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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54화 (5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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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이곳은 리우 데 자네이루의 최고급 호텔.

미국 능력자 조합의 메인 지부장 샬럿은 커다란 창문앞에서 뒷짐을 진채 이파네마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벽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오전 6시.까만 밤을 서쪽으로 밀어내며 커다란 태양이 이글대며 떠오르고 있었다.그저 반쯤 식어버린 커피 한잔만 동그마니 놓여있을뿐 샬럿의 책상위엔 아무 것도 없었다.

곱게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은빛 드레스셔츠위로 치렁치렁 늘어졌다.아침햇살을 받은 금빛 머리칼은 마치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났다.그녀의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눈은 그 머리카락보다 더 영롱한 빛을 발하며 언제나 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난히 조그맣고 갸름한 얼굴과 만년설보다도 더 뽀얀 피부를 가진 여인.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 미모에 넋을 놓았다.그 어딘지 모르게 범접할수 없는 분위기는 이제껏 수많은 남자들을 주눅들게 만들었고 간혹 용기를 내서 접근하던 자들도 항상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그녀는 북미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혔지만 결코 남자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 괴짜중의 괴짜였다.

"아가씨. 샘슨입니다."

문이 열리면서 비서 샘슨이 들어왔지만 샬럿은 여전히 창밖을 내다본다.그녀가 돌아보던 말던 샘슨은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비서관 샘슨은 샬럿이 아주 어렸을때부터 그녀를 보필해온 골수충신이었고 훌륭한 보디가드였다.

샘슨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책상위에 종이 한 장을 놔두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크리스토퍼 대사가 한국당의 장상국에게 기본 정보를 넘긴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결국 한국정부에 정보를 넘겼군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하긴 기왕 이렇게 됐는데 어쩔수 없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있게 대응하는게 최선입니다."

"벌써 조합본부에선 한국으로 누굴 파견할지 의견이 분분한 모양입니다.

이번에 장상국에게 정보를 넘기면서 일본정부에도 똑같은 정보를 넘겼습니다."

"의심하지는 않던가요?"

"그쪽 정치인들이 말을 잘 해준 모양입니다.

하긴 한국과 일본은 늘 우리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나라들이니까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샬럿은 마침내 의자에 앉아 크리스토퍼 대사가 보낸 암호문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머리를 쓸어올리며 공문을 읽던 샬럿은 반쯤 마신 커피잔으로 손을 가져갔다.그녀는 한손으로 커피를 마시며 다른 손으로 안경 케이스를 찾았다.

두명의 경호원이 스타x스 커피와 던X 도너츠를 들고 나타났다.샬럿같은 최고위층은 항상 건강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라 도너츠같은 정크푸드는 1년에 한번 먹을까말까였다.물론 오늘은 1년에 한번있는 그 특별한 날에 속했다.

"지부를 만들려면 최소 50명이상의 능력자가 필요합니다.

한국엔 50명. 일본엔 100명정도가 필요하겠군요. 현지에서 조달이 가능한가요?"

"아마. 그 인원을 전부 조달하긴 힘들거 같습니다."

"흠. 그럼 역시나 우리 미국이 나서야겠군요."

그녀는 도너츠를 우물거리더니 그 암호공문을 다른 경호원에게도 보여줬다.

"그건 그렇고 저번에 아가씨께서 조사하라고 하셨던 그 동양인말입니다."

"그 구용철이라는 자."

"네. BOPE 사령관에게 사진을 구해왔습니다."

"그래요? 수고하셨어요."

샘슨은 속주머니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내 책상위에 놓았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 사진을 들어보던 샬럿의 눈이 조금씩 커져갔다.

"아니. 이 사람은?"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께서 아는 사람인가요?"

"호호. 이거 참. 묘한 인연인데요."

그녀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은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이 자를 처음 봅니다만. 미국에서 봤던 자는 아닌데요?"

"공항에서 저를 보자마자 Wow! you very very beautiful! ..이라고 했죠."

"이런. 이 동양놈이 감히 건방지게 아가씨께 수작을 걸었단 말인가요?"

샬럿은 용철의 말투를 흉내내며 반 장난식으로 말했지만 샘슨의 표정은 심각했다.그는 근처에 용철이 있다면 당장 때려죽일듯 팔을 걷어부쳤다.

"말씀만 하시면 제가 그놈을 잡아서 요절을 내겠습니다."

"아니에요. 샘슨. 그럴 필요없어요."

"네?"

"요즘 보기드문 매너있는 동양인이에요. 괜히 그러지 마세요."

그녀는 쌕 웃으면서 손사레를 쳤다.

샘슨은 약간 무안했는지 애꿎은 넥타이를 고쳐매면서 헛기침을 했다.용철이 수작을 걸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샘슨이 과민반응을 했던건 샬럿이 남자들의 접근을 노골적으로 꺼렸기 때문이다.그녀는 워낙 미인이라 어딜가도 남자들의 추파가 끊이질 않았는데 그런 남자들을 처리하는게 바로 비서 샘슨의 임무였다.그런데 남자를 혐오하는 샬럿이 그런 저급한 추파나 던지는 놈을 매너있는 동양인이라고 칭할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만약 그 자가 예쁘니 어쩌니 하면서 제 몸을 노골적으로 쳐다봤다던가 허락없이 반경 1미터내에 접근했다면 결코 매너있다고하진 않았겠죠.그런데 그 자는 그저 저한데 예쁘다고 하고 그게 끝이었어요.말하자면 여자에게 선택할 기회를 줬다고나 할까요."

