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63화 (63/215)

63====================

준비

그 무렵.

대한민국 정부는 '능력개발부' 신설 문제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간 공개적인 논의 및 보도를 암묵적으로 터부시하던 '미국 특수부대'의 진상이 한국당 장상국의 입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전에도 이 특수부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진상을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언론은 이 부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조자도 꺼렸고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이 부대를 거론하다가 여당의원들에게 무안을 당하기도 했다.오직 인터넷 논객들만이 이 부대에 대해서 나름대로 조사하고 추측하면서 앞으로 한국이 가야할 길을 모색했었다.

그런데 정보통제의 선두주자였던 한국당과 장상국이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꿔서 모든 정보를 까발리기 시작했다.이때부터 언론통제가 풀리고 각 신문과 포털사이트들은 앞다투어 '미국 특수부대'에 대한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수부대에 관련한 기사가 올라올때마다 수만개의 댓글이 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 특수부대와 이번에 신설될 '능력개발부'에 관심을 가졌고 부서 신설작업은 급물살을 탔다.일단 이 부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었고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중국등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에 대해선 미국 능력자 협회와 미국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때문에 시스템은 미국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로 했고 미국처럼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신설후에 차차 하위 부서를 늘려간다는 계획까지 세워놨다.

문제는 바로 기존 형법체계를 완전히 뒤트는 사냥시스템이었다.

장상국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날마나 TV 토론회에 나와서 떠드는 바람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한국형 괴수 토벌대'의 설립안에 대해서 알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그런데 토벌대가 사냥해야 할 대상이 괴물뿐만이 아니고 범죄자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자 국민들사이에서 이견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태클을 건 것은 인권단체와 평등부(平等府)였다.

인권단체들은 미국의 특수부대가 범죄자들을 마치 짐승처럼 사냥하는걸 알고 경악을 금치못했다.이들은 정부청사앞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반대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인권유린 그만두라!"

"인성을 파괴하는 능력부 신설을 반대한다!"

평등부는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남녀평등을 이룩하며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평등사회를 이룩한다는 아주 좋은 취지에서 설립된 부서였다.그런데 이게 지금은 이상하게 변질되어 도움은 거의 안되고 민폐만 끼치는 괴상한 부서로 전락했다.

"이 같은 말도 안되는 부대의 창설은 야만적인 남자가 지배하던 원시시대로의 회귀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과거로 돌리려는 반동이다.또한 이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부당한 권력의 폭거이다."

반대파의 한사람인 국회의원 김순녀는 시키지도 않은 기자회견을 자처하더니 정부와 국방부를 마구 욕했다.장상국을 비롯한 능력부 신설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김순녀를 그냥 무시했지만 다음날 이 아줌마는 씩씩거리며 국회에 출석해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단상에서 능력부 신설 필요성을 역설하는 장상국 의원을 발견한 김순녀는 그에게 마구 삿대질을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범죄자라는 이유로 마구 쏴죽이는 그런 야만적인 부대를 신설한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대체 뭘 보고 배우란 말인가! 야만적인 능력부 신설을 결사반대한다!"

마침 단상에서 능력부 신설의 필요성과 미국 특수부대의 성과등을 이야기하던 장상국 의원은 김순녀를 보자마자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꾹 참고 말을 이어갔다.

"...해서 능력자 부대를 활용하고부터 디트로이트의 범죄율이 기존의 10%로 감소했고 이는 시 재정 파탄상태에 몰렸던 디트로이트가 회생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미국은 능력자 부대를 운용하면서 연간 15000명의 실업자를 구제했으며..."

장상국이 막 여기까지 말을 이어갔을때.

혼자 씩씩 대던 김순녀가 갑자기 손에 들고있던 뭔가를 단상에 냅따 집어던졌다.단상으로 뭔가가 날아오자 장상국은 깜짝 놀랐지만 이미 피하긴 너무 늦어있었다.그건 바로 양은으로 된 도시락.보자기에 꽁꽁 싸맨 도시락이 쩍 갈라지며 그안의 내용물이 장상국의 머리위로 후두둑 쏟아져내렸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장상국은 이를 악물고 김순녀를 노려봤다.

"이거나 쳐먹어라!

니놈들이 쓸데없는 일에 예산을 쓸때 우리 불쌍한 아동들이 굶고 있어!"

도시락을 덮어쓰고 부르르 떨던 장상국이 김순녀를 잡아먹을듯 노려봤다.

"아니....이 여편네가 미쳤나!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전환점이야! 우리나라에 괴물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어! 지금 있는 군대만으로 괴물을 상대할수 있을거 같아?!"

열받은 장상국이 마구 삿대질을 했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닌 김순녀는 눈을 반쯤 까뒤집은채 미친듯이 악을 썼다.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툭 튀어나온 눈알.양껏 벌어진 입에선 멀건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지금의 김순녀는 누가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동과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능력부 신설을 반대한다아!"

"야! 이 미친년아! 저년이 보자보자하니까!

굶주리는 아동을 걱정하는 년이 뇌물을 받아서 명품백을 사냐?!

뭣들 해요?! 저 미친 년을 제발 좀 정신병원에 잡아넣으란 말야!"

장상국은 김순녀를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가 명패를 던지자 한국당 의원들이 질풍처럼 달려들어 김순녀의 양쪽 어깨를 잡아챘다.그러자 김순녀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마구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거 놔! 이거 놔!

아아악! 성추행이다! 성추행! 신성한 국회에서 성추행이 웬말이냐!"

