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레커닝-15화 (1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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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다음날 아침.

각종 매체들은 지명수배중이던 연쇄강간살인범 윤영철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다뤘다.

윤영철은 그간 CCTV가 없는 수도권의 슬럼을 중심으로 무려 40여차례에 걸쳐 강도, 강간,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죄자였다.이 윤영철을 체포하기위해 수많은 경찰이 동원됐고 전국에 윤영철의 사진이 들어간 수배전단 수백만장이 뿌려졌다.

그런데 도피중에도 몇건의 강간살인을 저지르며 경찰을 비웃던 윤영철이 바로 오늘 새벽 한 골목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강간살인범 윤영철 변사체로 발견.

-부검결과 사인은 두부골절및 뇌손상. 사망시간은 어제 밤 11시에서 자정 무렵.

윤영철은 서울과 경기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빠트렸던 중대범죄자였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또 한번으로는 그가 왜 죽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윤영철의 사체를 인수한 경찰은 곧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고 부검결과는 지역 경찰서장의 입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주변의 CCTV영상을 토대로 당시의 행적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 윤영철은 신원불상의 20대 남성에게 둔기에 의한 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사망한걸로 확인됐습니다.두개골이 완전히 함몰된걸로 보아 사용된 둔기는 33.5cm 파이브렌치로 추정되며..."

근처 중국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용철은 TV를보며 코웃음을 쳤다.

"파이프렌치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마땅히 죽어야할 놈이 죽었으면 국민들에게 그 결과만 알려주면 되는거다.대체 그놈을 죽인 사람은 또 왜 찾는건가.경찰은 반드시 윤영철을 잡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근 한달이 넘도록 그놈을 찾지 못했다.윤영철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순식간에 닭 쫓던 개 꼴이 된 경찰이 이제 윤영철대신 그놈을 죽인 놈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정부는 아직도 능력자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미국에서 괴물들이 나타났고 그 괴물을 상대하기위해 능력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창설됐지만 한국정부는 그 부대의 실상을 모르고 있다.정부가 관심을 가지는건 미국의 새로운 부대가 아닌 미국에 나타난 괴물들뿐이었다.

미국이 어떻게 그 괴물들을 효율적으로 퇴치하는지 알아볼 생각도 없는거 같았다.

하긴 만약 그 존재를 알고 있다면 CCTV영상을 분석하는대신 능력자들을 제일먼저 소환했을지도 모른다.지금도 누가 윤영철을 죽였는지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개중엔 윤영철이 중국 삽합회의 일원이었으며 놈이 조직간 다툼으로 살해당했다고 개소리를 하는 놈도 있었다.

물론 실상은 포인트를 노린 능력자에 의한 척살.

용철은 어제 얻은 30포인트를 테이블위에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밀리아에게 총 400포인트를 빌리면서 능력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빚을 갚는건 이제 시간문제였다.도시 곳곳에 악당들이 많고 그놈들은 그 악행에 걸맞는 포인트를 갖고있다.놈들을 싹 죽여서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모으고 레벨업을 할 생각이었다.

밀리아의 말에 따르면 포인트란 사악한 생명체의 생명에너지에 기반을 둔다고 했다.말하자면 포인트란 사악한 놈들을 죽였을때 얻을수있는 현상금이었다.

대체 누가 포인트를 지급하는지는 아직까지 알길이 없었지만 윤영철을 죽이자마자 하늘에서 금화가 떨어지는걸 분명히 봤다.이런걸 보면 능력자란 말법시대에 이 세상을 구하기위해 신이 임명한 전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감은 어떠신가요?"

건너편 자리에서 소리없이 짬뽕을 먹던 밀리아가 그런 용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뭐요? 사람을 죽인거?"

"네. 범죄자라고 해도 일단은 사람이니까요."

"아무 느낌도 없던데요. 어차피 죽어야할 놈 아닙니까?"

"역시 파이터군요. 각성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변했어요."

"딱히 변한건 없어요.

뭐...이전같으면 그런 놈과 마주쳤을때 그냥 도망쳤겠죠.근데 만약 죽일수있다면 죽였을겁니다.그건 그저 제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에요.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렇군요. 역시 제 선택이 옳았어요.

능력자는 아무나 될수 있는게 아닙니다.아무리 강한 능력을 얻는다고 해도 전투에서 망설이게 되면 결국은 아무것도 못해요.그런 사람들은 힐러가 되는 것외엔 방법이 없죠."

그녀는 짬뽕 한그릇을 비우고도 좀 아쉬운지 젓가락으로 빈 그릇을 툭툭 두드렸다.

"근데 희한하네요."

"뭐가요?"

"처음엔 그렇게 오만상을 쓰시더니 지금은 잘 드시네요."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요. 일단 익숙하지가 않으니까요."

그녀는 입술을 살포시 닦고는 새침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용철은 그녀에게 물컵을 내주고는 버릇처럼 윗주머니를 뒤적거렸다.음식점 안에선 원칙적으로 담배를 피울수 없었지만 니코틴 부족을 감지한 몸이 자꾸만 신호를 보냈다.물론 지금은 곁에 여자가 있으니 밖에 나가도 피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가지만 더 물어보죠."

"네?"

막 물을 마시려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포인트라는게 일종의 현상금 개념이라는건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나쁜 놈을 죽인걸 어떻게 알고 포인트가 자동으로 날아오는거죠?"

"그건......"

