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153화 (153/215)

153====================

재앙

일본 팀의 패배.

그건 능력자 협회가 생긴 이래 최대의 이변이었다.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미국인들조차 이 경기는 보나마나라고 생각했다.그건 일본이 미국의 최고 동맹국으로 그간 온갖 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지부운영에 있어서도 훨씬 많은 혜택을 봤고 일본에 파견한 지부장 가르시아도 한국 지부장 샬럿보다 협회서열이 훨씬 높은 베테랑이었다.일본 능력자들의 레벨은 한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고 장비 수준도 비교가 안될만큼 우수했다.그런데 그런 일본 팀이 처절하게 패배했다.

경기 중계를 맡은 앵커가 한국의 승리를 선언하자 경기장은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일본관객 대다수는 멍해진 얼굴로 경기장만 쳐다봤고 몇몇은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듯 고개를 흔들어댔다.급기야 일부 관객은 주최측의 농간이라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어떻게 한국에게 질수가 있지!"

"레벨이면 레벨! 장비면 장비! 모든 면에서 우월한데 대체 왜 졌단말야!"

"야마모토 요시오는 당장 할복하라!"

"우리 일본의 수치다!"

일본인들은 바리바리 싸들고 왔던 도시락을 경기장에 집어던지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저것들! 저런 것들이 무슨 일본 대표야! 한국으로 가라고 해! 필요없어!"

그들은 일본 팀 선수들에게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부으며 경기장을 떠나기 시작했다.그들은 일본 팀의 승리를 축하하겠답시고 행사도우미들까지 고용했지만 일본 팀이 처절하게 박살나며 모든 준비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놀란건 관객들뿐만이 아니었다.

프리덤 타워의 협회본부에서 일본 팀의 승리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협회장 리처드는 비서의 보고를 받자마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그는 두 팀이 경기를 한다는걸 알면서도 경기장에 나와보지도 않았었다.그건 결과가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뭐라고 했나?"

"조금전 뉴어크 B 경기장에서 한국 팀이 일본 팀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뭐라? 한국 팀이 일본 팀을 이겨? 그게 가능한거야?"

"일본 팀의 탱커 가네무라 히토시를 제외한 전원이 아웃.

한국 팀의 인원손실은 전혀 없습니다.한국 팀의 완승입니다."

그 비서는 마치 기계같이 딱딱한 어조로 다시금 일본 팀의 패배를 알렸다.리처드는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에 당황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한참동안 비서의 얼굴만 멍하게 쳐다보더니 곧 버릇처럼 속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경기 녹화했어?"

리처드는 시거를 꺼내물더니 냅따 불을 붙였다.

"네. 모든 경기는 협회 권한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되고 있습니다."

"그럼 파일을 갖고 와. 다른 팀들은 필요없어. 한국 팀 것만 갖고와봐."

"알겠습니다."

비서는 아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더니 곧 복도쪽으로 나갔다.

리처드는 비서의 뒷모습을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가 곧 회전의자를 홱 돌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야? 요시오가 대체 무슨 실수를 한거야?

그런데 그놈이 아무리 큰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 전력차를 극복할수 있는건가?

리처드는 서랍안에서 에크 증폭율 검사지를 꺼냈다.

처음엔 증폭율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전부 쓰레기통에 쳐넣었지만 그런식으로 하면 폐기처분할 놈이 전체 인원의 80%를 넘었다.리처드는 아쉬운 마음에 그중에서 그나마 나은 놈을 추려낼 생각에 다시 검사지를 받아놨었다.

"한국 팀...한국 팀.....구용철. 에크 증폭율 3%."

그런데 아무리 검사지를 들여다봐도 거기 나오는 수치는 고작 3%였다.

한국 팀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일본 팀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면 그건 요시오가 뭔가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했거나 한국 팀의 잠재능력이 생각이상이거나 둘중 하나였다.그런데 아무리 검사지를 확인해도 샬럿을 제외하면 증폭율 3%를 넘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거야?"

리처드가 답답한 마음에 줄담배를 피우고 있을때.

조금전 파일을 가지러 갔던 비서가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나타났다.그녀는 리처드의 책상위에 조그만 USB를 놓아두곤 두어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번 경기 녹화영상을 추출했습니다."

"수고했어. 그만 나가봐."

"알겠습니다. 협회장님."

리처드는 비서가 나가자마자 그 파일을 재생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졌던 일본 팀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패배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잠시 동영상을 들여다보던 리처드는 입을 꾹 다문채 슬쩍 팔짱을 꼈다.그건 경기 시작부터 일본 팀의 실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리만 지켜도 이길텐데 저렇게 막 나가니 뭐가 되나?"

"그럼 이번 패배는 순전히 요시오의 판단착오때문인가?"

그는 혼잣말을 반복하며 동영상을 계속해서 감상했다.

초반에 마법사를 이용해서 메테오를 날린 것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로는 뭔가 계속 꼬이는듯 했다.특히나 눈길을 사로잡았던건 바로 궁수 2명의 행동이었다.그들은 용철과 거리를 벌렸음에도 제대로 공격 한번 못해보고 계속 도망만 쳤다.한참 무표정하게 동영상을 보던 리처드가 곧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한방? 한방에 잡았어!"

동영상속 용철은 일본 궁수를 일격에 쓰러트렸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동영상을 되감기하고 다시 그 부분을 면밀히 살폈다.혹시 다른 디버프라도 걸려있나 했지만 그런건 없는듯 했다.도망치던 궁수는 풀링에 걸려 끌려오자마자 용철의 주먹 한방에 쓰러졌다.그걸 보자마자 갑자기 목이 타는거 같았다.리처드는 책상위에 놓인 생수병을 낚아채듯 집어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별다른 디버프 없이 궁수를 한방에 보내는게 가능한가?

