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뭔가 좀 이상한데 (185/223)

뭔가 좀 이상한데

민우는 라찬밴드 때도 숨겨왔던 실력을 이번 기회에 모조리 공개했다.

록스타를 방불케 하는 퍼포먼스와 연주 실력을 가감 없이 뽐낸 것이다.

토끼 탈을 쓴 남자의 현란한 연주는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아 버렸다.

대한민국에서 내놓으라는 기타리스트들과 견주어봐도 모자랄 것 같지 않았다.

만약 기타 연주만 했다면 그들이라고 의심을 해봤을 터다. 그런데 노래까지 부른다. 그것도 수준급으로.

이런 뮤지션이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훌륭한 공연에 강민아는 입을 헤 벌리고 감탄을 토해냈다.

“와···.”

전문가의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반인이 보기에 토끼 탈의 연주는 압권이었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강민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뭐가?”

“아니. 왠지 낯이 익은 느낌이라서.”

민우는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그러나 오리발을 내밀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의 컨셉이 인형 탈의 정체를 맞추는 거였으니까.

지금은 그냥 버스킹 중인 것만 화면에 나오고 있는데 왜 인형 탈을 썼는지, 그리고 버스킹의 목적 같은 것들을 설명해줄 것이다.

강민아의 관심을 딴 데로 돌려야 했다.

“연예인한테 관심이 많나 보네.”

“무슨. TV 볼 시간도 없어. 오빠 유티비 채널도 관리해야 하지, 재단 일도 거들어야 하지. 요즘 친구들 만나면 대화가 안 통한다니까.”

과일을 깎아 온 김라희가 옆에 앉았다.

“내가 봐도 저 사람은 낯이 익어. 마치 네 오빠처럼.”

애써 관심을 돌렸는데 어머니가 원래대로 돌려버렸다.

민우는 입맛을 다시며 사과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김라희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강민아가 손뼉을 짝, 쳤다.

“어? 그러고 보니까 오빠랑 아주 비슷한데? 덩치도 그렇고.”

“인형 탈을 썼는데 뭘 보고 키가 비슷하다고 그러는 거야.”

“어깨높이가 비슷하잖아. 이럴 게 아니지. 오빠 TV 옆에 한 번 서봐.”

“야야. 나 쉬러 온 거야. 귀찮아.”

이건 예상을 못 했다. 얼굴만 가리면 될 줄 알았는데.

평생을 함께 지낸 가족들의 눈썰미를 너무 얕봤다.

첫 공연이 끝나고 예능에 관한 설명이 나왔다.

“그래서 오빠가 극구 거절했구나.”

“뭘?”

“TV 옆에 서보라는 거. 그러면 한방에 탄로 날 것 같아서. 맞지?”

“아니다.”

“이상하잖아. 공연하는 곳이 LA인 것도 그렇고.”

“나 영화 촬영하느라 바빴다.”

“그건 또 그렇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강민아가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영화 촬영 주말에는 쉰다면서.”

“그랬긴 하지.”

“토끼 탈 주말에만 공연했다는데?”

“누가 그래?”

“휴대폰이.”

그새 검색을 해봤나 보다.

“나한테만 살짝 말해줘 봐. 토끼 탈. 오빠 맞지?”

“······.”

무언은 긍정이나 마찬가지다. 설핏 웃은 강민아가 TV로 눈길을 돌렸다.

“토끼 탈의 정체가 중간에 밝혀지면 난감한 상황인 거야?”

“많이 곤란하겠지. 출연료를 받을 수 없게 될 테니까.”

“예능 찍으면 많이 벌어?”

“연예인마다 다르지.”

“오빠는?”

“나야 꽤 받는 편이지. 아마 예능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야.”

최소 회당 1억은 받는다. 이번 예능은 유례없이 회당 20억이었고.

“그렇구나. 요즘 태블릿 PC가 새로 나왔다던데.”

“······.”

사달라는 소리다.

이미 재단 일을 하면서 꽤 많은 월급을 받고 있다. 돈이 없어서 사달라는 게 아니라 입막음을 해달라는 뜻이다.

강민아가 정체를 까발릴 일도 없지만 그냥 장단을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민우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신상 태블릿 PC를 검색해서는 결제까지 끝냈다.

결제 완료 문자를 보여주자 강민아가 히죽 웃었다.

“고마워 잘 쓸게.”

민우는 말없이 입가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해 보였다.

“물론이죠, 오라버니.”

방송은 재미있었다.

버스킹에 관심이 없던 김라희마저도 시선을 떼지 못했으니까. 아들이 출연했으니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황영수의 편집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강렬한 공연으로 선제공격을 하고, 이후 지루할지 모르는 설명을 넣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공연들. 관객의 환호.

