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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16화 (1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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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이곳은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Gary).

오대호 연안에 있는 인구 8만명의 소도시로 한때는 철강산업의 선두주자로 흥청대던 도시였다.그런데 임금인상과 원자재값 상승등 악재가 겹치면서 미국의 철강산업은 쇠퇴기를 맞이했고 철강산업의 쇠퇴와 함께 게리는 순식간에 망해버렸다.

도시 자체가 오직 철강산업에 기반을 둔 도시였고 그외의 인프라는 전무했기때문이다.

철강산업이 무너지면서 이 도시의 존재자체가 없어져버렸다.

원래 이 도시의 주류를 이루던 독일과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전부 외지로 빠지고 그 자리엔 흑인들이 들어왔다.흑인이 도시인구의 약 90%에 육박했고 그들중 상당수는 최하층 빈민과 갱들이었다.일부지역을 제외하면 도시 전체가 사실상 방치상태에 놓이면서 범죄율은 급증했고 살인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났다.

이런 현상은 자동차 산업이 붕괴하면서 망해버린 디트로이트도 마찬가지였는데 디트로이트는 그나마 대도시에 속했고 미국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있었다.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게리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못했고 내일이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잡아라! 저새끼 잡아라!"

"쏴! 그냥 쏴버려!"

수풀이 무성한 폐공장 한켠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쫓고 쫓기고 있었다.

후드 티를 입은 흑인이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서 폐건물쪽으로 도망쳤고 그 뒤를 여러명의 백인사내들이 일제히 쫓았다.

"에잇! 썅놈의 새끼!

안서면 쏜다고 분명히 말했을텐데?! 뒈져도 나를 원망하지마라!"

한 백인이 그 자리에서 반무릎을 꿇고 도망친 흑인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저격총 위에 달린 스코프가 한낮의 태양아래 첨예한 빛을 발했다.

탕!

수풀속으로 막 도망치려던 흑인이 그 자리에서 휘청거리더니 픽 고꾸라졌다.

"빌어먹을! 10포인트밖에 안주잖아."

그 사내는 흑인을 쏘자마자 기대에 가득한 얼굴로 오른손을 쳐들었지만 막상 그 손에 들어온건 조그만 금화 한닢뿐이었다.

"아니. 이런 씨발.

이런 악질새끼를 죽여도 10포인트밖에 안주면 어쩌자는거야?"

"그러게. 10포인트밖에 안주는 놈이면 배를 갈라봐야 별 볼일 없겠구만."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쓰러진 흑인에게 다가갔다.

한명이 흑인의 시체를 걷어차 바닥에 굴렸고 다른 사람은 총으로 피로 물든 셔츠를 마구 헤집었다.그들은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한참동안 뭔가를 찾다가 재수없다는듯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빌어먹을 새끼. 신분증도 없나."

"야. 아까 저기서 총 쏜 놈이 이새끼가 맞아?"

"맞아요. 아니면 우릴보고 도망갈 이유가 없잖아요."

"미치겠네. 4명이나 죽인 총기살인범이면 10포인트밖에 안줄리가 없는데."

그들은 같이 왔던 20대 청년을 돌아보며 불만스럽게 궁시렁거렸다.

얼마전 이 게리지역에서 연쇄총기살인사건이 발생했지만 지역 경찰은 이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어쩔수없이 경찰은 능력자 조합에 이 일을 의뢰했고 조합에선 4명의 사냥꾼을 파견해 그 킬러를 생포 혹은 사살하도록 지시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이 근처에서 총소리를 들었다.즉시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했고 이쪽을 힐끔거리다가 도망치는 흑인을 발견했다.바로 지금 죽인 이 녀석이었다.

"우리가 잘못 짚은거 아냐?"

"그럴리가 있나? 생긴게 딱 범죄형이잖아."

"하긴 10포인트라도 준걸보면 범죄자는 확실해."

그들이 한참 떠드는가운데 같이 왔던 청년이 하얀 천을 들고와 시체를 덮었다.

곧 세 명의 청년이 들 것을 갖고와 시체를 옮기기 시작했다.이 흑인은 거취가 불분명한 범죄자였다.이런 범죄자의 시체는 곧바로 화장터로 가는게 상례였지만 시체를 실은 차가 향한 곳은 시카고의 화장터쪽이 아니라 정반대쪽이었다.

"저거 말고 또 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건 공범이고 주범이 따로 있을거야."

그들은 그렇게 떠들면서 제각기 담배를 빼물었다.

여긴 어딜봐도 녹슨 폐공장과 잡초로 가득한 황무지뿐이었다.

이 도시의 중심가엔 인디애나대학교 노스웨스트 캠퍼스가 있고 그 주변은 그럭저럭 사람사는 곳 같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전부 이 꼴이었다.이곳은 살 떨릴만큼 적막한 유령도시였고 밤낮을 가리지않고 총기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지옥이었다.

얼마전 지역 경찰은 능력자 조합에 게리의 치안권을 이양했다.

