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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 집행하러 왔습니다 (76/223)

공무 집행하러 왔습니다

WI 엔터는 최근 4명의 이사가 실적에 목숨을 걸다 보니 빠르게 성장했다.

공격적인 영입과 투자가 이어지면서 업계의 평판도 좋아지는 중이고.

회사가 커지니 인지도 있는 스타들도 WI 엔터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스타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회사니까.

이런 선순환이 이어지자 이사들은 더욱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를 원했다. 자칫 잘못하면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

이필성은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하루가 즐거웠다. 하던 일이 잘 풀리고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특히 오늘. 보고서를 받아 들고는 기쁨을 금치 못해 입이 쭉 찢어졌다.

“드디어 내가 선두군.”

회장은 매출 선두를 6개월간 연속으로 유지하면 대표 자리를 준다고 했다.

“고지가 이제 눈앞이야.”

음흉하게 웃던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시차준의 이름을 발견했던 탓이다.

사재를 털어 밀어줬던 시차준은 영 힘을 못 썼다. 그래서 버렸다.

“지뢰가 될지도 모를 녀석을 쳐낸 건 좋은 선택이었어.”

배우의 수입은 출연료와 광고에서 나온다.

시차준은 ‘녹턴 에튀드’에서 인지도를 끌어올리지 못한 바람에 아직도 조연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히 출연료도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광고를 찍었느냐? 유명하지 않은 사람에게 광고를 줄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방치된 시차준은 재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며 FA가 풀리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필성은 털끝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반면 하연희 요 이쁜 것은 드디어 해내는구나.”

그가 심혈을 기울인 하연희가 드디어 터졌다.

작년 말에 촬영했던 영화가 800만을 돌파하면서 흥행력도 검증했다.

연기파 여배우의 등장에 방송가는 물론이거니와 기업들도 하연희를 눈독 들이기 시작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광고와 행사를 6개월간 뺑뺑이 돌리면 대표 자리에 앉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녀의 계약 조건은 7 : 3. 덕분에 회사의 수입도 어마어마하다.

재계약할 때면 11:0이 되겠지만, 아직 한참 남았기에 더 빨아먹을 수 있다.

하연희도 불만은 없을 거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녀를 키운 것은 이필성 자신이었으니까.

“이제 WI는 내 거야.”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물고 창가에 섰다. 여기서 보는 풍경도 곧 달라질 것이다. 이 건물의 꼭대기에 자신의 자리가 마련될 테니까.

시가의 끝을 커터로 툭, 자르고 불을 붙였다.

“스읍.”

매캐한 연기에 머리가 띵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이내 기분 좋은 고양감이 온몸을 깨웠다.

니코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시가의 맛을 음미하던 와중.

“안된다니까요!”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이내 시커먼 수트를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필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너희들 뭐야! 뭔데 남의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오는 거야!”

목청이 얼마나 큰지 사무실에 그의 목서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에헤이, 길 좀 터 봐요. 제가 나서지를 못하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사내들이 반으로 갈라지자 키가 껑충하게 크고 깡마른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금테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안경알에는 먼지 한 톨 묻어 있지 않고 반질반질 빛이 나고 있었다.

사내가 심드렁한 태도로 물었다.

“이필성 씨, 본인 맞습니까?”

이필성이 후, 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통성명은 지랄. 너는 누군데?”

“서울 중앙지검 윤경구라고 합니다.”

윤경구가 검사 신분증을 코앞에 들이밀었다.

화들짝 놀란 이필성은 뱉으려던 담배 연기를 꿀꺽 삼키고는 재빨리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검사님이 여기를 왜···.”

“왜긴요. 공무 집행하러 왔지. 잘 들으세요.”

귀찮은 티를 팍팍 낸 윤경구가 랩을 하듯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이필성 씨, 귀하를 현 시각으로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말을 잠시 끊은 그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미란다 원칙 듣기 지겹죠? 나도 지겨운데 헌법상 꼭 고지해야 돼서 어쩔 수 없더라고. 그리고 구속영장 보여 달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직접 가져왔으니까 확인해보시고.”

윤경구는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뭐해요? 받아서 확인하시라니까.”

이필성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받아 들었다. 윤경구의 말대로 구속영장이다.

