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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214화 (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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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에필로그 파트)

샤르테의 공격으로 서울 전체가 폐허로 변한지 1년.

갑자기 나타난 날개달린 괴수는 지구촌 여러 대도시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그중에서도 특히 피해가 심했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었다.

아프로스의 죽음과 함께 심판자들이 모습을 감추고 모든 혼란이 막을 내리자 각국은 피해 복구에 열을 올렸다.하지만 그중에서도 서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의 사람들은 완전히 평지로 변해버린 서울을 동정 어린 시선을 바라보면서도 더이상의 희망은 없을거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들의 걱정의 기우였다.

서울은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외국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서울을 보며 경악하고 또한 대한민국의 저력에 감탄했다.정부 주도하에 모든 국민이 똘똘 뭉쳐서 복구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고 그중에서도 해외에서 귀국한 능력자들의 힘이 컸다.

괴수가 사라진 그 반년동안의 평화는 능력자와 정부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런데 정부의 푸대접에 실망하고 숨어버렸던 능력자들이 서울이 괴멸의 위기에 처하자 어디선가 나타나 복구에 힘을 보탰다.능력개발부는 서문식의 죽음과 함께 사실상 해체됐지만 개발부에 속했던 능력자들은 여전히 부자였다.

그들이 쾌척한 성금은 복구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그들을 진두지휘한건 세계 최강의 능력자 구용철이었다.

사회지도층의 주류를 이루던 능력자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는등 솔선수범하자 절망에 빠져있던 일반 서민들도 힘을 내서 다시 일어설수 있었다.

이곳은 서초동의 구용철 자택.

샤르테의 공격으로 이 주변은 풀 한포기 없는 폐허로 변했지만 민관군이 하나가 되어 복구 작업에 열을 올린 끝에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물론 서울의 다른 지구보다 서초동이 먼저 복구된건 그곳에 한국 능력자들의 수장인 구용철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면산 아래 듬직하게 서있던 고급 빌라는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인근에는 이전보다 더 크고 웅장한 3층 석조건물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이름하여 구용철 센터.서울시에서는 폐허에서 설치던 잔존괴수들을 처리하고 복구작업을 지휘한 용철을 기념하며 우면산 아래에 커다란 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겸 용철의 살림집인 이 건물은 덕수궁의 석조전과 비슷하게 생겼다.

능력개발부가 사라진 지금의 용철은 공무원도 뭣도 아닌 한 시민에 불과했다.허나 정부에서 지어준 기념관에서 사는 그가 결코 다른 시민과 같을수는 없었다.

용사 구용철은 시대의 영웅이었고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였다.

처음 정부에서 이 건물을 제공하겠다고 했을때 용철은 반대했었다.

하지만 정부에선 국민 투표까지 실시하면서 기념관 설립안을 밀어붙였고 90%가 넘는 찬성표를 얻으며 구용철 기념관 설립안이 가결됐다.

"복구공사 완료를 기념하며 건배!"

"건배!"

"대한민국의 영웅 구용철씨의 득녀를 축하하며 건배!"

기념관의 3층에선 파티가 한창이었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정부의 요인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구용철 기념관을 찾았다.얼마전에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던 복구공사가 거의 마무리 됐다.능력자들이 돈을 푼 덕분에 건설 경기도 살아났고 서울은 이전보다 더 흥청거렸다.

그러던중에 마리엘 부인이 귀여운 딸을 낳았다.

각 언론사는 서울의 복구와 함께 태어난 이 아이를 희망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고 구용철의 영향력을 잘 아는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기념관을 찾았다.그들은 저마다 기자들을 줄줄 달고와서 아이를 안고 있는 마리엘 부인 옆에서 포즈를 잡았다.

부인은 이 정치인들의 방문이 영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그들을 상대했다.남편 용철은 자신의 남편이며 또한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다.그러니 그런 남편을 독점할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용철이 끝 없는 힘과 근성의 상징이었다면 마리엘 부인은 그런 용철의 곁을 늘 조용히 지키는 내조의 화신이었다.

파티엔 사회 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전 대통령 김덕배를 비롯한 국가원로들과 국회의원들.미국 대사를 비롯한 각국의 외교관들.그리고 서울 시내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의 대표들까지.

물론 그 자리엔 이제껏 용철과 함께했던 동료들도 있었다.

용철은 그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또한 건배를 하면서도 한번씩 창밖을 내다봤다.서울 전역이 불바다로 변했던 그때가 불과 1년전이라고 생각하니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우면산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니. 이 좋은 날에 왜 그렇게 멍하게 서있어?"

