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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꽤 오랫동안 잔거 같다.
의식적으로 눈을 떠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반눈을 뜨자마자 침대옆에 놓인 스텐드의 희미한 불빛이 눈을 격렬하게 자극했다.약간 흐릿해진 눈앞에 보이는건 조금전까지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던 베게와 언제 켜놨는지 은은한 빛을 흩뿌리는 조그만 스텐드뿐이었다.
"아우....몇시간을 잔거야."
그 정도로 격렬한 섹스는 난생처음이었다.
사정을 몇번이나 했는지는 기억에도 안났고 다만 기억이 남은건 삽입을 할때마다 자지러질듯 비명을 지르며 헐떡이던 유라의 얼굴뿐이었다.무의식중에 침대 옆을 더듬었지만 옆에 누워있어야 할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었다.스텐드가 놓여있던 조그만 탁자위를 더듬어 스마트 폰을 찾았다.
"1시....? 완전 미쳤구만."
이전같으면 1시에 일어난다는건 상상도 못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꽉 짜여진 스케쥴대로 행동하던게 어느덧 사냥과 휴식의 단순한 패턴의 반복으로 변했다.처음엔 유라가 없어서 약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1시라면 먼저 일어나 집에 갔다고 해도 그다지 무리는 없었다.
용철은 머리맡에 벗어둔 시계와 지갑부터 찾았다.
사실 어젯밤에 원나잇보단 어설픈 연인정도로 마음을 맞추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해가 떴는지도 모르고 아주 정신없이 잤으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지갑은 분명 그녀에게 상당한 유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물론 그녀가 몰래 지갑에 손을 댔다고 해도 어젯밤의 만족스런 섹스를 감안하면 어느정도는 눈 감아줄 용의가 있었다.그런데 아무리 돈을 세어봐도 그대로였다.그리고 밀리아가 빌려준 이 시계.바세론 콘스탄틴은 어제 유라가 샤워할때 잠시 검색해봤는데 우리 돈으로 2천만원이 넘은 초고가의 시계였다.그런데 이런걸 보고도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
물론 이게 그렇게 비싼 물건인지 아예 몰랐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의 자신은 유라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아는건 얼굴뿐이고 그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른다.만약 처음부터 한번의 섹스로 끝날 사이라고 가정하고 만났다면 돈이나 시계의 유혹은 분명 떨치기 어려운 것일터.열어봤던 지갑을 다시 머리맡에 집어던지려던 찰나에 노란 메모지 한장이 보였다.
-010-2XX4-XX98 강유라
"음....?"
이건 대학생들이 자주 쓰는 포X트 잇이라는 붙이는 메모지.
하필이면 지갑안에 이걸 붙여놨다는건 일어나자마자 지갑부터 열어볼거라고 생각했기때문일까.뭔가 마음을 읽힌거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지만 이는 곧 그녀역시 이쪽을 완벽하게 믿지는 않았다는 증거였다.이건 아마 자신이 추잡하게 지갑같은거 건드리는 막장 년이 아니라는 증거로 붙여놨을 가능성이 크다.어쨌든 전화번호를 남겨놨다는건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이건 그만큼 만족을 했다는 뜻이고 원나잇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증거.
사실 포인트만 생각한다면 다른 클럽으로 가서 또 다른 여자를 작업하는게 낫지만 그럼 또 만남과 꼬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그게 귀찮았다.
어쨌든 일단 섹스를 한김에 능력치부터 확인했다.
이름:구용철
클래스:파이터(lv1)
능력치:
A스텟-물리공격력(29+1) 물리방어력(25+2) 체력(500+0)
B스텟-회피(1+0) 공격속도(15+0) 이동속도(10+0) 크리티컬율(50+0)
C스텟-마법공격력(2+0) 마법방어력(2+0) 마법속도(2+0) 마나량(10+0)
D스텟-정력(60/100) 섹슈얼포인트(15)
X스텟-매력(25)
현재 장비 아이템:
격투장갑(물리공격+1)
하드 레더 메일(물리방어+2)
EXP 게이지 I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I(22%)
스킬:
물리공격/하급:파워 스트라이크(lv1) 위력:10
마법공격/하급:매직 에로우(lv1) 위력:5
자동적용/하급:방검효과(lv10) 방탄효과(lv10)
자동적용/하급:핑크 타이푼(lv1) 일정확률로 이성을 발정하게 만듬.
"헉? 이게 뭐지...?"
섹슈얼포인트가 오르고 정력이 감소한건 당연했지만 섹스랑은 전혀 상관없는 전투능력치까지 올라갔다.28이었던 물리공격력이 29가 됐고 24였던 방어력이 25가 됐다.0이었던 회피가 1 올라갔고 마법공격력과 마법방어력 마법속도가 각각 1씩 상승했다.그리고 숨겨져 있던 X스텟이 그 정체를 드러냈다.어제 클럽에서 춤을 출때까지만 해도 스텟이 숨겨져있었으니 스텟의 개방조건과 섹스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게 분명했다.
