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잽 다음은 스트레이트 (86/223)

잽 다음은 스트레이트

최경륜은 원대호 피디를 만났다.

“우리랑 같은 프로 만드느라 고생이 많아.”

“벤치마킹이라고 하자. 그건 그렇고 원래 오늘 버스킹 하기로 했어?”

“누구 덕분에 서둘러야 했지.”

“하긴 우리가 좀 위협이기는 하지.”

“어디 7% 따리가 15%를 넘봐? 시청률 차이 두 배 넘는 거 알지?”

“됐고. 그래서 뭔데? 촬영 준비로 바쁘실 분이 여기는 왜 왔어?”

“그냥 버스킹만 내보내면 심심하잖아. MSG 좀 쳐볼까 해서. 어때? 생각 있어?”

원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 헛소리야?”

“피디라는 놈이 상상력이 이렇게 빈곤해서야 어디다 쓸꼬. 너희랑 우리랑 대결을 하자고.”

“대결? 시청률로 경쟁하는데 굳이?”

“같은 프로그램에서만 대결하라는 법이라도 있어? 우리랑 너희랑 관객동원력으로 대결을 하자는 거지.”

팔짱을 낀 원대호가 생각에 잠겼다.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시청률을 흡수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고민을 끝내려고 하는데 최경륜이 한마디 툭 던졌다.

“프로그램에 자신이 없다면 어쩔 수 없고.”

이 발언이 거절할 수 없는 쐐기였다.

“2팀의 스페셜리스트에게 질 수는 없지. 방법은?”

“교차 검증을 해야 하니까 우리 스태프랑 너희 스태프를 섞어서 관객을 카운트 한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쪽이 승리.”

“그걸 방송에 다 내보내자고?”

“뭐 어때? 졌으면 어떻게 졌는지 궁금할 거고, 이겼으면 어떻게 이겼는지 궁금할 테니까 방송을 둘 다 찾아 볼텐데. 다시 보기 수익 그거 무시 못 한다.”

최경륜의 말에 원대호는 깜짝 놀랐다. 동기 중에 유일하게 입봉조차 하지 못해서 한 수 아래로 봤는데 지금 보니 의외로 감이 좋다.

“우리는 가수라서 지면 치명타인데?”

“이거 왜 이래? 우리도 주인공만 배우지 게스트는 모두 가수야.”

“그렇다면야 거절할 명분도 없네. 받아들이지.”

“그건 그렇고 대호야.”

“뭔데 목소리를 깔고 지랄이야? 느끼하게.”

“너 한희찬이랑 무슨 관계냐?”

원대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무 상관 없어. 그 꼰대는 왜?”

“너랑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서.”

“궁금한 것도 많네. 그 양반이 가수들 좀 밀어줬다고 자꾸 한발 걸치려고 해서 귀찮아 죽겠다.”

“너랑 별다른 관계는 없다는 거지?”

“아니라니까 왜 자꾸 질척거려? 뭔데? 무슨 일 있지?”

최경륜은 그간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원대호가 탄식을 터트렸다.

“미친 거 아냐? 고작 밥그릇 지키자고 이딴 짓을 벌였다고? 빌어먹을. 제대로 코 꿰였네.”

“안 그래도 네가 피디를 맡았다기에 의아하긴 했다. 갑질 그런 거 딱 질색인 놈인데.”

“CP가 나 아니면 안 된다는데 어떻게 하냐? 시키는 대로 해야지.”

“나랑 손잡는 건 어때?”

“우리 시청률 경쟁하는 사이다.”

“자식이 오늘따라 말귀를 못 알아듣네. 그 경쟁에 자꾸 간섭하는 사람을 쳐내자는 거잖아.”

“방법은?”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다 말해주냐? 큰 줄기만 알려줄 테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는 나대로 일을 진행하는 중이니까.”

“좋아. 큰 줄기가 뭔데?”

“청야전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이해됐다.

“손발을 다 잘라내자는 거구나. 그래서 나를 찾아 와서 무슨 관계인지 묻고. 다 연결되는 거였어. 이제 경륜이 제법 쌓였네. 경륜이가.”

“과찬의 말씀.”

“좋아. 하지만 우리가 시청률 경쟁하는 사이라는 건 변함없어. 그건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기도 하니까.”

“그거야 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더이상 2팀의 스페셜리스트라는 말은 듣기 싫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능력도 보일 생각이다.

회합을 마친 둘은 스태프 5명씩을 상대편에 투입했다.

공연이 10분 앞으로 다가왔을 때, 탁광준에게서 문자가 왔다.

-컴백 싱어 관객 300.

최경륜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30명 이겼네.”

고개를 들어 버스킹 존을 바라봤다.

인파는 중앙을 기준으로 두 패로 나뉘어있었다.

