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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커닝-11화 (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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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하아....이런 씨발."

용철은 한강변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대체 얼마동안 거기 쓰러져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2시간은 된거 같다.어떤 아저씨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겨우 눈을 떴을때 자신은 걸레조각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길가 한구석에 널부러져있었다.눈을 뜨자마자 본능적으로 그 흑인새끼들을 찾았지만 이미 그곳엔 흑인도 수아년도 없었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다.누구보다 믿었던 그년이 그토록 뻔뻔스러운 년인줄 몰랐다.하지만 한편으론 그 어떤 분노로도 짓밟을수 없을만큼 수아를 향한 마음이 강렬했다.그런데 상대는 하필이면 흑인....

그걸로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봐도 흑인만은 도저히 용납할수가 없었다.

수아가 원래부터 노는걸 좋아했기에 이럴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흑인이랑 붙어먹을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뭔가에 이끌린듯 달리고 또 달렸다.

가슴이 터질거같았고 분하고 억울해서 미칠거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한강변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어둠이 내린 강변은 너무도 조용했다.

강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그림자와 근처 가로등의 불빛이 수면위에서 간혹 일렁일뿐 강물은 유난히도 고요하게 흘러갔다.용철은 그 강물을 바라보며 근처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냅따 들이켰다.한병을 게눈감추듯 먹어치웠지만 갈증이 그치지 않았다.

"이 씨발년이....어떻게 내게 이럴수가 있어?"

이제껏 그년이 해달라고 하는건 다해줬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년이 보자고 하면 차를 몰고 나갔고 너무 바빠서 도저히 만날수없을때는 택배로 선물이라도 보내줬다.그런데 그년은 모든걸 희생한 자신을 이렇듯 헌신짝 버리듯 버렸다.그년이 붙어먹은게 차라리 근처의 흔한 사내놈이었다면 이렇게 열받지는 않았을 것이다.달려가서 발광하는대신 조용히 불러서 어떻게 된건지 물어봤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흑인과 붙어쳐먹고도 뻔뻔스럽게 거짓말 하는 그런 년은 필요없었다.

상대의 단점까지도 포용하는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했던가?

그게 어떤 미친 개막장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대사를 멋있다고 생각했다.여자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가도 끝내 해피엔딩을 맞이한 그 주인공처럼 자신도 그렇게 희생하다보면 언젠간 수아도 그 마음을 알아줄거라 생각했다.허나 그건 오직 그게 드라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뿐이다.

설령 그 드라마에 나왔던 부처같은 주인공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흑인과 붙어먹은 여자친구를 용서할수있었을까? 죄가 미운거지 사람이 미운건 아니라지만 그것도 어느정도였다.만약 그런 년을 용서한다면 그건 마음이 넓은게 아니라 그놈이 미친놈이었다.

애꿎은 맥주캔을 꾹 움켜쥐며 한참동안 분을 삭히고 있을라니 얼마전 범석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왜 그 말을 지금에서야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별 생각없이 흘려들었던 그 말이 지금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여자라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빈대같은 년들이 정말 많다.

나도 3년 사귄 여친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찼어.그년은 나를 돈으로 생각하더라고.내가 재수없게 그런 년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년한데 당한 놈이 주변에 제법 많더라고."

수아 년이 빈대라도 좋았고 쌀쌀맞아도 좋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야말로 정수아 그 썅년을 위해 준비된 호구중의 호구였다.

그제서야 알았다.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대한다고 해도 그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걸.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고 뒷구멍으로 그따위 흑인놈과 붙어먹은 그 개썅년을 절대로 용서할수 없었다.떨리는 손으로 스마트 폰을 꺼냈다.생각같으면 온갖 저주를 퍼붓고 싶었지만 왠지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는만큼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이런 잡년에게 인간 대우를 하는건 이미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대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ㅡ> 정수아. 너 어떻게 나한데 이럴수가 있어?

그럴거면 차라리 헤어지자고 하는게 깨끗하지 않냐? 너 그렇게 추잡한 애였냐?

<ㅡ 미친거 아냐? 연락하지 마. 스토커로 신고하는수가 있어?

ㅡ> 야. 이 미친년아. 내가 어떻게 스토커냐?

내가 네년이랑 주고받은 카톡이 증거다.넌 스토커한데 핸드백 사달라고 하니?

<ㅡ 네가 나 스토킹한거 사실이잖아.

ㅡ> 스토킹? 여친 만나러 가는게 스토킹이냐? 네가 전화를 안받아서 걱정되서 가봤다.

<ㅡ peach라는걸 어떻게 알았냐구?

ㅡ> 네가 나한데 peach에 있다고 문자 보냈잖아

그 년은 잠시동안 답장이 없었다.

