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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123화 (12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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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당신과 닮았지만 결코 당신과 같지는 않은 존재.

그것의 목표는 아마 우리 아틀란티스 인들의 영원한 말살."

검을 뽑아들고 묘실을 나서려던 공주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게 용철이 들으라고 했던 말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혼잣말인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하지만 우수에 가득찬 그 얼굴과 왠지 모르게 고독해 보이는 그 뒷모습은 이미 먼 옛날 자취를 감춰버린 고대왕국의 운명처럼 슬프고 처연해보였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그녀는 아틀란티스의 공주.

엄밀히 말하면 모든 괴수들을 다스리는 지배자였다.자신과 세희를 끌고온게 이 공주인지 아니면 그게 아니면 다른 영혼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녀가 이제껏 맞서 싸워왔던 괴수들과 똑같은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그런데 희한하게도 검을 들고 홀로 묘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에 샬럿과 세희의 얼굴이 희미하게 겹쳐보이는거 같았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

"공주님."

"네. 말씀하세요."

막 묘실을 나서려던 공주가 살포시 뒤를 돌아봤다.

조금전 영묘의 방어 시스템이 가동했다.

분명 아까처럼 돌 인형과 벌레들이 출동했을테구 그것도 모자라서 공주가 스스로 검을 들고 싸우려 한다.또다른 침입자가 들어온 지금은 이 영묘의 지배자인 그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급박한 순간일 것이다.이런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면 짜증을 내거나 그게 아니라도 결코 좋은 반응을 보일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의외로 귀찮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세희가 이 영묘의 일부가 됐다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조금전 그 여인을 말씀하시는건가요?

일단 한번 이곳의 신이 되면 영영 나갈수 없지요."

"그럴수가...."

영영 나갈수 없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주의 멱살을 잡고 세희를 살려내라고 땡깡을 부릴수도 없는 일이었다.똑같이 이 영묘안으로 끌려들어왔음에도 자신은 빈 방에 누워있었고 세희는 그 묘실에 있었다.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 이 공주가 아니라 돌 인형에 깃들어있던 그 영혼이 더 잘알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주를 설득해서 이쪽 편으로 돌리고 공주의 힘을 빌려 그 영혼에게 방법을 묻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분이군요.

그 여인은 5천년전 스스로의 의지로 이 묘실에 묻혔습니다.그런데 그대는 마치 그 여인을 오래도록 알고 있었던거 같군요.우리는 언젠가 한번 만났던 적이 있었던가요?"

공주는 또 생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견 차가운듯 하면서도 또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는게 샬럿을 꼭 빼닮았다.

물론 5천년전에 죽은 공주귀신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자신이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증거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오. 저는 공주님을 처음 뵙습니다."

만약 전생이라는게 진짜로 있다면 전생에 이 공주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전생에 이 공주를 만났다고 쳐도 그런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리가 없었다.용철은 굳이 지난 과거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가요? 하긴...

아틀란티스 인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건 저도 오늘이 처음이네요."

공주는 용철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어줬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다못해 창백하다.핏기가 없는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결코 보기 좋은 미소는 아니었다.조금전 그 얼굴은 마치 병상에 누워 죽기만을 기다리던 환자가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애써 웃는듯한 바로 그런 얼굴이었다.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니 그대는 이곳을 떠나는게 좋을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이 영묘는 아틀란티스를 떠받치는 여섯개의 기둥중 하나입니다.

봉인의 육망성이라고도 하죠.만약 이 영묘가 힘을 잃게 되면 다른 오망성의 균형도 깨지고 이 아틀란티스와 전 세계에 이변이 일어날 것입니다.그리고 우선적으로 중재자(仲裁者)의 역활을 상실한 봉인은 산산히 부서지며 이 일대를 폐허로 만들겠죠."

"산산히 부서진다?"

"네. 이 영묘는 산채로 희생된 백성들의 넋이 만든 것입니다.

5천년전에 지은 건물이 이렇게 멀쩡히 남아있을수는 없지요.백성들의 집념이 제 관을 둘러싸고 영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겁니다.만약 그 집합체가 다른 어떤 힘에 의해 깨진다면 영혼은 산산히 흩어지고 이 영묘도 원래의 폐허로 돌아가겠죠.그리고 영묘가 폐허로 돌아가기전엔 그 넋들이 발산한 원념이 주변에 강렬한 폭발을 일으킬 것입니다."

듣고보니 정말 끔찍한 이야기였다.

샬럿과 마리엘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는 알길이 없었지만 최소한 이 영묘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그 이상한 석상에서 빛이 번쩍이면서 자신과 세희가 이 영묘안으로 들어왔으니 그외의 다른 동료들도 이 근처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그런데 만약 영묘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그들의 목숨은 장담할수 없다.

"그 침입자가 이 영묘를 부순다면 폭발이 일어난다는거군요."

"네. 과거의 주술이 이 영묘를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어요.

만약 누군가 이 영묘를 파괴한다면 그 주술의 힘은 외부로 방출되게 되죠."