좌우에서 방송을 준비 중인 데다가 출연진도 연예인이다. 헤드스컬은 안중에도 없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헤드스컬은 눈물을 머금고 짐을 싸고 자리를 비웠다.

헤드스컬이 자리를 비우자 그 공간은 관객들이 꾸역꾸역 채워버렸다.

“부디 마지막까지 이겨야 할 텐데.”

최경륜이 땀으로 끈적해진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러 닦아냈다.

* * *

오프닝을 마친 민우는 무대에서 벗어나 홍경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내일부터 하나씩 올라갈 건가 봐.

얼마 전 버스킹에 관한 기사를 부탁할 때 한희찬에 관해서 넌지시 일러줬다. 특종에 목마른 고 기자는 바로 뒤를 캐기 시작했고, 굵직한 것을 캐낸 듯하다.

“다른 쪽은?”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더라고. 이미 소스도 고 기자님한테 줬어. 내가 알아서 착착 진행 중이니까 너는 밴드나 신경 써. 태근이도 잘 챙겨주고.

민우가 무대를 바라봤다. 자신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반태근은 훌륭하게 퍼스트를 소화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챙겨줘야 해?”

-뭔 소리야. 아무튼 오디션 준비 중이라 바쁘니까 끊자.

이제 막 두 번째 곡이 끝났다. 피날레는 주인공인 자신이 빠질 수 없다. 민우는 곧바로 무대로 향했다.

이제는 멘트가 능숙해진 손기환이 마이크를 잡았다. 민우가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멘트를 할 참이다.

“여러분 오늘 잘 오셨어요. 지금 연주할 곡은 처음 공개하는 신곡입니다. 작사, 작곡, 강민우.”

때마침 준비를 마친 민우가 손을 흔들었다.

비명 같은 소란이 지나갔다.

“제목은 언제나 혼자입니다.”

이 노래는 민우에게 의미 있는 곡이다. 고립된 상황을 노래로 표현했던. 원래는 발라드에 가까운 곡이었으나 밴드에 맞게 편곡했다.

남예은을 필두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하루가 끝이 나지 않아.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돌고 있어···.”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울컥한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에 화인처럼 남아있나 보다.

정신과 의사가 상담 중에 말해주었다. 트라우마는 피하지 말고 맞서야 극복할 수 있다고.

사실 이 노래를 택한 것도 그때의 상담이 떠올랐던 탓이다. 멤버들이 만장일치로 이 노래를 선택하기도 했고.

‘강제로라도 다른 노래를 골랐어야 했어.’

사실 노래는 매우 좋다. 민우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PTSD를 겪어서 그렇지.

라찬밴드에서 도로시 밴드, 이석하로 이어지는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2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으니까.

최경륜은 5분 전에 도착한 탁광준의 문자를 확인했다.

-339. 우리는 얼마입니까?

휴대폰 화면을 넘겨 2팀 피디가 보내온 문자를 클릭했다.

-교차검증 끝냈습니다. 평균 368명. 우리가 이겼나요, 선배?

“그래. 이겼네.”

고작 29명 차이.

라찬 밴드는 370명 정도를 꾸준하게 유지했다. 이석하가 등장했을 때는 400명을 살짝 넘겼고.

최대 관객도 평균도, 최소 관객도 이쪽이 승리다.

최경륜은 곧장 원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키득거리며 전화를 끊자 문자가 왔다.

-심란하니까 다음에 통화하자.

“그러시겠지.”

휴대폰을 집어넣은 최경륜은 뒷정리에 열중인 민우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다른 피디를 찾아가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안되지.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실실 웃다가 갑자기 고개를 부르르 흔든다. 그러고는 투덜거리는 최경륜을 심여진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고 기자가 예고했던 신문 기사가 올라왔다.

[가요협회 한희찬, 비리 혐의 조사 착수]

“이게 끝이야?”

민우의 물음에 홍경섭이 고개를 저었다.

“고 기자님이 일단 프레임부터 씌워야 한다고 했어.”

“무슨 프레임?”

“이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라는 프레임이지. 변명해도 소용없도록 마이크를 꺼버리겠다는 거야.”

한희찬이 저지른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작곡가로서의 입지가 탄탄한 한희찬이기에 그 부분을 찔러봤자 여론이 갈릴 우려가 있다. 그래서 다른 것부터 공략하는 거였다.

민우는 밥그릇 타령하는 한희찬이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그의 곡을 전부 다운받아서 들어봤다.

아무리 다른 장르의 곡을 만들어도, 곡에는 지문처럼 작곡가의 색깔이 남는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봐도 그의 곡에는 그만의 개성이 없었다.

작곡팀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한희찬은 오직 혼자서 작업을 한다고 인터뷰까지 했으니.

이상함을 느낀 민우는 경우의 수를 좁혔다. 혹시 표절은 아닐까 생각한 거다.

아쉽게도 표절에 관한 기사는 없었지만, 짤막한 단신이 툭 튀어나왔다.