민간인들의 집단인 능력자 조합이 한 도시의 치안을 유지한다는건 한국적인 관점에선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허나 지역별 빈부격차가 심각하고 몇몇 지역은 아예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미국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는 경찰서가 아예 문을 닫은지역까지 있었다.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할 공권력도 없다는 소리다.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선 시 재정이 파탄상태에 몰리면서 경찰들 월급이 수시로 밀렸고 이때문에 그나마 있던 경찰도 전부 빠지면서 경찰서가 한산해졌다.안그래도 범죄가 급증하는데 이를 막을 경찰력이 없었으니 도시가 점점 막장이되는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런 도시의 치안권은 점차 능력자 조합으로 옮겨지는 추세였다.

경찰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시의 재정파탄이었다.

하지만 능력자 조합은 딱히 월급을 받지않아도 범죄자를 소탕할 용의가 있었다.치안부재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정부에게 이들은 가장 멋진 대안으로 떠올랐다.미국정부는 이들을 공짜 경찰로 활용하는 대신 정당한 살인면허를 발급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사살해도 무방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묻지않는다.능력자들은 정부의 비호아래 마음껏 포인트를 모을수 있었고 이들이 처리한 범죄자의 시체는 미국정부가 운영하는 비밀공장으로 옮겨져 모종의 작업을 거치게 된다.

능력자 조합의 상층부와 미국정부사이에 대체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조합에 속해있는 하위능력자들는 그저 범죄자를 처치하고 얻는 포인트와 정부에서 지급하는 약간의 보상금에만 눈이 멀어있었다.

"깜둥이 새끼들이 한마리도 안보이는데."

"우리가 온걸 아는가보지."

킬러들이 산탄총을 둘러매고 주변을 누비기 시작했지만 거리는 쥐죽은듯 조용했다.

"뭐가 한마리쯤 더 나와야지 조합에 가서 할 말이 있을텐데.

아참, 아까 죽인 놈 사진찍어놨어?"

"네. 아까 시체를 뒤집을때 찍었죠."

"얼굴이 잘보이게 찍어야 해. 그래야 우리가 잡은줄 아니까."

킬러들이 범죄자를 처리하면 그 시체는 정부가 운영하는 공장으로 옮겨지며 범죄자를 처리한 킬러들은 그 공헌도에 따라서 약간의 보상을 받았다.

"근데 저것들 시체를 왜 회수하는거죠?"

"내가 알게 뭐야. 우린 그냥 죽이고 보상금이나 받으면 돼.

이 도시를 깨끗한 청정도시로 만들어버리자구! 우하하하하하하!"

그들이 한참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을라니 멀리서 승용차 한대가 다가왔다.그들은 차를 보자마자 공격태세를 취했지만 그게 곧 자신들의 목표물이 아니라는걸 알고 총을 거두었다.이곳의 갱들이 저렇게 좋은 차를 탈수있을리가 없었다.

새까만 벤츠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사냥꾼들 앞에 섰다.

그 안에 타고있는 네사람중에 셋은 까만 정장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였지만 하나는 이 살벌한 곳과는 전혀 안어울리는 외모를 가진 어여쁜 아가씨였다.

"샬럿 대장님께 경례!"

조수석에 타고있던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와 뒷좌석 문을 열자마자 이 험악한 사냥꾼들이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이름은 샬럿(Charlotte).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아버지 피에르는 공화당의 실세였고 외삼촌 쥴리엥은 미국굴지의 제약회사 대표였다.그리고 그녀는 미국의 여러 능력자 조합중 가장 크고 강력한 조직중 하나인 피닉스를 이끄는 리더였다.

샬럿은 하얀 원피스 차림에 리본까지 달린 예쁜 밀짚모자를 썼다.

얼핏보면 나들이 가는 사람처럼 복장이 화사했고 그 복장만큼이나 얼굴에도 귀티가 흐르는 여자였다.그런데 그 손에 든건 샌드위치가 든 귀여운 바구니가 아니라 시커먼 권총이었다.샬럿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사냥꾼들에게 다가갔다.

"수고들 많으세요. 오늘은 소득이 좀 있으신가요?"

"네. 방금전에 한마리를 처단했습니다."

"포인트는 얼마나 주던가요?"

"10포인트...."

그 사냥꾼은 말하고도 좀 민망했는지 슬쩍 시선을 피했고 선글라스를 쓴 사나이가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샬럿도 그 사냥꾼을 잠시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10포인트짜리라면 다른 도시에도 많아요."

"죄송합니다."

"우리가 게리까지 온건 다른 도시에는 없는 최악질 범죄자를 잡기위해서에요.여러분의 노고를 제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많이 벌어가는게 좋잖아요?"

"지당하십니다."

"그럼 오늘도 수고를 해주세요."

"예! 그럼.."

사냥꾼들은 왔던 길을 거슬러서 허겁지겁 뛰어가버렸다.

그들은 이미 멀리 사라졌지만 샬럿과 선글라스 사나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어느덧 하늘은 조금씩 꿀빛으로 물들어갔다.곧 까만 밤이 다가오고 이 도시의 폐허 어디엔가 숨어있던 범죄자들이 나와 선량한 사람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것이다.