“증거가 워낙 명확해서 영장은 신청하자마자 나오더라고. 그럼 가실까요? 검찰청 국밥도 꽤 맛있으니까 끼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아참. 거기 가면 반가운 얼굴도 있을 거예요. 중삐리인데 이름이 최 뭐더라?”

이필성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최경필. 어리다고 만만하게 생각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그 자식이 사달을 일으킨 게 분명하다.

“이럴 수는 없어···. 꼭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꼭대기는 개뿔. 그럼 갑시다. 퇴근하려면 서둘러야지.”

혼백이 빠져버린 이필성은 사내들의 억센 손아귀에 붙잡혀 사무실에서 끌려나갔다.

* * *

[한수연에 관한 루머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루머의 배후는 모 엔터테인먼트 이모씨]

└모 엔터가 W읍 엔터라는 소문이 있음.

└님 고소당하기 싫으면 글 내리세요.

└너는 한수연한테 고소당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댓글들이 가관이네.

└제가 전부 스샷 찍어서 한수연한테 보냈음.

└이때껏 고소당한 적 없는데? 내 댓글이 진실이니까 고소를 못 한 거 아니겠어? 언제나 진실은 승리하는 법. 피쓰!

└피쓰래 미친 ㅋㅋ

└뭐지? 이 쿨 한 척 하는 찐따는? 너 곧 소장 날아 올 거다. 그때도 쿨 한 척 할 수 있는지 보자.

이필성이 기소되고 석 달쯤이 지나자 루머 유포자들의 재판이 열렸다.

[모 엔터테인먼트 이사 징역 5년 구형]

증거가 명백하고, 죄질이 매우 나빠서 이필성은 법정최고형이 구형되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WI 엔터에서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것은 당연한 일. 경쟁자가 약점을 보였을 때 재기할 수 없도록 물어뜯어야만 한다.

[모 엔터테인먼트, 이모씨에게 배임 횡령 건으로 고소장 접수]

더 이상 촉법소년이 아니게 된 최경필도 법의 심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둘만 처벌받으면 섭섭하리라 생각했는지, 한수연은 칼을 빼 들었다.

[한수연, 심각한 악플러 용서 없이 고소할 예정]

└님들 쫄지마셈. 끽해야 벌금임.

└싹싹 빌면 용서도 해준다. 겁먹지 마라.

└뭔가 찔리니까 고소하는 거 아닐까?

└얘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니들이 말하는 용서는 사안이 경미해야 하는 거고.

└벌금형 받고 전과자 되면 참 기쁘겠다.

└나 치킨 시켰어. 힘내라 너희들. 꿀잼 빅매치가 눈앞이네 개꿀!

└나는 팝콘 뜯는다!

민중 봉기를 하듯 버티던 악플러는 하나의 기사가 올라오자 펄쩍 뛰었다.

[법무법인 한얼, 한수연 사건 맡는다]

‘한얼’은 업계에서 독사라고 불린다. 그곳에 한수연이 의뢰했다는 소식이 기사로 나가자, 루머를 진실처럼 호도하던 네티즌은 벌벌 떨며 자신이 작성했던 댓글을 지워야 했다.

그러나 때는 늦어 이미 증거는 차고 넘칠 정도로 수집된 상황.

가뭄에 콩 나듯 글이 리젠 되던 한수연의 팬 카페도 쏟아지는 사과문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한수연은 경미한 악플러와 심각한 악플이라도 두어 번만 작성한 이들은 용서했다. 지속적으로 악플을 달았던 사람은 예외 없이 고소장을 날렸다.

그렇게 쳐내고 쳐냈는데도 경찰서에 출석한 사람만 무려 30명은 되었다.

회사원부터 백수, 학생까지 직업은 물론 나이, 성별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모조리 경중을 따져 벌금형에 처했다.

루머에서 벗어났지만 예전의 위상을 찾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그러나 그녀는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와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인지도든 뭐든 이제부터 자신이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 * *

민우는 이른 점심을 먹었다. 오늘 예능 멤버의 오디션이 있기 때문이다.

홍경섭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던 그가 피식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디션을 보던 입장이었는데, 이제 오디션 심사를 하네.”

“많이 컸다, 강민우.”

“원래 키는 내가 좀 더···.”

“거기까지. 유행 한참 지난 거 알지? 더 하면 뇌절이다.”

“기사는 좀 올라왔어?”

“직접 확인해봐.”

홍경섭이 기사를 검색해서는 태블릿 PC를 밀어주었다.

