷 같은 고급 상품을 취급해야 합니다.”
토마스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요한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토마스가 원하는 것은 잘 듣고 생각한 다음 생기는 의문점을 묻는 것. 어릴 적부터 자주 해온 문답식 교육이기에 나는 바로 의문점을 물어보았다.
“그럼 내가 나중에 상단을 이끌게 되면 보석이나 무기 같은 걸 취급해야겠네? 식료품을 취급해서는 평생 큰돈 벌기 힘들 거 아냐.”
“그렇기는 하지만 둘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치즈와 같은 식료품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고 취급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주의가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안정되어 있어 큰 이득을 얻는 일도 없지만 큰 손해를 보는 일도 없습니다. 반면 보석과 같은 고가의 상품은.”
“취급이 어렵지 않고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가격이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맞지?”
“후훗. 맞습니다.”
토마스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웃음은 내 기분도 좋게 만든다.
“추가로 고가의 상품을 취급하게 되면 도적들에게 습격당할 일도 많아지지요.”
“그래도 많은 돈을 벌려면 비싼 물건을 취급해야 하잖아?”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위험이 크면 그만큼 얻는 이익도 큰 법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주인님께서도 살아생전 사치품 거래를 하지 못하셨지요.”
“문제?”
“네. 바로 인맥의 부재입니다.”
“인맥?”
“네. 인맥입니다. 사치품을 취급하기 위해선 해당 물품의 허가증이 필요합니다. 보통 물품을 생산하는 도시의 시청이나 조합에서 발급해주는 이 허가증을 받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 할뿐만 아니라 인맥도 필요합니다. 귀족이나 시청, 조합의 간부를 알지 못하면 돈이 있어도 받을 수가 없지요.”
“으으... 그런 것도 필요해?”
“네. 상인의 중요 덕목으로 냉철한 이성, 정확한 셈, 빠른 시세파악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맥이라는 말도 있지요. 아론님께서 항상 명심하셔야 할 일입니다. 고위직에 있는 분들과 관계를 맺을 기회가 있다면 돈을 길거리에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응. 알았어. 명심할게.”
아직 어린나이였기에 토마스가 하는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자린고비, 수전노 토마스가 돈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굉장히 중요한 일이긴 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수행했던 발트해 광물상 녀석도 들리는 항구마다 유력자를 찾아가 인사를 하더군. 맡은 임무가 호위였던지라 나도 따라갔었지. 어떤 녀석에게는 보석 몇 개를 들고 가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금화, 어떤 녀석은 고급 옷을 들고 가더군. 나름 유력자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맞춰서 들고 가는 것 같더라고.”
“으윽....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기본입니다. 각 항구에선 그 항구의 유력자가 법입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항구 내에서 어떠한 거래도 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지요. 그러니 그 항구에서 거래를 하고 싶다면 절대로 거슬려서는 안 될 존재들입니다.”
요한이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토마스가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거래를 끝내는 데로 떠날 상인과 평생을 머물며 도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세하는 유력자. 유력자의 명령이 강제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항구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유력자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상인과 거래를 해줄까?
떠돌아다니는 편력 상인이 해당 항구의 유력자와 척을 지는 순간 그 항구에서는 어떤 거래도 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아. 그런데 요한아저씨.”
“음? 왜 그러냐.”
“요한 아저씨는 주로 발트해에서 활동하셨다고 했죠?”
“그렇지. 물고기 잡는 것이 싫어 검을 잡기는 했지만 그래도 태생이 어촌출신이라 그런지 바다를 떠날 수가 없더군. 상인의 호위를 주로 했는데 그것들 대부분이 항구와 항구를 다니는 상인들의 호위 임무가 대부분이었다.”
요한. 풀네임은 요하네스 드로스트. 올해 31살이 된 에흐몬트 사나이로 에흐몬트의 특산품인 청어를 잡는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대로라면 그도 청어를 잡는 어부가 되어야 했지만 그는 그것이 싫었고 16살에 집을 나섰다. 아니 정확히는 가출했다.