단지 어깨를 잡았을뿐인데 김순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

김순녀때문에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장상국은 지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능력자에게 관심을 보였고 특히 국방부 장관은 능력자 부대를 정규군에 편입시켜서 각종 특수작전을 돕게하는게 어떠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에...일단 참고자료를 한번 보시죠."

장상국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가며 빔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곧 하얀 스크린 위로 미국에서 제작한 동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의원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문채 그 동영상에 정신을 집중시켰다.하나같이 납처럼 굳은 얼굴.입을 여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장상국이 처음으로 보여준 동영상은 바로 이영훈 박사의 실험실에서 촬영한 영상이었다.

"미국에서 범죄자를 사냥하는건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악질 중범죄자들은 범죄경력이 없는 일반인이나 기타 경범죄자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틀려요.언론에서 연쇄살인범 소식을 보도할때 뭐라고 합니까? 인면수심의 짐승이라고 하지요? 그 말이 하나도 틀린게 없어요.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괴물이지요.보시는바와 같이 언젠간 저런 괴물로 변합니다."

"허...!"

철창안에 갇혀있던 범죄자가 괴물로 변하는 모습에 의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냥 놔두면 정말 위험하겠어요."

"저런 놈들이 각 감옥에 우글우글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네요."

의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에 동의하면서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데는 여당인 한국당 의원은 물론이고 야당의원들까지 이견이 없었다.그때 야당의 한 의원이 손을 들고 발언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하다는걸 알면서 미국은 왜 이제서야 정보를 넘긴걸까요?"

정곡을 찌르는 그 말에 장상국은 잠시 애꿎은 수건만 주물럭거렸다.

미국이 오직 자국의 이득을 위해서 이제까지 정보를 숨겼다는건 장상국이 제일 잘 알았다.하지만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게 된다.

"그...그건 아직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능력자에 대해 연구할만한 시설이나 기술이 없는 관계로 미국에서 그걸 전담한겁니다.정보를 숨겼다고하는데 그건 전부 미국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그런겁니다.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능력자를 운용하려하면 분명 부작용이 생기겠죠? 미국은 그걸 알고 정보를 통제하면서 연구를 계속했던겁니다.그리고 이제는 능력자를 어떻게 운용해야할지 알았기에 우리에게 정보를 넘긴겁니다.우리는 미국에게 감사해야합니다.미국이 없었다면 어쩔뻔했어요?"

장상국이 미리 준비한 대사를 신들린듯 읊어대자 그 야당의원은 할말을 잃었다.야당의원을 손 쉽게 제압한 장상국은 다른 자료를 보여주면서 의원들의 의향을 물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래도 중범죄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까?"

"아니죠! 사람 잡을 일 있습니까!"

"괴물로 변하는데 그걸 그냥 놔두면 수천명이 죽게됩니다!"

"하긴 어설픈 인권팔이들때문에 그간 문제가 많았지요.

우리나라는 법이 너무 이상해요.지나가다가 여자와 몸을 부딪쳤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고 징역형을 받는 상황에서 사람을 수십명 죽인 살인마를 그냥 살려둔다는건..."

"그러니까 지금의 법 체계가 말이 안된다는거죠.

별 것도 아닌 경범죄자들에겐 쓸데없이 엄하고 국민감정을 고려해서 빨리 빨리 사형시켜야할 악질 중범죄자에겐 너무 관대하단말입니다."

"이건 아마...법 집행에 공정성을 두라는 하늘의 계시일까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의원들이 전부 능력개발부의 필요성에 동의하자 장상국은 아주 신이 났다.그는 단상 앞에서 어깨를 딱 펴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깔기 시작했다.

"본인은 능력개발부가 신설되면 연 5~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수 있으며 최소 3억 달러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일수 있을거라고 추정합니다.당연한 이야기지만 능력자들의 활동에 따른 세금수입도 무시할수 없겠죠."

"오오. 거 대단하군요."

"그럼요! 능력자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굳이 경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위험한 악질 중범죄자들로부터 국민을 지킬수 있습니다.실업자들에게 일 자리를 마련해줄수 있으며 외화수입까지 생기는데 이걸 알면서도 포기한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지당합니다!"

얼마후.

거의 모든 의원들이 찬성하는 가운데 능력개발부의 신설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김순녀를 비롯한 몇몇 의원과 인권단체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능력부 신설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악질 범죄자들이 인두겁을 뒤집어쓴 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장상국이 갖고왔던 그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인권주의자들은 궁지에 몰렸다.

능력개발부가 신설되고 그 장관에 장상국 의원이 임명되면서 '능력 개발법'이라는 새로운 법안이 국회에 올라왔다.

그 법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제1항-괴수로 변이할 가능성이 있는 중범죄자는 즉결처분해도 무방하다.

제2항-범죄자의 즉결처분은 오직 능력개발부에 소속된 능력자만이 가능하다.

제3항-처리한 범죄자의 시체는 그 범죄자를 처리한 능력자가 직접 능력개발부 산하 '한미평화기술' 한국지부로 이송한다.그 시체가 괴수로 변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능력자에겐 그에 맞는 보상을 지급한다.단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해당 능력자는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한다.

제4항 -시체의 조사는 한미평화기술에서 전담하며 모든 능력자는 이 결과에 승복해야한다.또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한 이후에는 능력자가 범죄자 시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수 없다.범죄자 시체는 세밀한 조사를 위해 미국으로 이송되며 조사가 끝난후 현지에서 화장된다.범죄자의 유족은 모든 조사가 끝난후에 유해를 인수할수 있다.

장상국의 활약으로 능력개발부가 신설되고 능력개발법까지 국회를 통과하면서 드디어 한국능력자 협회의 막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