[작곡가 금신우, 한희찬 고소]

자신의 곡을 무단 사용했다고 고소한 건이다.

“이러면 말이 되지.”

민우는 곧장 금신우와 접촉했고, 그에게서 대략적인 사정을 들었다.

“한희찬이 곡을 사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직접 만나서 계약을 하자기에 약속 장소로 나갔더니 가요협회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더군요. 저작권을 포기하라고. 어쩔 수 없이 헐값에 곡을 팔 수밖에 없었죠. 협회에 밉보였다가는 작곡가 생활 자체를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문제는 이 곡이 크게 히트했다는 점이다. 이후 금신우는 집 밖도 나가지 못하고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몇백만 원에 팔았던 곡이 수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니 그의 속마음이 오죽할까.

금신우가 끝이 아닐 거라고 직감한 민우는 홍경섭에게 이 일을 맡겼다. 인맥을 총동원해서 알아낸 소스를 고 기자에게 넘겼던 거고.

“다음은 손발 자르기.”

[한희찬 십여 년간 회삿돈에 손을 댔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금액만 1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

확정이 아니라 추정이다.

고영수가 아무리 날고 기는 기자라도 금액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 다만 내부에 협력자를 만들고 정보를 빼내 대략적인 금액을 뽑아낸 게 10억 원이었다.

“다들 해 처먹는 건 같으니까 혹시라도 감싸면 일이 복잡해지잖아. 그러니 손 떼라고 협박과 명분을 함께 주는 거지. 다음 기사가 핵심이니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났다. 무성했던 소문 사실로 드러나]

[작곡가의 고혈을 빨아 승승장구한 한희찬]

[타 예능 프로그램에도 알력 행사. 가수 보이콧 주도]

기사를 본 민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이콧은 심증만 있었잖아.”

“아, 그건 최 피디님이 슬쩍 알려줬어. 컴백 싱어의 원 피디가 준 소스라고.”

[협회를 이용한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보이콧에 응했다. 보이콧 참가 소속사 입장표명]

소속사는 곧바로 한희찬을 버렸다. 자칫 잘못하면 함께 엮여 들어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회사에 이슈가 생기면 소속된 연예인에게도 영향이 간다. 특히 논란이 되는 이슈라면 더더욱.

안 좋은 이미지를 수습하지 않는다?

그건 장사 접겠다는 소리다.

논란이 거세지자 침묵을 지키며 이렇다 할 입장표명을 하지 않던 가요협회도 보도 자료를 뿌렸다.

[가요협회, 한희찬 배임 횡령으로 고소]

아마 시간을 끈 것도 모든 것을 한희찬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작업을 한 것이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 일로 가요협회의 힘은 많이 빠졌다.

가수연예협회는 이 틈을 노려 세를 불려 나갔다.

가요협회로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형국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몸을 사려야 했으니까.

[이 곡의 작곡가가 따로 있다고? 한희찬이 뺏은 노래 제목만 들어도 경악]

그래도 안목은 있었던지 한희찬이 수작을 부린 곡은 거의 다 성공했다. 자신이 만든 곡은 죽을 쒔지만.

[한희찬에게 곡 빼앗긴 작곡가들 소송 대열에 합류. 합의금만 100억 원에 이를 것]

합의를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거다.

합의를 해줄 때까지 한 명씩 고소할 예정이라니까.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 하나, 쓸 수 없으면 말짱 헛것인데.

형량이 추가될 위기에 처한 한희찬은 피눈물을 흘리며 작곡가들과 합의를 해줘야 했다.

이미 그의 나이가 쉰을 향해 간다. 형량이 추가되면 황혼기를 모두 날리게 되니 어쩔 수 있나.

합의금으로 전 재산이 사라진 한희찬은 가요협회의 횡령 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항소도 하고 가요협회와 입을 맞춰 형량을 줄일 생각이겠지만, 과연 그의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일찍 출소한다 해도 무일푼인 그의 앞날은 가시밭길일 거고.

정체를 숨기고 작곡을 해봤자 실력이 없으니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불행과는 반대로 민우에게는 경사가 터졌다.

“이게 웬일이냐? 너 오스카 시상식에 초청받았는데?”

“조연상인가?”

“맞아. 근데 문제가 있어. 공연이랑 겹친다.”

고민하던 민우는 고개를 저었다.

“수상 가능성도 작은데 그냥 불참한다고 알려줘. 공연 표도 매진인데 내가 빠져봐. 난리 난다.”

“아깝기는 하네.”

홍경섭은 입맛을 다시며 주최 측에 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보도자료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민우의 기사가 포털사이트를 점령했다.

[오스카시상식 불참 선언, 강민우. 라찬 밴드 공연에 집중]

[국내 팬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 의리 지킨 강민우]

[그저 빛. 개인의 영광보다 약속 지킨 배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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