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편집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늘 게스트는 기대하셔도 될 것 같아요. 만능 엔터테이너하면 떠오르는 배우입니다. 최근 천만배우에도 이름을 올렸죠? 대체불가 슈퍼스타 강민우 씨와 같은 영화에 출연해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남유태 씨를 모셔보겠습니다.”
스태프의 사인에 민우는 스튜디오로 걸어나갔다.
방청객이 없는 토크쇼라서 환호나 박수는 없다. 그러나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라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남유태도 민우와 비슷한 생각이었던지 대기실에서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진 눈치.
미리 MC 두 명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용수와 아나운서 중에서도 미녀로 꼽히는 윤서연이다.
민우와 남유태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원래 우리 프로에 출연자는 서너 명씩 되는데 오늘은 특별히 모시기 어려운 분이라 두 분만 모셨어요.”
섭외하기 어려운 사람은 민우뿐이겠지만, 방송에서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남유태가 겸연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저는 섭외만 해주시면 언제든 나오겠습니다.”
“어? 정말요? 이거 증거 자료로 보관할 수 있죠?”
건수를 잡은 정용수가 냉큼 물고 늘어졌다.
민우가 관자놀이를 쥐고 고개를 저었다.
영문을 모르는 남유태만 어리둥절할 뿐이고.
윤서연이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톱스타가 되셔도 섭외하면 우리 프로 나와주셔야 해요. 약속하신 거예요.”
그때야 자신이 했던 말의 파급력을 깨달은 남유태였지만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용수가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자, 인사도 나누기 전에 토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네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강민우입니다.”
민우의 인사에 정용수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정말 배우 맞아요?”
“네? 무슨 뜻이신지···.”
“배우라고 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장르에 진출 중이셔서요.”
“먹고 살려고 여기저기 출연했지만, 본업은 배우가 맞습니다.”
“우선 자기소개마저 듣고 이야기 나누죠.”
정용수의 시선이 남유태에게 닿았다.
“반갑습니다, 남유태입니다.”
“제가 말이죠. 소식통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남유태 씨랑 강민우 씨는 보조출연을 할 때부터 친했다면서요?”
“친했다기보다는 안면이 있는 정도였죠. 그런데 드라마 촬영할 때 우연히 만났는데 아는 척을 해주셔서 고마웠죠. 그때는 형이 주연이었거든요. 저는 여전히 보조출연이었고.”
언더커버 파티쉐의 촬영 당시 에피소드들이 남유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전부 칭찬에 가까운 말들이라 편집이 될 확률이 높았다. 자고로 토크쇼라면 자극적이어야 하는 법이니.
녹화를 보고 있던 PD 전창호는 남유태의 섭외가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물고 뜯으면서 재미를 보여야 하는데, 지금 보니까 민우의 열렬한 추종자가 아닌가.
“곤란한데.”
그나마 정용수가 좋은 소스를 가지고 있다니까 거기에 기대야 할 것 같다.
토크쇼의 분위기는 잔잔하게 흘러갔다.
녹화를 시작한 지도 1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전창호는 정용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크흠. 이제는 다들 아시겠지만, 저도 남유태 씨처럼 강민우 씨와 엑스트라 시절부터 함께 했어요.”
민우는 올 것이 왔음을 느끼고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같이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정용수가 사진을 확대한 것을 패널에 붙여서 들어 보였다.
한달음에 달려간 민우가 패널을 뺏어 들고 확인했다.
잘 나온 사진도 많은 데 하필 외모 몰아주기 사진이다.
빠각.
패널을 반으로 접어버린 민우가 뚱한 얼굴로 정용수를 노려봤다.
“많고 많은 사진 중에 왜 하필 이 사진입니까?”
사진을 확인하지 못한 윤서연이 민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떤 사진인데요? 저만 볼 테니까 주시면 안 될까요?”
“안됩니다.”
“후후. 그럴 줄 알고 몇 개 더 준비했어요.”
정용수가 패널을 세 개나 테이블에 세웠다.
전부 뺏을 수도 있지만,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포기했다. 다 뺏었다가는 뇌절이나 마찬가지다.
사진에는 멀쩡한 얼굴의 정용수와 그 주위에 모여있는 배우들이 찍혀있었다.
모두 모자이크 처리를 했기에 민우만 우스꽝스러운 얼굴이다.
