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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용철은 순식간에 회복했다.
아침에 용철의 상태를 확인하던 의사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못했다.어제까지만 해도 괴사를 일으키던 근육과 장기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지금의 용철은 응급실에 실려왔던 환자라곤 생각할수 없을만큼 얼굴부터 반질반질 광채가 났다.
용철은 회복됐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환자복을 입고 아침부터 병원 여기저기를 쏘다녔고 밥 시간이 되자 링겔을 꽂은채 번개처럼 달려왔다.
먹는 양도 장난이 아니었다.
마리엘이 식사를 갖고오자마자 용철은 식판이 반질반질 윤이 날때까지 핥아먹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병원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고봉밥을 퍼먹었다.마리엘의 생명력 일부를 받아 손상된 몸을 원래대로 돌렸지만 회복된 몸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맘보토끼와 싸우며 소모한 에너지를 완전히 회복하기위해선 잘 먹어야 했다.
보호자가 환자를 위해 과일 같은 간식을 사가는 일은 있어도 링겔을 꽂은 환자가 직접 식당을 찾아오는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물론 그건 용철의 짐승같은 회복력 덕분이었다.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가 체해요."
"응. 응. 난 괜찮으니까 걱정말고 너도 뭐 좀 먹어."
"아뇨. 저는 그냥 오빠 먹는 것만 봐도 좋아요."
"그...그래?"
마리엘은 턱을 괸채 용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BOPE 본부 앞에서 처음만난 그날 이후로 언제 어디서나 그녀의 눈은 오직 용철을 향해 있었다.커다란 양푼이에 밥을 마구 비벼먹고도 모자라서 또 공기밥을 시키는 용철은 누가봐도 돼지같았지만 그녀에겐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었다.마리엘은 용철의 성화를 못이기고 결국 김밥 한줄을 시켰지만 용철을 바라본다고 김밥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 입 닦으세요."
"응. 그래."
"뭘 그렇게 많이 묻혀요. 지저분하게..."
"응. 너무 맛있어서 그랬나봐."
그녀는 냅킨으로 용철의 입을 정성껏 닦아주고 반질반질하게 립클로스까지 발라줬다.근처에 앉아있던 다른 커플이 그걸보고 인상을 찡그렸지만 마리엘은 그들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용철은 공기밥 5개를 해치우고나서야 트림을 하며 배를 두드렸다.
둘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식당을 나섰다.
근처에는 링겔을 꽂고 돌아다니는 환자가 많았지만 화사하게 웃고있는건 용철뿐이었다.이 예쁘고 착한 아내가 있는 이상 용철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날 날은 아마 없을 것이다.세상을 지배하는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건 여자라고 했던가.용철은 이 헌신적인 아내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용철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찾아왔던 부모님은 단 10분도 못버티고 도망갔다.일단 용철의 상태가 전혀 심각하지 않았고 뭣보다 둘이 붙어앉아 애정표현을 하는걸 도저히 보고 있을수가 없었기때문이다.
용철이 마리엘을 대동하고 막 병실에 들어오자 손님이 많이 와있었다.
한국 지부장 샬럿과 능력개발부의 고문인 서문식, 그리고 랩퍼 존슨과 이름을 알수없는 능력자 몇명이 침대 옆에 서있었다.
"환자가 병실에 있어야죠."
침대 옆에 앉아있던 한국 지부장 샬럿은 용철을 보자마자 일어섰다.그녀는 한국어와 일본어에 아주 능통했기에 굳이 번역기가 없어도 대화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어...지부장님이 여긴 어쩐 일로...."
"구용철씨가 혼자 괴수와 싸웠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요.
많이 다쳤을까봐 걱정했는데 마침 마리엘 씨가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마리엘은 샬럿이 자신을 거론하자 곧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떨궜다.
왠지 어제 저녁에 있었던 그 일을 샬럿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죄인처럼 눈치를 보는 마리엘이 안쓰러웠던지 자리에 앉아있던 서문식도 벌떡 일어섰다.그는 능력부 장관 장상국의 경쟁자였고 장상국의 요청으로 파견된 지부장 샬럿과도 개인적으로 경쟁하는 사이였다.하지만 샬럿에게 용철이 다쳤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대구로 달려왔다.지금 능력개발부 내에선 벌써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에 알력이 시작되고 있었고 샬럿과 서문식 사이에도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그들은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는 하고 지냈지만 그렇다고 친한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문식이 샬럿을 따라왔던건 구용철이라는 인물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네. 지부장님께 듣기론 그 괴수가 꽤나 센 놈이었다던데."
"별거 아닙니다."
그놈이 강한건 사실이었지만 딱히 공치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 맘보토끼를 때려죽이면서 결과적으로 대구시민 수천명을 구한 셈이지만 자신이 싸운 진짜 이유는 바로 마리엘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때문에 결과가 어찌됐던 그 일을 갖고 우쭐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서문식은 그 무시무시한 맘보토끼를 별거 아닌 놈으로 치부하는 용철의 배짱에 놀라면서도 또 한편으론 마리엘에게 주목했다.
