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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섭외 (81/223)

출연진 섭외

“뭘 그리 놀라? 한국에도 네 팬 많을 거야. 아마도.”

사실 모른다. 알아보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럴 거라고 예상은 한다. 디커슨은 민우와 함께 영화에 출연했으니까 알게 모르게 인지도가 생겼을 거다.

-흠. 한 번쯤 가보고 싶기는 했는데.

“그럼 넘어와. 이참에 좋은 일도 하고.”

-좋은 일?

이번 공연에 관한 설명을 해줬다. 공연의 수익에 관해서도.

디커슨은 잠시 고민하더니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매니저랑 상의하지 않아도 괜찮아?”

-매니저는 해고했어. 나랑 방향성이 달라서. 내 출연료는 유네스코에 따로 기부해줬으면 하는데, 괜찮아?

“사실 우리 책임자랑 얘기하기 전이야. 네 의향을 묻고 싶었는데 곧바로 허락할 줄은 몰랐네. 일단 출연료 부분은 책임자랑 얘기해 보고 알려줄게. 괜찮아?”

-그런 거라면 연락처를 알려줘. 내가 직접 얘기하지.

“오케이.”

이석하에게 모든 일을 맡겨 둘 생각은 없었다. 그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변수가 생기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기왕 내친걸음, 여기서 멈추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민우는 다른 사람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하이 민우,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어? 혹시 미국에 온 거야?

엘리의 맑고 고운 목소리에 민우가 슬쩍 웃었다.

다음 먹잇감의 텐션이 좋아 보이니 제의를 승낙할 확률도 높다.

“그건 아니고. 요즘 바빠? 스케줄이 많다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왜?

“한국에 놀러 오라고. 가이드 해줄 테니까.”

-뭐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꿍꿍이 있는 거 맞아. 그림값은 해야지. 그거 비싼 거다.”

-50유로라며!

“그렇구나. 50유로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어쩔 수 없이 50유로네.”

-······.

그림을 정말 마음에 들어 하던 엘리다.

솔직히 몇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팔 생각도 없다. 그런데 자신의 말 한마디에 50유로짜리가 되게 생겼으니.

발목이 잡힌 엘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갈게. 근데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겠어.

“당연히 설명해줘야지.”

민우가 디커슨에게도 해줬던 공연의 취지에 관해서 설명했다.

-나쁜 일은 아니네. 언제까지 가면 돼?

“그냥 허락하게? 출연료 협상도 해야지.”

-좋은 일 하는 거잖아. 출연료는 그림값이라고 생각해.

“와우. 백만 달러짜리 그림이네.”

수화기 너머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우의 말은 출연료로 한화 12억 가까이 책정했다는 뜻 아닌가.

엘리에게도 백만 달러는 많은 돈이다.

-나 이번 참에 한국에서 눌러살까?

“조크를 팩트로 받지 말고. 그럼 우리 프로그램 책임자한테 네 매니저 연락처 줄게. 괜찮지?”

-그래. 일정보다 일찍 갈 수도 있어. 한국 가이드, 기억하지? 내 출연료에 그것도 포함이야.

“물론이지. 그럼 입국 일정 나오면 연락해. 마중 갈 테니까.”

엘리와 통화를 끝낸 민우는 최경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들은 최경륜이 펄쩍 뛰었다.

-당연히 좋죠! 얼마가 됐든 예산 따내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사실 무명 연예인들만 출연한 상태라 제작비가 많이 남던 상황이다.

디커슨 한 명이라면 제작사 측과 담판을 지어서라도 어떻게든 예산을 맞춰낼 수 있으리라.

엘리 같은 경우는 민우가 굳이 출연료를 안 줘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할 생각이고.

다음으로 전화할 대상은 현재 유일하게 아는 가수인 윤다예.

-어머, 오빠! 저한테 처음으로 전화하시는 거 아니세요?

“그랬나? 미안. 내가 좀 바빴거든.”

-알죠. 영화 잘 봤어요. 완전 잘 나왔던데.

“민망하네. 너는 잘 지냈고?”

-저야 잘 지냈죠. 자, 이쯤 하면 밀린 인사는 끝난 것 같고. 무슨 용건이에요? 예능 섭외면 저는 무조건 오케이.

“그래? 그럼 출연할래?”

-라찬 밴드죠?

민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알고 있어?”

-요즘 시끌시끌한데 모를 리가요.

“가요협회 말이지? 거기에서 공문 돌렸다던데. 상관없어?”

-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여자 아니에요. 근데 꼭 저만 출연해야 하나요?

“다른 가수도 있어?”

-이건 어때요? 아이돌로 출연하는 거.

“아이돌로?”

-언니들이랑 가끔 만나거든요. 은퇴할 때는 홀가분했는데 요즘은 그때가 그립다더라구요. 언니들한테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기도 하고.

민우는 턱을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좋다. 비록 그녀의 그룹이 은퇴할 당시 1.5군에 턱걸이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올드팬도 상당히 있을 거고.