첫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후반부로 이어지자 방송은 조금 밋밋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때. 방송을 살릴 구세주가 등장했다.

-저 누군디 아시됴?

-누구신데요?

순간 강민아가 펄쩍 뛰었다.

“어? 저 장면 얼마 전에 화제였는데.”

민우는 미국에 있었기에 한국의 사정을 모른다. 강민아가 설명해주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방송에서는 건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얼마나 꼼꼼하게 블러 처리를 했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다.

혹시 모른다. 건도 민우처럼 가족들은 알아볼지도.

건은 실물과 달리 화면빨은 잘 받았다.

춤선도 나쁘지 않고, 노래도 잘 부른다.

“어? 잘하는데?”

연예계에 관심이 덜한 강민아도 그룹 이름은 들어봤던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TV에 집중했다.

“이 정도는 해야 인기가 있구나.”

확실히 잘했다. 자신의 곡이니까 오죽할까.

그런데 뒤이어 공연한 토끼 탈은 더 잘했다.

“아니. 아이돌 춤까지 춘다고?”

화들짝 놀란 강민아가 민우를 바라봤다.

“나 아니라니까. 왜 나를 봐?”

“아참. 그러기로 했지.”

“그러기로 한 게 아니라 그런 거라고. 너 진짜 실수하면 환불 해버린다.”

“소녀를 믿으시지요, 오라버니.”

관객의 환호를 받으면서 그렇게 방송이 끝났다.

“와. 이거 시청률 잘 나올 거 같은데?”

“재밌어?”

“버스킹이 이런 재미로 하는 거구나. 관객들 호응이 장난 아니네. 진짜 가수가 된 기분이 들겠어.”

강민아가 호평을 늘어놓았다. 이러한 반응은 시청자라고 다를 바 없었다.

원래 방송의 컨셉은 토끼 탈의 정체를 밝히는 거였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마스크남 정체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누군가의 글이 시작이었다.

흔한 어그로가 아니라 정말 정성 들여 쓴 티가 나는 글이었다.

‘여행자’에서 나온 장면과 가요프로그램의 장면을 캡처한 것과 댄스 동작을 움짤로 만들어 비교해두었다.

얼굴을 공개한 것은 누군지 말은 안 했지만, 한눈에 봐도 DCK의 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 아래로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일단 정성추.

└내가 볼 때는 DCK 건 같은데.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눈 달린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가수가 아마추어한테 털린 거야? 와, 무지 쪽팔리겠다.

└토끼 탈이 아마추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공연 수준을 봐서는 관계자가 분명한데.

└댁이 뭔데 수준을 논함?

└그래서 별로였음?

└아니. 훌륭했음.

└다 됐고. 한 놈은 정체가 밝혀졌으니 이제 나머지도 알아내야지?

└경력 12년의 현직 작곡가입니다. 노래마다 창법을 달리해서 도대체 누구인지 감을 잡기 힘듭니다.

└경력 12년의 방구석 백수입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아는 사실이다. 너랑 나랑 차이가 뭐냐?

└월급.

└너는 진짜 나빴다. 나쁜 놈아!

└진짜 누군지 궁금하다. 기타에 노래에 댄스까지. 이런 사기캐릭이 존재하다니.

└강민우가 그런 사기캐잖아. 못하는 게 없는 만능.

└강민우 미국에 있는데 어떻게 한국에서 예능을 찍음?

└이 예능도 미국에서 촬영한 건데?

└같은 미국이라도 영화 찍는 사람이 예능도 촬영했다고? 영화가 그냥 설렁설렁 찍으면 되는 건 줄 아나. 얼마나 힘든데.

└근데 이거 정규편성 언제 되는 거임?

└안될 수도 있지 않을까? 파일럿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 올려야겠다. 여행자 정규편성 하게 해달라고.

└정신 나간 사람이네. 거기가 네 일기장이냐? 방송국 게시판에 글이나 써!

└나도 간다.

└나도!

시청률도 높게 나왔다. 본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인터넷 사이트에 후기들도 범람했다.

정식 프로그램으로 방송해달라는 청원 글도 방송국 후기 게시판에 넘쳐났다.

민우는 PPL로 받았던 제품들을 대부분 사용해줬다. 돈값을 확실하게 해준 덕분에 매출도 쭉쭉 올랐다.

모두가 윈윈인 상황이었지만, 단 한 명은 아니었다.

“이거 너 맞냐?”

장희가 놀리듯 묻는 말에 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도 변조를 해줬다.

대결 부분만 대여섯 번은 족히 돌려봤지만 절대 자신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의심은 하되 확신은 하지 못하는 상황. 그저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된다.

