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156화 (15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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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일본인들은 소리없이 귀국했다.

연합훈련의 패배로 충격을 받고 있던 일본은 야마모토 지부장이 제명되고 일본 지부가 협회에서 추방됐다는 소식을 접하곤 완전한 패닉상태에 빠졌다.그간 일본은 미국의 뒤를 이어 협회의 2인자 자리를 확보하고 전세계에 영향력을 확대시키려 했다.미국과의 사이는 매우 좋았고 그 덕분에 아틀란티스 개발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했다.그런데 그 모든 것이 야마모토때문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흥분한 일본인들은 야마모토가 귀국하면 때려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협회에서 추방됐으니 이제 일본 지부는 미국의 지원을 기대할수 없게됐다.최근에 미국 지부장을 돌려보내고 종속체제에서 벗어났지만 그래봐야 아직은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다.일본이 자국 능력자들의 힘으로 명실공히 아시아 최강국으로 우뚝서기위해선 아직도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다.그런데 이제 그 든든한 보호국이 없어진 셈이다.

일본의 각 언론사는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난리를 쳤고 모든 일본인들이 이 일을 갖고 이를 갈고 치를 떨었다.

더더욱 그들의 복장을 뒤집었던건 야마모토가 한국 팀의 리더 구용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했다는 사실이었다.미국의 각 언론사는 1면 톱기사로 이 사건을 다루며 용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하는 야마모토의 사진을 대문짝 만하게 실었다.

미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못한 한국 팀에게 지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부장이라는 놈이 한국인의 바지를 붙들고 애원을 했다.모든 일본인들은 이 굴욕앞에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하지만 일본의 망신은 이제 시작이었다.

일본과 미국이 연합훈련때문에 한참 시끄러울때.

김덕배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했다.그는 중국 총통 리샤오텐(李小天)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왕텐하이 사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했다.중국 총통은 자국의 외교관들이 한국에 들어가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일로 인해 한국 능력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지부가 퇴출되면서 협회내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그만큼 늘어났다.미국이 그간 지지하던 일본을 내치고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는건 협회내에서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일본을 능가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때문에 만약 자국 외교관들이 한국에 입국해서 저질렀던 짓을 미국이 알기라도 하면 무슨 보복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중국총통은 즉시 김덕배 대통령의 요구조건을 전부 들어줄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서해안 영해에 관한 한중간 협약'이었다.

김덕배 대통령은 중국 외교관들이 저지른 짓에 대해 입을 다무는 대신, 서해안 황금어장에 중국 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특단의 조치를 요구했고 중국 총통이 받아들였다.이제 중국 어선들이 영해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됐으니 서해안 어민들의 생활도 그만큼 윤택해질수 있고 중국어선을 막기위해 투입했던 인력을 다른 일이 쓸수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그리고 이 모든게 김덕배 대통령을 설득했던 용철의 공이었다.

일본 팀을 격파하고 그들의 부정행위를 고발하며 용철은 또한번 유명인이 됐다.

그로부터 며칠후.

연합훈련때문에 맨해튼에 머물고 있던 용철은 본국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중동지역 과격 무장 세력이 그 지역 건설현장에 나가있던 우리 근로자들이 공격하여 수십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일부를 납치해갔다는 소식이었다.사실 중동지역 게릴라들은 미국측에서 계속 소탕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문제가 달랐다.그 게릴라중엔 능력자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소탕하기위해 출동했던 미국 특수부대가 전멸당했다.

용철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샬럿을 비롯한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중동 게릴라중에 능력자로 보이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게릴라 자체는 브라질에서 상대했던 갱들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갱이고 게릴라고 아무리 악랄하고 난폭해봐야 어디까지나 일반인.모든 면으로 인간을 초월한 능력자의 상대가 될리 만무했다.하지만 놈들에게도 능력자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능력자가 포함된 게릴라라면 정규군이상의 위력을 가지게 된다.

용철이 회의를 위해 동료들을 불러모은 자리엔 비밀상인들도 동석하고 있었다.

"악 성향 능력자들이 활동을 개시했다는 뜻이겠죠."

잠시 좌중을 둘러보던 비밀상인 미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용철씨같은 선 성향의 능력자들이 조화와 화합을 우선으로 한다면 그들은 혼돈과 파괴를 숭상합니다.그들은 국가라는 체제를 인정하지 않죠.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개개인의 자유를 억누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가의 존재로 인해 약한 사람들은 분명 이득을 보게 됩니다.그것이 없어진다면 결국은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괴수들이 좋아할만한 그런 세상이 되겠죠.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아직 악 성향 능력자들이 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용철은 그렇게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을 지키던 능력자들이 두 패로 갈려져서 싸우게 된다면 분명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인에게 돌아갈 것이다.비밀상인 미사는 그들이 한 국가, 더 나아가 능력자 협회를 장악한다면 이 세상이 돌이킬수 없는 파탄에 이를거라 예언했다.

샬럿이 위험을 감수하고 리처드를 설득해서 일본인들과 손을 끊게한 것도 차후에 그들이 협회를 장악하는걸 미연에 막기위해서였다.어쨌든 일본인들을 징벌하며 그들이 협회를 장악하는건 막았지만 지금도 분명 악 성향 능력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다.이번 테러 집단에 동참한 능력자들은 분명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은 일개 테러범이지만 나중에 가면 한 나라를 점거하고 전세계를 상대로 위험한 도박을 벌일지도 모른다.그런 비극을 미리 막는게 바로 지금 용철이 해야할 일이었다.