티켓 판매에 긍정적인 그룹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공연수익은 전부 기부야. 출연료도 얼마 안 될 거고. 괜찮아?”

-괜찮아요. 언니들 다 건물주라서 돈에 연연하지 않거든요.

“그럼 매니저 전화번호 문자로 보내줘. 작가님한테 전해드릴게.”

-넵. 그럼 미팅 때 봬요!

이석하가 자신까지 포함해서 3팀, 민우가 3팀. 합이 6팀이니 이제 4팀 남았다.

연락처를 뒤져봤으나 이제는 전화를 할 만한 사람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인맥 쌓기를 열심히 해야겠네.”

입맛을 다신 민우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는데, 갑자기 손아귀가 부르르 떨렸다.

지잉지잉-!

얼른 봐달라며 울어대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정용수.

고개를 갸웃한 민우가 전화를 받았다.

“네, 형.”

-네, 형? 네, 형?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 야! 너는 석하만 형이고 나는 형 아니냐? 석하보다 내가 석하보다 먼저 알았잖아!

그제야 왜 이렇게 섭섭해하는지 이해했다.

“공연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아니거든.

“맞는 거 같은데요?”

-아니라고 했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어? 야. 한국 사람은 삼세번이지. 한 번만 더 물어봐 줘.

사실 정용수를 떠올리지 못한 것은 자신의 실수다. 민우는 피식 웃으며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공연 맞죠?”

-크흠. 가만 보면 사람 조련하는데 재주가 있다니까. 아무튼 그건 됐고. 너 은퇴한 가수가 필요하다며?

“네. 대충 4팀 정도 필요해요.”

-각 팀당 3곡씩 할거지?

“어떻게 아셨어요?”

-최 피디한테 들었지. 그럼 멘트 포함 30분씩 잡고 10팀이면 300분. 최소한 5시간이네? 휴식시간까지 생각하면 감당되냐?

“최 피디가 감당하겠죠. 저야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고.”

-하긴 각자 하는 일은 다르니까. 아무튼 그런 일은 내가 전문 아니겠냐. 최 피디한테 명단 넘겼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정말요? 감사합니다, 형님.”

-이럴 때만 형님이래. 석하는 쓰리코스 사줬다며? 나는 풀코스 기대한다.

“그건 제가 아니라 최 피디님이···.”

-아 몰라 끊어!

삐로롱.

민우를 약올리 듯 경쾌한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끝났다.

정용수에게 풀코스 대접하는 게 아까울 리가 있겠나.

“예능 한 번 찍기 힘드네.”

고개를 절레젤러 흔드는데 섭외를 마친 사람들의 명단이 문자로 날아왔다.

솔로 : 장원규, 양유빈, 황영연, 서홍준, 임도하.

그룹 : 하모니걸, 글리터.

특별출연 : 디커슨, 엘리자베스. 이석하.

하모니걸은 윤다예가 속했던 그룹이고, 글리터는 고인돌이라 불리는 2세대 남자 아이돌이다.

솔로 5명은 모두 30대 중반으로 2000년대 초반을 주무르던 가수들이고.

그중 반가운 이름도 있다.

“양 선생님도 계셨네.”

양유빈은 민우가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던 사람이다. 물론 현재 그녀는 민우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이 점점 커지네.”

출연진만 봐서는 10대의 외면을 받을 거다.

그러나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는 호응을 얻을 듯하다.

* * *

인터넷 사이트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님들이 솔깃할 만한 라찬 밴드 썰 하나 품.>

이야기가 기니까 요약해드림

1. 한모모라고 가요협회 이사가 가수 소속사에 입김을 불어 넣음.

2. 소속사도 한모모랑 짝짜꿍해서 라찬 밴드에 보이콧 선언.

3. 발등에 불이 떨어진 라찬 밴드는 은퇴한 가수들로 게스트를 맞춤.

4. 이상 믿거나 말거나 썰이었음.

└예능에 얼굴을 비추면 인지도에 얼마나 유리한데 자기 발등을 찍겠냐?

└일기는 일기장에. 습작은 메모장에.

└작성자가 비공개잖아. 그냥 거르셈.

댓글들은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 글이 성지순례자들의 방문을 받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찬 밴드 공연 출연진인데 이거 맞아?

└누가 나온다고? 디커슨이랑 엘리자베스? 구라도 적당히 쳐야 믿어주지.

└할리우드 배우가 뭐 하러 한국에 와서 공연을 함? 출연료를 맞춰 줄 수는 있고?

└진짜임. 이미 제작사에서 보도 자료도 뿌림.

└허위기사겠지. 기자의 소설을 아직도 믿는 사람이 있다?

└한글 못 읽냐? 제작사에서 직접 보도 자료를 뿌렸다고 오랑우탄새끼야. 기자가 소설을 쓴 게 아니라.

└오랑우탄이라 한글을 못 읽는답니다. 댓글 내려 주세요.

└그럼 예전에 믿거말 썰이 진실이었잖아?

