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막 오픈 (108/223)

주막 오픈

그랑플라스 광장에서의 소란은 민우의 대리인이 대신 경찰서에 출석하는 것으로 끝났다.

경찰서에서 돌아온 대리인은 민우에게 넌지시 귀띔을 해줬다.

“보통 이런 녀석들은 패거리를 이뤄서 행동한다고 해요. 자신들을 방해했으니 분명히 보복하러 올지도 모른다네요.”

“걱정해야 할까요?”

“아뇨. 경찰을 배치해둔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벨기에는 총기 사용이 합법인가요?”

“아뇨. 벨기에는 사격장에서만 총기 사용이 가능해요. 물론 불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기는 하지만.”

“총을 쏘는 것만 아니면 몇 명이 몰려오든 걱정 없습니다. 총은 도저히 못 피하겠더라고요.”

“네?”

“···농담입니다.”

방심하다 말실수를 할뻔했다.

“그렇죠? 깜짝 놀랐네요. 무슨 농담이 진담처럼 들렸네요.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돌발행동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옳은 일을 하는 건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칼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목숨은 하나뿐이잖아요?”

“명심할게요.”

홍보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그때 광장에 있던 몇 명이 게스트하우스로 찾아왔으니까.

그중에는 자신의 지갑을 도둑맞을뻔했던 여자도 끼어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젤라’라고 했다.

“아까는 정말 고마웠어요. 제가 총무라서 친구들의 돈을 모두 가지고 있었거든요. 만약 경비를 소매치기당했다면 끔찍할뻔했죠.”

듣기로는 경찰서까지 같이 가서 증언을 해줬단다.

“저희가 오늘은 숙소를 미리 잡아둬서 캔슬하기가 좀 그렇고요. 내일 5명이 숙박할 예정인데, 예약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숙소가 기본 4인실인데 괜찮나요?”

“네. 한 명은 원래 사람 사귀기를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 틈에 끼어도 상관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TV쇼를 촬영하는 중이거든요. 혹시 촬영 동의를 해주시겠습니까? 원치 않으시면 출연하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TV쇼요? 음···. 친구들에게 물어봐야겠지만 상관없을 것 같아요. TV에 나오기 싫으면 편집해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입주하실 때 동의서를 작성하거든요. 그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럼 예약해두겠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기본으로 제공되나요?”

“아뇨. 안타깝지만 손님이 조리할 수 있는 주방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요. 대신 식당이 있는 홀에 오셔서 주문만 하면 됩니다. 한식 메뉴를 준비해뒀으니 새로운 경험이 될 겁니다.”

자신의 다이어리에 메모를 하던 안젤라가 고개를 들었다.

“식당이라면 맛은 보장되겠죠?”

“물론입니다.”

이미 프랑스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험도 마쳤다.

“좋네요. 지금 저희가 묵는 곳은 주인이 알아서 해주는 음식을 먹어야 했거든요. 땅콩버터를 바른 토스트와 매쉬드 포테이토는 끔찍했어요. 덕분에 숙박요금은 쌌지만. 이크, 내 정신 좀 봐. 일단 계산부터 할게요. 요금은 얼마인가요?”

“4인실은 30유로, 2인실은 50유로입니다. 식당에서 음식값은 별도고요.”

“지금 머무는 숙소랑 숙박비가 같네요.”

안젤라는 기뻐하며 150유로를 건네주었다.

“그럼 내일 오후 5시에 뵐게요.”

게스트하우스의 룸은 층마다 8개씩 모두 16개가 있다.

커플을 위한 2인실이 층마다 2개씩, 나머지는 모두 4인실이다.

2층은 남자, 3층은 여자용 숙소다.

최대 수용인원은 52명이지만 2개의 커플룸은 현재 출연자의 숙소로 사용하는 중이다.

그래서 최대 수용인원은 48명.

이제 12명을 채웠으니 36명만 더 채우면 될 것 같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 그럴 가능성은 좀 낮기는 했지만.

그러나 지지부진했던 예약률이 한순간 급변했다.

그 원인은 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랑플라스 광장에 나타난 곰이 사람을 잡아먹음.」

제목이 워낙 자극적이라서 사람들은 앞다투어 클릭했고,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폭소를 터트렸다.

-곰 탈을 쓴 사람은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는 중이었음. 우연히 소매치기를 발견했고 도망가려 하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제압함.

작성자가 남긴 텍스트를 읽은 후에는 누구 할 것 없이 ‘좋아요’ 버튼을 눌러댔다.

고작 하루 만에 좋아요가 100만을 넘어섰다.