문자를 실수로 보낸걸 눈치채고 답변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처음 흑인과 모텔에서 나오는걸 봤을때는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이년이 그렇게 멍청한 실수를 한걸 생각하니 갑자기 실소가 나왔다.만약 그 실수를 하지않았다면 자신은 지금 이순간에도 이년에게 뭔가를 뜯어먹히고 있었을지 모른다.

<ㅡ 하여간 난 몰라. 솔직히 말하면 오빠는 너무 지루하고 거지같아.

솔직히 내가 이런 말은 안하려고 했는데 남자가 몸이 그게 뭐야?

ㅡ> 뭐?

<ㅡ 남자가 그런 핸드백 하나 못사준다는게 말이 돼?

내가 친구들 만날때마다 오빠가 얼마나 쪽 팔렸는줄 알아?

오빠가 몰라서 그렇지 그 사람들 좋은 사람이야. 영어도 잘하고 얼마나 잘해주는데.근데 왜 거기까지 쫓아와서 욕을 하고 그래?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 상했는지 알아?

그 순간 참고 참았던 용철의 분노가 폭발했다.

ㅡ> 야 이 씨발년아. 뭐? 쪽팔려?

그래 나 능력없다. 한달에 200만원 겨우 번다.근데 한달에 쓰는 돈은 얼마인줄 아냐? 담배값도 아끼고 차비도 아끼면서 한달에 10만원 쓴다.나머지는 다 저축한다고! 내가 왜 그렇게 저축을 한줄 알아? 너 때문이었어.네가 좋아하는 핸드백도 사주고 네가 좋아하는 옷도 사주기 위해서였어.근데 네가 나한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ㅡ 왜 욕을 하고 지랄이야.

ㅡ> 깜둥이랑 붙어 쳐먹으니 좋냐? 그 새끼랑 잘해봐라. 이 개갈보같은 년아.

용철은 그와 동시에 스마트 폰을 강에 집어던져버렸다.

이제 이걸로 끝난거다.

그러고보니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년이 흑인과 붙어먹었다는걸 알았을땐 하늘이 노래지는거 같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차라리 다행이었다.만약 흑인이 아니었다면 어설프게 용서하고 또 한번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그러니 지저분한 미련이 남지않을만큼 철저하게 배신해줘서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폰을 던져버리고 나니 갑자기 밀리아와 능해취의 카페 매니저가 떠올랐다.

능력자가 되고도 망설였던건 한국에서의 생활을 버릴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을 제외하면 능력자라는 존재는 아직은 생소한 존재다.자칫 그런걸 대중 앞에서 밝혔다간 별종 취급을 당할지도 몰랐다.그래서 두려웠고 계속해서 망설였다.하지만 수아 년에게 배신을 당하고보니 비교적 흐릿하게 보이던 미래가 갑자기 눈앞에 생생하게 다가오는거 같았다.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년이 가르쳐준 셈이다.

능력자로서 보란듯이 성공한다.

더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도 없어졌다.

이제 남은 길은 단 하나뿐.

보란듯이 성공해서 저년을 처절하게 짓밟아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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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했다.

잠시 서울에 올라갔다온다는 놈이 저녁까지 소식이 없으니 집에서 걱정할게 뻔했기 때문이다.우선 집에 전화를 하자마자 스마트 폰을 잃어버렸다고 대충 둘러댔다.차마 정수아 그 개년이 한 짓을 가족들에게 알릴수는 없었다.

공중전화 부스를 나오자마자 한강변의 인적없는 곳으로 갔다.

해능취 카페의 정보에 의하면 비밀상인은 인적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던 부르기만 하면 나타난다고 했다.물론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이 대구인근이었고 이곳은 서울이었기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밀리아!"

그런데 그녀를 부르자마자 갈대숲속에서 밀리아의 가게가 보란듯이 나타났다.

처음 나타났던 지역과 거리상으로 너무 멀었기에 지금 부른건 어디까지나 그냥 실험삼아 한번 불러본 것에 불과했다.설마 그녀가 서울까지 올수있을줄은 몰랐는데 이제보니 서울이던 어디던 부르기만 하면 오는거 같았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뭐가 필요하신지?"

한참 진열대의 유리를 닦고 있던 밀리아는 마침 불러줘서 고맙다는듯 허리를 쭉 폈다.

"전사가 될게요. 전사용 비급서를 주세요."

"전사용 비급서라면 파이터가 되는 비급서군요.

저번에 한번 생각해보고 고른다고 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걱정했는데...

어? 그 얼굴은 왜 그래요? 무슨 일이라도..?"

"별거 아니에요."

