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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52화 (5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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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인류학 연구센터.

이곳엔 연구센터라는 정식 명칭이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없다.대다수의 사람들이 별칭으로 불렀는데 그건 듣기만 해도 음산한 '시체농장'이라는 이름이다.이곳의 원래 목적은 시체의 부패를 연구하고 그걸 토대로 변사체를 발견했을때 그가 어떤 범죄에 의해 어떻게 죽었는지는 밝혀내는 것이었다.그런데 요즘 이 시체농장의 연구원들은 기존에 연구하던 것 외에 또다른 색다른걸 연구하고 있다.

"으악!!!! 으아아아아아!!!"

육중한 철문으로 막힌 통제구역안엔 어두운 지하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좁고 좁은 통로를 지나 지하 200미터 지점에 존재하는 음습한 지하공간에선 지금도 누군가의 피끓는 비명이 쉴새없이 이어졌다.비명소리때문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지만 지하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오가고 있었다.

"박사님. 저번에 잡아왔던 놈이 변이를 시작했습니다."

"으흠."

그 연구원들중에는 한 동양인이 있었다.

이영훈 박사.20여년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고학생.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뇌전문학자였다.어릴때부터 천재로 불렸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던 탓에 신문배달을 비롯해서 안해본 일이 없었다.고학으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거의 혼자 힘으로 연구에 매진하여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석사과정을 밟으며 발표했던 '코어 이론'이었다.

범죄자의 전두엽은 일반인과는 다른 특이성향을 보이는데 그 전두엽의 변화는 바로 어떤 특수한 물질때문이고 그 물질은 뇌에 축적되어 일정한 결정, 바로 코어를 이룬다.이영훈 박사는 연쇄살인이나 묻지마살인이 빈발하는 원인을 환경변화에 따른 코어현상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교수들은 결코 그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했고 F학점을 남발했으며 유력한 학자들도 그를 비웃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그의 이론이 어느정도 쓸모가 있다고 판단하고 연구비를 대주면서 도왔고 그 덕분에 세계최강의 괴수 방어체계를 갖추게 됐다.

"저번에 브루클린에게 잡아온 놈 입니다."

"사람을 몇이나 죽였지?"

"술을 쳐먹고 닥치는대로 총을 난사해서 9명을 죽인 놈입니다."

"그런 중범죄자를 죽이지않고 사로잡은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야."

"박사님이 연구를 하시려면 이런 놈도 한두마리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고마우이.

하나의 코어는 역(逆) 코어를 생성한다.

한명의 범죄자가 태어날때마다 생래적으로 범죄자를 미워하는 사람도 하나쯤은 태어나기 마련이지.세상은 다 그런거야.그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도 완전히 같은 놈만 있을수는 없는게야.그게 신의 뜻이고 세상의 섭리인게야.혼돈을 섬기는 자가 있으면 질서를 숭상하는 자도 있는 법이지.코어와 역코어는 쉴새없이 부딪치며 이 세상을 유지한다."

옆에 있던 연구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듯 눈만 껌뻑였지만 박사는 그를 내버려두고 연구실 구석에 있는 철창앞으로 향했다.

"크아아아아아!"

우리안에 갇혀있던 범죄자는 박사를 보자마자 철창을 쥐고 정신없이 흔들었다.

"변이가 거의 끝난거 같습니다. 어떤 괴수가 될까요?"

"후후후후. 글쎄."

범죄자의 얼굴은 마치 녹은 고무처럼 뭉글거리고 있었다.

박사를 잡아먹을듯 양껏 벌린 그 입에선 멀건 침이 쉴새없이 흘렀고 잔뜩 충혈된 눈은 곧 튀어나올듯 돌출했다.박사는 그 범죄자를 놀리듯 지휘봉으로 그 이마를 쿡 찔렀다.

"내재된 악....

그것은 혼돈을 숭상하는 의지이다.혼돈은 질서를 파괴하고 모든 것을 파괴한다.인간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악의 의지는 하나의 코어를 이루고 그 코어가 심장을 대체하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그것이 바로 포식자라고 불리는 괴수의 정체다."

"범죄자는 나면서부터 결정된다는 소리군요."

"그렇다.악질 범죄자가 나오면 꼭 그 범죄자의 과거를 들먹이면서 불행한 가정환경을 탓하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꼭 불행한 가정에서만 범죄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설령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해도 전부 범죄자가 되는건 아니잖아? 그건 개개인의 인성문제지 환경은 아무 잘못이 없어.이놈도 마찬가지야.이놈이 브루클린의 빈민가가 아니라 부촌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분명 무슨 일을 저질렀을게야."

"호르몬의 이상이 뇌에 코어를 생성하고 그것이 인간의 사고를 인간보다는 괴물에 가깝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엔 완전한 괴물이 되는거지.