샘슨은 뭔말인지 이해가 안된다는듯 눈만 껌뻑였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 아가씨께서 뭘 말씀하시는건지 잘 모르겠군요.

요컨데 그 자는 좀 특별하다는 말씀인가요?"

"그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여자를 배려할줄 아는 사람 같다는 말이죠."

"배려할줄 아는 사람이라..."

"네. 샘슨은 잘 아시겠지만 이제껏 제게 접근했던 자들이 어떤 자들이었나요?"

"순 양아치같은 놈들뿐이었죠."

"네. 그래요. 그 자들은 속셈이 너무 뻔해보여요.

이런 말하는거 조금 내키지는 않지만...굳이 말하자면 그 자들의 목적은 오직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뿐이에요.순결서약을 한 제가 왜 그 자들의 꾐에 빠져야하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가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과 맺어지셔야 합니다."

"백인이고 히스페닉이고 흑인이고 전부 똑같았어요.

그들은 하나같이 속셈이 드러나는 그 끈적끈적한 눈으로 제 위아래를 슬슬 훑었죠.그게 얼마나 불쾌한 일인지 그 자들을 몰라요.마치 더러운 벌레가 몸위로 기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솔직히 말해서 그런 자들을 보는 자체가 매우 불쾌해요."

"흠...."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브라질에 와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샬럿이 어디를 가도 남자들이 달라붙었고 비서 샘슨은 그런 놈들을 처리한다고 날마다 바빴다.그런 양아치들은 사실 인종을 가리지 않았지만 한가지 특이한건 샘슨이 처리한 양아치중에 동양인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샬럿은 스X벅스 커피를 빨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동양인들은 유독 매너가 좋은거 같아서 마음에 들어요.

대놓고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지요.그 사람은 그저 저를 보고 평가 했을뿐이에요.그이상 접근하지 않았죠.그래서 마음에 든다는거에요."

"허허허. 아가씨는 역시 좀 특이하신 분입니다.

그건 단지 동양인들이 너무 소심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글쎄요. 소심하다면 아예 다가오지도 못했겠죠?"

"흠..."

샘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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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1시간 후.

이곳은 리우 시내에 있는 BOPE 본부다.

"용철아! 용철아! 용철아!"

막 출격준비를 하던 대원들이 소리가 난 쪽을 일제히 쳐다봤다.

한때 BOPE의 전설적인 최강전사로 위명을 날리던 나인철이 마치 똥을 본 개새끼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이쿠!"

현관에서 용철을 보자마자 자판기 커피 2잔을 뽑아들고 빛의 속도로 달려오던 나인철은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그는 커피를 엎지르면서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앗 뜨거! 이런 씨발!"

자빠지면서 무의식중에 종이컵을 움켜쥐던 나인철은 죽을 상을 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야. 넌 또 왜 그러냐?"

마리엘을 대동하고 막 본부로 들어서던 용철은 바닥에 뒹구는 나인철을 보고 혀를 찼다.그때까지도 정신을 못차리고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나인철은 용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지에 손을 툭툭 털면서 일어섰다.

"그....그게....새로 들어온 대원이 있다면서?"

"음. 새로 들어온 대원이 있지."

"야. 그 새끼가 랩을 그렇게 잘한다며?"

"랩퍼니까 잘하지."

놈은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고 발광을 했지만 용철은 마리엘을 챙기는게 우선이었다.

"가자.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춰보자."

"응!"

오러 배틀러로 전직을 하면서 마리엘도 헬퍼로 전직을 했다.

기존의 터치 힐은 이제 더이상 쓰지 않아도 됐고 전직을 하면서 기본 방어력이 무려 30이 됐다.물리방어력 30이면 소총탄 정도는 무리없이 막아낸다.이제 나인철같은 저랩 능력자들은 아무리 좋은 무기를 차봐야 마리엘에게 대미지를 입히는건 불가능했다.

이제부터 그녀가 밥값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그래서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자...잠깐만! 잠깐만 용철아!"

"왜 그래? 자꾸..."

"혹시 이번에 온 그 랩 하는 놈을 네 밑에 넣을거냐?"

"그건 왜 물어? 그냥저냥 없는거보다는 나은거 같아서...."

"아니...근데. 저기...그럴거면 나도 좀..."

"어흠. 전사가 둘이나 필요할까?"

"요...용철아. 제발..."

그놈은 용철의 옷자락을 냅따 붙들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슬쩍 노려보니 이놈이 꼭 울 것같은 얼굴로 서있었다.

'아니...이 자식이 EXP 디바이더의 존재를 눈치챈건가?'

만약 그렇다면 귀찮은 일이 생긴 셈이다.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필요경험치가 많아지는데 이놈까지 키워줄 여유가 없었다.용철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마법안경을 꺼내 썼다.

