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사람들
사실 이 일을 꾸민 것은 김민호다.
정보제공자는 촬영장의 사람 모두였고.
보조출연자, 단역배우, 스태프.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동영상을 찍었다.
촬영된 동영상의 종착지는 김민호였고.
PD의 특기를 살려 기가 막히게 편집한 동영상은 친척의 친구들 이름을 빌려 하루에 한 편씩 유티비에 업로드 했다.
“어차피 조진 몸. 끝장을 보자.”
이를 갈며 했던 말대로 멈추지 않고 공세를 이어갔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굴러다닌다. 이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과거에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노점상이 주를 이뤘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유티비와 SNS의 등장으로 온라인도 돈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티비 채널 운영자는 콘텐츠에 목말라한다.
어떻게든 조회 수를 올리려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데, 양신옥의 갑질 사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 떡밥에 모두가 열광했다. 특히 렉카충이라 불리는 사이버 렉카 부대들은 더 극성이었다.
단어 뜻 그대로 렉카처럼 사건·사고가 터지면 풀악셀을 밟고 나타난다. 그런 그들이 이런 건수를 놓칠 리가.
김성규도 유티비에서 렉카 채널을 운영 중이다.
“양신옥?”
이번에 논란거리가 된 연예인의 이름을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한때 그는 양신옥의 매니저였다. 3개월 만에 잘렸지만, 당시 그녀의 매니저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거 제대로 조회 수 빨 수 있겠는데? 우선 제목부터 지어야지.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충격! 과거 양신옥 매니저의 증언 단독 입수! 양신옥은 과거에 더 심했다’로 정했다.
“사실 단독 입수 맞잖아? 내가 증언했으니까.”
입술을 핥으며 손바닥을 비빈 김성규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양신옥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다.
과거를 떠올리니 속에서 울화가 치솟았다.
“참자. 이번 달 수입을 책임질 콘텐츠니까.”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은 모두 동영상과 자막을 빙자한 텍스트로 바뀔 것이다.
그러고는 양신옥을 물어뜯기 위해 유티비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다.
급하게 제작하느라 퀄리티는 형편없었지만, 어차피 AI가 읽어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댓글로 욕을 싸지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무리 멘탈이 단단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온라인의 공세를 버티는 것은 힘들다.
하물며 두부 멘탈에 가까운 양신옥은 더더욱.
그녀는 데뷔 이후 대중에게 손가락질당한 적은 거의 없었다. 욕을 먹는 배역조차 맡아본 적이 없다.
언제나 청순가련한 역할을 맡아 국민 며느릿감이라 불렸고.
사실 그녀가 은퇴했던 것도 천기철과의 스캔들 때문이었다.
기자의 입을 막는 조건으로 거액을 주었고, 당분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20년이 지난 거다.
좋은 시절은 다 갔지만 화려하게 복귀해서 말년을 보내려고 했건만.
천기철과 자동차에 나란히 앉아있던 양신옥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오빠, 어떻게 해주면 안 돼?”
천기철이 얼음장 같은 얼굴로 양신옥을 바라봤다.
“어떻게?”
“기자들 사서 기사 다 내리고 반박 기사도 내고.”
20년 전에나 통했던 일 처리 방법을 지금도 써먹으려고 한다.
멍청해서 다루기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일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자 정이 확 떨어졌다.
“그래. 기사는 그렇게 처리했다고 치자. 인터넷은?”
“그놈들 싹 다 고소하면 안 돼? 허위사실유포로.”
그저 한숨만 나온다.
양신옥은 쉰에 가까운 나이에도 30대로 보일 정도로 관리를 잘했다.
외모 꾸밀 시간에 세상이 얼마나 변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했다면 이처럼 병신같은 소리는 하지 않을 텐데.
“지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말해줄게. 잘 듣고 토 달지 말고 그대로 해.”
“알겠어. 그 방법이 뭔데?”
“일단 드라마에서 하차해라.”
“안돼! 복귀작을 망치면 이대로 내 커리어는 끝난다는 거 몰라?”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겪으니 그 말이 사실인 거 같다.
