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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80화 (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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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두 비밀상인은 세종로 능력개발부 앞길을 걷고 있었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다.

그 때문에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게 드문 일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둘이나 만나는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때문인지 길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뒤를 돌아봤다.둘은 쌍둥이처럼 흡사하게 생겼고 입은 옷도 똑같은 세미정장이었다.간혹 길가에서 마주치는 외국인들은 즉시 휘파람을 불면서 접근하기도 했다.

"헤이~ 걸! 우리도 둘이야!"

미군으로 보이는 흑인과 백인이 건들거리며 둘을 계속 뒤쫓았다.

"홍대 앞에 물 좋은 나이트가 있는데 어때?"

비밀상인들은 누가 말을 걸던 무시로 일관했지만 이놈들은 보통 찰거머리가 아니었다.급기야 흑인이 밀리아의 손목을 붙잡으려 했다.그순간 밀리아의 눈이 붉은 빛을 발하며 그녀의 표정이 급변했다.그녀는 잡힌 손을 확 뿌리치면서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그 더러운 손 치워.

어디 감히 벌레같은 네놈이 내 몸에 손을 대는게야?"

"힉!"

"내 손을 만질수 있는건 이 하늘아래 오직하나. 구용철씨 뿐이다."

흑인은 밀리아가 손을 뿌리칠때만해도 피식 웃으면서 또 덤비려고 했지만 눈이 마주치자 그만 찔끔했다.마치 무서운 맹수를 본 사람처럼 흑인은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더니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호랑이나 사자같은 맹수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는데 이는 맹수가 발산하는 초저주파때문이다.비밀상인들은 인간보다는 오히려 불가사의한 존재, 굳이 형상화하자면 맹수에 가깝다.맹수가 초저주파로 사냥감을 마비시키듯 그들의 목소리에도 그와 비슷한 힘이 있다.

껄떡대던 양아치들은 그 자리에 오줌을 싸지르며 몸을 벌벌 떨었다.

"재수좋은줄 알아.만약 밤이었으면 너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다.살점을 다 뜯어내고 남은 뼈다귀는 하수구에 쳐박았을거야.그러니까 정말 천우신조라고 생각해."

밀리아는 그놈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사실 밀리아의 이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그녀는 웬만한 능력자도 한방에 보낼수있는 힘을 갖고 있다.그러니 이따위 일반인들을 죽이는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그만하세요.교미밖에 모르는 저열한 생물입니다.

우월한 우리가 저런 동물들을 상대로 힘을 뺄수는 없잖아요?"

"그렇군요."

밀리아는 겁에 질린 그놈들을 좀더 갖고 놀 기세였지만 미사가 말리는 바람에 그만뒀다.그들은 양아치들을 놔두고 천천히 삼청공원쪽으로 걸었다.그쪽엔 유명한 찻집과 식당들이 가득했는데 두 비밀상인의 목적지는 바로 그곳이었다.

마침내 근처에서 분위기 좋은 찻집을 발견한 둘은 발코니에 자리를 잡았다.

"저는 루이보스티로 하죠. 그쪽은?"

"저는 로즈마리요."

"네."

주문을 하자마자 미사가 턱을 괸채 밀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잠시 숄더 백을 만지작거리던 밀리아도 그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저는 미사에요. 샬럿의 담당상인이죠."

"저는 구용철씨를 담당하고 있는 밀리아라고 해요."

"네. 밀리아씨. 제가 이렇게 당신을 찾은건 중요한 일때문이에요."

"중요한 일?"

"네. 당신과 구용철씨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죠.

어차피 같은 한국지부에 몸을 담고있는이상, 당신들과 샬럿은 한배를 탄 운명이에요."

"무슨 말을 하려는거죠?"

미사의 입에서 구용철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밀리아의 눈이 농염한 살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비밀상인은 자신의 능력자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맹수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다.조직의 룰을 어기면서까지 서문식을 도왔던 루시아가 그랬고 지금의 밀리아도 마찬가지였다.만약 미사가 용철의 몸에 조금이라도 손을 댔다면 당장 싸움이 벌어졌을테구 그 싸움은 두 비밀상인중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이다.

"그렇게 눈을 부라리지 마세요.

제가 구용철씨를 어떻게 한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만약 구용철씨 몸에 조금이라도 손을 댄다면 제가 가만있지 않을거에요."

"어허...이것 참. 비밀상인은 능력자 성향에 따라서 변한다고 했던가요?

제가 듣기론 그 구용철씨라는 사람이 깡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던데 그건 밀리아씨도 마찬가지군요.하긴 능력자를 택하는건 비밀상인이라지만 상인과 능력자는 어디까지나 주고 받는 관계니까요.능력자가 사악하다면 상인도 사악해지고 그 반대가 될수도 있구."

"사설이 쓸데없이 길군요.

저는 별 영양가도 없는 이야기 주절주절 늘어놓는거 딱 질색이에요.본론을 말해요."

"어머. 이것 참...성격 급하기도 하셔라.

구용철씨가 샬럿씨를 반만 닮았어도 탈력때문에 병원에 실려가진 않았을텐데."

"후....본론만 말하라고 했어요."

"네네. 코어 말이에요."

그 말이 나오자마자 밀리아의 얼굴이 급속히 굳어갔다.

그녀는 조금전까지만해도 본론을 말하라며 언성을 높였지만 미사의 입에서 코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슬며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짓궂은 분이군요.

제가 95%를 적으로 돌릴만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건가요?"