'섹스 힐링이라니...설마 그런게 가능한 힐러가 존재할줄이야.'
하지만 샬럿과 서문식이 공통적으로 궁금해했던건 섹스힐링이 아니라 둘의 레벨이었다.용철이 파벨라에서 활약했다는건 잘 알고 있었지만 거기서 아무리 죽여봐야 전직을 하는건 거의 불가능했다.백번 양보해서 맘보토끼까지 몇마리 잡았다고 치더라도 혼자 전직을 하면 하는거지 마리엘까지 헬퍼가 되는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혼자 다 죽여도 전직을 할까말까한데 힐러를 키우면서 전직을 하는건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했다.
'EXP 디바이더는 당연히 갖고있다.그게 없으면 힐러를 못키우니깐..'
서문식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론 이 둘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거기서 몇달이나 있었다구? 둘다 20레벨을 넘기는게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물론 둘이 엄청난 속도로 레벨 업을 할수있었던건 Y스텟 천운으로 인한 50배 경험치때문이었지만 서문식은 Y 스텟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뭐...어찌됐든 우리 한국 지부에 힘이 될 것만은 틀림이 없어.'
사실 생각해보면 수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굳이 그런걸 밝히려고 할 이유는 없었다.이들이 레벨업을 어떻게 했던 그 능력을 활용할수 있다는게 중요할뿐이다.
"자자. 두 분...제가 과일을 좀 사왔어요. 변변치는 않지만 좀 드세요."
"아...네. 감사합니다."
서문식은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었지만 샬럿은 의외로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용철이 자리에 눕자마자 그 옆에 의자를 갖다놓고 직접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근처에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서있던 다른 능력자들은 사과를 깎는 샬럿과 병상옆에 붙어앉은 서문식을 보며 의아함을 금치못했다.구용철이 유명인이고 강하다는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능력개발부에 속한 능력자중 하나에 불과했다.그런데 그런 구용철이 다쳤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능력개발부의 두 실세가 앞다투어 문병을 왔다.
그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구용철의 파워가 생각보다 강력하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자자. 얼른 드세요. 용철씨."
"아이고. 감사합니다. 지부장님께서도 좀 드시지요?"
"네. 저도 먹을게요. 자...마리엘씨도 한 조각 하세요."
"감사해요. 지부장님."
샬럿은 사과깎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과 하나를 아주 능숙하게 깎아 접시에 담아내더니 이번엔 다른 사과를 정확히 6등분으로 자르고 토끼모양을 만들었다.
"자...귀여운 토끼에요."
"헉!"
하지만 용철은 토끼 모양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그걸 보자마자 맘보토끼의 그 맘보맘보 소리가 귓가를 울리는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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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손님들은 다 돌아갔지만 존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침대에 누워 다리를 쭉 뻗고 있던 용철은 침대 옆에 앉은 존슨을 물끄러미 쳐다봤다.간혹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TV쪽만 쳐다보는게 딱히 이쪽에 할말이 있어서 남은거 같지는 않다.순간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다른 사람들이 돌아가고 존슨만 남으면서 마리엘의 번역기를 잠시 빼앗았다.
"야. 다 갔는데 너만 남았네."
"용철 곁에 좀 있고싶어서."
"남들이 들으면 오해한다."
"걱정마. 게이는 아니니까."
그놈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기분 나빴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온 놈을 쫓아낼수도 없었다.샬럿과 서문식이 돌아가면서 용철은 다시 마리엘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애정표현을 시작했지만 마리엘을 챙기면서도 한번씩 존슨도 신경을 써줬다.
"인철이는 잘 지내냐?"
그딴 녀석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래도 존슨에게 말을 붙이려면 그놈 이야기를 하는게 최고였다.이 두 놈은 브라질에서부터 마음이 맞는지 잘도 붙어다녔으니까.그러고보니 안면이 있는 사람은 다들 문병을 왔는데 나인철 그놈만 아예 코빼기도 안보이는게 너무 괘씸했다.샬럿 지부장은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다.그런 사람까지 찾아왔는데 시간이 남아도는 그 백수 놈이 안온다는건 기본적인 성의문제였다.
그런데 존슨의 태도가 뭔가 좀 이상했다.
평소같으면 나인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뭔가를 장황하게 떠들었겠지만 지금은 별 말이 없었다.용철은 이 두 놈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왜 그래? 인철이랑 요새 잘 안돼?"
"나 게이 아니라니깐."
"농담이다. 어쨌든 왜 그래?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그게...인철이가 또 클럽을 다니기 시작했어.
브라질에서 나랑 약속을 했거든.빨리 돈을 벌어서 좋은 집을 사기로."