대체 뭐지? 저놈의 저 엄청난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온거지?"

=======================================================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축하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이번 승리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것이었고 그때문에 사람들은 환호하기보단 경악하고 또한 현실을 부정하려했다.일본 관객들이 전부 돌아가며 횅해진 관중석을 잠시 올려다보던 용철은 곧 미련없이 경기장을 나섰다.

경기장을 벗어나자 마침 부상당한 일본 선수들을 들것으로 옮기는중이었다.

"용철씨. 잠시 저 좀 봐요."

"네."

샬럿은 일본 팀이 실려나가는걸 보자마자 용철을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왜 그러시는지?"

"이거..혹시 아세요?"

"이건 뭡니까?"

샬럿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건 빨갛고 커다란 버튼이 달린 컨트롤러였는데 미국영화를 보면 간혹 나오는 다이너마이트 기폭스위치와 매우 유사했다.용철은 그녀가 대체 뭘 말하려는지 알수가 없었기에 그걸 받아들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다.

"조금전 일본 팀 주장이 떨어트린거에요."

"이걸 저놈이...?"

"네."

그때 등 뒤에서 제임스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경기를 마무리하고 먼저 임시 숙소로 올라갔다가 샬럿이 보이지 않아 찾아다니던 참이었다.그는 멀리서 샬럿의 뒷모습을 보고 후다닥 달려왔지만 그녀가 용철과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걸 보고 그 자리에서 멈칫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레이디?"

"아뇨. 저 일단 용철씨랑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네...그럼 마무리 하시고 얼른 오세요.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제임스는 중요한 일이라는 말에 금새 수긍했지만 얼굴엔 불만이 살짝 드러났다.물론 그 불만은 샬럿이 오직 용철만 챙겼기 때문이다.제임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숙소쪽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샬럿은 용철을 근처의 빈방으로 이끌었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아까 거기서 이야기 해도 될텐데?"

"다른 사람들이 알면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서요."

"아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문제가 생길 일이라면 제가 알아도...."

"그런게 아니죠. 용철씨는 그 사람들하곤 다르니까요. 제가..."

샬럿은 뭔가를 이야기하려다가 금새 입을 다물어버렸다.그녀가 입을 다물었기에 그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는 알길이 없었지만 최소한 한가지만은 분명했다.그녀에게 있어 자신은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존재였다.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여기서 뭔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마 그 믿음의 증거일 것이다.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뭔가 답답했는지 살짝 머리카락을 쳐올렸다.

"일단 제 안경을 좀 봐주세요."

"네. 뭐....녹음한거라도 있으신지요?"

"녹음이 아니고 녹화에요. 조금전 경기장면을 녹화했어요."

"경기장면을요?"

"네. 경기시작전에 프리덤 타워에 가서 리처드 오빠를 만났어요.

그 후쿠시마 생수문제를 따지려고 했죠.그런데 오빠는 왠일인지 저를 만나주지 않았어요.그래서 주변에 있던 비서들에게 꼭 좀 전해달라고 부탁했죠.근데 연락이 없네요."

"혹시 협회장이 이미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그럴지도요. 만약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협회의 방조아래 그 짓을 한거에요.처음 용철씨에게 그 생수 이야기와 캄보디아 팀 이야기를 들었을때 저는 그냥 그 두 사건이 우연히 겹친거라고 생각했어요.리처드 오빠를 찾아갔던 것도 그 생수때문이었어요."

그녀의 표정은 오늘따라 어두웠다.

그건 바로 리처드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를 믿었고 능력자의 힘을 이용해 강한 미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하지만 그녀가 알던 그때의 미국과 리처드는 분명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지부를 운영하면서 코어를 독점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떤식으로라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데는 동의했었다.

하지만 코어 독점이 그나마 지부의 재원확충이라는 명분을 가진 필요악이었다면 지금 리처드가 그 일본인들의 행패를 방조하는건 그 어떤 명분도 없었다.처음엔 생수사건과 캄보디아 팀 사건이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요시오를 상대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그들은 누군가의 힘을 믿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으며 그 배후엔 협회장인 리처드가 있는게 분명했다.

아무리 리처드와 일본이 친하다고 해도 일본 팀의 선수도 아닌 일개의 후원업체가 저지른 잘못을 굳이 덮으려 할 이유가 있을까? 처음 그 일을 따지려고 리처드를 찾아갔을때도 분명 메모지를 남겼었다.메모지를 받은 비서가 그걸 잊어버리지 않은이상 분명 리처드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고 지금쯤이면 어떤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게다가 경기중에 요시오가 썼던 이 장치.

이 장치가 대체 뭔지는 알길이 없었지만 그가 이 장치를 꺼냈을때 그 얼굴은 분명 살의에 가득차 있었다.뭔가를 중얼거리며 이 장치를 꺼내던 그 모습이 이 마법안경안에 녹화영상으로 그대로 남아있었다.

"한번 보세요."

그녀는 자신의 안경을 벗어들고 그 안에 녹화된 영상을 보여줬다.

잠시 안경을 들여다보던 용철의 미간이 곧 움찔거렸다.샬럿과 요시오간의 거리가 멀어서 그놈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길이 없었지만 그놈은 분명 궁지에 몰리자 이 장치를 꺼내 버튼을 눌렀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