"정말 쓸모없는 놈들입니다.

아무리 하급이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잖습니까? 스텟이 딸려서 능력자 전용무기도 못쓰는 놈들이라니..."

선글라스 사나이는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다.

"글쎄요. 저는 사냥할 실력만 있다면 밥값은 충분히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그렇지만 저런 놈들을 어느 세월에 키워서 루이지애나를..."

그는 투덜대다가 갑자기 말꼬리를 흐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샬럿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선글라스 사나이가 입을 다무는 것과 동시에 그녀도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걱정마세요. 굳이 저들이 아니라도 능력자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때 멀리서 담배를 피우던 다른 사나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건 그렇고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사회를 더럽히던 범죄자들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줄이야."

"그렇죠. 그 동양인 박사가 없었다면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겠지만."

샬럿은 멀리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황량한 들판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5년쯤전부터 갑자기 괴물들이 나타나서 여러 도시를 파괴하고 미국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었다.그 괴물들은 총같은 화약무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으니 세계최강 미군의 힘으로도 그놈들을 상대하는건 불가능했다.당시의 미국은 혼란 그 자체였다.존경받는 하원의원이라는 자가 완전히 이성을 잃고 의회에서 발광하기도 했다.그는 그놈들의 소굴이 된 뉴올리언스에 당장 핵 미사일을 쏴야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었다.

그러다가 능력자가 등장했고 그들이 괴물을 잡을수 있다는걸 알게됐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새롭게 나타난 괴물을 연구하고 그들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능력자들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그때 그 괴물들과 기존의 골칫거리였던 범죄자들을 비교분석한 학자가 있었다.바로 한국계 2세인 이영훈 박사였다.

이영훈 박사는 뇌 전문가였다.그는 범죄자들의 전두엽이 일반인과는 다르며 그 전두엽의 변이정도에 따라 경범죄자와 중범죄자로 나뉜다고 했다.그는 얼마전에 살인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막장 범죄자와 사이코패스의 경우엔 몸속에 특이한 물질을 생성한다는걸 발견했다.그리고 그 물질은 범죄자들뿐만이 아니라 괴물들의 몸속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괴물들의 뇌와 범죄자의 뇌는 닮은 부분이 많으며 몸 속에서 생성되는 물질의 양이 많을수록 흉폭하고 강해진다.

그리고 그 물질의 양과 그 괴물을 죽였을때 얻는 포인트는 비례한다.

"게리에 오래있지는 않을겁니다."

"네? 그치만 여긴 아직 정리해야할 범죄자가 많지 않습니까?"

사나이는 언뜻 이해가 안되는지 눈을 껌뻑였지만 샬럿은 또한번 피식 웃었다.

"미국의 범죄자는 미국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우리가 아니라도 누가 잡아도 잡을 겁니다.그 댓가로 많은 미국인이 일자리를 얻게 되겠죠.지금도 미국 전역에서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나고 있어요.그런데 그중에 쓸만한 사람은 정말 몇 안되죠.그들에게도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줘야해요."

"아가씨는 항상 생각이 앞서가시는군요."

"위험한 중범죄자들만 즉결처단하고 그외엔 전부 생포하도록 하세요.

물론 중범죄자가 아닌이상 아예 씨를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다른 팀도 여기서 일을 해야하니까요.파이가 작다면 저 혼자 먹겠지만 충분히 크다면 나눠먹는게 도리에요."

"지당하십니다."

"우리 미국엔 보다 많은 능력자가 필요해요.

정부의 재정을 확보하고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그러기위해선 한정된 미국안의 자원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얻는게 더 낫죠."

"혹시...조합의 능력자들을 외국으로 보낼 생각이신지?"

"바로 맞췄어요.

세상은 넓고 범죄자는 많아요.특히나 우리 미국에 우호적인 한국과 일본이 아주 적합한 시장이지요.그 두 나라는 미국의 말을 아주 잘들으니까요."

"한국과 일본의 범죄자를 대신 처리하고 그 댓가로 외화를 벌어들인단 말씀이군요."

"맞아요.

우리 정부가 정보를 통제한 덕분에 아직 그들은 거의 아무 것도 몰라요.

아직 아시아지역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지만 제 생각에는 이게 미국만의 문제는 아닌거 같아요.언젠간 거기서도 괴물이 나타날 것이고 많은 일자리가 나오겠죠."

"그럼 그쪽에서 능력자 조합을 구성할수 없게 방해해야겠군요."

한 사나이가 씨익 웃으며 두어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건 한번 생각해봐야겠군요. 좀 야비한거 같아서요."

그 말에 샬럿이 살짝 눈을 흘켰지만 사나이는 아랑곳없이 열변을 토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게 뭐가 있습니까?

괴물은 오직 우리 미국만 잡을수 있어야 해요.

우리 미국은 세계의 평화를 지켜주잖아요? 앞으로도 쭉 그럴거고요."

그 사나이가 흥분하던 말던 샬럿은 그저 조용히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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