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145화 (145/215)

145====================

선택

뉴욕.

미국 최대의 도시이며 미국 문화의 중심지로 불리는 곳.

허드슨 강 옆에 있던 작은 모래 섬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명실공히 미국의 중심지가 된 곳.뉴욕은 가장 미국다운 도시이며 미국의 최전성기와 항상 함깨 해온 도시였다.

인천공항을 떠난 전세기가 퀸스 남부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건 정오가 약간 지난 시각이었다.

원래는 입국하면서부터 환영회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용철을 비롯한 대다수의 능력자들은 그런걸 원치 않았다.그건 본국에서 워낙에 유명인으로 지내다 보니 가는 곳마다 기자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이다.

일본 팀을 비롯한 대다수의 외국 팀들은 정부에서 마련한 전세기 편으로 뉴욕에 도착했지만 될수있는대로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그건 용철을 비롯한 한국 팀도 마찬가지였다.물론 샬럿 지부장이 얼굴이 팔릴대로 팔린 사람이라 이목을 완전히 피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자들은 피하고 싶었다.

용철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안으로 들어섰다.

별다른 환영식이 없었고 다들 복장도 특이할게 없었기에 주변의 여행객들 속에 쉽사리 섞일수 있었다.

주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

브라질에서 귀국해서 능력자 지부의 중추를 담당했고 또한 아틀란티스 탐사팀의 일원으로 매스컴을 타면서 돈과 명예를 얻었지만 그대신 평범한 삶은 사라져버렸다.

인간은 항상 얻은 것보단 잃은걸 더 크게 느끼는 법이다.

돈이 없을땐 돈만 좀 벌면 더 바랄게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유명해져도 너무 유명해졌다.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고 메모지를 내밀며 싸인을 요구했다.

마리엘과 조용한 곳에서 잠시 데이트를 하려고 해도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자신을 마치 소 닭보듯 스쳐가는 저 이름 모를 여행객들에게 그토록 환호했던건 유명인으로 사는 삶에 어느덧 조금은 지쳐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존슨. 너 뉴욕에 살았지?"

"응? 으응...."

"좋아. 가이드는 필요없겠군."

용철은 어깨를 으쓱했다.

협회의 본부는 맨해튼 남단 프리덤 파워에 위치했지만 연합훈련을 위해 모이는 집결지는 인근 뉴저지주의 뉴어크(Newark)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프리덤 타워는 미국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찾을수 있는 곳이지만 뉴어크는 이제껏 살면서 듣도보도 못하던 도시였다.때문에 용철은 뉴어크에 대해서 좀 알아볼 생각에 존슨을 돌아봤지만 왠일인지 그놈의 표정이 조금 굳어있었다.

"뉴어크가 이 근처라던데 많이 머냐?"

"별로 멀지는 않아. 근데 거긴..."

"왜?"

"아...아무 것도 아냐. 하긴 옛날 일이니깐."

존슨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급히 정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생각같아서는 왜 그러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존슨은 그 뉴어크라는 도시에 안좋은 감정이라도 있는건지 그 도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내내 기분이 안좋아보였다.

"많이 기다렸죠?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용철이 사람으로 붐비는 공항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라니 멀리서 샬럿이 나타났다.그녀는 하늘하늘 흩날리는 하얀 원피스 차림에 한손엔 조그마한 토트백을 들고있었다.

처음 브라질에서 만났을때는 시커먼 정장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해서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최근엔 그런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지금의 그녀는 누가봐도 평범한 여자였고 그저 예쁜 여행객 정도로 보였다.

용철 일행은 샬럿을 따라 공항을 나섰다.

공항입구엔 이미 전세버스 한대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버스의 측면에는 미국 능력자 협회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혹시나 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행스럽게도 기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을 모시게 된 운전기사 폴입니다."

카이젤 수염을 멋지게 기른 노인장이 밝게 웃으며 일행을 맞이했다.

버스는 한국에서 흔히 볼수있는 47인승 에X로 버스였다.

지금 일행이라고 해봐야 지부장인 샬럿을 포함해서 여덟명뿐이다.

그때문인지 버스안 여기저기 남은 빈자리가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긴 여정의 피로가 순식간에 밀려왔다.버스안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있었지만 에어컨에서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서 무의식중에 창문을 열게됐다.어차피 버스가 달리면 곧 자연바람을 맞을수있을테니까.

뉴욕의 6월 기온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17~25도정도다.

12월에 여름의 절정을 이루는 브라질과는 정반대로 이곳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풉! 이게 무슨 냄새야."

신선한 뉴욕의 공기를 마셔볼 생각에 창문을 열었지만 곧 닫을수밖에 없었다.

이제보니 대형버스들이 근처를 쉴새없이 드나들었고 그때문인지 매연이 장난이 아니었다.물론 버스를 제외하면 디젤엔진을 쓰는 차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얼굴이 그을음이 묻어난다던가 매캐한 연기때문에 눈을 못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항인근 도로의 공기는 꽤나 지저분했다.

맴버는 총 8명.

