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43화 (4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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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리우는 세계 3대 미항으로 유명하다.

이곳 백사장의 모래는 아주 결이 곱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그때문인지 몰라도 리우의 해변은 연중 관광객으로 들끓었다.

리우의 해변은 흔히 코파카바나 해변만 알려져있지만 코파카바나는 구시가지쪽의 해변이고 신시가지의 해변은 이파네마(Ipanema)해변이다.코파카바나가 시끄럽고 더러웠다면 이파네마는 상대적으로 고급스런 이미지다.이는 이파네마 해변과 맞닿은 지역에 리우에서도 알아주는 슈퍼 리치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이 지역은 당연히 치안이 매우좋다.

12월 중순이었지만 이파네마 해변은 사람으로 붐볐다.

아직 한국식 사고를 버리지못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12월에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니 아직도 약간 적응이 안됐다.이곳 해변의 비수기는 겨울이 아니라 한여름. 바로 8월이다.한국하고는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얼마전에 코파카바나 해변에 혼자 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왔었다.세계3대 미항 어쩌고 해서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분위기는 해운대보다 더 시끄러웠고 바닥엔 쓰레기와 토사물이 가득했다.그냥 쓰레기만 있으면 양반이지 못된 놈들이 모래속에 깨진 병이나 찢어진 맥주 캔같은걸 묻어놔서 맨발로 걷기 무서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비치파라솔을 세워놓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꼴이 한국과 조금도 다를게 없었다.해변에 왔으면 그냥 파도를 즐기고 바닷바람을 즐기면 그걸로 족한데 왜 술을 쳐먹고 추태를 부리는지 알길이 없었다.결정적으로 구시가지의 그 해변은 악명높은 우범지역이었다.그에 비하면 이파네마 해변은 전체적으로 매우 깔끔했다.

보사노바(bossa nova)의 명곡중 하나인 '이파네마의 소녀'에 나오는 그 이파네마가 바로 여기다.

이 이파네마 해변에는 명물이 있었으니 바로 카리오카(carioca)다.

카리오카란 해변을 거니는 아름다운 소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뜨내기 관광객은 해당사항이 없고 오직 리우의 소녀들만이 카리오카가 될수있다.이 카리오카들은 리우의 다른 지역에서 오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이파네마 인근에 사는 부잣집 딸들이다.이파네마의 소녀란 바로 이 카리오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이파네마에 들어서자마자 구릿빛 피부의 아름다운 소녀들이 저마다 깔깔거리며 해변을 스쳐간다.

잘록한 허리와 터질듯한 가슴. 탱글탱글한 엉덩이.

리우가 자랑하는 말벅지 미녀들이 용철의 눈앞을 쉴새없이 지나갔다.

'오오오! 발육....발육이 너무 대단해.'

다들 먹고살만한 집 딸들이라 그런지 미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들의 나이는 끽 잘해봐야 19살이다.개중엔 15살이나 16살도 있다.그런데 도저히 그 나이라곤 생각할수 없을만큼 하나같이 잘빠지고 예쁘다.소녀들도 이 희귀한 동양인이 신기했던 모양이다.그들은 용철 곁을 스쳐가다가 뭔가에 이끌린듯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보자마자 눈웃음을 치면서 손을 흔들기도 했다.

그들중 몇은 용철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해변 언저리에서 산책을 하던 소녀 둘이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하더니 곧 이쪽으로 다가왔다.그들은 활짝 웃으며 마구 손을 흔들었다.외국인이 신기하고 반가운 모양이다.그들의 커다란 가슴과 미끈하게 빠진 허리가 용철의 눈을 쉴새없이 자극했다.

"안녕하세요. 미인이네요."

용철은 느끼한 접대성 멘트를 날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소녀들은 미인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꺄르르 웃었다.

'저...젖이 터질거 같아.'

용철은 무의식중에 입을 헤벌렸다.

