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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이변은 끝 없이 이어졌다.
샤르테의 죽음과 함께 서울의 재앙은 드디어 막을 내리는듯 했지만 이번엔 더 강력한 괴수들이 중국과 일본을 덮쳤다.능력자 반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국 정부에게 동부지역을 덮친 괴수는 국가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로 다가왔다.
동부 해안지방은 중국의 모든 역량이 집중된 곳이다.
신장 위구르 지역의 능력자 반란으로 한때 위기에 몰렸지만 그래도 중국정부가 나름대로 대응하면서 버틸수 있었던건 중국의 심장부인 동부가 건재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엔 그 동부지역이 쑥밭이 되고 있었다.
샤르테가 죽은 그 다음날.
이곳은 텐진(天津)시 중심가.
상해를 중심으로 괴수들이 출몰하며 민심이 흉흉해졌지만 아직 텐진쪽엔 소식이 없었다.그때문인지 이곳의 사람들은 평소와 별 다를 것 없이 살고 있었다.물론 상해쪽의 괴수들이 북진을 개시할 것이라는 소문때문에 이곳 사람들도 불안해하는건 사실이었다.
천진시내의 주요 관광코스인 도자기 공원 바로 옆엔 중심공원(中心公園)이 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봄과 여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형형색색의 꽃들로 뒤덮이는 아주 예쁜 공원이었다.잘 관리된 화단 한쪽엔 벽돌로 아기자기하게 쌓아놓은 높다란 단이 있고 그 앞엔 유명한 음악가들의 동상이 서있다.
텐진의 하늘은 유난히 뿌옇다.
중국의 대도시가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이곳의 공기도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공원을 찾은 시민들중엔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았다.점심시간이 좀 지난 시각이라 그런지 나무 그늘아래 벤치엔 꾸벅꾸벅 졸거나 뭔가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아함!"
방금전에 식사를 마치고 나온듯한 한 시민이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는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이곳 사람들은 뿌연 하늘을 의식적으로 꺼렸지만 그렇다고 땅만 보고 살수는 없는 일이다.
"음?"
약간 졸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곧 눈을 비비고 고개를 흔들었다.
고질적인 스모그때문에 하늘은 늘 우윳빛이었다.
스모그가 없는 도시라면 간혹 날아다니는 비행기쯤은 충분히 보이겠지만 중국에서 그런걸 보는건 무척 드문 일이다.그러니 그 하늘에서 보일만한건 낮게 날아다니는 비둘기정도였다.그런데 아무 것도 없어야 할 그 하늘에 뭔가가 떠있었다.
"천사?"
자세히는 안보였지만 그건 분명 만화책에서나 보던 천사와 닮아있었다.
"어이! 저기 봐! 저기 천사 비슷한게 떠있어."
"무슨 헛소리야?"
그는 옆에서 졸던 동료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동료는 눈을 떠보지도 않고 그 말을 일축했다.
"진짜라니까. 진짜 천사야."
"무슨 말도 안되는..."
바로 그 순간.
강렬한 빛이 공원을 집어삼켰다.
그 천사의 몸 주위에서 뭔가 번쩍하더니 그 빛이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동료를 흔들어 깨우던 남자도. 귀찮다는듯 실눈을 뜨던 그의 동료도.근처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여자들도.그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 기둥이 구름위로 솟구쳤다.
그 광경은 마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때와 똑같았다.
중심공원 상공에 지름이 2km에 이르는 거대한 화구(火球)가 생겼다.화구는 주변의 공기를 닥치는대로 빨아들이며 끝없이 팽창했고 근처의 작은 건물들은 삽시간에 주저앉았다.공기를 빨아들이며 팽창한 화구는 폭발하며 폭심지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태웠다.
초속 5500km의 바람과 강렬한 충격파가 주변의 남은 것을 남김없이 쓸어버렸다.
불꽃은 하늘높이 솟구치며 재와 먼지를 빨아올려 거대한 버섯구름을 이루었다.
그 폭발속에서 텐진 시의 인구중 약 70%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텐진의 참상이 미처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에 전세계가 파괴되기 시작했다.프랑스 파리와 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로도 똑같은 공격을 받은 것이다.
천사를 닮은 날개 달린 괴수.
시민들이 그 괴수를 목격하는 순간.
공전의 대폭발과 함께 도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전세계는 이미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괴수가 일시적으로 사라지자 각국은 능력자들을 푸대접했다.정부의 태도에 실망한 능력자들은 몰래 숨어버렸고 그 결과로 각국의 괴수방어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엄청난 괴수가 나타나 전국을 쑥밭으로 만들었으니 각국 정부는 이미 패닉 상태였다.다급해진 정부는 능력자를 애타게 찾았지만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게다가 그 능력자들을 총지휘해야할 미국의 협회 본부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능력자를 모집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고 설령 몇명을 모아놔도 지휘할 사람도 없었다.
날개 달린 괴수의 침공앞에 각국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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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용철일행은 게이트를 열고 캘리포니아 인근에 상륙했다.
일행의 목표는 이 모든 사태의 주모자인 아프로스의 목이었다.
"현재 미군의 태평양 함대가 일본쪽으로 진격중입니다."
용철이 캘리포니아에 상륙하자 몇명의 비밀상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상인조직의 운영자인 아프로스에게 등을 돌리고 용철의 편에 선 자들이었다.
"이 새끼들이. 아주 끝까지 해보겠다는거군."
용철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이를 갈았다.
