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171화 (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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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파즈르 조직의 등장으로 중동은 한때 혼란의 극치를 달렸지만 용철이 파견되고 단 한달만에 모든 것은 서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용철을 필두로 하는 평화유지군은 바그다드 공략성공이후에 연전연승을 거두며 파즈르 조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평화유지군은 파죽지세로 시리아의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를 함락했다.

적들의 모든 거점이 차례로 무너지며 중동전역에서 울리던 포성은 서서히 그쳤다.

일행은 주민들의 격한 환영속에 다마스쿠스에 입성했다.

이 도시는 한때 동양의 진주로 불리며 7세기와 8세기에 걸쳐 대 이슬람제국의 수도로 번영했던 곳이다.바라다 강의 물길을 따라 남쪽에 위치한 구 시가지엔 우마이야 왕조(옴미아드 왕조라고도 함)의 대사원과 성채를 비롯한 옛 유산들이 도처에 널려있다.그러니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 과거의 영광은 이미 없었다.

이 도시는 중동의 정세 불안정에 그에 따른 테러조직의 활동으로 날이면 날마다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지옥으로 변했다.파즈르 조직원들의 협박에 못이겨 그들을 지지하는 척 하던 시민들은 평화유지군이 들어오자마자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파즈르 조직에 쫓겨 이웃 키프로스로 망명했던 카슈미르 시리아 대통령도 용철을 비롯한 평화유지군 장병들을 국빈의 예로 깍듯이 맞이했다.

오후 1시 30분.

한참 식곤증이 몰려올 시간이라 평소엔 사람구경을 하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런데 오늘 시내 중심가는 어딜가나 사람으로 붐볐다.시내를 배회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긴 겉옷을 입은 남자들이었지만 얼굴만 내놓는 히잡 차림의 여성들도 군데군데 섞여있었다.중동에선 여자들이 함부로 나다니지 못한다는걸 감안하면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바로 시가지 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

마침내 멀리서 한대의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길이 없었지만 시민들이 일제히 국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그 만세소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푸른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구용철!"

"중동의 해방자 구용철 만세!"

"세계최강의 능력자 구용철 만세!"

파즈르 조직의 악행에 치를 떨면서도 대항할 힘이 없어 숨죽일수밖에 없었던 이 수많은 사람들.그들은 파즈르 조직을 몰아내고 평화를 찾아준 용철을 신의 사도로 떠받들었다.

몇대의 컨버터블 차량이 그런 시민들의 앞을 미끄러지듯 스쳐갔다.

맨 앞의 차량엔 용철 일행이 타고 그 뒷차엔 평화유지군 최고 간부들이 탑승했다.용철 일행의 차량이 군 간부들의 차량보다 먼저 도착했다는건 시리아 정부에서 정한 의전서열에서 용철 일행이 앞섰다는 증거였다.용철 일행은 원래부터 미군의 준장급이상의 대우를 받았지만 이번에 파즈르 조직을 완전히 밀어내면서 육군대장급의 대우를 받게됐다.

"와!!"

"구용철이다! 신의 사도 구용철!"

용철을 보고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마구 밀려들었다.

도로 양옆엔 3단봉을 든 경찰들이 가드레일을 세우고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지만 흥분한 시민들은 막무가내로 밀려들었다.

두건을 쓴 청년이 일행의 차량 옆으로 달려와 용철의 옷에 살짝 손을 갖다댔다.그는 저지선을 지키던 경찰에게 끌려가면서도 천국행 편도티켓을 얻은 사람처럼 기뻐했다.구원을 위한 몸부림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히잡을 쓴 여자들이 마구 달려들어 용철의 옷에 손을 갖다댔다.생각같아선 손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는 못했고 꿩대신 닭이라고 용철의 옷이 그들에게 구원을 내렸다.

용철은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손 때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사람좋게 웃었다.

"차를 천천히 몰도록 하세요.잘못하면 사람이 다칩니다."

용철은 운전수에게 서행을 지시하곤 차량위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치 현세에 재림한 신을 대하듯 감동에 가득찬 수많은 눈들.수천 수만의 시민들이 용철을 바라보며 격한 환호성을 지르고 또한 감격에 벅차 곳곳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용철은 그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와!!"

"구용철 만세!!"

이번 카 퍼레이드는 시리아 정부에서 계획한 것.

