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159화 (15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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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

용철의 대통령 면담이 끝나자마자 일행은 두바이로 출발했다.

일행의 전세기가 두바이 공항에 도착한건 인천을 떠난지 딱 10시간만이었다.이라크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수십개의 테러조직이 난무하면서 중동의 정세불안은 극에 달했지만 그 와중에도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등 몇 나라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물론 현재 중동에서 활동하는 테러조직의 세력이 날이 가면 갈수록 강대해지고 있었기에 두바이도 언제까지 안전하다고 장담할순 없었다.세계적인 관광지였던 두바이는 현재 전쟁위협에 술렁이고 있었다.이 지역에 머물던 관광객들은 서둘러 발을 빼고 있었고 그 여파로 성수기엔 항상 사람으로 북적이던 유명 리조트에도 파리가 날리고 있었다.

"우리가 알던 두바이가 아닌데요."

"그러게요. 뭔가 좀 을씨년스럽기도 하네요."

그저 공항인근에만 사람이 북적거렸을뿐.

시내로 들어오자 눈 씻고 봐도 관광객을 찾아볼수가 없었다.이전과는 비교할수없을만큼 횅해진 거리엔 그저 불안한 표정의 현지인들만이 어디론가 바삐 걸어갈뿐이었다.똑같은 외국이었지만 이전에 찾아갔던 뉴욕과는 천지차이였다.일단 볼 것도 별로 없었고 일행을 향한 현지인들의 경계심 가득한 그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오늘 바로 올라간데?"

"아니.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서..."

존슨은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듯 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재채기를 달고 다녔는데 중동의 건조한 공기와 끊임없이 날리는 흙먼지는 분명 현지인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물론 지금 이정도 갖고 죽는 소리를 하면 중동에서 버티는건 불가능했다.

두바이는 중동에서 가장 깨끗하고 화려한 도시다.

이곳의 부자들은 오직 석유의 힘으로 이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숱한 나무를 심었다.하지만 건조한 공기만은 그들의 힘으로도 어쩔수 없었다.

"다들 너무 초조하게 굴지마.

두바이가 비교적 안전지대에 속한다고 해도 테러의 가능성은 항상 있으니까."

용철은 불안해하는 동료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일단 오늘 안에 이라크 국경을 넘어갈수 없으니 두바이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다.두바이는 중동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제테러조직 스파이들의 주요 활동거점이기도 했다.그건 워낙에 오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즉 오늘 하루 여기서 묵으면서 그 스파이들의 눈에 띌 행동을 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우린 이제부터 국제갑부클럽 회원으로 행세하는거다.

제임스는 영국 귀족출신 부자. 존슨은 아프리카 가봉의 대족장 아들.

에...그리고 세희는 일본의 낫토 회사 사장 딸."

"저는 일본어라곤 한마디도 모르는데요?"

"시끄러. 내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무슨 말이 많아."

용철은 모든 동료들에게 각각의 메뉴얼을 집어주고 그대로 행동하게 했다.

사실 중동의 정세가 불안해지며 여기서 장기 체류하던 사람들까지 귀국하는 마당에 새로운 관광객이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했다.용철은 그걸 잘 알았기에 국제정세에 관심이 없고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멍청한 졸부 행세를 하기로 했다.한국을 떠날때 능력관리부에서 활동자금을 충분히 받았으므로 여기서 졸부행세를 하는건 별로 무리가 없었다.

"호텔을 예약했어요."

용철이 일행을 감독하고 있을라니 먼저 시내로 나갔던 샬럿이 돌아왔다.

그녀는 두바이에 도착하자마자 롤스로이스를 빌려서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용철 일행이 미리 준비한 메뉴얼을 외워가며 어설픈 졸부행세를 하려했다면 그녀는 모든걸 행동으로 보인 셈이다.하루 랜트비만 몇백만원 하는 그 차량을 보란듯이 몰고 다닌다면 굳이 부자라고 떠들 필요도 없다.

"다들 받으세요. 백화점에서 산거에요."

"아니...이건 무슨..."

짐꾼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그녀를 따라왔는데 다들 뭔가를 한아름 안고 있었다.

"명품 백...화장품....보석...."

용철은 샬럿이 내미는 계산서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랜트한 롤스로이스를 몰고 백화점으로 가자마자 그 자리에서 무려 100만 달러를 썼다.그녀는 부자였지만 결코 헛돈을 쓰는 여자가 아니었다.늘 들고 다니는 가방도 평범한 브랜드의 무난한 제품이었고 옷이며 신발이며 모든게 평범했다.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단 한시간만에 100만 달러를 아무렇지도 않게 써버렸다.

"이 구역의 미친 년은 오늘부터 저에요."

"....."

"저 돈 많으니까요. 안그래요? 용철씨."

"아...네. 그렇죠."

물론 용철은 그녀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이유를 알면서도 그게 평소에 보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쉽사리 적응이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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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샬럿이 용철의 방을 찾았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용철은 갑자기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샬럿때문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사우디쪽 장성과 접선하는데 성공했어요."

"정말요?"

"네. 졸부의 딸로 행세하면서 사우디쪽에 다리를 놔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쉽게 연락처를 주더군요.좀전에 호텔 연회장에서 사우디 군 장성을 만났어요."

"오오. 역시 대단하십니다."

용철은 그녀의 재빠른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일단 생각없는 졸부로 행세하며 스파이를 피하고 기회를 봐서 사우디-이라크 국경을 넘을 방안을 모색하려 했다.그런데 샬럿이 부잣집 정신없는 딸로 행세하며 호텔의 연회장을 들락거리더니 벌써 사우디의 장성과 접선한 모양이었다.