용철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놈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안되는 놈이었다.하다못해 존슨까지도 착실히 일을 해서 돈을 모을 생각을 하는데 그놈은 돈을 모으는건 고사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클럽을 들락거리는 모양이었다.자신도 클럽을 가 본적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목표가 있어서 간거다.이제는 아내도 생기고 능력자로서 어느정도 자리도 잡았는데 그런 곳을 들락거리며 인생을 허비할수는 없었다.
'하긴 내가 그놈 인생을 대신 살아줄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용철은 이제 그놈을 붙들고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그놈은 관상부터가 불길한 놈이다.언젠간 배신하고 뒷통수를 칠 놈이었다.그런 놈이 클럽을 들락거리던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길에서 자던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인철이가 만나는 여자가 좀 이상해."
"왜?"
"만나자마자 명품백을 사달라고 했는데 인철이가 또 그걸 사줬다더라?"
"미친새끼."
용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클럽에서 만난 년에게 명품백을 사줬을 정도면 아주 단단히 꽂혔다는 소리였다.나인철은 그냥 얼핏보긴 동네건달같지만 실은 3개국어에 능통한 고학력자였다.문제는 그 괴상한 정신상태.당당한 전투 능력자에 외국어까지 능통한 그놈이 대출까지 내면서 거지같이 살 이유가 없었다.그건 전부 그놈이 미래를 하찮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품백이 문제가 아니야.
인철이가 그 여자 만나고부터 좀 이상해졌어. 나를 자꾸 피하는 눈치더라구."
"그새끼가 언제는 안 이상했냐."
존슨은 뭔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려했지만 용철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때. 검은 점퍼를 입은 사나이 몇명이 용철의 병실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실례하겠습니다. 구용철씨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존슨은 뭔가 또 이야기 하려 했지만 점퍼 사나이들이 들어오면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저희는 능력개발부 산하 한미평화기술 소속 연구원들입니다.
저번에 잡은 맘보토끼의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을 완료했습니다.분석결과는 미국으로 보내질 것이며 토끼 시체의 소유권은 구용철씨에게 있습니다."
그 연구원은 누런 종이봉투에서 서류 몇장을 꺼냈다.
용철이 그걸 자세히보니 능력개발법에 의거해 시체의 조사를 마쳤으며 조사를 마친 괴수 시체는 능력자에게 돌려준다고 되어 있었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조사라는건 괴수의 사체에서 코어를 몰래 떼어내는 과정이었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은 샬럿을 비롯한 단 몇명뿐이었다.
어쨌든 괴수 시체는 그 괴수를 죽인 능력자의 소유물이었다.
만약 용철이 죽인게 괴수로 변이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였다면 능력자에겐 보상금만 지급하고 시체는 미국으로 실려가게 된다.
그들이 조사운운하는 것도 실은 코어를 가로채기위해서였는데 괴수 시체보다 질이 떨어지는 범죄자 시체를 굳이 미국으로 옮기는건 정말로 조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이미 괴수로 변한 놈은 그럴 건덕지도 없었다.그때문에 코어를 분리해내면 그 시체는 구워먹던 삶아먹던 무조건 능력자 소유였다.
다른 연구원이 비닐 팩에 든 토끼 시체를 내밀었다.
그 시체는 이미 머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세척이 된 상태였다.
"고맙습니다."
"뭘요. 조사결과를 토대로 정부에서 보상금을 책정했습니다.
구용철씨 계좌로 바로 입금해드릴테니 여기 계좌번호 좀 적어주세요."
"아...네."
용철은 그가 내미는 종이에 우체국 계좌번호를 적어넣었다.
"아참. 이건 샬럿 지부장님이 구용철씨 수고하셨다고 주신겁니다."
"아이고 뭘 이런걸 다..."
다른 연구원이 웃옷 속주머니에서 두툼한 돈 봉투를 꺼냈다.
용철이 봉투를 열어보자 그 안엔 5만원짜리 지폐가 빽빽하게 들어있었다.사실 용철이 괴수를 잡았다고 해도 보상금을 지급하는건 정부였지 샬럿 개인이 아니었다.샬럿도 어차피 정부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공무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샬럿이 용철에게 돈을 준건 한미평화기술의 연구원들이 그 맘보토끼 시체에서 코어를 몰래 가로챘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 능력자가 잡는 모든 괴수는 한미평화기술에서 조사한다.
이때문에 그 사체에 있던 코어는 능력개발법에 의거해서 전부 미국으로 들어가게 된다.한미평화기술의 부사장으로 있던 샬럿은 누구보다 그 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남이 힘들게 잡은 괴수 시체에서 코어를 가로채는건 도둑질이라고 생각했다.그때문에 미국정부가 미국 능력자들에게 코어 값을 치르는 것처럼 정식으로 코어를 구입하고 싶었다.하지만 미국 정부가 코어에 대해 발설하는걸 금지하고 있었기에 그걸 돈을 주고 살수도 없었다.결국 용철에게 준 이 돈은 실은 그 코어 값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모르는 용철은 공돈을 받고 입을 헤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