"아뇨. 어리석다고 말하는게 아니에요.

불만이 있으면서도 그걸 숨기는건 구용철씨를 걱정했기 때문이겠죠.저는 비록 미국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독점체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에요.그건 샬럿씨도 마찬가지구요."

"미국을 위해 일하면서 독점에 반대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이게 함정일지도 모른다.

처음 용철이 토끼시체를 들고왔을때 밀리아는 그 시체에서 에너지 집합체, 즉 코어가 없어졌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코어 도둑질로 용철에게 손해를 입힌 그놈들을 미워하면서도 그 사실을 입밖에 내지 못했던건 미국측 상인들의 공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상인의 소속은 미국이고 그럼 코어 독점으로 직간접적인 이득을 보고있다는 소리다.그런 자가 굳이 다른 상인을 찾아와서 자신이 실은 반대파에 속한다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그건 말하자면 미국을 배신하는 행위다.

밀리아는 미사가 자신을 떠보기위해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미국편이 분명한 미사의 앞에서 코어 독점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그러니 그냥 은근슬쩍 넘어갈 생각이었다.

"저는 그냥 이대로 구용철씨랑 지낼수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네?"

"누가 코어를 가지던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한미평화기술이 계속 코어를 훔쳐가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겠다는건가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그런데 어쩌겠어요? 받아들여야죠."

"호호오...이거 참."

미사는 이해가 안된다는듯 쓴웃음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구용철의 상인이라면 당연히 비슷한 생각일줄 알았는데 잘못 짚은거 같다.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까.미사는 천천히 머리를 굴리면서 밀리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그럼 지금 들은 이야기를 감찰부의 에밀리나 기타 미국상인들에게 밝힐건가요?"

"아뇨. 저는 오직 구용철씨를 위해 일할뿐입니다.

코어 문제에 관심을 끊은 것도 그게 구용철씨의 안전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그러니 제가 코어 독점에 관련해서 찬성이니 반대니 운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당신이 찬성하던 반대하던 그걸 떠들고 다닐 이유도 없구요."

"으음!"

미사는 잔뜩 인상을 쓰며 애꿎은 차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코어 이야기를 한건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보험이었다.코어 독점에 반대하는척하면서 약간의 편의를 봐주는걸로 반대측 상인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이 밀리아라는 상인이 기회주의자라면 이 앞에서 코어 이야기를 한건 정말 최악의 악수를 둔 셈이다.만약 이년이 감찰부의 에밀리나 기타 미국 상인을 찾아가서 일러바치게 된다면 자신과 샬럿은 미국의 배신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만약 이 년이 일러바칠거 같으면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그런데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저 유들유들하게 웃으면서 차만 마시고 있으니 그걸 옆에서 보는 사람은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 년이.....!'

미사는 이를 꾹 깨물고 밀리아를 잡아먹을듯 노려봤다.하지만 밀리아는 노려보던 말던 아무래도 좋다는듯 홀짝홀짝 차만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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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용철은 능력개발부 청사 5층에 위치한 지부장 집무실을 찾아가고 있었다.

낮에 화장실에서 만났던 그 상인이 능력부 청사 5층의 집무실 위치를 정확하게 가르쳐주면서 집무실로 가보라고 했었다.물론 밀리아를 놔두고 모르는 상인의 말을 들은순 없었기에 그녀의 의향을 물었지만 밀리아도 딱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닌거 같았다.

그래서 마리엘을 집에 데려다놓자마자 차를 몰고 능력부청사로 찾아왔다.

"여긴가?"

청사안은 대체적으로 어두웠지만 몇몇 방은 문틈으로 불빛이 흘러나왔다.지부장 샬럿의 집무실은 5층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용철은 문 앞에서 잠시 머리를 만지고는 곧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지부장님. 구용철입니다."

"열려 있어요."

"네. 그럼....."

용철은 노크를 하면서 자신의 직함부터 밝혔다.

개인대 개인으로 사적인 만남을 가진다면 몰라도 여긴 능력부 청사였다.비록 지금 신분은 백수였지만 얼마후엔 이곳의 공무원이 된다.때문에 용철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자라고 해도 그들을 총괄하는 지부장 앞에선 일개 부하에 불과했다.

이 가슴속엔 언젠간 샬럿을 누르고 그위에 올라서겠다는 야망이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국내에 아무런 기반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그건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부르셨습니까. 지부장님."

"미사를 만나셨군요. 안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뒷짐을 진채 창밖을 내다보던 샬럿은 용철이 들어오자마자 반색을 했다.

"차가 막혀서 좀 늦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아직 정식으로 부임하진 못했지만 일단은 능력부 소속입니다."

"그래요..."

그녀는 용철을 집무실 입구쪽의 소파로 인도했다.

샬럿은 탁자위에 하얀 찻잔 두개를 놓고 커피포트에 전원을 넣었다.

"제가 이렇게 구용철씨를 부른건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에요."

"네?"

막 커피잔에 입을 갖다대던 용철은 잔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구용철씨의 레벨은 현재 23. 마리엘씨는 현재 22.

이게 브라질에서 잠시 일하면서 올릴수 있는 레벨은 절대 아니에요."

그순간 용철의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

이 여자가 뭔가 이상한 냄새를 맡은게 분명했다.자신만의 비밀을 남이 아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잘 없다.물론 그게 마법안경으로 남의 정보를 아무렇게나 훔쳐보던 자신이 할 소리는 결코 아니었지만...

"구용철씨. 혹시 Y스텟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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