사진을 확인한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민우의 과거가 정용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강원도에서 촬영할 땐데 거기는 보통 화장실이 재래식이잖아요. 동네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곳이라 거기서 분뇨를 모아서 비료로 쓰고 그랬거든요. 이게 밤에 가면 진짜 무서워요. 분뇨가 마를까 봐 자리도 으슥한 곳에 지어뒀거든.”
민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저 때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었는지. 그런데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용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촬영이 밀려서 다음날마저 찍기로 하고 하루 숙박을 하게 됐단 말이지. 밤에 자다가 화장실을 가는데 비는 추적추적 오지, 분위기도 그런데 화장실에서 우는 소리도 들리지.”
“귀신이었나요?”
“나도 처음엔 귀신인 줄 알았죠.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화장실에 불을 켰더니. 시커먼 뭔가가 불쑥 튀어나오는 거야.”
그제야 민우는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보조출연자를 시작할 때다. NG 한번 냈다고 전창호에게 모진 괄시와 모욕을 당했다.
사실 제대로 준비를 해오지 않아 계속해서 NG를 내는 주연배우가 들으라고 하는 욕이었다.
주연에게 대 놓고 할 수는 없으니 민우가 대신 혼난 거나 마찬가지.
어린 나이였고 서러운 마음에 혼자 울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서 놀라 도망쳤던 때다.
“사실 그때 민우도 억울하기는 했죠. 그런데 어쩌겠어? 촬영장에서 보조출연자의 위치가 그런걸. 그때 이후로 민우의 연기력이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죠.”
전창호가 뚱한 얼굴로 정용수를 쳐다봤다.
본디 흑역사란 쪽팔린 상황을 말하는 것 아닌가.
이럴 때 MSG도 좀 치고 사람들이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는데 그걸 못 살린다.
“나였다면 옷에 똥 싸서 울고 있었다고 했겠네.”
말도 안 되는 상황이겠지만 입담을 잘 살린다면 충분히 웃긴 상황이 됐을 거다.
이 정도로 MSG를 쳐야 기사화도 되고 시청률도 올라간다.
만약 논란이 되면? 거기까지 알게 뭔가?
사실이 아니라 토크를 하던 와중 오버했다며 사과를 하면 되는데. 잠잠해질 때까지 몸 사리면 될 일이고.
그의 뇌리에 비호감으로 찍힌 연예인 하나가 떠올랐다.
막말을 해도 이제는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는 그런 진행자.
구설수가 많아서 가성비도 좋다. PD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재주도 있고.
대중은 편안하게 진행하는 정용수를 선호하겠지만, 그가 원하는 MC 유형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슬슬 MC도 물갈이해야겠어.”
토크의 방향은 당초 계획대로 ‘애트라’ 홍보로 이어졌다.
민우가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모두 다 참여한 것을 강조하면서 확실하게 홍보를 했다.
편한 분위기의 토크쇼가 끝나고 전창호는 편집을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너무 조용하게 흘러가니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잠깐만. 이거 이렇게 꼬아서 붙이고 자막도 달면···.”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된다.
편집을 마치고 처음부터 확인해봤다.
정용수가 흑역사를 말하려고 할 때 민우가 나서서 막아버린다. 결국 흑역사를 말하지 못하고 애매한 과거사만 늘어놓게 된다.
평소 민우는 반듯한 인상이다. 그런 그가 첫 토크쇼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본방송은 물론이거니와 재방송까지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이대로 방송에 나가면 논란거리가 될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알게 뭔가? 시청률만 잘 나오면 그만인데.
“대신 걸그룹 홍보는 똑바로 나가도록 해줘야지. 하나를 주면 하나는 받아야 계산이 맞으니까.”
전창호는 편집을 끝마치고는 흐흐, 하고 웃으며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방송 나가면 당분간 휴대폰 꺼놔야겠네.”
* * *
토크쇼가 방송되자 전창호의 예상대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강민우 그렇게 안 봤는데. 정용수가 형 아닌가? 말을 하려고 하니까 자꾸 막고, 말 돌리고. 좀 그러네.
└원래 연예인들 카메라 앞과 뒤가 다름. 카메라 없을 때 개차반인 사람 엄청 많음.
└이거 악마의 편집 아닌가요? 흐름이 어색한데.
└전창호 PD가 악마의 편집은 이때껏 한 적이 없음.
└편집이 너무 작위적이라 냄새가 나는데.