완전하게 자란 코어가 뇌와 심장을 대체하게 되면 그건 더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다.범죄자와 괴수를 지배하는 코어는 혼돈이 가진 힘 그 자체다.혼돈은 항상 질서보다 강하다.따지고보면 인류를 위협하는 에이즈나 에볼라같은 질병들 역시 코어를 이루는 혼돈의 의지 일부분이라고 볼수있다.그때문에 코어를 치료제로 활용할수 있는거다.코어가 완전한 모습을 갖게되면 그 인간은 괴물이 되고말지만 코어 자체는 의지가 없어진다.코어의 의지란 바로 범죄자라는 숙주를 괴물 본연의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코어와 에볼라 바이러스가 같은 혼돈쪽이기 때문에...

코어를 투여하면 백신을 맞은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군요."

"뭐...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지.

천연두 바이러스는 아주 위험한 바이러스지만 그걸 소에게 전염시켜 만들어진 우두는 위험하지 않다.마찬가지로 범죄자라는 매개체를 거치면서 코어는 훌륭한 약이 되는거다."

박사와 연구원이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철창안에 갇혀있던 살인범이 갑자기 허연 액체를 토하면서 엎어졌다.그는 배를 움켜쥐고 힘겹게 발버둥쳤다.성숙한 코어가 그의 뇌와 심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의 몸을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박사가 보는 앞에서 살인범의 목이 통채로 뽑혀나갔다.

곧 팔 다리가 떨어지고 관절이 잘려나간 자리엔 곤죽처럼 허연 액체가 뭉글뭉글 솟아나기 시작했다.애벌레가 변태를 거치듯 그도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박사의 눈앞에서 살인범의 몸은 말라 비틀어지더니 곧 산산조각으로 분해되며 허연 김을 흩뿌렸다.그리고 마치 바퀴벌레의 허물처럼 딱딱하게 굳은 피부와 뼈조각들 틈에서 곧 인간이 아닌 뭔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그건 바로 한 마리의 귀여운 토끼.

토끼는 입을 오물거리면서 철창안을 깡총깡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귀여운 토끼군요. 의외인데요?"

"저건 맘보토끼다. 보통의 토끼라고 생각하면 큰코 다칠걸?"

"맘보토끼?"

"해병대 1개 중대를 혼자 전멸시킨 놈이다.

지금이야 막 번데기를 벗어난 상태라서 위험하지 않다.총은 물론이고 작은 칼로도 충분히 상처를 입힐수 있지.헌데 1시간만 지나면 그런걸로는 어림도 없어.외피가 단단하게 굳어서 총 같은건 통하지도 않아.당장 경비원들을 불러서 저놈을 잡을 준비를 해라."

"예!"

"맘보토끼의 코어는 상급에 속하지.

한 마리로 20명이 투여할수 있는 에볼라 치료제를 만들수 있다."

옆에 서있던 연구원이 허겁지겁 사라지고 나서도 박사는 말없이 철창안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흉폭한 범죄자가 저렇게 귀엽게 생긴 토끼로 변할줄이야 누가 알았을까.저 귀여운 토끼가 해병대 1개중대를 전멸시킬만큼 강하다는건 또 누가 알까.

"이래서 세상은 참 재미있다니까.

지구의 의지가 인간의 숫자를 조절하는 것이라면 인간이 만든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자들이야말로 인간에 대항하기위해 지구가 만든 포식자일지도 모르지.그런데 세상은 그 포식자를 보내면서 포식자를 사냥하는 사냥꾼을 함께 보냈다. 재미있군...정말 재미있어."

탕! 탕!

갑자기 멀리서 총성이 울렸다.

M-16을 들고 달려온 경비병들이 우리 안에 갇혀있던 토끼를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었다.갓 태어난 맘보토끼는 이리저리 뛰면서 총알을 피해보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갓 태어난 나비가 젖은 날개때문에 날지못하듯 갓 태어난 괴물도 별 힘이 없다.

미국의 능력자들은 범죄자를 보면 보통 그냥 죽였지만 될수있는한 사로잡았다.죽은 시체보다는 살아있는 범죄자가 더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다.죽은 범죄자의 시체는 미국정부가 운영하는 코어 가공공장으로 실려가 가공됐고 산채로 잡힌 놈들은 이 연구소로 끌려와 괴물로 변할때까지 감금됐다.

이영훈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이 살아있는 범죄자들로 여러가지 연구를 했다.

맘보토끼는 소총탄을 무려 9발이나 맞고나서야 겨우 숨이 끊어졌다.

이것도 갓 태어나서 가죽이 연할때나 가능한 일이고 가죽이 완전히 굳으면 총알을 튕겨낸다.때문에 범죄자를 감금하고 막 변이를 했을때 죽여야 한다.만약 시기를 놓치게 되면 괴수가 우리를 부수고 나오게 되고 연구소는 순식간에 쑥밭이 되고 말 것이다.

박사는 연구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 토끼의 배를 갈랐다.