가출한 그가 처음 향한 곳은 에흐몬트 북부에 있는 덴헬데르였다. 덴헬데르는 북해에 면해있는 작은 항구도시다. 특별한 특산품은 없고 네덜란드의 모든 항구도시가 그렇듯 청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요한은 그곳에서 상단의 짐꾼으로 배를 탔다. 선원과 짐꾼은 다르다. 선원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알고 있는 요한은 절대 선원만은 되고 싶지 않아 상단의 짐꾼이 되어 배를 탄 것이다. 그래도 평생 해온 일이 배를 타는 일이라 그런지 배를 떠나 다른 일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단의 짐꾼으로서 5년 동안 일을 한 요한은 처절하게 돈을 모았다. 쥐꼬리보다도 작은 짐꾼임금을 모으고 모아 5년 만에 검술도장에서 검을 배우고 저급 검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았다. 약 2달간 검술을 배운 요한은 그 뒤 바로 용병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다른 용병들의 수발을 드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경험을 쌓았고 이제는 제법 성공한 중견 용병이 되었다.
3년 전에는 아버지가 평생 청어를 잡으며 모은 돈보다 몇 배는 많은 돈을 들고 집에 금의환향도 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자주 발트해로 일을 나가곤 했다. 나름 발트해에서만 15년을 버텨낸(짐꾼 5년, 용병 10년) 용병이다 보니 내 호기심을 충족해줄 여러 가지 일들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은 숨기지 않고 곧이곧대로 이야기 해주는 편인지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곳의 상인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버나요?”
“흠... 많은 돈을 버는 상인도 있고 별로 벌지 못하는 상인도 있지.”
“음? 왜 그렇죠? 배를 타면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것 아니었나요?”
“그런 것은 아니다. 뱃삯이 너무 비싸거든.”
“에? 발트해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전부 배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에요?”
“아니. 그렇지 않은 녀석들이 더 많지. 배를 가진 상인보다 배를 가지지 못한 녀석들이 더 많을 거다. 보통 배를 가지지 못한 녀석들은 배를 가진 상인의 배에 남는 자리를 이용하는데 그때 물건의 양과 상단의 인원수에 따라 뱃삯을 내야하지. 그런데 그게 너무 비싸. 배 주인도 상인이다 보니 다른 상인이 가져가는 물품만 봐도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을지 딱 감이 오거든. 약간의 이익만 남겨주고 대부분 뱃삯으로 가져가버리는 거지.”
“으으. 그럼 배가 무조건 있어야겠네요.”
“뭐. 그렇지. 가끔 배 없이도 시기를 잘 맞추고 배 주인과 흥정을 잘하면 꽤 큰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그런 건 드물더라고.”
나는 다른 질문도 연이어 던졌다. 그리고 그 장면을 토마스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별 위험이 없을 것 같은 여정에 몸값이 비싼 요한을 고용한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의 발트해에서의 경험을 나에게 흡수시키는 것. 그것을 따로 언질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고 있는 나를 보며 토마스는 매우 흡족해 했다.
***
디이잉. 디이잉. 디이잉.
“음?”
“왜 그러십니까?”
“어디 종소리 같은 거 들리지 않아?
“..... 아무래도 너무 많이 걸어서 피로가 쌓이셨나봅니다. 달구지에 올라가서 쉬시지요.”
“나 별로 안 힘든데?”
“자각 하지 못한 상태로 피로가 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토마스는 내 귀에서 들리는 종소리 비슷한 소리가 무리를 했을 때 들리는 이명이라 생각하였다. 10여 년간 교역을 다니며 그런 경우를 자주 본 토마스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나도 토마스의 말이니 맞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달구지에서 쉬어도, 밤이 되어 노숙을 할 시간이 되어도 종소리 비슷한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없어질 거라는 토마스의 말을 믿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이 소리가 사라져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