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 투나잇 (44/223)

파티 투나잇

사이 좋은 멤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최경륜이 물었다.

“오늘 숙소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조리가 되는 게스트하우스면 좋겠어요.”

“사람도 많고 잠자리도 불편할 텐데 괜찮겠어?”

“쉴 때는 편하게 쉬는 게 낫지. 호텔 같은 곳으로 잡자.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잖아.”

민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형들. 우리 예능 촬영하는 거예요. 우리끼리 한방에 모여 있다고 생각해 봐요.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냥 TV를 보거나 술이나 마시다가 잠을 자겠죠.”

정말 그럴 것 같은 미래가 그려진다.

몸을 부르르 떤 정용수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또 그러네. 우리끼리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보름이나 있어야 되잖아. 어유, 지겹다 지겨워. 난 민우 의견에 찬성.”

이석하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럼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

어디를 가든 사람이 따라붙는 한국에서는 물 마시는 것도 조심해야한다.

감시하는 눈이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숨 막힐 때도 있었다.

작품 활동이 끝나고 6개월간 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것.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이번 예능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백선재라고 자신을 소개한 현지 코디네이터가 숙소를 섭외하는 사이 차량은 한인 마트에 도착했다.

카트를 끌고 가던 이석하가 라면 코너 앞에서 어울리지 않게 애교를 떤다.

“나는 라면이 먹고 싶어요!”

칠색 팔색한 민우가 라면을 카트에 가득 실었다.

“드세요! 잔뜩!”

만족한 이석하는 라면을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꼭 해외에 나오면 얼큰한 게 먹고 싶더라.”

“아직 프랑스에서 하루도 안 지났는데요.”

“비행기 타는 순간부터 쳐야지.”

기적의 논리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격이 한국에 비하면 쎈 편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먹고 마시고 놀려고 돈 번 거 아니겠는가.

외국이라 한식을 만들기 위한 식자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닭과 햄, 각종 채소, 삼겹살과 상추를 비롯한 쌈 채소들도넉넉하게 샀다.

고추장 같은 장류도 구매하고, 양념에 쓸 조미료도 챙겼다.

한국의 닭을 공수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프랑스의 ‘브레스’라는 토종닭을 샀다.

가격은 비쌌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프랑스에서 유명한 닭을 먹어 보겠나.

장보기를 마치고 차량에 올라탔다.

최경륜이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숙소에서 촬영 허가받는 중이라서요.”

전화를 받고 있던 백선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궁금해하는 일행에게 백선재가 말했다.

“현재 숙소에 머무는 외국인은 남녀 섞어서 5명이래요. TV쇼에 출연한다니까 기대도 한다네요.”

백선재가 불러주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이동했다.

건물 외벽에 장미 넝쿨이 인상적인 게스트하우스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1인당 50유로. 멤버들 숙박비만 계산하기에 150유로를 지불하고 4인용 객실 하나를 잡았다.

VJ는 객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서, 정용수와 이석하는 주방에 짐을 내려놓고 그들을 따라 객실을 살피러 갔다.

재료정리는 요리할 민우의 몫이다.

VJ 한 명이 주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 사이 민우는 형들이 옮겨준 식자재를 아일랜드에 풀어 하나씩 정리했다.

“음? TV쇼 한다는 분인가?”

검은색 머리카락의 20대 초반 여성이 물을 마시다 말고 러시아어로 중얼거렸다.

“맞아요. здравствуйте(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자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프랑스에서 러시아어를 들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저는 강민우라고 해요.”

“아, 저는 티나 마슬로바예요.”

“프랑스에는 여행 왔어요?”

“네네!”

티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외국에서 모국어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민우는 말을 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능숙하게 재료를 가르고 요리 준비를 서둘렀다.

티나가 뚫어지게 보고 있다.

물을 담은 볼에 쌀을 담그던 민우가 물었다.

“혹시 한식 먹어봤어요?”

“아뇨.”

“제가 이따 대접해드리는 영광을 누려도 될까요?”

민우의 너스레에 짤랑짤랑하게 웃은 티나가 소매를 걷고 나섰다.

“제가 요리사 지망생이라 요리는 좀 하는데. 거들어 드릴까요?”

요리에서 밑 재료 손질이 반이다.

민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프랑스 요리를 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한식을 골랐다. 외국인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들로.

메뉴는 찜닭과 부대찌개. 거기에 요리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삼겹살 구이.

들렀던 한인 마트에서 파는 부족한 식자재로는 이게 최선이다.

우선 찜닭. 입맛만 돌 정도로 아주 살짝 맵게 할 생각이다.

당면은 물에 담가 불려놓고, 닭을 토막 냈다. 토막 낸 닭은 깨끗한 물에 씻어내고 잡내 제거를 위해 우유를 섞은 물에 담가두었다.

당면이 어느 정도 불 때가 되면 마저 조리하기로 하고 한쪽으로 치웠다.

다음으로 할 음식은 부대찌개.

햄은 외국에서도 구하기 쉬운 재료다.

스팸과 비엔나소시지를 잘라 살짝 데친 후 바닥이 넓은 냄비에 담아두었다. 양파를 비롯한 각종 채소도 둘러놓았다. 마지막으로 김치로 한쪽을 장식하고 준비를 끝냈다.