아틀란티스 탐사때는 7명이라서 2인 1조를 꾸리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수가 딱 맞았다.

덕분에 왕따당하는 사람없이 두명씩 앉았는데 마리엘과 세희가 같이 앉고 그 옆에는 인철과 존슨이 앉았다.마리엘과 세희가 의자매 비슷한 사이였다면 존슨과 인철도 평범한 동료이상의 관계였다.그놈들은 브라질에 있을때부터 붙어다녔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옆엔 범석과 제임스. 마지막으로 용철과 샬럿이 함께 자리를 잡았다.

범석과 제임스는 둘다 신참이었고 용철과 샬럿은 팀을 이끄는 두명의 리더였다.말하자면 특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앉은 셈이다.

"용철씨."

의자에 기댄채 막 눈을 감으려니 샬럿이 말을 걸어왔다.

"네?"

"많이 피곤하세요?"

"아뇨. 딱히 피곤하다기보다는 잠을 못잔거 같네요. 눈이 뻑뻑해요."

"이런...안약이 있는데 좀 드릴까요?"

"아뇨. 아무거나 넣는다고 될일이 아닌거 같아서."

"이건 결막염 치료제같은거 아니구요.

그냥 눈 영양제에요. 넣으면 좀 나아질거에요."

"아...네. 감사합니다."

"뭘요."

샬럿은 그 조그만 핸드백에서 포장도 뜯지않은 새 안약을 꺼냈다.

그녀는 비행기에서부터 은근히 용철을 챙겼다.

원래 용철을 챙기는건 항상 마리엘의 몫이었지만 이런 공식적인 행사에서 그녀는 용철의 일개 팀원일뿐이다.때문에 그녀는 세희와 짝을 지었고 용철은 팀의 책임자로서 지부장인 샬럿과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오. 이게 꽤 괜찮네요. 눈이 편해요."

안약을 넣고 눈을 깜빡깜빡거리니 그래도 아까보단 많이 나아졌다.

"다행이네요. 저도 가끔씩 피곤하거나 눈이 침침할땐 이걸써요. 효과가 좋거든요."

용철은 원래 약의 케이스같은건 신경쓰지 않는 성미였지만 의외로 효과 좋은 이 약을 어디서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케이스를 들고 요모조모 살펴보니 PBP(피에르 베르나르 제약)라고 쓰여있었다.그러고보니 샬럿의 외삼촌이 제약회사의 CEO라고 했었다.

=====================================================

맨해튼의 중심지 타임스퀘어.

샌트럴 파크 바로 아랫쪽 미드타운에 위치한 이곳은 맨해튼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다.어딜가도 사람의 홍수로 발디딜 틈이 없고 밤낮을 가리지않고 흥청대는 곳이 바로 타임스퀘어였다.고개를 들면 보이는건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과 높은 건물들.그리고 각양각색으로 빛나고 있는 수많은 광고판이었다.얼핏보면 서울의 명동이나 대구의 동성로 비슷하기도 했지만 그 규모나 활동 인구면에서 비교가 안됐다.

이 타임스퀘어는 맨해튼에서도 가장 복잡한 거리였다.

일단 관광객을 비롯한 유동인구가 엄청나게 많았고 비교적 좁은 구역에 엄청난 수의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치안이 좋지 못한 편이라 저녁 7시가 넘어가면 대다수가 유령도시로 변한다.물론 그건 미국의 중심부라는 맨해튼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타임스퀘어만은 24시간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었다.

"우와~"

마리엘과 세희는 끝도없이 흘러가는 사람들의 물결과 빽빽한 고층건물 여기저기서 화려한 빛을 뽐내는 수많은 간판들을 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여긴 딱히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이 못됐지만 사람 구경만은 실컷할수있는 곳이 이곳이었다.마리엘은 세희의 손을 꼭 잡은채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둘러봤다.처음 동성로에 갔을때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는데 여긴 도저히 동성로에 비할바가 아니었다.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길을 잃는건 시간문제였다.

미국인인 샬럿과 존슨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을뿐, 나머지 일행은 길을 가면서도 여기저기 둘러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거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건 유난히 많은 극장 간판과 노란 택시였다.

이곳은 위치상 브로드웨이에 가까웠기에 나름 전통을 자랑하는 대형극장과 공연장이 많았다.뉴욕의 택시는 밖을 하나같이 오렌지 색으로 칠했는데 우리나라엔 없는 해치백 택시가 많은 것이 꽤나 특징적이었다.

"오호. 저것봐라?"

샬럿의 뒤를 따라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던 용철은 한 극장앞에서 신기한걸 발견했다.

그건 2층버스였는데 영국의 2층 버스와는 좀 달랐다.

영국의 버스가 위아래층이 전부 천장으로 막혀있었다면 이 버스는 일반 버스의 천장에 좌석을 올려놓은 형태였다.말하자면 오픈카라고나 할까.타고 있는 사람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아마 시내 투어를 하는 차량인듯 했다.

거리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정신없이 밀려드는 차들.