미국 대통령이 왔을때도 이런 환대는 없었다.그들이 이런 요란한 환영식을 계획한건 다마스쿠스를 되찾아준 용철 일행을 세계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물론 그 계획의 이면엔 용철을 최대한 영웅으로 만들어야 차후에 시리아가 위험해졌을때 한국정부와 용철이 도와줄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하늘엔 몇대의 시리아 공군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공군기의 호위를 받으며 한대의 수송기가 컨버터블 차량위로 짙은 음영을 드리웠다.

수송기의 해치가 열리며 그 안에서 꽃비가 쏟아져내렸다.

용철은 천천히 이동하는 차량위에서 엄숙하게 거수경례 자세를 취했다.

자신을 현세에 강림한 신의 사자라고 부르며 우러러보는 저 수많은 사람들.

단 1년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공사장의 한 이름없는 직원이었다.그런 자신이 지금 중동의 영웅이 되어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앞에 섰다.분명 떨리고 흥분되야 정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대하는 태도는 이상하게도 담담했다.그건 아마 아틀란티스의 영웅이었던 전생의 자신이 이 몸속에서 눈을 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밀리아가 말했다.

범죄자는 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라고....

똑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도 위인이 되는 사람도 있고 범죄자가 되는 놈도 있다.환경이 인간에게 그 어떤 변화를 초래할수는 있지만 그 모든 결과가 환경의 탓은 아니다.불우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도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성공할수있는게 바로 사람이다.그렇다.인간 안될 놈이 애초에 정해져있듯 영웅도 나면서부터 정해지는건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세상의 영웅으로 선택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는 명백하다.

타락한 영웅들을 이 손으로 묻어야한다.

그리고 다시금 이 세상을 괴수와 능력자가 없었던 평화로운 세상으로 돌려놓는다.

그게 바로 영웅으로 태어난 자신의 사명이었다.

"흐...."

차량이 갑자기 속도를 내서 그런지 사막의 훈풍이 조금씩 시원한 바람으로 바뀌었다.귀밑으로 흘러내리던 땀이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온 몸이 날아갈듯 가뿐해졌다.

용철은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총성이 멎은 중동의 하늘은 정말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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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철이 파즈르 조직의 심장부를 부수고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바로 그 시각.

전세계는 중동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중동 전역에서 테러를 일삼으며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파즈르 조직이 사실상 괴멸당했다.그리고 그 조직을 무너뜨린건 단 몇명의 능력자.최첨단무기로 무장한 미군도 하지 못했던 일을 단 몇명의 능력자가 보란듯이 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자들은 다름아닌 한국 능력자였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있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그 작은 나라의 능력자가 세상의 그 어떤 영웅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각국의 언론은 파즈르 조직의 괴멸과 능력자 구용철의 소식을 제1면 톱기사로 다루기 시작했다.브라질의 영웅은 한국의 영웅이 됐고 또한 중동의 구원자가 됐다.세계인들은 입을 모아 용철을 칭찬했고 또한 그 이름에 환호했다.

-파즈르 조직 사실상 괴멸!(CNN)

-평화유지군 다마스쿠스 입성. 모든건 구용철의 힘! (AP통신)

-세계 최강의 능력자 구용철. 그의 비밀을 파헤친다.(타스통신)

-능력자 구용철. 또 해냈다! 파즈르 조직의 심장부를 파괴하다!(뉴욕타임즈)

이로서 용철은 세계최고의 유명인 대열에 끼게 됐다.

이제 미국 대통령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용철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됐다.각국의 언론들은 영웅적인 활약을 보인 용철을 극찬하면서 또 한편으론 중동에 나타난 '아름다운 괴수'에 관심을 가졌다.

전멸위기에 몰렸던 프랑스 탐사팀이 극적으로 생환하며 그 존재를 알렸던 그 괴수.

괴수라고 하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그 존재는 모든 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정치인과 괴수학자들은 모두 그 정체를 궁금해했다.

그런데 아틀란티스에 있어야할 그 괴수가 이번엔 중동에 나타났다.

영웅 구용철이 다마스쿠스의 파즈르 본부를 공격했을때 그 괴수가 참전했었다.

그녀는 그 아름다운 날개로 넓은 하늘을 마음껏 날며 빛나는 검으로 파즈르 조직원들을 순식간에 해치웠다.영웅 구용철의 곁에서 파즈르 조직원들을 참살하던 그녀의 모습이 마침 근처에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에 선명하게 찍힌 것이다.