용철은 소매로 얼굴을 슥 문질렀다.

너무 모질게 맞아서 그런지 아직도 온 몸이 쓰라렸지만 깡으로 버텼다.

"별게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지금 주세요. 오래 고민해봐야 남는게 없어요."

"그건 그렇지만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도 안좋아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남들보다 말랐다고 헬스클럽 못가는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남들 시선을 무시할수만 있다면..."

사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전사와 마법사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사를 택한건 바로 정수아 그년의 문자 메세지 때문이었다.그 쌍년은 몸이 안좋다고 무시하면서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았다.대학때야 운동을 할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 한가하게 운동할 여유가 어디있나? 하여간 그년이 몸 갖고 트집을 잡았으니 그 망할년이 보란듯이 강인한 전사형 능력자가 될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그년에게 똑똑히 가르쳐줄 것이다.

마침내 밀리아가 파이터의 비급서를 들고왔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곰팡내가 물씬 나는 낡은 책.

얼마나 낡았는지 책상을 넘기기도 힘겨웠고 거기 쓰여있는 이상한 문자들때문에 눈이 핑핑 도는거 같았다.

"읽으실 필요는 없어요."

"네?"

"각성하는 방법은 이 비급서에 적혀있는게 아니에요.

그 몸속에 잠들어 있는 힘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에요.

당신은 이미 이 비전서를 읽은 적이 있어요.단지 그걸 기억하지 못할뿐이죠."

"제가 이걸 읽은 적이 있다구요?"

"네. 단지 기억하지 못할뿐입니다.

이 비급서는 그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주는 역활...그것뿐이에요."

"그럼 각성은 어떻게 하는거죠?"

"잠시 이리로 와보세요."

용철은 그 비급서를 들고 밀리아가 이끄는대로 따라갔다.

가게 안쪽에는 제법 넓직한 공간이 있었는데 거긴 마치 옛날 대장간에 쓰던 모루처럼 커다란 쇳덩이가 하나가 생뚱맞게 놓여있었다.

"비급서를 거기 올리고 그 앞에 꿇어앉아 눈을 감으세요.

파이터는 격투술 전문가와 검술 전문가가 있어요.제가 용철씨에게 권해드리는건 격투술 전문가에요.검술 전문가는 검이 없으면 힘을 못쓴답니다.헌데 격투술은 손발이 잘리지 않는이상 언제든 싸울수 있어요.어느쪽이 좋은지는 말하나마나겠죠?"

"눈만 감으면 되나요?"

"네. 이제부터 말을 하시면 안됩니다."

용철은 비급서를 그 쇳덩이위에 올려놓고 그 앞에 단정하게 앉아 눈을 감았다.

대체 뭘 하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하지말라고 하는걸 보면 아마 지금부터 정신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거 같았다.용철은 모든 잡 생각을 떨쳐버리고 조용히 숨을 쉬는데만 집중했다.인간의 호흡이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숨을 쉴때마다 그걸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건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희한하게도 숨을 쉬는 자신의 모습이 머리속에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까진 단 한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이 눈앞에서 빠르게 교차하기 시작했다.누군가의 그림자가 허공에 발차기를 하고 손을 내지르는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빠른속도로 용철의 눈앞을 스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온 몸에서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물먹은 솜덩이처럼 무거워져있던 몸에 힘이 차올랐고 팔의 근육이 조금씩 팽창했다.근육이라곤 하나도 없이 매끈했던 팔에 굴곡이 생기기 시작했고 허벅지가 터질듯 부풀었다.

"헉?!"

"놀라지마세요. 잊었던 힘을 깨우친겁니다.

그게 당신의 원래 모습입니다.단지 잊고 있었을뿐...

전사 구용철. 당신은 이제 파이터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어요."

"내가....파이터?"

밀리아는 보란듯이 용철의 선글라스를 가리켰다.

"그대로 거울을 보시면 용철씨의 능력치가 보일거에요."

용철은 약간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거울 앞으로 다가가 두 눈을 크게떴다.이제 이전의 구용철은 사라지고 능력자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름:구용철

클래스:파이터(lv1)

능력치:

A스텟-물리공격력(5+0) 물리방어력(0+0) 체력(50+0)

B스텟-회피(0+0) 공격속도(1+0) 이동속도(3+0) 크리티컬율(10+0)

C스텟-마법공격력(1+0) 마법방어력(1+0) 마법속도(1+0) 마나량(10+0)

스킬:

물리공격/하급:파워 스트라이크(lv1) 위력:10

마법공격/하급:매직 에로우(lv1) 위력:5

전에도 이 마법안경을 낀채 거울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런게 보인 적은 없었다.그런데 능력자로 각성하자마자 즉시 이런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물론 갓 각성한 용철은 상태창을 어떻게 보는지도 몰랐고 지금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다.