[제프리 브라운 ‘배역 수정을 했다. 걱정하지 말라.’]

[배역의 수정은 있었지만 밝힐 수는 없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성공적]

제프리의 기사 전문은 확실히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감독이 그렇다잖아. 영화 개봉하면 욕해도 늦지 않다.

-이게 다 표 좀 팔아 보려는 수작이지.

└뻔하지. 용감한 백인이 앞에서 싸울 동안 우리의 똥양인은 뒤에서 오또케 오또케 이러면서 서포트나 하고 있겠지. 뻔한 거 아님?

-한수연 사태 모르냐? 중립기어 박아라. 나중에 댓삭튀 하지 말고.

예상외로 네티즌은 세 개의 무리로 나뉘어 댓글로 떠들어댔다.

새로운 기사는 아니다. 이 기사는 3개월 전에 작성된 거다.

가장 최근 기사는 2달 전 최경륜이 기자에게 소스를 줬던 기사였다.

[라찬(라스트 찬스) 밴드 오디션 개최]

최경륜 PD는 무명연예인들을 위주로 밴드 오디션을 개최한다. 현재 확정된 메인멤버는 배우 강민우 씨가 유일하며, 드럼, 기타, 베이스 3명을 뽑을 계획이다.

밴드는 결성 1년 후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다.

논란이 될 줄 알았던 이 기사는 잠시 반짝하더니 이내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한수연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네티즌들이 몸을 사렸기 때문이라 예상된다.

연예인의 자살 사건까지 들먹이며 자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니 그럴 수밖에.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좋으니까 좀 논란이 되면 좋을 텐데. 너무 조용하니까 이것도 좋은 일이 아니네.”

“오래는 안 갈 거야.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해지니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네.”

민우가 입맛을 다셨다.

“오늘 오디션 볼 사람은 몇 명이래?”

“스무 명.”

“그게 끝이야?”

“응. 서류 접수한 사람을 전부 합격시켰는데도 20명이래.”

좋은 기회라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의외다.

“아마 너 때문인 거 같아.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이미지에 불똥이 튈 수도 있으니까. 특히 연예인에게 투철한 애국심을 강요하기도 하고.”

“그럼 오디션에 지원한 사람 중에 중국에 우호적인 사람도 있겠네?”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

“그럼 첫 질문은 정해졌네.”

“거르게?”

“걸러야지. 사고는 미연에 방지해야 해.”

“그래. 고생해라. 나는 태근이 준비시켜서 데리고 올게.”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우리 사람이라고 백 퍼센트 합격시킬 생각은 없어.”

“알았어. 충분히 알아듣도록 설명해둘게.”

“그럼 이따 보자.”

차에서 내린 민우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디션 시작은 오후 2시. 아직 30분 정도 남았음에도 몇 명의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민우를 발견한 스태프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셨어요?”

얼굴이 낯이 익다 싶었더니 일전에 프랑스에서 함께 생활했던 VJ다.

“성함이 탁광준 씨였죠?”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생활했는데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때 참 재미있었는데. 아참, 내 정신 좀 봐. 최 피디님은 미리 오셔서 준비 중이세요. 이쪽으로.”

오디션장은 긴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다. 테이블의 맞은편에 최경륜과 처음 보는 30대 여성이 앉아있고.

민우를 발견한 최경륜이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민우가 비어있는 의자에 앉자 최경륜이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라찬밴드 메인 작가 심여진입니다. 여진 씨, 강 배우님 알지?”

“물론이죠. 이 바닥에 있으면서 강민우 씨를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민우 씨 반가워요. 꼭 한번 같이 일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오디션 심사는 처음이시죠? 준비는 많이 하셨어요?”

“그럭저럭한 것 같습니다.”

민우는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21일에 오디션을 얼마나 많이 봤었던가.

심사위원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질문을 어떤 타이밍에 하는지. 이러한 것들도 모두 뇌리에 담겨있다.

그 뿐인가? 얼마나 합격이 간절했으면 가수 기획사의 오디션까지도 봤었다.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이라 합격은 못 했지만 그 경험들은 민우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우선 오늘 오디션의 중점은 다들 아시다시피 얼마나 간절하냐입니다. 그런 간절함을 TV로 옮겨야 하니까요.”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1번 참가자 들어갑니다.”

벌써 오디션이 시작될 시간이다.

민우는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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