그녀들의 가슴은 너무도 크고 아름다웠다.이곳 남자놈들은 여자의 엉덩이를 제일 먼저 본다지만 용철은 제일 먼저 얼굴을 보고 그 다음엔 가슴을 봤다.어린나이에 엄청나게 성장하는 이곳여자들의 특성상 얼굴에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다는건 15~16세라는 증거.그런데 그들은 마리엘과 비슷한 나이라곤 도저히 생각할수 없을만큼 멋진 몸을 갖고있다.

키는 대충 170이상이고 몸매가 환상적이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한국. south korea에서 왔습니다."

"한국이라면 평창 동계 올림픽? 그 나라 맞죠?"

"네.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삼송. 휸다이. 엔지...전부 한국꺼잖아요."

"맞습니다. 맞아요."

용철은 입을 헤벌린채 손을 꼭 모아쥐었다.

바로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더니 용철의 팔을 확 나꿔챘다.

"지금 뭐해요? 얘들 누구야?"

"어엇?!"

그렇다.

여자들을 보고 한순간 맛이 가서 마리엘을 잊고 있었다.

마리엘은 그 소녀들이 보란듯이 용철에게 팔짱을 끼고 그들을 잔뜩 노려봤다.

"어머. 딸인가요? 귀엽네요. 10살? 11살?"

그 미녀들은 살짝 고개를 숙인채 마리엘을 내려다봤다.그들은 마리엘하곤 거의 머리하나정도 키 차이가 났다.12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리엘이 발끈했다.

"나 16살이거든요! 내일이 생일이니까 내일이면 17살이라구요!"

"에? 16살이면 나보다 많은데?"

마리엘이 방방 뛰자 그 소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얼핏보면 백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동양냄새가 나서 분명 이 동양인과 백인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생각했다.나이는 기껏 잘해봐야 12살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16살일줄이야 꿈에도 몰랐다.이 멋진 소녀들은 둘다 15살이었다.마리엘의 몸매가 용철 입장에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몸매였지만 이들이 볼땐 전형적인 초딩몸매였다.

"어머. 너무 심하다..."

"뭐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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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헌팅기회를 놓친 셈이지만 기왕 이렇게 된거 깔끔하게 잊기로 했다.

"물이 아직 좀 차가우니까 조심해."

"응."

마리엘은 아까 그 소녀들때문에 약간 삐친거 같았다.

그들을 놓쳐서 약간 아쉬웠지만 기왕 놓친 고기라면 깔끔하게 잊는게 옳다.용철은 동생이랑 노는데 집중하기로 했다.용철은 먼저 바닷속으로 들어가 마리엘에게 손짓을 했다.먼저 물속으로 들어간건 혹시 물속에 위험한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른 와! 시원하다!"

"응!"

마리엘은 용철이 부르자마자 허겁지겁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앗 차가워!"

그녀는 찔끔하면서 물밖으로 도망갔다.

오늘 날씨가 그렇게 덥지 않아서 그런지 체감하는 수온도 그만큼 낮았다.

"야! 거기서 뭐해! 얼른 들어와!"

"웅...."

그녀는 여전히 추운지 어깨를 막 움츠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빨리 안들어오면 오빠 도망간다?"

"싫어!"

반농담이었지만 그게 그녀에겐 심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약간 겁 먹은 얼굴로 서있던 것도 잠시.마리엘은 용철이 있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그녀는 아직 수온에 적응을 못했는지 물 속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지만 용철은 고무튜브에 몸을 맡기고 수면에 드러누웠다.

"어....좋다. 아주~ 좋아."

멀리서 여자들이 꺅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보니 물놀이를 하는 아가씨들 뒤로 이파네마의 훌륭한 건물들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조용히 다가와 조용히 사라지는 파도와 멀리 손에 잡힐듯 보이는 수많은 섬들.마치 거울처럼 투명한 물위에 누워 올려다보는 남국의 하늘은 오늘따라 구름 한점없이 새파랗다.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수면위에 드리운 야자수의 긴 그림자가 잔잔한 물결에 맞닿아 조금씩 흩어져갔다.

마치 시간이 멈춘거 같다.