"물리 공격력? 주먹의 파워를 말하는건가요?"

"네...말하자면 그렇죠. 당신은 전사니까요."

"그런데 5+0이라고 되어있는건 대체 뭔가요?"

"그건 물리공격력이 기본공격력과 아이템공격력의 합산으로 결정되기 때문이에요."

"기본 공격력과 아이템공격력?"

"네."

밀리아는 진열대쪽으로 가더니 마치 운동화 케이스같은 조그만 상자를 갖고왔다.

용철이 그 안을 들여다보니 까만 장갑 하나가 들어있었다.

"이건 1의 공격력을 가진 격투장갑이에요.

용철씨가 이걸 낀다면 기본 공격력 5에다가 1의 공격력이 합산되어 종합 공격력이 6이되죠.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나요?"

"네. 이해했습니다. 그럼 방어력쪽에 있는건 혹시 옷같은걸 좋은걸 입으면?"

"네. 맞아요. 좋은 방어구를 착용하면 기본방어력에 합산되지요."

"오오.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밀리아는 용철이 제대로 이해를 해서 다행이라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장사꾼이었다.물건도 안사면서 계속 묻기만하는 손님을 좋아할 장사꾼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때문에 그런걸 물어보면서도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는걸보니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됐다.그녀는 딱히 묻는걸 귀찮아하지도 않았고 단지 이쪽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것 같았다.

용철은 기왕 그녀를 귀찮게 한 김에 모르는걸 다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기본공격력이 5라는건 어느정도되는건가요?"

"마이크 타이슨이라고 있죠? 그 사람 주먹이 5정도 될거에요."

"네?"

"진짜에요. 능력자와 일반인의 차이는 엄청나니까요.

구용철씨는 파이터 1레벨이에요.능력자로서는 아직 햇병아리죠.그런데도 그정도에요.이제 능력자가 어떻게 괴물을 잡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그렇네요."

갑자기 가슴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마이크 타이슨의 주먹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주먹이다.그런데 갓 각성한 자신의 주먹이 그 타이슨과 동급이 됐다.자신의 강함이 선뜻 와닿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마치 세상을 다 가진거 같이 기뻤고 뭐든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스텟에 대한 질문이 끝났으니 이번에는 스킬에 대해서 물어볼 차례였다.

"파워스트라이크는 뭐고 매직애로우는 뭐죠?"

"그건 용철씨가 갖고있는 기술 이름이에요.

파워 스트라이크는 파이터의 기본 기술이고 매직 에로우는 마법사들의 기술이에요."

"마법사들의 기술...?"

"네. 원칙적으로 파이터는 마법을 배울수 없지만 간혹 마법의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지요.각성과 동시에 기본 기술은 자동적으로 익힐수있지만 그외의 기술은 '비결'을 사서 익혀야 해요.그런데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비결을 사도 마법을 배울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제가 앞으로도 쭉 마법을 배울수있다는건가요?"

"어디까지 배울수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배울수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그렇군요."

"일단 스킬을 한번 써보세요."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일단 따라오세요."

밀리아는 가게 뒷편으로 용철을 데리고 갔다.

처음으로 구경하는 가게 뒷뜰은 깨끗하고 밝은 가게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된 이미지였다.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녹슨 기물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그런데 녹슨 기물과 쓰레기때문에 너저분해보였지만 이곳이 아무 의미가 없는 장소같지는 않았다.건물 벽에 걸려있는 낡은 샌드백이 이상하게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샌드백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힘껏 때려보세요."

"네."

그 샌드백이 정수아라고 생각하고 쳤다.

사실 그 커다란 샌드백을 처음 봤을땐 저렇게 묵직한걸 잘못 쳤다가 손목이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막상 쳐보니 그 커다란 샌드백이 마치 가벼운 풍선처럼 허공을 춤추다가 눈앞에서 산산조각 났다.조각조각난 샌드백의 파편과 그안에 들어있던 모래가 사방으로 날아올랐지만 용철의 팔은 마치 강철처럼 여전히 굳건했다.

"지금 뭘 느끼셨나요?"

"팔에서 뭔가가 솟아나서 분출되는 느낌?"

"그게 바로 파워 스트라이크에요. 보통의 펀치보다 훨씬 강하죠."

"그렇군요."

말 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자신이 이런 힘을 갖게될줄은 꿈에도 몰랐고 아직도 실감이 안났다.

하지만 그게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이제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수있는 계기가 생겼고 그 인생을 이끌어갈 힘도 생겼다.

이제 남은건 새롭게 개척된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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