내장을 이리저리 뒤집던 박사는 커다란 간 속에서 작은 결정체를 꺼냈다.그건 오직 상급 괴수에게만 나온다는 꽤 희귀한 블랙코어.이 엄지손톱만한 결정체의 가치는 무려 10만달러였다.물론 그 가격도 미국정부가 임의로 책정한 가격이고 실거래가격은 더 높다.

"이거 하나면 최소 20명이상이 투여할수 있는 에볼라 치료제를 만들수있지."

현재 알려진 코어는 총 다섯가지였다.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건 범죄자들의 몸에서 나오는 레드코어.

살인자들의 몸속엔 거의 100% 확률로 이것이 들어있다.그런데 이 코어는 순도가 너무 떨어져서 별 가치가 없었다.주로 가공해서 여러가지 약품의 재료로 쓴다.

범죄자들에게서 아주 가끔 발견되고 주로 괴수에게서 나오는 블랙코어가 그 다음 등급이었다.블랙코어의 효과는 레드코어와는 비교가 안되서 에이즈나 에볼라같은 난치병의 치료제가 된다.가격도 레드코어랑은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다음이 바로 그린코어다.

이건 범죄자들에게선 나오지 않고 오직 괴수를 죽여야 얻을수 있다.주로 강력한 대형괴수들이 갖고있는데 현재 뉴올리언스 인근에 둥지를 튼 초대형괴수들은 전부 그린 코어를 갖고있다고 추정된다.하지만 이런 괴수를 잡을수 있는 사람은 미국에도 거의 없었다.현재까지 입수된 그린코어의 양이 극히 적어서 그 효과는 아직 제대로 알려진바 없다.하지만 블랙코어를 능가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다음 등급이 골드 코어고 마지막이 블루코어다.

골드코어와 블루코어는 오직 비밀상인들의 입에서만 전해질뿐 실제로 얻은 사람은 없다.

"하긴...코어만 얻으면 뭐해. 가공을 못하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금 코어 가공기술을 가진건 전세계에서 오직 미국뿐이었다.

맘보토끼의 코어가 10만 달러의 값어치를 갖고있다고 해도 가공을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그러니 결국 코어의 가격은 가공기술을 가진 미국이 정하게 된다.

박사가 잠시 코어를 살펴보고 있을때 연구원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박사님.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괴수가 나타났답니다."

"그런데?"

"부족원들이 힘을 합쳐서 그 괴수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그린코어가 나왔답니다."

현재 전세계에 미국의 요원들은 없는 곳이 없었다.

어디에서 괴수가 나타나건 그 정보는 즉시 이 연구소와 백악관으로 전달된다.짐바브웨에서 나타난 괴수소식을 짐바브웨 대통령보다 이영훈 박사가 먼저 알았던건 그때문이었다.

"그래? 그린코어를 주는 놈을 부족원들이 잡았다? 많이 죽었겠구먼."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그래? 안됐군."

박사를 혀는 찼다.

그린코어를 가진 괴수는 웬만한 소국가의 군대전체를 상대할수 있는 힘이 있다.그런 괴수가 부족원들에게 죽었다면 그건 운 좋게 괴수로 변이한 직후에 잡았다는 소리였다.갓 변태한 괴수는 눈도 제대로 못뜬 상태라 공격을 받아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다.게다가 외피가 두부처럼 부드러워서 부시맨들의 창도 충분히 먹혔다.그런데도 무려 수천명의 사상자를 냈다.만약 그 괴수가 외피를 굳혔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괴수 시체를 얼마에 사올까요?"

괴수시체를 거론하는 연구원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레드코어와 블랙코어를 주는 생물의 시체는 그 코어 하나를 빼면 쓰레기나 다름없다.그런데 그린코어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그런 괴물들은 코어는 물론이고 그 시체에도 약성이 있다.그런 괴수의 고기는 잘만 가공하면 아주 훌륭한 정력제가 된다.

"가격은 현지사정에 맞추되 최대한 싸게 사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린코어가 포함된 괴수 시체는 무려 1천만달러가 넘는 가치를 갖고있지만 미국은 단 한번도 그걸 제 값에 사온 적이 없었다.특히 짐바브웨처럼 세계최빈국에 속하는 나라들은 감히 미국에 맞서서 괴수시체를 왈가왈부할 힘도 없는 나라들이다.미국은 이런 나라에서 괴수가 나타나면 쓰레기를 공짜로 치워주고 적선까지 한다는 식으로 생색을 냈다.

"3천달러를 준다니까 좋아서 아주 난리를 친다는데요?"

"로버트가 또 한건 했군요. 가격 후려치는 솜씨가 대단하네요."

"하긴 그런 시체 그놈들은 갖고있어봐야 써먹을데도 없으니까요.

우리야말로 거대 쓰레기를 공짜로 치워주고 적선까지 하는 천사들 아닙니까!"

"으하하하! 거 대박인데!"

연구원들은 저마다 승리감에 젖어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저 피식하며 코웃음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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