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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39화 (3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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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용철을 비롯한 능력자들의 활약으로 단 1주일만에 리우 중심가의 파벨라는 전부 정리됐다.이에 브라질 대통령은 BOPE 사령관을 비롯한 간부들을 극찬하며 이전부터 숙원으로 삼았던 범죄없는 세상이 드디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음을 공언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은 리우를 비롯한 브라질 전역을 축제분위기로 만들었다.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각국의 발전에 가로막는 가장 큰 저해요소는 바로 극심한 빈부격차와 엄청난 범죄율이었다.같은 리우의 하늘아래 두어사람이 눕기도 빠듯한 판자집과 최신식 고급호텔이 공존한다.판자집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하는 사람들과 베란다에서 목욕하는 갑부들이 공존한다.그런데도 대다수의 브라질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부자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걸 질투하거나 증오하지는 않는다.한국에서 꽤 자주 발생하는 부유층증오 범죄가 이곳에서는 아주 드문 편이다.

그건 남미 특유의 느긋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가까이서 발생하는 범죄때문에 그런거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아무리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해도 그게 피부로 느끼는 범죄의 위협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파벨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이며 동시에 악질 범죄자들의 아지트였다.

총을 쏘는 갱도 흑인과 히스페닉이고 총에 맞는 희생자도 경찰을 제외하면 똑같은 흑인과 히스페닉이다.범죄는 항상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 더 가까이에 존재하는 법이다.

BOPE의 활약을 가장 반긴건 말하나마나 백인들이었다.

남부 산타 카타리나와 리오그란데 주를 중심으로 하는 백인 농장주들과 대도시 외곽 부촌에 사는 백인들은 경찰특공대와 외국 용병들의 활약을 극찬했고 특히 리우 외곽에 살던 부자들은 외국인 능력자들에게 거액을 쾌척했다.그들은 파벨라의 갱들때문에 그간 개인 헬기로 출퇴근을 할 정도로 신변에 위협을 느꼈고 그때문에 갱이라면 치를 떨었다.

능력자들의 활약을 반긴건 백인 부자들만은 아니었다.

갱들은 비단 부자만 위협하는게 아니었다.빈민들의 삶의 터전 파벨라를 범죄소굴로 만들고 걸핏하면 총질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게 그놈들이었다.그때문에 파벨라에 살던 빈민들에게도 경찰특공대와 능력자들은 무척 고마운 존재였다.일부 갱단의 부역자를 제외하면 파벨라 사람들도 경찰의 활약을 쌍수를 들고 반겼다.

잔혹하고 무자비한 진압작전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이 특공대 덕분에 갱들이 정리되고 있다는건 어느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관심과 격려. 그리고 막대한 지원금.

용철을 비롯한 외국인 능력자들은 어깨를 당당히 펼수 있었다.비록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합법적인 살인을 함으로서 선량한 피해자를 줄이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고 있다.비록 첫번째 목표는 돈이었지만 그 돈을 벌면서 남에게 존경을 받을수 있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며 궁극적으로 평화를 찾아올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도 없다.

사방에서 격려가 쇄도하고 지원금도 쏟아지면서 브라질 대통령도 아주 신이 났고 될수있는한 빨리 모든 파벨라를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그때문에 주로 오전 11시는 되야 시작되던 토벌작전이 자꾸만 새벽시간대로 옮겨갔다.보통은 이틀에 1개의 파벨라를 토벌했지만 브라질 대통령의 기대도 있고 정리속도도 생각보다 빨라지면서 사령관도 점점 무리를 하고 있었다.새벽에 시작하면 하루만에 파벨라 두개를 밀어버릴수 있다.

점심시간을 막 지난 시각.

마리엘은 BOPE 본부 앞에서 용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에 하늘하늘 흩날리는 새하얀 원피스와 예쁜 밀짚모자.곧 나들이라도 떠날듯 소녀의 복장은 꽤나 화사했다.그녀는 직접 만든 샌드위치랑 여러가지 간식이 가득든 왕골바구니를 한손에 들고 간혹 까치발을 하면서 본부안을 넘어다봤다.

그녀는 더이상 용철을 조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토벌대에 따라가고 싶은 맘에 용철을 졸랐지만 그는 좋아하는건 고사하고 마구 화를 냈었다.그게 섭섭했고 또한 도움이 될수없는게 너무 미안했지만 비밀상인 밀리아를 만나고 새로운 기술에 눈 뜨면서 이전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짐만 되는 존재인지를 알았다.그녀는 밀리아에게 받은 비전서로 레인지 힐(range heal)을 배웠고 지금은 그걸 연습하는중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웠음에도 용철을 따라다니지 않은 것은 밀리아가 그걸 막았기 때문이다.지금의 용철은 딱히 힐이 필요가 없는 상태였고 그녀 역시 새 기술을 연습할 시간이 필요했다.어차피 지금은 따라가봐야 쓸데도 없고 괜히 신경만 쓰이게 된다.