“이건 무슨···. 이 정도면 홍보의 신이 도와준 거 아닐까?”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이제는 흐릿한 사진도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

소매치기를 기절시키던 와중 팻말은 대충 던져두었는데,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 팻말을 확대해서 선명하게 만들었더니 ‘주막’의 홍보 문구가 고스란히 나타났기 때문.

덕분에 지금 게스트하우스의 예약 문의가 폭발하는 중이고.

“모두 요구하는 바가 똑같아요. 곰한테 목 졸릴 수 있냐고. 그럼 당장 예약하겠다고. 세상에 변태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오늘 실감하네요.”

“그거보다는 내가 소매치기를 기절시켰던 사진이 유행하니까 따라 하려고 그러는 거 같은데. 첼린지 뭐 그런 거.”

곰곰이 생각하던 김여울이 후다닥 달려가 곰 탈을 가지고 나타났다.

“오빠, 제 일생일대 소원이 생겼어요.”

“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일단 저부터 사진 찍게 기술 걸어주세요.”

가만히 김여울을 바라보던 차규화가 폭소를 터트렸다.

“쟤는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가끔 3차원이 된다니까.”

“언니. 이런 건 제일 먼저 한 사람이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김여울의 거듭되는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곰 탈을 쓰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녀도 아이돌이라 차마 목은 조르지 못하고, 뒤에서 시늉만 하는 사진으로.

김여울은 초크 기술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안타까워했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진을 SNS에 올렸다.

“예약은 4인실 기준 10유로, 2인실은 20유로를 예약금으로 입금한 사람만 받도록 해. 노쇼나면 골치 아프니까.”

“알겠어요. 사진은 어떻게 하실래요?”

“이 한 몸 희생해서 예약이 늘어난다면 어쩔 수 없지. 찍어준다고 해. TV쇼 촬영 중이라는 말도 잊지 말고. 대신 기절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는 경고 꼭 해주고.”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울컥해서 살짝 이를 갈았다.

흠칫할 수밖에 없는 경고에도 사람들은 기뻐했다.

진짜 변태들인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어쨌든 예약은 성황을 이뤘고, 모두가 예약금을 입금하며 한 달 치의 전 객실이 손님으로 가득 차는 쾌거를 이루었다.

원래 녹화는 한 달을 예상했으므로 더는 예약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다.

전화로 예약을 한 사람들이 입주하는 것은 내일부터였으므로 이제부터 바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오후 5시.

어제 예약을 했던 15명의 사람이 입주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촬영동의서를 작성해주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하면서 객실도 손을 봤기 때문에 30유로의 가격치고는 가성비가 좋다.

침대도 철제프레임이 아니라 원목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매트 또한 제법 비싼 것이다.

안젤라 일행은 객실 상태를 확인하고는 만족해하며 식당으로 내려왔다.

솔직히 말해서 좌식 의자는 불편하다. 외국인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그러나 게스트하우스는 여행객을 위한 장소다.

하루 이틀 머물다 떠날 사람들이며 타국의 문화를 접한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했다.

더구나 유럽 여행에서 아시아의 향수를 느낄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안젤라와 친구들이 평상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세라. 너 한국 여행 가봤다고 했지?”

“그랬지.”

“어땠어? 여기랑 같아?”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 세라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호텔에만 묵어서 잘 모르겠어. 식당도 현대적인 곳이었고. 여기는 인테리어는···.”

그녀가 주위를 둘러봤다.

한쪽에는 거문고가 있고, 쌀을 골라내는 키를 비롯한 오래된 농기구도 보였다. 인테리어가 딱 옛날 주막을 연상케 한다.

“그 왜 사극 같은 거 보면 나오는 그런 거잖아.”

“솨국? 그게 뭔데.”

“Historical Drama(시대극)의 한국식 줄임말 같은 거야.”

“너 잘 안다? 한국어도 할 줄 알았어? 몰랐네.”

일행은 세라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같이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내성적이고 말수도 적어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예전과 달리 나아진 것 같다.

“너희도 K-POP 뮤비는 볼 거 아냐?”

셋은 고개를 끄덕였고, 안젤라만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아직 신문물을 접하지도 못한 불쌍한 어린양이구나. 내가 K-POP이 뭔지 알려줄게.”

세라가 안젤라를 억지로 끌고 휴대폰에 집중시키려 했다. 일행이 그녀를 만류하며 툴툴거렸다.

“얼른 밥부터 먹자. 나 배고파.”

그러고는 메뉴판을 펼쳤는데, 생소한 음식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국밥?”

메뉴판을 본 세라가 펄쩍 뛰었다.

“쿡팝이 뭔데?”

“국에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야.”