이곳이 그 지옥같은 파벨라가 도사리고 있는 도시라곤 생각할수조차 없었다.

해변을 거니는 저 사람들의 얼굴엔 단 한점의 근심걱정도 없었다.

용철도 그들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나눠갖기로 했다.이렇게 수면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벨라에서의 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마치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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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미인들도 구경하고 해수욕도 했으니 이번엔 리우의 랜드마크인 거대 예수상을 구경하기로 했다.사실 예수상은 리우 시내의 어디에서도 보였으니 굳이 가까이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옆집 백인영감은 저녁시간에 맞춰 꼭 한번 올라가보라고 했다.

1000계단? 아니면 2000계단?

예수상이 서있는 코르코바도산의 정상까지 수없이 늘어선 계단을 올라갔다.

이 산은 해발 704m로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이런 낮은 산쯤은 갓바위를 전속력으로 뛰어오르는 용철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마리엘이 문제였다.이게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가냘픈 여자애가 오르기엔 좀 무리라고 생각했다.그때문에 산에 오르면서부터 엄청 신경을 썼지만 마리엘은 의외로 잘 따라왔다.

위를 올려다보며 걷다가도 한번씩 뒤를 돌아봤다.

그럴때면 정말 약속이나한듯 그녀는 무릎에 두손을 댄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말고 천천히 올라와. 빨리 올라간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오빠 따라가고 싶으니까 그렇지."

"빨리 안 걸을게."

"핏! 이제까지 빨리 걸어놓고.."

올라가는데만 정신을 팔아서 그런지 뒤에 따라오는 여자를 배려하지 못했다.막 올라가다가 한번씩 돌아보면 마리엘은 항상 뒤쳐져있었다.그럴때면 멋쩍게 웃으면서 오던 길을 돌아가 그녀를 알뜰하게 챙겼다.

"그럼 손 잡고 갈까? 네가 쳐지면 내가 끌어주고. 어때?"

"오빠 걸음 따라갈 자신이 없어."

손 잡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조그만 얼굴위로 살짝 미소가 번져가는듯 했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었다.

"그럼 업어줄까?"

"위험하잖아. 넘어지면 어떡하려구?"

"내가 누구냐? 구용철 아니냐. 내가 설마 이까짓 산에서 넘어질까봐?"

"우웅..."

그녀는 살짝 콧소리를 내며 용철의 눈치를 봤다.

"그럼 안고 갈까? 업는거보다 안는게 더 낫지 않아?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니까."

"아...안는다구?"

"왜? 못할거 같아?"

"자...잠깐만! 잠깐만!"

마리엘은 옆에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돌아보며 얼굴을 붉혔지만 용철은 그녀를 번쩍 안아올렸다.오른손으로 등을 받치고 왼팔로 그녀의 오금을 감았다.

"아!"

마리엘은 놀라서 버둥거렸지만 용철은 그녀가 놀라던 말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던 관광객들이 저마다 용철을 돌아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여자를 안고 산을 올라온다는건 보통 체력으론 불가능했기 때문이다.남자들은 그걸 보자마자 감탄했고 또 일부 젊은 남자는 히죽 웃으면서 휘파람을 불었다.여자들은 약간 보기 민망했는지 애써 시선을 피하면서도 용철이 곁을 스쳐가면 그 뒷모습을 곁눈질했다.

"1558!"

"1559! 아싸 좋구나!"

계단을 마구 뛰어오르며 용철은 입이 귀에 걸렸다.

여자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어필할수 있다는건 바로 모든 남자의 로망이었다.그 여자가 자기 여자던 남의 여자던 그런건 상관없다.말하자면 그건 남녀의 성역활이 정해지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오직 수컷만의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용철은 계단을 마구 뛰어오르며 한번씩 멀찌감치 뒤쳐진 다른 수컷들을 돌아봤다.

'이런 허약한 수컷들을 봤나! 그렇게 비리비리해서 어따 쓰겠어?!'

승리감에 도취된 용철은 입을 헤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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