└강민우 소속사임? 방송을 보고도 편을 들고 싶나?
└방송 태도는 개떡 같은데 홍보는 열과 성을 다해서 하네. 홍보하러 토크쇼 나간거쥬?
└공중파가 자기네 홍보사이트야 뭐야?
-다들 중립 기어 박으세요.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이미 방송이 증거인데 뭔 중립 기어?
└강민우 390억짜리 재단도 만들어서 불우이웃 돕기도 함. 방송처럼 막돼먹은 사람 아님.
└그것도 세금 회피 목적이겠지.
└이미 성실납세자로 유명한데?
└390억은 어디서 남? 출처부터 캐야 되는 거 아닌가?
민우의 안티는 이때다 싶어 모두 들고 일어났다.
방송을 보고 놀란 홍경섭이 민우의 집을 찾았다.
“이게 다 무슨 난리냐? 너 방송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좀 떴다고 용수형 깔보고 그러냐?”
“넌 나를 못 믿어?”
“그럴 리가? 그냥 이때다 싶어서 나도 까본 거지. 안티가 이런 기분으로 악플을 다는구나 싶다.”
민우가 피식 웃자 홍경섭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PD가 편집 개같이 한 거 맞지?”
“용수형도 아까 전화 왔어. 나한테 미안하다고 싹싹 비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 PD한테 전화했는데 받지 않아서 방송국에 쳐들어간다더라.”
“근데 왜 그랬지? 원래 악마의 편집 뭐 그런 쪽이랑 거리가 먼 PD라고 하던데.”
“나도 그게 궁금하네. 그냥 시청률에 눈이 돌아갔을 수도 있고.”
“아무튼 그냥 있을 수는 없지. 가만히 있다가는 호구 잡힐지도 모르고, 네 이미지가 이대로 굳어질 수도 있으니까 고소라도 해야겠어.”
“흠. 그러고 보니까 꽤 괜찮은 변호사가 있는데.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을 타는 그런 변호사. 네 생각은 어때?”
“누군지 나도 알 것 같네. 기부해달라고 했는데 네 이름으로 재단까지 만들어주고, 수임료도 거기에 다 집어넣었더라. 그런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지. 연락해볼게.”
전화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민석은 직접 KH 엔터로 찾아왔다.
대표실에서 민우와 홍경섭은 그를 맞았다.
“저한테 연락할 줄 몰랐습니다.”
“억울한 상황을 제대로 풀어줄 수 있는 분인 거 같아서요. 오해했나요?”
장민석이 히죽 웃었다. 웃음인 것은 분명한데 어쩐지 섬뜩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대로 고르셨습니다. 수임료는 다른 변호사보다 비싸지만 그만큼 돈값은 한다고 자부하거든요.”
말을 마친 장민석은 곧장 사정 청취부터 시작했다.
민우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그러니까 편집을 그렇게 했다는 거군요? 함께 증언해줄 사람은 있습니까?”
“남유태와 용수형이죠. 같이 녹화를 했으니까요.”
“그분들은 강민우 씨와 친분이 깊어서 증언의 효력이 떨어집니다.”
“함께 MC를 맡았던 윤서연 아나운서는요?”
“더 없습니까? 기왕이면 방송국 관계자가 가장 파급력이 강할 텐데요.”
토크쇼의 스태프는 모두 PD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다.
그런 그들이 민우를 위한 증언을 해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상황을 짐작한 장민석은 서류를 정리했다.
“일단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셨으니 돈만 준비해두시죠.”
그가 대표실을 떠나자 홍경섭이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 제대로 된 변호사를 고른 거 맞겠지?”
민우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KH 엔터도 두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반박기사와 보도자료를 뿌렸다.
고소한다는 카드까지 꺼냈으나, 오히려 협박하는 거냐며 역풍이 불었다.
토크쇼에서 불거진 민우의 논란은 애트라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점점 좋아지던 반응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이다.
애트라 멤버들은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서운할 법도 한데 어차피 민우가 아니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는 말로 위로를 했다.
논란이 살짝 잠들었을 때, 디오네가 컴백을 알렸다.
그것도 애트라가 데뷔하는 날.
기사를 확인한 민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구린 냄새가 나는데···.”
장민석에게 의뢰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황 정리는 끝났습니다. 조만간 찾아뵙죠.
애트라의 데뷔까지 사흘이 남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