웃음을 터트리는 천기철을 보며 양신옥은 바짝 얼어붙었다.
“왜 그래? 무섭게···.”
“옥아.”
“응?”
“내가 토 달지 말라고 했지? 네 커리어 끝장나는 게 인생 끝장나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오, 오빠···.”
“지금 나한테는 너 따위보다 드라마가 더 중요해. 만약 드라마가 이대로 망하면 네 커리어 따위는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거야.”
양신옥의 귓가에 고개를 들이민 천기철이 나직하게 한마디를 남겼다.
“네 인생도 망할 테니까.”
소름 끼치도록 섬뜩한 목소리에 양신옥은 식겁한 얼굴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안다. 천기철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득에 반하는 일이 생기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렇게 할게.”
“그리고 더 있다. 반성문도 쓰고 자숙하겠다고 해.”
“···알았어.”
양신옥이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방송국의 빠른 행보에 시청자는 손뼉을 쳤으나, 문제는 편집이다.
이미 촬영한 부분을 덜어내고 추가 촬영을 해야 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대본도 수정해야 하고.
양신옥이 박박 우겨서 비중을 높여놨는데 그걸 모두 없던 일로 만들면 서사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갑자기 사라진 양신옥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머리를 싸매던 현수영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쪽대본이 낙원의 도시 촬영장으로 날아갔다.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촬영장에는 활기가 돌았다.
쪽대본을 촬영함에도 촬영장에서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는 처음인 것 같다.
김민호 대신 들어온 황 PD가 신나는 목소리로 외쳤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잊지 마세요!”
배우들도 안색이 밝다.
단 한 명이 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좋아지다니 놀라울 따름.
“암이 나은 기분이네요.”
“특히 이번 씬은 더 그렇고요. 현 작가님도 속에 쌓였던 게 많았나 봐요.”
-치익, 준비 끝났습니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황 PD가 씩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이제 죽여봅시다. 스탠바이!”
죽이자는 말에 이렇게 상쾌해지다니.
부앙, 부앙.
거친 엔진음이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촬영장을 살펴보다 준비를 마친 황 PD가 외쳤다.
“액션!”
부우우웅! 쾅!
쏜살같이 달려온 자동차가 양신옥의 대역배우를 들이받았다.
대역은 차량의 보닛을 타고 구르더니 앞 유리와 부딪힌 후 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119에 신고를 하는 것으로 짧은 씬이 끝났다.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이대로 양신옥은 병원에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입원하게 된다.
말이 입원이지 더는 드라마에서 등장하지 않게 되는 거다.
급하게 터진 사건을 수습하기는 했으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시청률이 그러하다.
16%에 이르던 시청률이 곤두박질치더니 단번에 절반이 빠진 8%에 이르렀다.
시청률 표를 받아 든 천기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띠리링.
책상 위의 전화기가 불길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한동안 기다려도 끊어지지 않는다.
주저하던 천기철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천기철입니다.”
-나다.
묵직한 목소리에 천기철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목줄을 쥘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아버지다.
-일이 잘 안 풀린 것 같던데.
“아직 남았습니다.”
-그래? KC 스튜디오의 주가는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그렇다. 천기철이나 그의 아버지나 드라마의 시청률 따위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오직 주가만이 관심사다.
KC 스튜디오의 주가는 DBS 방송국의 자회사로 있던 때보다 절반가량 떨어졌다.
수백억이 한순간에 날아간 셈이다.
“원래 엔터 쪽 주가가 등락 폭이 큰 편입니다.”
-나도 알지. 그런데 네가 했던 장담이 아직도 내 귓가에 선명하구나. 긴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아버지! 아직 드라마가 종영하려면 남았습니다!”
-긴말 할 필요는 없겠지. 내일 기주가 방송국으로 갈 거다.
“아버지!”
-인수인계 잘하도록 해라.
뚜뚜뚜-.
수화기를 든 채 넋이 빠져있던 천기철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으아아!”