“쿡? 팝? 설마 세라랑 대화를 하려면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거야?”

“굳이 영어로 말하자면 스프와 라이스? 처음 한식을 먹는다면 불고기를 추천할게. 매운 요리를 좋아하면 닭갈비.”

한국문화에 익숙한 세라가 메뉴를 보며 설명해줬다.

조리법을 듣던 일행은 현기증을 느끼며 대충 골고루 시켜서 나눠 먹는 것으로 결론을 내버렸다.

안젤라가 손을 들자 김여울이 테이블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저희는 쿡팝이랑···.”

“안젤라 잠깐만. 혹시 세레나데의 김여울인가요?”

외국인이 자신을 알아보자 김여울은 깜짝 놀랐다.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

“웬일이야! 저 정말 팬이에요. 설마 지금 촬영하는 게 김여울이 출연하는 TV쇼인가요?”

“맞아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있고요.”

“전부 세레나데 멤버예요?”

“안타깝지만 아니에요. 나머지 세분은 배우시거든요.”

안젤라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배우요? 곰 탈 썼던 분도 배우세요?”

“네. 강민우라고 제법 유명···.”

“꺅!”

짧은 비명의 주인은 세라였다.

테이블에 있던 모두가 놀란 얼굴로 세라를 바라보았다.

세라의 볼은 어느새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유랑민이랑 언더커버 파티쉐, 무인도에 출연했던 강민우 맞아요? 무인도에서는 우승도 했고.”

“맞는 것 같아요.”

“혹시 강민우에게 사인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정말 팬이거든요.”

“아까는 제 팬이시라고···.”

“여울의 팬이기도 하죠.”

뭔가 덤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며 김여울이 빌지를 손에 들었다.

“일단 주문부터 받을게요. 사인은 물어보도록 할게요. 지금은 요리하느라 바쁘거든요.”

“강민우가 요리해요? 오, 갓! 유랑민 때 정말 먹어보고 싶었는데. 제 버킷리스트 하나를 오늘 지울 수 있겠네요.”

안젤라가 세라를 진정시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원래 얘가 이런 성격이 아닌데.”

“괜찮아요. 이방인에 불과한데도 알아봐 줘서 오히려 고마운걸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우리는 모든 메뉴 하나씩 주세요.”

“막걸리랑 파전도!”

세라의 외침에 안젤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달라네요. 막걸리는 우유처럼 생긴 음료네요. 모두에게 한 잔씩 주시고요.”

“우유가 아니라 술이에요.”

“그래요? 와인처럼 요리랑 곁들여도 되나요?”

“괜찮을 거예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두 가지 버전이 있어요. 순한 버전, 독한 버전. 어느 쪽으로 드릴까요?”

세라는 술이 약하고 나머지는 모두 센 편이었다.

“순한 버전 1잔과 나머지는 독한 버전으로요.”

“알겠어요. 금방 내올게요.”

김여울이 주방으로 가자 안젤라가 세라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유명해?”

“누구? 강민우?”

“응.”

“간단하잖아. 여기서 강민우 아는 사람?”

세라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아는 사람만 알지만 알게 되면 팬이 되는 사람이지. 강민우라는 사람은.”

“뭔가 극찬 같다.”

“요리부터 먹어봐. 그럼 알게 될 테니까.”

놀이공원에 놀러 온 아이 같은 세라의 모습에 일행은 웃음을 터트렸다.

주문이 들어간 요리가 시작되었는지 회를 동하게 만드는 냄새가 홀을 가득 채웠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먹음직한 냄새와 함께 음식이 나왔다.

코앞에서 맡는 음식 냄새는 황홀함 그 자체였다.

“이건 소고기로 만든 불고기, 이건 닭고기로 만든 닭갈비···.”

세라가 요리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뭐부터 먹어야 해?”

“한식에는 먹는 순서가 따로 없어. 먹고 싶은 거로 먹으면 그만이야.”

젓가락을 손에 쥔 세라가 불고기를 덜어 먹었다.

“이거 너무 힘드네.”

“포크 써.”

처음 잡아보는 젓가락이 자꾸만 손에서 도망쳐서 결국 포크로 갈아타야 했다.

안젤라만 꿋꿋이 젓가락을 쥐었다. 결국은 어설프게나마 젓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접시도 넉넉하게 줬기에 모두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 같은 맛이야?”

안젤라의 물음에 세라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웬만한 음식점보다 더 맛있어!”

막걸리와 파전의 맛도 흡족했다.

기분 좋은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여기 주인이 누구야! 나와!”

덩치가 커다란 남자 대여섯 명이 홀로 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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