칵테일 잔을 든채 잠시 넋을 놓고 있을라니 누군가 엉덩이를 툭 쳤다.범석이었다.

"어...아냐. 아무 것도."

"이새끼. 부럽다~ 부러워. 미인 제수씨에 저렇게 귀여운 딸까지 생겼으니."

"얌마. 부러우면 너도 낳으면 될거 아냐?"

"적당한 여자가 없어."

"미친....길거리에 반이 여자다. 이놈아."

용철은 대충 내뱉고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지만 범석은 약간 심각한 표정이었다.인철은 유라를 보자마자 구애를 한 끝에 결혼에 골인했지만 범석은 아직까지 애인이 없었다.물론 그가 능력이 없는건 절대 아니다.능력개발부의 과장으로 일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고 그걸 대부분 저축한 끝에 강남 일대에서도 알아주는 알부자가 됐다.

그는 요즘 건설장비를 사들여 임대업을 시작했는데 벌이가 꽤 짭짤한 모양이다.

때문에 그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여자가 줄을 섰지만 눈이 심하게 높아져서 문제였다.

"그러게 범석씨. 대충 하세요. 대충."

옆에 서있던 샬럿이 살짝 입을 가리며 웃었다.

미국은 리처드 행정부의 실책으로 한때 국가 붕괴의 위기를 맞았지만 리처드가 사라지고 새로운 대통령이 등극하면서 극적으로 위기를 탈출했다.샬럿은 리처드 일당과 아프로스를 쓰러트린후 미국에 남아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리처드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에드워드는 그런 샬럿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고 주한 미국 대사로 특채했다.

"아니. 어떻게 대충 합니까? 저도 제수씨 같은 사람 만나고 싶다구요."

용철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고 마리엘은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마리엘 부인은 영웅의 아내로서 모든 여인들의 동경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지만 늘 겸손했다.유명인의 아내쯤 되면 우쭐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그런 구석은 조금도 없었다.

"저 그렇게 잘난 사람 아니에요."

"아이구~ 그 무슨 말씀을."

마리엘은 부끄러웠는지 자꾸만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었지만 이미 발동걸린 범석은 손사레를 치면서 오버를 계속했다.

용철은 물론이고 인철과 범석에게도 그녀는 가장 이상형에 가까운 여인이었다.그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단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고 늘 묵묵히 남편의 곁을 지키며 그를 도왔다.그런 그녀의 모습은 인철과 범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인철이 정신을 차리고 결혼을 생각한 것도 전부 마리엘 덕분이었다.

그 덕분에 브라질의 방탕아로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보내던 인철이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여인의 남편.한 아이의 아버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여자는 남자 잘못 만나면 신세를 망친다고 했던가?

남자도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변한다.

"세희씨는 잘 있나요?"

투덜대던 범석을 위로하던 샬럿은 아기를 안고 있던 마리엘에게 다가갔다.

요즘 세희가 통 안보여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 아기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샬럿은 마리엘에게 살짝 눈웃음을 치며 아기를 곁눈질했다.어떻게든 한번 안아보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꼭 안고 있어서 차마 빼앗을 엄두가 안났다.

"네? 아...세희 언니가 아기를 가져서요."

마리엘은 그 말이 약간 부끄러웠는지 또 얼굴을 붉혔다.

"어머나. 축하해요. 축하할 일이 또 늘었네요."

샬럿은 세희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용철의 법적인 부인은 마리엘 하나뿐이었지만 세희는 여전히 이 기념관에서 살고있었다.두 부인을 인정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그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세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용철은 영웅이었고 세희는 그 영웅의 동료였기 때문이다.물론 일부지만 아직 그녀를 첩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용철은 이미 초법적인 존재였다.

그가 부인외의 여자를 데리고 산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용철의 보살핌과 마리엘의 배려덕분에 세희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세희는 출산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필시 상속권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럼 마리엘과의 사이도 틀어질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녀도 마리엘처럼 용철의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여자의 본능보다는 의리를 택하기로 했다.

물론 착한 마리엘이 그 마음을 모를리가 없었다.

마리엘의 주도로 두 여자가 합의를 했고 세희도 용철의 아이를 갖게됐다.

최근에는 출산이 임박했는지 배가 엄청 불렀고 거동도 힘들어서 별채에서 지내고 있다.

대충 사정 이야기를 들은 샬럿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렇군요. 하긴. 구용철씨를 독점한다는건 욕심이 지나친거죠.'

'물론 구용철씨의 부인은 바로 당신이에요. 마리엘씨.'

'저는 당신만큼 잘할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녀는 무심코 자신의 배를 더듬고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는 젊고 아름다운 그녀의 혼처가 초유의 관심사였다.