"시리아 사람들은 알라신이 보낸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부르더군요."

직접 이 영상을 찍어온 미국인 기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가브리엘은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전령으로 불리는 천사다.

이 천사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의 탄생을 예언했다고 하는데 이슬람교도들도 이 천사를 예언자 마호메트에게 코란을 알려준 천사로 존경하고 있다.

지금 파즈르 조직에 의해 시달리던 시리아와 이라크 사람들은 그 괴수를 신의 천사라고 부르며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한다.

"정말 가브리엘일까요? 사실 다른 괴수랑 비교하면 생김새가 확연히 다르긴 하죠."

"이제 괴수라고 보긴 무리가 있습니다."

CNN에서는 그 천사같은 존재를 집중적으로 규명하려 했다.

그건 그만큼 그 천사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이에 방송사에선 사회각층의 저명인사들을 불러들여 TV 토론회를 열었다.보통 이런 프로그램들은 시청율이 낮기 마련이지만 이번 '천사 특집'의 시청율은 무려 47%를 기록했다.

"괴수는 인간외의 존재중에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죠.

저 존재는 선한 인간을 돕고 악한 인간을 징벌합니다.이게 바로 현세에 강림한 천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리아 현지인들이 그 존재를 가브리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닙니다.이젠 우리 미국인들이 그녀를 괴수라고 부르는게 불쾌하다나요."

"하하하. 괴수든 천사든 어쨌든 잘된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건 그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맞습니다. 구용철이 진짜 세계를 구할 영웅이라면 영웅의 곁에 수호천사가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그 존재가 진짜 천사든 아니든 우리 평화유지군과 함께 했다는게 중요한거죠!

그건 우리 미국이 여전히 정의를 수호한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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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이곳은 프리덤 타워에 위치한 세계능력자 협회 본부.

집무실 의자에 앉아 TV를 보던 능력자 협회장 리처드는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뭐가 천사야. 멍청한 놈들..."

용철의 활약으로 파즈르 조직이 괴멸되자 미국 전역이 축제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소식은 파즈르 조직과 공모하고 있던 리처드에겐 지독하게 나쁜 소식었다.그는 중동의 정세불안을 핑계로 미군을 보내놓고 뒷구멍으론 파즈르 조직과 밀통했다.

그는 평화유지군과 파즈르 조직이 최대한 오랫동안 밀고 밀리며 전쟁상황을 유지하길 원했다.중동의 정세가 불안해지면 그만큼 국제유가는 올라간다.그럼 두바이유를 대체할 미국산 셰일 오일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그리고 그 이익은 셰일 오일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몇몇 기업인들과 그 뒤를 봐주는 리처드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용철이 파즈르 조직을 박살내며 리처드의 돈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놈들. 그렇게 지원을 해줬는데 능력자 몇놈이 왔다고 밀려?"

리처드는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책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안엔 얼마전에 각국 능력자들의 에크 에너지 증폭량을 측정한 검사지가 들어있다.

"분명히 3%야. 아무리 봐도 3%라구.

일반 능력자랑 별로 다를 것도 그놈이 어떻게...어떻게.....!!"

광분한 리처드는 사무실의 집기를 걷어차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의자를 마구 걷어차며 화풀이를 하던 리처드는 제 분을 못이기고 씩씩댔다.

마침 TV에 샬럿의 얼굴이 비치자 그는 당장 얼굴을 붉히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TV속의 샬럿은 용철의 곁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었다.

"샬럿....! 저 개같은 썅년!

내 저 갈보같은 년을 못 쳐죽이면 사람이 아니다!"

"나를 무시하고 저런 저열한 동양놈과 붙어쳐먹었겠다?!

이제부터 네년은 백인도 아냐! 저 노란 원숭이놈들과 완전히 한패가 됐다구!"

"내가 네 년을 그냥둘줄 알아!

네 애비인 피에르 의원부터 완전히 박살내주마! 우오오오오!! 이 년!!"

완전히 이성을 잃는 그는 게거품을 토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용철이 파즈르 조직을 붕괴시키며 리처드의 돈줄이 완전히 잘렸다.그때문에 기분이 잔뜩 상해있는데 옛 부하인 샬럿이 용철을 계속 돕자 그만 울화가 치민 것이다.그는 TV 화면에 삿대질을 하며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온갖 욕을 쉴새없이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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