그녀는 뭘 물어도 항상 즉각적으로 답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그녀는 좀 곤란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고 용철의 기다림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알고 싶어요?"

뭔가 좀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

대체 뭐가 그녀를 기분나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묻지말아야할걸 물은거같다.용철은 급히 손사레를 쳤다.저렇게 난감해하는데 굳이 물을 이유가 없었다.이건 그냥 그녀의 사생활정도로 여기고 신경쓰지 않는게 나을거 같았다.

"아닙니다. 답하기 곤란하다면 안하셔도됩니다."

"그래요. 일단 다 먹었으니 나가죠."

"네. 먼저 나가세요. 계산은 제가 할테니까."

"아뇨. 저도 돈 있어요."

분명 처음 만났을때는 세상사람들의 종이 돈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었다.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녀는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냈고 그 안엔 누런 오만원짜리가 가득했다.그녀는 용철이 보란듯이 성큼성큼 앞서가더니 계단대 앞에서 지갑을 열었다.

"왜? 이상해요?"

"아뇨. 이상한건 아닌데 계산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어서요."

"여자가 계산하면 안되나요? 제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지만 여긴 정말 이상한 나라에요.저는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장사란 엄밀히 말하면 서로주고 받는 행위에요.고객이 한번 밥을 사면 다음엔 장사꾼도 밥을 사야죠.안그래요? 용철씨."

"맞는 말입니다.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그렇게 봐주셨다면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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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끝내고 모텔쪽으로 걸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건가요?"

"네?"

"사냥에 성공했으니 이제 용철씨는 누가뭐래도 능력자에요.

앞으로 국내에 남아서 범죄자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있고 외국으로 나가서 더 큰 물에서 노는 방법도 있죠. 어떤 방법을 택하든 그건 용철씨 마음이지만요."

"여기 오래있지는 않을겁니다.

국내에 몇 안되는 능력자들이 전부 신분을 숨기고 점조직형태로 활동하고 있어요.아직 정부는 능력자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자칫 잘못하면 이상한 놈으로 몰릴지도 모르죠."

"그렇겠죠.

이 나라에선 '다르다'는걸 죄악으로 취급하니까요."

밀리아는 머리카락을 보란듯이 쓸어올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금발에 흑발이 약간 섞인 형태였다.일부러 부분염색을 한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완전 금발보다는 이쪽이 훨씬 보기좋았다.

"미국엔 능력자 특수부대가 있죠."

"네. 있죠. 그럼 혹시 미국으로 가실 생각인가요?"

"아뇨. 미국으로 갈지 어떨지는 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이건 점심 먹는거처럼 즉흥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못되서요."

사실 능력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같은걸 고려하면 미국행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이미 부대를 만들정도로 많은 능력자를 발견했다면 그안에서 성공하기는 힘들거라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모든 가능성을 다 배제하고 한국에 좀 더 오래남아서 악질 범죄자들을 전부 처단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금 가진 포인트는 윤영철에게 얻은걸 포함해서 310포인트.

잠시 상태창을 열어보던 용철은 그안에서 생전 처음보는 막대기같은걸 발견했다.

EXP 게이지 I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I (5%)

막대기는 작고 가느다란 유리관처럼 생겼는데 그안엔 파란 액체가 아주 약간 들어있었다.신기한건 유리관을 눕혀놨는데도 그 액체는 바닥에 고이지 않았다.그 액체는 유리관 왼쪽 구석에 몰려있었다.

"상태창에 처음보는 막대기 같은게 생겼는데요."

"그건 경험치 게이지에요. 그게 끝까지 차게되면 레벨업을 하죠."

"아...그런데 어제 낮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그건 용철씨가 처음 사냥을 하고 경험치를 얻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군요. 하긴 어제 윤영철을 죽였지."

얼마후에 레벨업을 하게될지 그걸 눈으로 확인할수있다는건 좋았지만 텅 빈 게이지를 보니 좀 민망했다.윤영철은 고작 5%의 경험치를 줬다.앞으로 저런 놈을 19명 더 죽여야 2레벨이 될수 있었다.

이미 사람을 죽였지만 죄책감따윈 없었다.

한국의 법은 너무 물렁물렁하다.법은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기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악질 범죄자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그럼에도 인권단체는 악질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하면서 사형제 폐지를 지지한다.물론 과거에 여러건의 사법살인이 있었다는건 인정하지만 누가봐도 죽여야 마땅할 악질범죄자에게까지 사법살인을 갖다대는건 확실히 무리가있다.가해자의 인권은 있지만 피해자의 인권은 없는게 지금의 한국이다.

능력자는 그런 악질범죄자와 괴물들을 법을 대신해서 심판하는 존재다.

미국의 능력자들은 벌써 법의 영향권밖에서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법을 대신해서 범죄자를 죽이고 포인트를 얻는다.물렁한 법때문에 악질범죄자가 버젓히 살아 돌아다니는걸 지켜봐야만 했던 시민들은 그들을 구세주로 환영하고 있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는 벌써 1965년에 사형이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능력자들에의한 범죄자 심판은 묵인하는 추세였다.

인권단체가 이들을 처벌하라고 난리를 쳤지만 주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했다.그리고 그건 단지 경찰의 힘으로 능력자들을 제어하기 힘들기때문만은 아니었다.미국정부는 이 능력자 집단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뭔가를 얻기위해 혈안이 되어있다.일반인에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범죄자들의 몸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건 이제껏 이 땅에 존재한적이 없었던 전혀 새롭고 막강한 힘을 지닌 물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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