지금 용철일행이 머물고 있는 이 호텔은 세계유일의 7성급 호텔이라는 버즈 알 아랍 호텔이다.주메이라 해변에서 300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세운 호텔이다.마치 거대한 돛단배의 돛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건물로 유명하고 가장 싼 객실의 하루 숙박비가 250만원에 달하는 최상급 호텔이었다.

이 엄청난 가격때문에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내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주로 묵는데 샬럿은 이 호텔의 특성을 잘 이용해서 사우디 장성을 낚은 모양이다.

"글쎄. 제가 직원에게 다리를 놔달라고 하자마자 대뜸 누굴 데리고 온거에요.

보자마자 끈적끈적한 눈으로 보면서 얼마나 치근대던지."

그녀는 그 장성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용철을 슬쩍 곁눈질했다.

"으흠!"

지금 이라크와 시리아는 완전 전쟁상황이다.

그 때문에 사우디 정부는 이라크및 시리아에서 테러조직원을 비롯한 위험한 자들이 넘어보는걸 막기위한 장벽공사가 한창이었다.'Great Wall' 로 불리는 그 장벽은 프랑스가 독일과의 국경에 건설한 마지노선과 유사한 아주 견고하고 튼튼한 방벽이었다.

때문에 그 국경을 넘기 위해선 특별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샬럿은 그때문에 사우디 장성과 접선한 것이지만 그 장성놈이 그녀에게 치근거렸다고 생각하니 영 속이 불편했다.이미 마리엘이라는 부인이 있었고 첩도 있었으니 더이상 여자에게 관심가질 이유도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좀 신경쓰였다.

"왜 그러세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훗!"

그러고보니 사우디 장성과 접선했다는 이야기만 하면 될걸 그놈이 치근거렸다는 쓸데없는 이야기는 대체 왜 한걸까? 용철은 그녀가 그 이야기를 한 의도를 의심했지만 그녀는 용철이 질투를 하던 말던 그저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뭐....이게 그녀 나름의 애정표현이라면 말릴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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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 알 아랍.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좋은 건물도 많이 봤지만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건물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모든 객실은 복층으로 되어있고 방의 분위기는 지극히 웅장하며 또한 화려하다.처음 예약한 방에 들어갔을때 높다란 천장을 받들고 있는 4개의 기둥과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나올법한 붉은 양탄자가 깔린 바닥.그리고 ㄷ자형으로 놓여진 길다란 소파를 등 뒤에서 감싸고 있는 비단 커튼을 봤을땐 마치 옛 궁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여기 묵기위해선 하루에 3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능력자가 되기전 한달내내 뼈 빠지게 일해봐야 여기 하루 숙박비도 못 벌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곳에서 보란듯이 묵고 있다.

자신은 분명 강해졌고 또한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룩했다.

그때는 없던 아내도 생겼고 아내와 버금가는 다른 애인도 생겼다.

생각해보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자신을 배신한 수아라는 한 여자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그때는 그녀를 정말로 경멸하고 저주했었다.하지만 지금 이룩한 이 모든 것들이 그 배신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젠 그녀를 용서할수 있을 것 같다.

호텔앞을 거닐고 있을라니 멀리서 샬럿이 다가왔다.

그녀는 조금전 사우디 장성과의 접선 소식을 전하고 다시 연회장으로 갔었다.그녀의 현재 신분은 한국의 특수요원이었지만 지금은 세상 물정모르는 미국 갑부의 딸로 위장하고 있다.사우디 장성을 낚기위한 미끼였는지 몰라도 그녀의 복장은 쓸데없이 화려했다.

"무슨 생각해요?"

"아뇨. 그냥 밤 바람이 좋아서요."

"그래요..."

그녀는 멀리 해변쪽을 바라보더니 발끝으로 바닥을 툭 찼다.

밤 바람이 너무 소슬해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따라 그녀가 이상하게 외로워보였다.

"지금의 이 모든 혼돈이 악 성향 능력자들때문이라면..."

"네?"

"요즘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애초에 능력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괴수도 없었을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능력자와 괴수는 모두 아틀란티스와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비밀상인 밀리아를 만나면서 능력자가 됐고 그 밀리아는 아틀란티스의 후예였죠.능력자고 괴수고 사실은 모두 한뿌리에서 시작됐습니다.따지고보면 모든게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운명....."

운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운명이란 곧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것.그 운명이 어떤 식으로 결정되던 인간은 그것을 거부할수 없다.만약 지금의 이 싸움이 운명이라면 그 결과도 정해져있다는 뜻이다.그 싸움의 종말이 어떤 식이든 그것을 결정하는건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다.

결국은 능력자가 나타나며 괴수도 나타났고 이 모든 혼돈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게 했던 모양이었다.그녀는 리처드의 진의를 의심하기전까지만 해도 능력자의 힘이 이 세상을 구할거 생각했다.미국의 정의를 믿었고 리처드를 믿었다.하지만 리처드는 그녀의 생각만큼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었다.능력자의 존재도 괴수와 그 근본을 함께하고 있는이상 결코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었다.

결국 능력자도 괴수도....

이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언젠가 사라져야할 존재.

"용철씨."

"네?"

"혹시 말이에요....

만약 세상의 괴수가 전부 사라지고 능력자도 쓸모 없어지면 그땐 어떻게 할거에요?"

"글쎄요. 별로 달라지는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마리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집을 청소하고 화단에 물을 주고 간혹 이리저리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고...뭐 그렇게 살겠죠."

"그런가요? 용철씨답네요."

"네? 저 답다는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아뇨. 그냥..."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해변을 바라봤다.

============================ 작품 후기 ============================

곧 브라질때의 쥔공으로 돌아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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