기존의 터치힐은 오직 근접해야 사용할수 있는 힐이었고 그때문에 따라다니면서 치료를 하는건 고사하고 용철에게 걱정만 끼쳤다.하지만 이 레인지 힐에 익숙해지고 용철이 그녀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당당히 용철을 도울수 있었다.그녀는 집에서 혼자 그 기술을 열심히 연습하는 한편, 용철을 위해 간식을 만들고 옷을 손질하는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밥값을 하기위해 노력했다.

"으응...분명 이시간쯤이면 하나를 정리했을텐데."

본부 앞에 장갑차가 서있는걸 보니 벌써 새벽작전은 끝난 모양이었다.

혹시나 해서 장갑차의 동체에 손을 대보니 뜨끈뜨끈했다.그녀는 입구 초소 바로옆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금새 또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하루종일 싸우는 용철이 너무 안스러웠다.

생각같으면 따라다니면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괜한 걱정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아직은 그를 따라다니기에 너무 부족하다.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때까지는 꾹 참기로 했다.그대신 음식을 하고 옷을 손질하고 청소를 하는걸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그때 본부의 현관쪽에서 왁자지껄하면서 몇 사람이 나오는게 보였다.

마리엘은 옆에 뒀던 바구니를 챙기면서 얼른 일어서서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하지만 그 중에 그녀가 기다리던 용철의 얼굴은 없었다.혹시나 그안에 용철이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화사하게 피어나던 그 얼굴에 다시금 수심이 드리웠다.

"이게 누구야? 오자마자 문전박대 당했던 그 바보년이잖아?"

갑자기 등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에 혹시나 했지만 그건 용철이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불량스러워보이는 흑인과 히스페닉 여자 세명이 그곳에 서있었다.그것들을 보는순간 울분이 치밀었지만 그녀는 꾹 참고 일어섰다.

단지 힐러라는 이유로....

정식대원이 아닌 준대원이라는 이유로 저들은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다.다들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에도 끝내 본부앞에서 서성일수밖에 없었던건 바로 저들의 지독한 괴롭힘때문이었다.만약 리우 시내에 집이 있었다면 저들의 괴롭힘이 그토록 아프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여기외엔 갈 곳이 없었다.얼떨결에 능력자가 된후 BOPE대원외에 다른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부모님을 죽인 갱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마지막을 걸고 찾아온 이곳은 결코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년이? 지금 우리 말 씹는거야?"

"이게 동양놈이랑 붙어다니더니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구용철인지 하는 그놈이 킬러 쿠인지 뮛인지 신문에 나왔다며? 그거 기자새끼들의 과장인거 모를줄알아?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그게 그렇게 유명해질수가 있어? 사령관한데 뇌물 쳐먹인거 아냐?"

"야. 이년아. 자꾸 개기면 어떻게 되는줄알지? 확 창녀촌에 팔아버리는수가 있다?"

그들은 마리엘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포위망을 좁혀왔다.

뚱뚱한 히스페닉이 뱀 혓바닥처럼 추한 혀로 두툼한 아랫 입술을 할짝할짝 핥았고 본부쪽에 서있던 흑인이 주머니에서 정글나이프를 꺼냈다.그들은 징그럽게 웃으며 한발한발 다가왔고 마리엘의 가냘픈 몸이 파르르 떨렸다.처음 리우 호텔의 숙소에 들어갔던 그날.마리엘이 이제껏 겪어왔던 어떤 날보다도 잔혹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들은 마리엘이 준대원이라는 이유로 옷을 찢고 온갖 모욕을 줬다.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숙소에 들어간적이 없었다.

날마다 세미나에 참가하고 BOPE 사령관을 찾아가서 정식대원으로 써달라고 사정했다.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돌아가면 해가 질때까지 본부 앞에서 멍하게 앉아있었고 해가 거의 떨어져서야 리우 호텔로 가서 프론트 앞에 앉아있었다.거기 앉아있었던 근처에 경비가 있었기 때문이다.아무리 독살스런 년들이라고 해도 감히 경비앞에서 미친짓을 하지는 못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여?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야. 그 바구니 안에는 뭐가 들었지? 내놔 봐."

흑인이 실실 웃으며 바구니를 낚아채려하자 마리엘이 격렬하게 반항했다.

"왜 이래! 제발 좀 그만해! 내가 대체 뭘 어쨌다는거야!"

"썅년이....진짜 겁대가리를 상실했나본데?"

"매운 맛을 보여줘야되나?"

