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208화 (208/215)

208====================

결전

"적이다! 놈들을 막아라!"

"대통령을 보호하라! 능력자 부대를 불러!"

비교적 쉽게 제 1차 방어선을 돌파했지만 미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멀리 가물가물하게 보이던 백악관이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을무렵.백악관 근처의 벙커에서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일제히 달려나왔다.

샬럿은 마치 요새처럼 변해버린 백악관을 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리처드의 야욕때문에 미국은 완전히 변해버렸다.그는 미국을 완전히 손에 넣고 그 모든 역량을 의미없는 전쟁에 퍼부으려 한다.벙커와 참호들로 뒤덮인채 본모습을 잃어버린 백악관은 완전히 타락해버린 미국의 슬픈 표상이었다.

"나는 전 메인 지부장 샬럿 베르나르!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미국의 용사들이여! 그대들은 의미 없는 전쟁에 목숨을 걸 것인가! 지금의 대통령 리처드는 힘으로 정권을 찬탈한 악당이다! 그는 의미 없는 전쟁을 일으켜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군이 리처드의 사병인가?! 대답해라!"

샬럿은 대열의 선두에 나섰다.

그녀는 성조기가 박힌 검을 높이 쳐들고 달려오는 미군들을 꾸짖었다.

"사격! 사격! 배신자다! 배신자를 죽여라!"

"저 계집은 배신자다! 노란 놈들에게 미국을 팔아먹었다.저 매국노를 죽여라!"

"저 창녀를 없애라!"

샬럿의 피 끓는 호소도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

미군들은 아프로스의 사술에 걸려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했다.그들은 샬럿을 보자마자 마구 욕을 퍼부으며 사격 자세를 취했다.리처드 행정부가 협회에 등을 돌린 몇몇 지부장들에게 척살령을 내리며 샬럿은 최악의 매국노 취급을 받고 있었다.

매국노. 배신자. 심지어는 창녀.

미군들의 거친 욕설이 샬럿을 향해 쏟아졌다.

누구보다 미국을 사랑했고 미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샬럿.그녀는 누구보다 미국을 사랑했기에 더이상 미국이 망가지는건 원치 않았다.그런 그녀에게 매국노와 배신자라는 말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고 참을수 없는 모욕이었다.

"뭐가 매국노고 뭐가 배신자야!

진짜 매국노는 미국을 망가뜨리는 리처드야! 난 미국이 이대로 망하는건 원치않아!"

샬럿은 칼을 집어던지고 수많은 미군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쏴라!"

미군들의 총이 불을 뿜었다.

이곳의 병사들은 리처드가 고르고 고른 최정예 병사들.

비교적 먼거리였음에도 그들의 총탄은 샬럿의 급소를 정확히 맞췄다.샬럿은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참호를 향해 달려며 이를 악물었다.지금 자신에게 총을 쏘는게 괴수나 반정부 게릴라가 아니라 미군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슬펐다.

그녀는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참호위로 뛰어올랐다.

참호안의 미군들은 갑자기 나타난 샬럿을 보고 기다렸다는듯 개머리판을 쳐들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정신차려! 우리 지부장님이 왜 배신자야!"

용철이 벽력같이 고함을 치며 참호안으로 뛰어들었다.

놈들이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용철의 발차기가 놈들의 턱을 차례차례 돌려버렸다.만약 모든 힘을 다했다면 한방에 머리통이 분해됐겠지만 지금은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조금전에 이놈들이 했던 그 더러운 욕을 생각하면 다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샬럿이 그걸 원치않을걸 알기에 그냥 곱게 기절만 시켰다.

다른 동료들도 참호를 하나씩 맡아서 정리했다.

미군들은 총알을 비처럼 뿌려댔지만 이미 그런 총탄에 죽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우! 존슨이 왔다는! 나는 구용철 팀의 전속 예술가라는!"

백악관 우측의 한 참호안으로 탬버린을 든 존슨이 뛰어들었다.

사격자세를 취하던 미군들은 흑인을 보자 군용 나이프를 빼들고 달려들었다.그들은 샬럿을 보자마자 쏴죽이려 했지만 그 배신자보다 더 증오스러운건 바로 흑인이었다.이는 리처드 행정부가 흑인을 국가 최대의 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오우! 나를 보니 그렇게 죽이고 싶냐는?"

존슨은 유난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노려보는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더러운 깜둥이! 죽어랏!"

그들은 존슨을 아예 찢어죽일 기세였다.

물론 이놈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봐야 지금의 존슨을 이기는건 불가능했다.존슨은 놈들의 나이프를 살짝살짝 피하면서 약을 올렸다.

"오우! 존슨 앵그리 어택!"

미군들의 머리위로 존슨의 탬버린이 작열했다.

탬버린을 맞고 잠시 멍하게 서있던 미군들을 존슨이 차례차례 걷어찼다.

그들은 오금을 맞고 스르륵 주저앉았다.미군들의 얼굴엔 이미 가늠할수 없을만큼 격렬한 분노가 이글대고 있었다.존슨은 그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그 얼굴에 냅따 침을 뱉었다.그 미군들은 침을 뱉고 씨익 웃는 흑인을 올려다보며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기술의 목적은 적을 죽이는게 아니라 도발하는 것.이 기술에 당하면 모든 임무를 망각하고 존슨을 쫓게된다.그들은 도망치는 존슨을 쫓아 참호밖으로 우르르 뛰어나왔다.

"저놈 죽여! 저 새끼 잡아!"