인터넷 사이트가 활활 타오르고 있던 시각.

선글라스와 모자를 써서 정체를 가린 민우는 공항에 나와 있었다.

수상한 차림새였지만 공항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관심은 금방 사라졌다.

입국장의 문이 열리며 금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우가 놀란 얼굴로 디커슨을 바라봤다.

부리부리하던 눈은 살에 파묻혀 절반만 보였다. 볼이 빵빵하고 턱도 두 겹이다.

영화를 찍을 때는 꽉 짜인 근육과 슬림한 체형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동네 백수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너 어쩌다 그렇게 살이 찐 거야?”

“휴식기는 편하게 지내니까 살이 찌지.”

그래도 다행이다. 설마 눈앞의 사람을 디커슨이라고 생각할 한국인은 없을 테니까.

“몰라 보는 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려나?”

민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디커슨이 피식 웃었다.

“잘 아네. 쉴 때는 편하게 지내야하는데 미국은 워낙 파파라치가 심해야지. 가끔 팬들도 나를 몰라 볼 때도 많고.”

“근데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라갈 건 아니지?”

“걱정 마. 나는 프로니까. 개런티가 입금되면 금방 예전 체형으로 돌아가. 너네 집 근처에 좋은 짐이 있으면 소개해줘.”

“우리 집? 호텔로 안 가고? 제작사에서 잡아줬잖아.”

“호텔은 불편해. 너희 집은 두 명이 살기에 좁아?”

“그건 아니지만. 그게 편하다면야 그렇게 해.”

디커슨이 일찍 입국한 이유가 아마도 살을 빼기 위해서인 듯.

민우가 구매한 아파트 단지에는 전용 헬스장도 있다. 디커슨은 그곳을 이용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아니 이 치킨과 맥주는 왜 끊을 수가 없는 거냐고!”

디커슨의 절규에 민우가 놀리듯 말했다.

“프로라며? 너 살 더 쪄서 무대 올라가는 거 아니냐? 완전 흑역사 될 텐데.”

피땀 흘려가며 운동으로 뺀 살은 치맥으로 본전치기 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민우가 나섰다.

“식단은 내가 짜서 만들어 줄 테니까 너는 운동만 해. 배달 앱은 지우고. 어째 한국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깐 앱이 배달앱이냐?”

“휴식기 버릇이야. 미국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거라.”

“됐고. 내일 아침부터 내가 만든 것만 먹어.”

민우는 닭가슴살을 이용한 다이어트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거의 공짜로 부려먹는 인력이니 정성을 쏟아야지.

입맛에 맞았던지 그날 이후로 치맥은 끊었다.

덕분에 디커슨의 후덕했던 살은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디커슨이 입국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별안간 엘리자베스가 입국하겠다며 연락이 왔다.

다행히 엘리는 예전처럼 날씬했다.

“디커슨이 민우의 집에 머물며 매끼니 얻어 먹고 있다지? 사진을 보내서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그래서 내 방은 어디야?”

“호텔···.”

“놉. 나도 방 하나 내줘. 설마 집이 좁은 건 아니지? 할리우드 스타인데?”

“외국인은 사생활이 철저한 거 아니었어?”

“음식도 물도 다른 곳인데 호텔에 던져놓고 방치하겠다고? 그게 진심이면 실망할 거 같은데. 가이드, 잊지 말아줬으면 고맙겠어.”

“알겠어, 가자.”

둘은 민우의 집으로 갔다.

디커슨의 후덕한 모습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익숙한 일이라 엘리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민우가 만들어주는 다이어트식에 욕심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민우는 외국인 둘의 식모가 되었다.

“내가 판 무덤이라 어쩔 수 없네.”

비싼 몸값의 스타들이 민우만 보고 오지 않았던가. 찍소리하지 않고 해줘야지.

출연자가 정해지자 인터뷰를 비롯한 미팅을 시작했다.

아무리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각자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몇 팀씩 나눠서 미팅을 해야 했다.

윤다예와 함께 온 ‘하모니걸’은 민우를 발견하고는 주위로 몰려들었다.

“팬이에요. 여기 싸인 좀 해주세요!”

엉겁결에 싸인을 해주고.

“저는 사진도 같이 찍어주세요.”

어리둥절, 함께 사진도 찍었으며.

“근데 방송에서 보니까 요리를 엄청 잘하시던데. 리얼예능이었으니까 리얼이었죠?”

“얘는. 다예가 편집 아니라고 한 말 못 들었어? 언제 우리랑 함께 캠핑 가는 건 어때요?”

“몸만 오세요! 준비는 우리가 다 할게요!”

“맞아, 맞아. 오셔서 요리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는다. 모든 팀을 통틀어 비글미에서 압도적이다.

다들 20대 후반이라고 들었는데 관리를 잘 한 덕분에 아직 현역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이것이 바로 여자 아이돌의 위엄인가?

민우는 주변에 몰려든 여성들 때문에 혼이 쏙 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연예인의 연예인이 된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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