샬럿의 혼처로 여러 재벌과 막강한 권력자들이 거론됐지만 막상 그녀는 관심도 없었다.그녀에게 남자란 오직 한 사람.오천년전부터 동료로서 인연을 맺었고 또한 지금도 같은 하늘아래서 살고있는 용철뿐이었다.

그를 독점하고 싶었다.

마리엘을 물리치고 그를 빼앗고 싶었다.

하지만 늘 변함없이 용철의 곁을 지키는 그녀를 보며 그 욕심을 접었다.

"아참. 밀리아씨랑 아가사님은 잘 계시나요?"

"네. 밀리아씨는 요즘도 연락을 해요."

"어머. 서울에 사는가 봐요?"

"아뇨. 서울은 아니구 경북 영양이라던가? 하여간 시골쪽에 산데요."

"아...그렇구나. 시골이면 심심하지 않나?"

"글쎄요. 전화할때마다 목소리가 엄청 활기 차던데요?"

샬럿은 약간 놀란 얼굴이었지만 마리엘은 걱정 말라는듯 가볍게 미소지었다.

상인조직을 저버리고 인간 세상의 평화를 선택한 밀리아.

그녀는 도시의 삶을 버리고 경북 영양의 한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젊은 사람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산골마을에 젊고 아름다운 여자.그것도 외국인이 찾아왔으니 밀리아의 움직임은 지역 주민들에게 초유의 관심사였다.물론 그녀는 남들의 시선따윈 아랑곳 없이 산 좋고 물 맑은 그곳에서 혼자 사는 모양이었다.

아프로스가 죽으면서 상인들을 포함한 모든 아틀란티스 인이 자취를 감췄다.

이 세상에 남은건 용철을 비롯한 환생한 자들뿐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밀리아만은 이 세상에 그대로 남았다.

그녀는 그걸 속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비록 세상의 평화를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그 결과로 많은 동료들이 죽었다.그녀가 화려한 도시의 삶을 버리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혼자 지내는 길을 택했던건 죽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때문이었다.

"혼자서 해야할 일이 있데요."

"그렇겠네요."

샬럿은 고개를 끄덕였다.

밀리아 본인이 그 이유에 대해 밝힌 적은 없었지만 대충은 알 것도 같다.그녀가 시골로 내려가기 전에 근처의 절에서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빈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한번 찾아갈까요? 맛있는거 잔뜩 싸들고?"

"좋아요!"

마리엘도 손아 모아쥐며 좋아했다.

밀리아가 자신의 의지로 그 마을에 들어갔으니 강제로 끌어내는걸 불가능했다.그래도 간혹 한번씩 찾아가면 엄청나게 반가워했으니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보니 갑자기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마리엘은 당혹스런 얼굴로 남편을 찾았지만 용철은 국회의원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그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허겁지겁 복도쪽으로 뛰어갔다.

그쪽에 수유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념관의 1층과 2층은 외부에 개방됐지만 3층은 용철 가족의 살림집이었다.물론 아기가 우는 상황에서 3층까지 올라가긴 힘들었다.

그녀는 수유실에 들어오자마자 얼른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물렸다.은근슬쩍 따라들어온 샬럿은 젖을 물자마자 조용해지는 아기를 보고 또 한번 손을 모아쥐었다.

"어머. 금새 울음을 그쳤네요."

"네. 안그래도 젖 먹일때 됐어요.

오늘 손님이 많이 오셔서 정신이 없었네요."

"제가 조금 봐도 되죠? 저도 언젠간 엄마가 될지 모르니까요."

"아...네."

마리엘은 또 한번 얼굴을 붉히면서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

다른 여자가 자신의 수유 장면을 빤히 보는건 영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꼭 보고싶다는데 거절할수도 없었다.그녀는 샬럿이 보는 앞에서 아기를 꼭 안고 젖을 먹었다.

"좋겠다..."

그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던 샬럿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

"정말 행복해보여서요. 엄마가 된다는게 그렇게 좋은거군요."

"네. 그냥...좋아요."

그런 마리엘을 보며 샬럿은 또한번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비록 용철의 부인이 되진 못했지만 그녀 역시 그 아이를 가졌다.

물론 그가 부인을 놔두고 바람을 피울 성격은 아니었기에 설득하기 엄청 힘들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얼마전에 소원을 성취했다.

물론 마리엘을 불쾌하게 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 사실은 불문에 붙였다.

용철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를 닮은 아이를 키우면서 대리만족을 할 생각이었다.

'그 행복...제게도 조금만 나눠주세요. 마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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