"음...!"

용철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과거의 주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이 5천년동안 이 영묘를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만든 원동력이라면 분명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다.영묘를 유지하던 그 거대한 힘이 마치 폭탄의 폭발처럼 외부로 방출되게 된다면 이 영묘 주변은 물론이고 근처를 탐사하던 탐사 팀들도 남김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단순한 폭발로 끝나는게 아닙니다.

이 영묘는 아틀란티스의 침몰을 막기위해 만들어진 여섯개의 봉인중 하나입니다.과거 아틀란티스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그 봉인을 만들었죠.물론 제가 그런 위인인지는 모르겠네요.그래도 다른 다섯 사람은..."

"그렇군요. 봉인의 역활이라는게 가라앉는 아틀란티스를 끌어올리기 위한 거라던가.."

"말하자면 그래요.

육망성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그러니 하나만 빠져도 아틀란티스는 기울게 되요.이 섬이 다시 바닷속으로 침몰하는건 물론이고 거대한 이변이 전 세계를 덮칠지도 몰라요.봉인이 깨지면서 과거의 주술이 다시 이 땅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요."

"섬이 기운다면...해일이 다른 대륙을 덮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죠."

공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 영묘가 5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할수 있었던건 제가 살아생전 그 모습으로 잠들길 원했던 백성들 덕분이에요.바깥의 날씨도 마찬가지죠.아틀란티스가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고 이곳의 기후도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 근처만은 5천년전 그대로에요.5천년전의 그때처럼 산위는 뜨겁고 또 숲속은 시원하죠."

이 영묘는 아틀란티스 사람들의 집념이 만든 일종의 기록장치였다.

그들은 공주의 몸이 이 영묘안에서 영원하길 바랬고 마지막까지 공주와 함께하기 위해 이 묘실안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그들의 몸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원혼과 집념만은 아직까지 남아서 이곳에 깃들어있다.만들어진지 이미 5천년이 지났지만 영묘 안이 새 것처럼 깨끗했던건 바로 그 원혼들의 힘 때문이었다.

영혼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 영혼이 그렇게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을줄은 몰랐다.

'그랬었구나...'

아틀란티스 본도는 추운 지역이다.

그런데도 처음 머물렀던 그 호숫가는 이상하게 따뜻했고 산꼭대기로 올라오자 찌는듯이 더웠다.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이 땅에 그런 곳이 있었고 또한 그곳이 이 영묘로 들어오는 출입문인 석상에 가까웠다는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그 이변에 가까운 날씨는 이 영묘를 만들고 5천년동안 유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문득 한 20여년전쯤에 잡지에서 봤던 귀신 이야기가 머리속을 스쳐갔다.

그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선X이서울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 잡지에선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귀신 이야기를 심심찮게 다뤘었고 그 이야기중에 이런게 있었다.

저녁 8시만 되면 괴성이 들리는 아파트가 있었다.

그건 단발마의 정말 끔찍한 비명소리였다.비가 부슬부슬 뿌릴때 그 소리가 들리면 다들 공포에 몸을 떨었고 해만 지면 그 아파트 주변엔 인적이 끊겼다.

그 아파트 사람들은 공포에 떨다가 결국 한 무속인을 불러 사연을 듣기로 했다.그리고 괴성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아파트를 방문한 무속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아파트를 지을때 공사장에서 뭔가가 떨어져 지나가던 사람이 깔려죽었어.8시마다 들리는 그 비명소리는 바로 그때 그 사람이 죽으며 내질렀던 소리야.]

[그런데 그 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귀신때문은 아니야.

죽은 자의 원념이 이 땅에 그 목소리를 새겼고 그것이 그 사람이 죽은 시간이 되면 마치 테이프에 녹음된 소리처럼 흘러나오는거야.]

그 영혼은 마지막 내지른 비명을 그곳에 새겼다.

이 무덤의 영혼들도 스스로의 의지로 묻힌 이곳에 5천년전 모습을 그대로 새겨넣었다.

인간은 죽어도 그 영혼은 영원토록 남는다.

그들은 생전에 못다 이룬 것을 이루려고 하며 또한 살아있는 자들에게 메세지를 남기려 한다.바로 그들의 집념이 모이고 모여서 이 영묘를 만들었다.

용철은 검을 들고 막 복도쪽으로 걸어가려던 공주를 다시금 불러세웠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겁니까?"

"제가 묻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하시는군요."

"네?"

"그대는 죽은 자가 아닙니다.

산 사람이며 또한 아틀란티스 사람이 아닙니다.아틀란티스는 이미 사라졌고 그 땅에 살고있던 우리들은 죽은 영혼으로서 또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서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이 영묘는 현재와 단절된 공간이며 또한 영원히 죽은 자들의 공간입니다.제게 남은 의무가 있다면 그건 제가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할 유일한 증표.바로 이 영묘를 지키는 것입니다.그건 제 바램이기도 하고 백성들의 바램이기도 하니까요."

공주는 잠시 쓴웃음을 짓더니 칼을 들고 복도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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