"핑크 타이푼?"
새로운 스킬도 하나 생겼다.이성을 발정나게 만든다는데 쓸모가 있을까 싶었다.
"오호. 이것 봐라? 레벨업도 안했는데 스텟이 왜 올라가지?"
게다가 이번에 얻은 섹슈얼포인트도 엄청 만족스러웠다.
저번 창녀촌에서 1의 포인트를 얻었고 하루가 지나면서 그걸 자동적으로 까먹었으니 유라에게 얻은 포인트가 15라는 소리였다.
"그럼 의외로 별로 안했다는 소린데?"
피임약을 갖고다니는걸 보면 처녀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굴러먹은거 같지는 않았다.물론 이전에 몇명과 사귀었던간에 이쪽이 만족을 얻을수있으면 그걸로 족했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경험이 적은 쪽이 아무래도 좋았다.
-숨겨진 Y스텟이 개방됩니다. 상급스킬 슈퍼 스트라이크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슈퍼 스트라이크를 정상적으로 습득한 능력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종스텟인 Z스텟이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Z스텟은 Y스텟이 사라지면 사라집니다.
-Y스텟의 개방은 랜덤이며 하루에 1번씩 Y스텟의 스킬을 사용할수 있습니다.
-Y스텟은 자동적으로 개방되며 개방된 스킬은 하루가 지나면 삭제됩니다.
그때 선글라스위로 이상한 메세지가 출력됐다.
급히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정말로 Y스텟과 Z스텟이 새로 생겼고 스킬도 하나 생겼다.
A스텟-물리공격력(29+1) 물리방어력(25+2) 체력(500+0)
B스텟-회피(1+0) 공격속도(15+0) 이동속도(10+0) 크리티컬율(50+0)
C스텟-마법공격력(2+0) 마법방어력(2+0) 마법속도(2+0) 마나량(10+0)
D스텟-정력(60/100) 섹슈얼포인트(15)
X스텟-매력(25)
Y스텟-천운(50)
Z스텟-???
Y스텟 효과:일정확률로 새로운 스킬을 생성/하루가 지나면 Y스텟은 삭제된다.
물리공격/하급:파워 스트라이크(lv1) 위력:10
마법공격/하급:매직 에로우(lv1) 위력:5
자동적용/하급:방검효과(lv10) 방탄효과(lv10)
자동적용/하급:핑크 타이푼(lv1) 일정확률로 이성을 발정하게 만듬.
물리공격/상급:슈퍼 스트라이크(lv51) 위력:5000
"뭐...? 위력이 5000?"
그 스킬을 보는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합산위력이 고작 38에 불과한 파워 스트라이크로도 사람의 머리를 흔적도 없이 터트릴수 있는데 5천의 위력이라면 이건 대체 어느정도란 말인가.그런데 안타깝게도 슈퍼 스트라이크를 사용할수 있는건 딱 오늘뿐이었다.오늘이 지나면 저 스킬은 없어진다.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없는 범죄자라도 찾아내서 한번 써보고 싶었다.
-필요 마나:500
"이런 미친!"
지금 마나량이 딱 10이니 이건 스킬을 얻어도 써먹을 수도 없었다.
"오호...이거 참....알면 알수록 재미있는데."
용철은 지금의 이 상황이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능력치며 스킬이며 스킬 개방이며 게임과 너무 비슷했다.그런데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능력치의 상승폭이었다.지금의 자신은 1레벨 파이터였다.게임으로 치면 처음 시작한 초보자였다.그런데 처음 시작한 초보자치곤 스킬이 너무 많았다.
"음...일단 밖에 나가서 밥이나 좀 먹자."
새로 생긴 스킬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필요마나가 500이니 어쩔수 없었다.
대충 옷을 입고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밀리아가 나타났다.
"허...!"
동업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딱히 놀랄이유는 없었지만 여기가 모텔이라는게 문제였다.용철은 무의식중에 등뒤의 침대를 돌아봤다.어젯밤의 격한 흔적이 침대 여기저기에 남아있었다.용철이 뒤로 슬슬 물러서자 막 방안으로 들어오려던 밀리아가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빤히 쳐다봤다.
"왜요?"
"아닙니다."