"요..용철아. 나도 그런거 샀다."

"음? 네가 이런걸 샀다구?"

"그럼. 리우 시내를 이잡듯이 뒤졌지."

그놈은 실실 웃더니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혹시 마법안경인가 싶어서 자세히 봤는데 made in china 라고 쓰여있었다.

'그럼 그렇지.'

용철이 선글라스를 쓰고 현관쪽으로 걸어가자 나인철도 중국산 선글라스를 쓰고 그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이놈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참 넉살도 좋은 놈이었다.얼마전까지만해도 마리엘을 무슨 재활용도 안되는 폐기물취급했던 주제에..

"요..용철아. 그 갑옷 말인데."

"뭘?"

"그거 언제 산거야? 정확하게 몇시쯤에 상인을 불러낸거야?"

놈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이 멍청한 놈아. 이건 특수상인만 파는거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구.'

생각같으면 일반상인과 특수상인의 차이점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었지만 괜히 그랬다가 이놈이 아이템을 사달라고 귀찮게하면 그거 더 난감했다.용철은 잠시 생각하는척 하다가 꽤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잔뜩 깔았다.

'새벽 1시 2분 13초 정도였나?"

"오! 그래?! 고맙다! 넌 역시 내 친구야."

"어흠."

용철은 헛기침을 하면서 슬쩍 눈을 피했다.

곤란한 일을 피하기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양심에 좀 찔렸다.

"보답으로 내가 멋진 흑마를 소개시켜줄게. 아주 쫀득쫀득하게 달라붙는 년으로.."

"아. 됐다니까."

용철은 마리엘의 눈치를 보면서 슬쩍 짜증을 냈다.

여자 앞에서 할말이 따로있지 저런 저열한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다니.

"으극...미안해. 용철아."

노려보자마자 그놈은 무슨 고양이앞의 쥐처럼 빌빌거리기 시작했다.

용철 일행이 막 현관에 들어섰을때 2층 계단쪽에서 카세트를 둘러맨 흑인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다가왔다.바로 어제 시내에 나갔다가 픽업해 온 존슨이었다.이제 이놈에게 커피를 한잔 사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그때 이놈이 브라질로 온 진짜 이유가 거리공연이 아닌 BOPE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는걸 알아냈다.

그래서 데리고 왔다.

이놈이 가진 공격버프가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예! 체키럽 예!

내가 후드 티를 입었다고 내 주머니에 총이 있을거라 생각하지마~ 예!"

용철은 그놈을 보자마자 씨익 웃었지만 나인철은 존슨이 영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뭐냐. 저놈은...낡아빠진 카세트나 들고다니고."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저놈은 버퍼야."

"버퍼?'

"공격력을 올려주는 버프를 쓰지.

방어버프는 어차피 힐러가 쓰지만 공격버프는 따로 버퍼를 구해야해.나도 공격버퍼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기술이 노래일줄은 몰랐어.너도 한번 들어봐."

"그래?"

나인철은 용철이 존슨을 칭찬하자 금새 입을 다물었다.

"어이~ 존슨!"

"오! 용철!"

"사령관이 뭐라고 그래? 받아준데?"

"오케이!"

그놈은 활짝 웃으면서 양쪽 집게손가락으로 용철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그놈이 어깨에 둘러맸던 카세트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오우! 마이 카세트!"

놈은 카세트가 떨어지자 손을 허우적대며 발광을 했다.

결국 그 보물같은 카세트를 지키는데는 성공했지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카세트를 껴안고 그만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바닥을 구르다가 어깨를 다쳤는지 존슨은 한손으로 어깨를 움켜쥐고 온갖 오도방정을 떨었다.나인철은 그 꼴을 보고 피식 웃었고 용철도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나인철은 존슨에 대한 경계를 어느정도 풀었지만 마리엘은 여전히 무서운 모양이었다.그녀는 존슨이 미처 가까이 오기도전에 용철의 등 뒤로 숨었다.

그때 그런 용철일행을 주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약 30분전 BOPE 본부 건너편 은행앞에 까만색 벤츠가 정차했다.운전자가 여전히 타고있는걸 봐서 은행에 용무가 있는건 절대 아니었다.그 차는 그 자리를 계속 고수했고 뒷자리에 앉은 여자는 윈도우를 반쯤 열어놓고 BOPE 본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저기 옵니다. 샬럿 아가씨."

"오. 그런가보네요. 그 구용철이라는 자가 맞는거 같아요."

샬럿은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올리며 목을 쭉 뺐다.

평소같으면 롤스로이스를 타고 무장경호원을 10명씩 데리고 다녔겠지만 이목을 끈다는 이유로 이번엔 비교적 흔한 벤츠를 타고 경호원도 샘슨만 동행했다.샘슨은 샬럿의 부하중에서도 가장 충성스러웠고 일당백의 실력을 가진 강자였다.그때문에 불량배는 물론이고 능력자들이 공격해와도 샬럿이 굳이 나설 필요도 없이 샘슨 선에서 대충 처리됐다.

"흐흥! 구용철."

샬럿은 용철을 훔쳐보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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