용철일행의 눈앞에서 타임스퀘어의 하루가 정말 숨가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일행은 수많은 현지인 사이에 섞인채 주변을 실컷 돌아다녔다.마침 커다란 옷가게를 발견해서 여자들 새 옷도 샀고 근처에 있던 문화센터에 들러서 여러가지 카메라도 구경했다.그 문화센터는 필름으로 유명한 kodak에서 직접 운영했는데 회사 창립때부터 지금까지 생산한 모든 종류의 카메라와 필름을 전시하고 있었다.제임스는 세계 각지의 오지를 탐험하며 이제껏 수많은 사진을 찍어왔고 그 덕분에 카메라에 관한 지식이 풍부했다.

생각같아선 브로드웨이의 자랑인 뮤지컬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안났고 그냥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걸로 만족했다.

샬럿을 따라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마침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맥X널드 매장이 보였다.

잠시 매장 입구에서 주변 사람들의 동태를 살펴보니 그 가게에 들어가는 사람중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그런데도 매장 앞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고 현지인들은 여기서 순번표까지 받으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용철은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얼굴 가득 웃음을 띤채 동료들쪽으로 달려갔다.쇼핑을 하면서 들뜬 모습도 잠시뿐이었고 마리엘과 세희는 지친기색이 역력했다.그렇다면 지친 여자에게 쉴 곳을 제공하고 맛있는걸 먹이는건 분명 남자의 의무였다.

"지부장님. 저기가 괜찮을거 같지않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그냥 좋으면 좋은거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나?

용철은 샬럿의 이 뜬금없는 반응이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맛집소개는 별로 믿을게 못되거든요."

"네?"

"그게 진짜 손님인지 아니면 식당의 알바인지 알게 뭡니까?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식당은 대체적으로 그렇거든요.어디서 소문 듣고 온 사람들.저는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자주 찾는 식당이 맛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체인점 햄버거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인데?"

"아니. 재료는 본사에서 공수해온다고 해도 그래도 조금씩은 차이가 있죠."

"그래요? 용철씨답군요. 세상의 보는 안목이 남다른거 같아요."

샬럿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행을 그 가게쪽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 피곤해보였지만 그걸 내색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마리엘과 세희는 뭔가 용철의 도움이 필요할때면 항상 애교를 부리며 도움을 청했다.하지만 샬럿은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건 그녀가 한 남자의 보살핌을 받는 여자가 아닌 지부장이자 리더로서의 역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샬럿을 선두로 한국 팀 8명은 순번표를 받고 길게 줄을 섰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걸보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게안엔 사람이 우글거렸다.그걸 보니 좀 난감했고 괜히 이런 곳에 데리고와서 동료들을 고생시키는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은 의외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물론 속칭 갑질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자신을 비롯한 한국 팀 전원은 능력자 협회장인 리처드의 초청장을 받고 들어온 귀빈.비록 시끄러워지는게 싫어서 환영식이나 취재같은걸 다 거부하고 일반 관광객 행세를 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신분을 밝히면 다른 손님들을 다 쫓아낼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힘 없는 시민들앞에서 갑질을 하는건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하는 찌질한 짓거리다.

결국 한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매장안의 탁자는 4인용이었기에 용철과 여자 세명이 앉고 그외에는 다른 탁자에 앉았다.

곧 햄버거와 함께 감자튀김이 수북하게 나왔다.

한국에 있을때도 자주 맥X널드를 찾았지만 미국에서 먹는 것과 한국에서 먹는게 결코 같을순 없었다.모양이나 맛이나 한국 매장에 있던 것과 별 차이도 없었지만 맨해튼의 중심인 타임스퀘어를 내다보며 먹는 햄버거는 분명 특별했다.

"아참. 이건 일정표에요. 한번 읽어보세요."

햄버거가 나오자마자 신들린듯 먹어치우는 용철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던 샬럿이 핸드백에서 척척 접은 문서 한장을 꺼냈다.

그녀의 가방은 어깨에 매는 숄더 백도 아니었고 백 팩도 아니었다.지갑 하나 들어갈까말까한 토트백이었는데 그 조그만 가방안에서 안약이며 문서며 참 많이도 나왔다.

"일단 오늘은 아무것도 없네요."

"네. 오늘 내일까지는 잡힌 일정이 없어요.

세계 여러나라에서 능력자들이 오는데 같은 날에 도착할수가 없거든요."

"흠. 그럼 우리가 너무 일찍 온건가요?"

"어차피 훈련은 뉴어크에서 합니다.

조금 일찍와서 숙소라도 알아놓는게 낫죠."

"그건 그렇네요."

하긴 일정이 시작하는 날 허겁지겁 도착하는거 보단 조금 일찍 오는게 낫긴 했다.일단 여기에 온 목적은 순전히 일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뉴욕에 와서 일만 하고 돌아가는건 너무 서글프다.

"지부장님. 내일 아침에 여기저기 좀 돌아보고 싶은데 괜찮겠죠?"

"네~ 물론 괜찮죠.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마리엘과 세희가 여기저기 가보고 싶어하는 눈치였고 용철도 기왕 뉴욕에 온 김에 볼수있는건 다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