버럭 고함을 지른 그는 사무실 내의 집기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아무리 화풀이를 해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방송국에서 그의 의자는 사라지게 된다는 상황이.
* * *
드라마는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양신옥 때문에 무너졌던 시청률은 반등하지 못하고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구멍이 뚫린 스토리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게다가 한번 떠난 시청자의 발길을 돌린다는 게 워낙 힘든 것도 있고.
경쟁작이었던 마천루는 매회 시청률이 오르는 기염을 토하더니 결국 30%에 이르렀다.
이제 18회가 방영되었고, 남은 회차는 6회.
지금 추세대로라면 40%를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할 만했다.
이에 고무된 고민훈 대표는 특별히 보너스를 지급했다.
무려 30%다. 지상파도 아니고 종편에 가까운 방송국에서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으니.
이대로 40%를 기록한다면 TVB 방송국의 최초이자 깰 수 없는 기록이 될 가능성이 컸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폭발한 덕분에 마천루 앞뒤의 광고는 매주 완판됐다.
방송국이 광고 판매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을 때, CHA 스튜디오의 주가는 껑충 뛰어올라 10만 원을 돌파했다.
방송이 끝나면 엔플릭스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이에 관한 수입도 엄청날 거다.
한국에서 인기 있었다고 외국에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해적방송으로 마천루를 본 중국인만 1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마천루에 출연하기 전 주연에도 이르지 못했던 배우들인데 자고 일어났더니 한류 스타급 인지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배우들의 주가도 상승했지만, 작가와 감독은 쏟아지는 연락에 휴대폰을 꺼놓고 다녀야 했다.
특히 배유진의 어머니가 유명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작사와 방송국은 백지수표를 들고 그녀를 찾아다닌다나.
마천루와 관련해서 좋은 소식이 들린다면 반대도 있는 법.
“그러니까 감범석이 윤철 배역을 제안했는데 거절했다?”
윤현규의 소속사 사장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매니저를 보고는 혀를 찼다.
“그렇게 안목이 없어서 어떻게 매니저를 한다고 그러나? 안목이 문제가 아니지. 감범석이 속이 얼마나 좁은데. 이제 그자가 차기작을 만들면 우리 현규는 대본 구경도 못 해.”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래 다 이해해. 가끔 사람이 실수할 때도 있지.”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매니저가 테이블에 코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자 사장은 코웃음을 쳤다.
“용서라니? 내 사람은 실수를 해서는 안 돼. 내가 원하는 인재상이 완벽한 직원이거든. 현규한테서 손을 떼고 도윤이나 맡아.”
좌천되는 건 윤현규의 매니저만이 아니다.
다른 소속사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빈번했다.
이미 감범석에게서 배역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던 매니저들은 모조리 같은 수순을 밟았다.
배우에게 제일 좋은 매니저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 좋은 작품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최고의 매니저다.
사방이 마천루와 관련해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마천루의 촬영장도 몸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촬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촬영장소를 비밀로 해도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궁금할 지경.
촬영장소를 찾아내거나 장소 섭외를 맡은 로케이션 매니저만 죽어나고 있다.
이들만 피로에 찌든 게 아니다.
보통 16부작이 끝나도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스태프들인데 이번에는 무려 24부작이다.
촬영장의 사람들은 틈만 나면 앉아서 졸기 바빴다.
“이러다 사고 터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촬영장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민우는 감범석을 찾아갔다.
“감독님. 촬영장에 피로도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저도 걱정입니다. 이러다 사고 터지면 큰일인데.”
“특별 방송을 내보내고 1주일은 휴식을 하죠. 이러다 누구 하나 죽을지도 몰라요.”
감범석도 그랬으면 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었다.
한참 물이 들어오고 있다. 격하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잠시 쉬자니.
민우가 씩 웃었다.
“상황을 간단하게 만들어드릴게요. 저 1주일 정도 다칠 예정입니다.”
“예정요?”
“네. 1주일 후에 나을 것 같으니까 촬영장 분위기 잘 수습해 주세요.”
감범석은 히죽 웃는 민우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