지금 미국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가 아프로스의 손아귀안에 있다면 미군의 공격목표는 뻔했다.그들은 괴수에 의해 초토화되고 있는 아시아를 구하기 위해 출격하는게 아니다.그들의 목표는 분명 아시아 각국의 영구적인 멸망.
"발레리누스. 제가 갔다올게요."
"아가사님이?"
"네. 함대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면 누구 하나가 나서서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도 혼자서 가능하겠어요?"
용철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가사 역시 용철과 같은 더 레커닝이었지만 그 태평양 함대를 혼자 힘으로 상대하는건 아무래도 무리 같았다.하지만 아가사는 걱정하지 말라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뇌파조종술에 익숙해요.
비록 힘으로는 다른 심판자들을 이길수 없지만요."
"뇌파조종이라?"
"네. 그들은 분명 아프로스에게 세뇌당했을거에요.
결국 그들이 아시아를 공격하는건 그들의 뜻이 아니에요.제가 가서 그들을 원래대로 돌려놓겠어요.그게 불가능하다면 배의 항법장치를 고장내볼게요."
"항법장치를 고장낸다?"
"네. 초전파를 발산하는 방법으로 가능할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세요."
"네."
생각같으면 한두명 딸려보내고 싶었지만 솔직히 인원이 너무 부족했다.
아프로스와 리처드 일파는 미국이란 나라 자체를 자신들의 마음대로 개조했다.결국 아프로스와의 싸움은 미국 전체와의 싸움이었다.지금의 용철 일행은 전원 인간의 한계를 수천배나 초월했지만 그래봐야 열명도 안된다.이제껏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왔던 용철이었지만 그 인원으로 한 나라와 싸운다고 생각하니 영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었다.
물론 지금 선택할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전세계가 괴수의 공격을 받고 있고 그 모든건 아프로스의 계획대로다.놈을 없애지 않는다면 세상은 망하고 만다.만약 세상이 망한다면 능력자고 일반인이고 결코 살아있을수 없다.그러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끝까지 싸워야 했다.
"밀리아씨. 여기서 바로 게이트를 놓아주세요."
"네. 안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었어요."
"놈들은 분명 몇몇 비밀상인들의 이탈을 알고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게이트를 열고 제일 먼저 상륙할 캘리포니아에 나름의 방어병력을 배치해놨겠죠.우리의 목표는 그런 잡병이 아니라 아프로스입니다."
"당연하죠. 그럼 게이트의 최종목적지는?"
"백악관. 미국 대통령 리처드의 집무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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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여러 개의 게이트를 연 끝에 용철 일행은 순조롭게 백악관에 진출했다.백악관은 적의 수뇌부인 아프로스와 리처드의 근거지였고 그랬기에 아프로스 일파의 격렬한 저항을 예상했지만 백악관 근처에 도착할때까지 적들의 공격은 없었다.
"놈들을 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용철이 백악관 인근에 게이트를 열자마자 미리 대기하던 비밀상인이 다가와 작전 성공을 보고했다.그녀는 샬럿의 상인인 미사였다.한때 샬럿과 함께 미국을 위해 일했던 그녀가 이젠 세계의 평화를 위해 미국과 맞서는 길을 택했다.
"적들은 백악관과 그 근처를 병사들로 뒤덮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상인들이 일부러 멀리 산쪽에 게이트를 열고 그들을 끌어냈습니다."
"그래요? 잘 하셨습니다."
"뭘요."
만약 리사를 비롯한 상인들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일행은 게이트에서 나오는 즉시 격렬한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리처드도 이제 갈데까지 갔군요.
미국 전역에 있던 모든 능력자들을 전부 이 워싱턴에 모았어요.그건 아마 최후의 공격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밀리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혼자 살겠다고 발악하는 리처드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어쨌든 미사씨의 수고를 무위로 돌릴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후의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들 조금만 더 부탁합니다."
용철은 백악관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리사가 게이트를 미끼로 근처의 능력자 부대를 끌어낸거 같은데 그런 속임수로 벌수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놈들이 돌아오기전에 아프로스의 숨통을 끊어야 했다.
"전원 돌격! 놈들의 심장부를 때려부수자!"
용철은 온 몸의 기력을 집중시켰다.
힘을 집중시키자 등 뒤에서 빛이 솟구치며 일순간 날개의 형상으로 변했다.
동료들의 등에서도 하나같이 찬란한 빛이 솟구쳤다.
"돌격! 돌격! 닥치는대로 때려부셔!"
"오오!"
적들은 이미 백악관 인근에 참호를 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엔 미군의 정예군 2개 사단과 능력자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지만 능력자들은 리사에게 속아 엉뚱한 곳에 가있다.결국 여기 남은건 일반 군인들뿐이었다.
타타타타!!!
참호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용사들은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탄속으로 용감하게 몸을 날렸다.
맨 앞에서 달려간 용철이 적의 참호위로 뛰어올라 기관총을 냅따 걷어찼다.
"죽고싶지 않으면 비켜라!"
참호안에 있던 미군들은 기관총이 쓰러지자 총검술로 대항하려 했지만 이미 인간을 초월한 용철에게 그깟 총검이 통할리가 없었다.
용철은 달려드는 미군들을 슬쩍슬쩍 건드렸다.
마음만 먹으면 전부 때려죽일수 있었지만 그들은 단지 아프로스에게 이용당한 것뿐이다.손끝으로 살짝 건드렸음에도 미군들은 그 자리에 눈을 까뒤집고 주저앉았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행은 미군의 방어망을 순식간에 돌파하고 드디어 백악관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