건은 한 달 전에 받은 연락을 떠올렸다.

자신을 황영수라고 밝힌 사람은 LA에서 노래를 부른 적 있는지를 물었다.

건은 극구 부인했다.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맞다고 하겠는가.

녹음 중이니까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했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방송의 여파가 얼마나 강한지 밖을 나서면 모두가 자신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런 시선을 즐기던 건이었지만, 그 시선에 비웃음이 깔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겠지.”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이슈는 이슈로 덮어진다.

어차피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잠깐 반짝하고 사라질 거로 생각했다.

아픈 기억도 희미해지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과연 시간이 지나자 그의 생각대로 됐다.

그를 볼 때마다 맞냐고 묻던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 인터넷에도 다른 재밋거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는 다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자’가 정규편성이 된다고 한다.

“그때 도망치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꿈에도 몰랐다.

차라리 남아서 편집을 요구했어야 했다.

만약 방송에 나가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이라도 놨어야 했다.

이제는 늦었다.

프로그램의 PD에게 자신이 아니라고 확답까지 해줬으니까.

불안한 예감은 어째서 빗나가지 않는지.

‘마스크남’이 못질까지 끝낸 관뚜껑을 열고 뛰쳐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건은 황영수를 찾아갔다.

* * *

민우는 방송국 회의실에서 황영수를 만났다.

“여기에 와도 괜찮은 건가요?”

민우의 물음에 황영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히려 다행이죠. 다음 섭외로 강민우 씨를 섭외하는 게 아닐까 의심할 테니까.”

들어보니 그건 또 맞는 말 같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도 있고요.”

이미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민우가 맞다, 아니다로 의견이 팽팽한 상황이라고 한다.

“다른 미끼가 필요해요. 그래서 몇몇 연예인을 회의실에서 만날 예정입니다.”

“단순히 미끼로 사용됐다는 걸 알면 불쾌할 텐데요.”

“어차피 출연이 번복되는 예는 얼마든지 있죠. 그리고 스케줄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출연 계약을 하면 되고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우리가 불리할 일은 없어요.”

맞는 말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는 스타가 왕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시청률 대박이 난 프로그램에서는 PD가 왕이 된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군요. 이미 편집을 다 끝내서 5주 분량을 만들어뒀습니다.”

민우가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끔벅거렸다.

“촬영이 끝났다고요?”

“네. 워낙 분량이 많아서 쳐내도 남더라고요. 적당히 편집했더니 5회 분량이 나왔어요.”

그러면서 이르기를. 정체가 밝혀지지만 않으면 파일럿 프로그램의 출연료 2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100억 원을 받게 된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찍으면서 예능 촬영도 하느라 고생하기는 했지만,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것 같아 내심 불편했다.

“추가촬영은 안 해도 될까요?”

“굳이 안 해도 됩니다.”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줄 MC가 알아서 함정을 깔아 줄 테니까.

관찰 예능처럼 출연하게 될 패널들이 MC에게 휘말려 우왕좌왕하면 정체는 쉽게 밝혀지지 않을 거다.

앞으로의 방송 방향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공영희가 당황한 얼굴로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저기, 선배. 건 씨가 찾아오셨는데요.”

“누구?”

“DCK의 건 씨요.”

황영수가 당황한 얼굴로 민우를 바라봤다.

민우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왜 이곳을 찾아왔을까.

이미 황영수에게 듣기로 ‘마스크남’이 자신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고 하지 않았나.

“자리 피해드릴까요?”

민우의 물음에 황영수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건이 들이닥쳤다.

민우를 발견한 건이 움찔했다.

자신이 아무리 인기 아이돌이라고 하지만 민우는 급이 다르다.

냉정해진 황영수가 물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다고요?”

황영수의 물음에 건은 민우의 눈치를 살폈다.

“자리 피해드릴까요?”

“아뇨. 그리 긴 이야기는 아닐 듯해 보이네요. 그쵸, 건 씨?”

한마디로 짧게 용건만 말하라는 사인이다.

한숨을 내쉰 건이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여행자가 정규 편성됐다고 들었어요.”

“축하 인사라면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방송을 시작할 때 그 마스크남이 제가 아니라고 언급해주셨으면 해요.”

황영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허락도 없이 방송에 나갔으니까요.”

“마스크남이 건 씨도 아니라면서요.”

“제···. 제 지인입니다.”

궁색한 변명에 황영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본인 오라고 하세요.”

눈을 굴리며 생각하던 건이 말했다.

“만약 언급하지 않으면 고소한다고 전해달랬어요. 미국이 고소의 나라인 건 아시죠?”

코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황영수가 차갑게 말했다.

“마음대로 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래봤자 유리한 것은 황영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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