존슨은 백악관 주변을 빠짐없이 돌면서 모든 미군을 유인했다.

[슬리핑 클라우드!]

존슨이 미군들을 끌고 오자 멀찌감치 서있던 세희가 마법으로 그들을 재워버렸다.전부 죽일 생각이라면 그냥 이곳을 통째로 날려버리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대하기 귀찮았다.그러니 용철은 이런 식으로 존슨을 이용해서 도발하고 재워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마법의 효과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존슨을 잡아먹을듯 쫓아오던 미군들은 그자리에 주저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뭐야?! 방위군이 전멸했어? 능력자들은?!"

리처드 대통령은 적이 수비군의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지금 백악관 집무실이 아닌 지하 벙커에 숨어있었다.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를 장악하고 그 모든 역량을 전쟁에 쏟아부었지만 자신은 마치 두더지처럼 땅속에 숨어있었다.

"그게...반기를 든 몇몇 비밀상인이 워싱턴 곳곳에 게이트를 열어서 방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능력자 부대는 놈들에게 속아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여긴 미국의 수도야! 대통령이 사는 곳이라구! 그런데 수도를 지키는 부대가 그렇게 허술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야! 대체 지휘관이 누구야! 어떤 놈이 지휘하는거야!"

리처드 대통령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때 한 비서가 땀투성이가 된채 달려들어왔다.

"큰일입니다! 적들이 백악관에 침입했습니다!

벙커 입구에 죽음을 각오한 병사들을 모아놨습니다만!"

"야! 이 병신아! 지금 그깟 병사들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거야!

지부장들을 불러와! 지부장들을 전부 불러오란말야! 벙커 입구에 배치시켰던 병사들은 전부 빼라고 해! 괜히 병사들을 모아놨다가 벙커 입구의 위치만 들킨다구!"

"아..알겠습니다!"

"지부장들에게 연락해! 벙커에 모든 지부장들을 모아!

제니퍼 지부장은 어디갔어! 그년에게 말해서 다른 지부장들을 불러오게해!"

"네!"

리처드는 허겁지겁 달려나가는 비서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미 백악관 곳곳에 설치된 CCTV로 바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하나 둘 무너지는 참호와 벙커들.

선두에서 반란군을 지휘하는 샬럿의 모습이 차례차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저 개보다 못한 배신자 년! 저런 조각조각 찢어죽여도 시원치않을 년!"

리처드는 샬럿의 얼굴이 나오자마자 화면에 삿대질을 하며 온갖 욕을 퍼부었다.

대통령 리처드가 최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을때.

아프로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뒷짐을 진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파멸을 목전에 두고 광분하는 리처드와는 달리 그는 의외로 담담한 얼굴이었다.

"코어와 역 코어가 끝없이 부딪치며 균형을 유지하는게 세상의 이치인데...."

"이제 어느 한쪽이 완전히 끝날때가 왔단 말인가."

비록 벙커안의 좁은 방이었지만 그래도 천장엔 조그만 창이 붙어있다.

아프로스는 오늘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정신없이 혼잣말을 중얼댔다.

"지상인은 열등한 족속이다.

놈들은 그저 우리 아틀란티스 인들의 여흥을 위해 태어난 족속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너무 많이 번식해 버렸어.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너무 많아졌단말야.그래서 개체수를 줄일 심판자가 필요한거야.그런데 지구의 자원을 파먹고 언젠간 이 땅을 멸망시킬 그 기생충들을 징벌할 심판자가 오히려 균형을 파괴하다니."

"그런가.심판자가 내 손에서 멀어져간 지금.더이상의 희망은 없는건가."

그는 발레리누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틀란티스의 일곱 영웅들중 셋이 이미 아프로스의 손에서 멀어졌다.

샤르테는 죽었고 발레리누스와 아가사는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지금 아프로스의 뜻대로 움직이는 영웅은 중국과 프랑스 브라질을 공격하고 있는 세 명뿐.

코어와 역 코어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아프로스를 제외한 여섯명의 영웅이 필요하다.하지만 하나가 죽으면서 그 균형이 깨졌다.

"샤르테. 어리석은 것.

발레리누스가 아무리 강해도 불로불사인 네가 그토록 쉽게 죽을리가 없다.

결국 넌 네 스스로 삶을 버린거다.어리석은 것.네가 사라지며 모든게 뒤틀렸다."

발레리누스와 그 동료들의 힘이 생각보다 강했던건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샤르테를 이기면 이기는거지 죽일 능력은 없었다.결국 그건 그녀 스스로가 발레리누스 일당을 없앨 기회를 버리고 죽음을 택했다는 증거다.

샤르테는 죽기 직전.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메테오 샤워를 쓰려고 했다.

그녀에겐 자신의 체력을 전부 회복하고 기력을 충전하는 대오각성이라는 훌륭한 회복기가 있었다.그러니 제정신이라면 우선 회복하고 공격하는게 정상이다.그런데도 샤르테는 대오각성을 사용하지 않았고 쓸데없이 빈틈만 많은 메테오 샤워를 쓰려고 했다.

그건 아마....

모든걸 내려놓고 그의 손에 죽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은 이제 몇천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한다.

벌레들아.그 짧은 세상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라.코어와 역 코어의 부딪침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을 간섭하는 지구의 의지도 사라지고 심판을 위한 모든 힘은 사라질 것이다.그걸 원하는가? 심판자 발레리누스여.너는 일개 지상인으로 생을 끝내고 싶은가?"

"어리석은 놈....."

아프로스는 바깥의 폭음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