한국 최강을 까마득히 넘어 이제 미국에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또다른 전장이 용철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전장에서 살아남았을때.아마 용철은 이 세상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될 그런 인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실건가요? 가실건가요?"

샬럿은 우선 용철의 의향부터 물었다.

한때는 지부장으로서 그를 일개 부하로 여겼다.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를 이끌기보단 오히려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앞으로 있을 싸움은 아마 세상 모든 능력자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싸움일지도 모른다.그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면 아마 그녀도 더이상 강한 척 할 필요없이 여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턱을 괸채 조용히 용철의 말을 기다렸다.

어렸을때부터 남을 다스리는데 익숙했고 그건 능력자가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과거의 모습들이 왠지 어색하다.지금은 그에게 의지하는게 더 편했고 자신에게 진정 어울리는 모습도 지부장보단 차라리 한 남자의 여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래도 꾹 참고 그 감정을 억눌렀다.

조만간 최후의 싸움이 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최소한 그 싸움이 끝나기전까진 여자가 아니라 전사가 되어야 했다.

그 말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눈이 용철에게 집중됐다.

딱히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와서 과묵하게 입을 다물 상황은 아닌거 같았다.

"저는....솔직히 말하면 애국자는 아닙니다.

물론 그건 저뿐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죠.애국심이라는건 막연한겁니다.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장병들도 그런 막연한 애국심보다는 오히려 이 나라에 내 가족과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거죠.지금도 마찬가집니다.국가대 국가의 이익이 걸려있다면 무조건 우리나라의 이익을 지키는게 맞습니다."

모든 팀원들은 용철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한때는 일개 용병이었지만 지금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신이나 다름없는 위치였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악 성향 능력자들의 활동이 당장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간과할순 없다는 말입니다.지구를 지키던 능력자들중 일부가 괴수와 가까운 성향을 갖고 이 세상을 도탄에 빠트린다면 우리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도 심대한 위협이 닥칠 것입니다.우리는 막연한 애국심이 아니라 스스로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겁니다.우리가 아니면 그 어느누가 그들을 위해 대신 싸울수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훌륭한 말이에요."

샬럿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고 모든 팀원들이 그에 호응했다.

아직 연합훈련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당장 귀국할순 없었지만 아마 더이상 경기가 열릴 일은 없을거 같다.때문에 사태의 추이를 잠시 살펴보고 바로 귀국할 생각이었다.

야마모토 때문에 협회의 이미지는 치명타를 입었다.일본 팀 문제를 처리한다고 협회본부가 비상체제에 돌입하며 한국과 일본팀 경기를 끝으로 더이상 경기가 열리지 않았고 일부 팀은 조속히 귀국했다.문제가 된 일본 지부장을 제명했다고 해도 협회의 책임이 없어지는건 아니었고 그때문에 각국 능력자들이 협회본부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물론 리처드가 야마모토를 제명하고 일본정부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함으로서 샬럿은 협회의 비리에 대해선 당분간 입을 다물기로 했다.만약 샬럿이 그 장치를 준게 실은 리처드라는걸 밝힌다면 엄청난 평지풍파가 일고 협회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지만 협회가 구심점을 잃고 무너지는건 샬럿은 물론이고 용철도 원치않는 일이었다.

악 성향의 능력자들이 날뛰기 시작했는데 그에 맞설 유일한 조직인 협회를 이쪽에서 무너뜨린다면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었다.때문에 리처드의 비리를 밝히고 그들 일당을 뿌리 뽑는건 악 성향 능력자들을 완전히 몰아낸 다음에 할 일이었다.

"또다시 새로운 전장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구용철과 함께 할수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과 함께 목숨을 걸겠습니다."

용철은 대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대원들도 그런 용철을 믿음에 가득한 얼굴로 올려다봤다.비록 태어난 곳도 다르고 다들 생각도 다른 사람이 모였지만 지금은 한국 팀으로서 가족같은 동료가 됐다.그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전장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함께 가야죠!"

"구용철씨와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가겠습니다."

머뭇거리는 사람도 없었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한 마음 한뜻으로 용철을 위해 싸우기로 했다.그런 동료들을 보며 용철은 흐뭇한 미소를 감출수 없었다.자신이 이렇게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이 모든것이 정말 꿈만 같았다.

용철은 동료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곁에 앉은 마리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도 기다렸다는듯 이쪽을 돌아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언젠가 그녀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조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녀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그 소원을 묵살해버렸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 역시 아이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마음놓고 육아에 전념할 세상이 못된다.악 성향 능력자들의 출현으로 세상은 다시금 혼란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엄마가 된다면 그건 이 모든 혼돈이 종식되고 괴수가 없는 세상이 오는 바로 그날이 될 것이다.

용철은 마리엘의 손을 꼭 잡고 손등을 토닥거렸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녀도 어느정도는 아는듯 했다.잠시 용철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곧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둘 사이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오랫동안 베게를 나눠베던 부부의 사랑이 둘을 단단히 이어주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를 위해서도....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도 반드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그게 바로 능력자 구용철이 이 세상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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