"점심이나 같이 할까해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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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을 나와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제까지 중국집을 전전하면서 진정한 남자의 식단을 맛보여줬으니 이제 슬슬 다른 메뉴를 건드릴때도 됐다.여자들은 시끄러운거보다는 대체적으로 조용한 것을 선호하고 그건 시끄러운 클럽에서 만난 유라도 마찬가지인거 같았다.그럼 인적없는 곳만 찾아다니는 이 비밀상인이 중국집보다 여길 더 좋아할건 안봐도 뻔했다.
우선 주문을 해놓고 창가의 자리에서 마주 앉았다.
"어때요? 포인트는 많이 주던가요?"
"어제 15포인트나 얻었습니다."
"어머. 클럽 가신거 아닌가요?"
"클럽 갔죠. 거기서 만나서....음...!"
용철은 말꼬리를 흐리면서 애꿎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일어나자마자 빈속에 담배를 피워서 그런지 그게 아니면 여자앞에서 다른 여자와 잤다는걸 밝히는게 좀 어색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목이 탔다.
"와우. 원나잇으로 15포인트 얻었다는 소리는 처음 듣네요."
"생각보다 경험이 적었나봐요."
"그런가보네요. 어찌보면 용철씨는 참 행운아 같아요."
"으흐..."
용철은 씨익 웃으면서 또 물을 들이켰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자꾸만 그녀를 쳐다보게 됐다.길거리를 다니면서 외국인도 많이 봤지만 이정도로 예쁘고 잘빠진 백인미녀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문득 쓸데없는 생각이 용철의 머리속을 스쳐갔다.
범죄자를 사냥해서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로 비밀상인에게 더 좋은 아이템을 사는게 강해지는 비결이라면 그런 노가다보단 차라리 비밀상인을 꼬시는게 더 낫지 않을까? 자신은 남자였고 이 앞에 앉아있는 상인은 여자였다.아무리 직업적 의지가 투철하다고 해도 남녀가 계속 만나다보면 어느순간엔 통하기 마련이었다.만약 이 여자를 애인을 만든다면? 그럼 굳이 포인트 노가다를 할 필요 없이 상급 장비를 얻을수 있다.
만약 애인정도로 그치지 않고 아예 이 여자를 임신시키고 부인으로 삼으면?
부부사이에서 아낄건 아무것도 없다.
만약 이 상인이 처음부터 냉정한 태도로 일관했다면 모를까, 일단 그녀는 장사꾼치고는 너무 친절했고 이것저것 잘 도와주는걸 보면 이쪽이 싫지는 않은거 같다.
"그런데 밀리아씨. 포인트로 사는 장비 말입니다."
"네? 아...네. 혹시 뭐 필요하신거라도?"
턱을 괸채 잠시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포인트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돌렸다.일에 관한 것이라면 뭘 물어도 신속하고 친절하게 답하는게 그녀의 장점이었다.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저 같은 능력자가 지금 전세계에 몇명이 있는지 모르는데 그중에 혹시 여자도 있나요?"
"여자 능력자한데 관심 있군요."
"아뇨. 딱히 그런건 아닌데 궁금해서요."
"당연히 여자도 있죠. 남자보다 적어서 그렇지."
"그렇군요. 그럼 상인도 남자 여자가 따로 있겠네요.제가 남자고 밀리아씨가 여자니까 여자 능력자는 남자 상인을 만난다던가?"
"아니요. 상인은 전부 여자에요."
"그렇군요. 여자들은 참 안됐어요."
용철의 말에 척척 대답하던 밀리아가 그 말을 듣자 살짝 눈을 흘켰다.
"상인이랑 연애할 것도 아닌데 남자던 여자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아니...꼭 그렇게 단정할수 있는게 아니잖습니까?
여자들은 운명적인 만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더군요.어느날 갑자기 멋진 남자 상인이 찾아왔다면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여자는 아마 없을거에요."
"훗...그래요? 그럼 우리 사이는 어떤가요? 운명적인가요?"
"그렇다고 볼수도 있죠.
다만 우리는 선택한 쪽이 여자고 선택받은 쪽이 남자라는 차이가 있죠."
용철은 다시 물을 들이켰다.
이제 딱히 목이 마르진 않았지만 물을 마심으로서 상대가 생각할 찬스를 주고자했다.
"구용철씨."
"네."
"설령 우리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해도....
우린 결코 맺어질수가 없어요.비밀상인에게 연애는 금기에요. 만약 규칙을 어긴다면 상인 조합에서 쫓겨나고 가게도 사라지게 됩니다.상인과 능력자가 연애하는 즉시 그 능력자는 어떤 아이템도 구할수 없게되는거에요.그런걸 원하시나요?"
"어....음."
또 마음을 읽힌거 같았다.
최대한 속 마음을 숨기려고 그냥 농담비슷하게 운을 뗐는데 밀리아는 그 의도를 파악했는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했다.용철은 다시 애꿎은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건 무슨 생각을 못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