"옳지. 니년이 꼴에 백인혼혈이라 이거지?

그래서 우리같은 깜둥이는 사람으로 안보인다 이거지?"

"좋아! 백인 나으리! 어디 우리 노예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지요?!"

입을 씰룩이던 흑인이 그 넓적한 손으로 마리엘의 뺨을 후려쳤다.

조그만 체격의 마리엘이 이 육덕진 흑인의 일격을 당해낼수 있을리가 없었다.

"악!"

뺨을 맞은 마리엘이 휘청거리며 쓰러지자 뚱뚱한 히스페닉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런데 뺨을 때렸던 흑인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그년도 처음 뺨을 때렸을땐 다른 년들과 마찬가지로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지만 곧 손목을 주무르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여? 이거...대체 뭘 쳐먹었길래?"

"왜 그래?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이년이 무슨 돌덩이 같아. 그냥 살짝 쳤는데 손목이 왜이렇게 아프지."

"네가 부실해서 그런거 아냐?"

"아니라니까. 미친년아. 이거 봐. 손목이 부었어."

"어..? 진짜네? 아니....이년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거야!"

흑인의 손목관절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들은 조금전까지 멀쩡하던 흑인의 손목이 갑자기 아작난 이유가 마리엘이 뭔가 사술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들은 마리엘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짓밟으려했다.

바로 그때. 본부쪽에서 한 남자가 뛰어오며 냅따 소리를 질렀다.

"야! 뭐하는거야! 이 걸레 년들이 쳐돌았나!"

그는 바로 나인철이었다.

막 마리엘을 밟으려던 뚱뚱한 히스페닉은 나인철을 보자마자 얼굴이 사색이 됐다.최근에 용철이 사령관의 신임을 얻고 신문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건 용철이 아니라 나인철이었다.그건 바로 이들이 정규대원중에서 하급에 속해서 제대로 된 토벌작전에 참가할수 없는 잉여대원이었기 때문이다.만약 단 한번이라도 용철이 싸우는걸 봤다면 이들은 절대 마리엘을 괴롭히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래? 나인철, 왜 욕을 하고 그래?"

"씨발년들이 돌았나? 이 애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아니...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할 일이 있으니까 상관하는거 아냐? 씨발년들아! 꺼져. 안꺼져?!"

"왜 지랄이야..."

"꺼지라고 했다?"

"씨발, 가면 되잖아...."

그들은 궁시렁대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인철은 얼마전까지만해도 이곳의 유일한 2레벨 파이터였고 웬만한 능력자는 꿈도 못꾸는 최강의 격투장갑인 플레티넘 세스터스를 가진 강력한 전사였다.때문에 용철의 진면목을 모르는 저런 양아치들은 갑자기 나타난 용철보다는 오히려 나인철을 더 무서워했다.

"흥. 더러운 갈보들이."

나인철은 그것들이 보란듯이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어이,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

나인철은 상큼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령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용철을 마구 질투하던 나인철이 오늘은 곤경에 빠진 마리엘을 구해준 정의의 사자가 됐다.

"아....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아니야. 아니야. 너도 우리 BOPE 대원인데 도와주는건 당연하잖아."

"네?"

마리엘은 그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도 약간 어안이벙벙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인철 역시 평소에 마리엘을 마뜩잖게 보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런 그가 이렇게 태도를 순식간에 바꿀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어서 일어나. 용철이가 너를 얼마나 찾았다구."

"오빠가 저를...찾아요?"

"그럼. 집에 너 혼자 있다고 걱정하더라.

마침 내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어쩔뻔했니?"

"아...그렇군요. 정말 고마워요."

"아니야. 아니야. 용철이 만나러 갈래? 내가 어디 있는지 아는데?"

"진짜요?"

"그럼! 이 나인철이 누군데?

BOPE가 자랑하는 최고의 정보원 아니냐? 포르투갈어를 비롯한 3개국어를 마스터한 이 시대의 진정한 석학이 바로 나! 나인철이야! 그러니 너는 아무 걱정할 필요없어."

"네에....."

마리엘은 나인철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그의 행동거지가 좀 불편하게 여겼다.왠지 지금 하는 행동이 마음에서 우러나온게 아니라 뭔가를 노리고 하는 짓 같았다.

"아이구. 우리 용철이는 참 복도 많지.

어떻게 이렇게 이쁜 동생을 뒀을꼬? 하긴 너 같이 이쁜 애를 눈앞에 두고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으니 내 눈이 분명 해태 눈깔인가보다.안그러니 마리엘?"

"그럴....리가요."

"오오! 이제보니 오빠를 위해 도시락을 싸왔구나!

이거야말로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진정한 로망이 아니고 뭐냐?"

나인철은 감격했다는듯 손을 모아쥐며 마구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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