이대로 양념장과 육수를 붓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외국인이 5명에 민우의 멤버와 스태프를 포함하면 총인원만 15명이다.

삼겹살도 넉넉히 사뒀으니 음식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불고기를 하고 싶었으나 찜닭이 달곰하니 맛이 겹칠까 봐 다음에 먹기로 했다.

후식으로는 파전을 할 생각이다.

“이 술은 뭐예요?”

“아 막걸리예요. 마셔보면 마음에 들 거예요.”

“지금 하나 마셔 봐도 되나요?”

“나중에 안주랑 먹는 걸 추천해요.”

입맛을 다시던 티나는 겨우 미련을 떨쳐냈다.

당면이 어느 정도 불자 다시 움직였다.

불린 쌀을 냄비에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찜닭과 부대찌개도 조리를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자 사람들이 하나둘 주방으로 내려왔다.

5명뿐인 외국인은 인종도 다양했다. 흑인에 백인, 그리고 동양인까지.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노신사도 있었다.

“파티에 초대해 줘서 고맙소.”

자신의 이름을 월터라고 밝힌 노신사가 정중한 태도로 감사를 표했다.

흑인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크레이그. 독일에서 왔어.”

대만에서 왔다는 동양인은 즈웨이, 미국 출신 베키까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어떻게 국적까지 다양한지.

인사를 마치고 민우가 준비한 요리들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밥도 퍼서 나눠주었다.

냄비 밑에 눌어붙은 밥은 누룽지를 할 생각이다.

크레이그가 테이블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오, 음식 향이 좋은데.”

즈웨이가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군침을 삼켰다.

“한식이네요. 예전에 한국 갔을 때 맛있게 먹었는데. 오랜만에 그 맛을 느끼겠네요.”

“찜닭과 부대찌개입니다. 드셔보세요.”

각자 음식을 덜어가 입에 넣는 순간, 하나같이 동공이 확 커졌다.

어떤 음식이건 간만 잘 맞으면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런데 절묘한 간은 둘째 치고 달고, 짜고, 매운맛이 조화되어 입안에 휘몰아친다.

밥 한 숟갈, 찜닭 한 조각, 부대찌개 한 숟갈.

연신 엄지를 들어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까지 하다.

슬쩍 웃은 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남은 기름을 조금만 남기고 버린 다음 김치도 볶았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소주를 꺼내 삼겹살 구이와 함께 테이블에 올렸다.

한국 사람들은 익숙하게 상추쌈을 만들어 먹었다. 그들이 하는 양을 살피며 외국인도 따라 했다.

상추에 고기 한 조각, 쌈장 조금, 잘라낸 마늘과 파채, 볶음김치를 올리고 입안에 넣는 순간 크레이그가 부들부들 떨었다.

“오 갓···.”

몸을 희생해준 돼지에게 감사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 맛이다.

다들 정신없이 먹었다.

배가 불러서 더는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촤아악-!

갑자기 식욕이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소한 냄새는 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민우에게로 향했다.

오징어와 칵테일새우, 삼겹살, 홍합, 양파를 올린 파전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서 막걸리와 함께 내왔다.

레귤러 사이즈 피자 만한 파전은 각자 하나씩.

“저는 소식하는데···.”

그렇게 말한 티나가 제일 많이 먹었다. 날씬한 몸에 어떻게 그리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지.

밥을 한 냄비에 물을 붓고 누룽지를 만드는 사이 느긋하게 파전과 막걸리를 즐겼다.

월터가 해맑게 웃으며 캔을 들어 보였다.

“막걸리라고 했나요? 이 술도 맛있군요.”

“한국과 달리 캔에 든걸 팔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는 더 맛있는 막걸리도 많습니다.”

“그래요? 언제 한 번 한국에도 들러야겠군요.”

누룽지로 입가심까지 하자 딱 기분 좋은 포만감에 헐떡였다.

“좋은 음식을 받았으니 답례는 해야지.”

크레이그가 자신의 숙소에서 젬베를 가져왔다.

모두가 기대감을 품고 바라보는 와중, 크레이그의 손이 움직였다.

타탕, 탕탕.

연주와 함께 노래도 불렀다. 역시 소울하면 빠지지 않는 인종답게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

기타 연주에 푹 빠진 이석하가 여기서 빠질쏘냐.

대뜸 클래식 기타를 가져와서는 모자란 실력이지만 열심히 연주를 시작했다.

크레이그가 젬베로 받아주자 두 명의 즉석 합주가 이뤄졌다.

이석하가 한참 연습 중인 곡을 연주했기에 모두가 아는 노래였고, 베키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참다못한 정용수가 뛰쳐나가 즈웨이와 함께 춤을 췄다.

최경륜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호텔을 숙소로 잡아서 멤버만 모아뒀다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그는 장담할 수 있었다. 절대 아니라고.

대충 멤버들끼리 술을 마시고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나눈 후 잠자리에 들겠지. 너무 많이 봤고, 또 예능에서 흔한 장면이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이 장면을 방송에 내보내면 어떤 반응이 올까 하는 설렘에 가슴이 자꾸만 두근거렸다.

얻어먹기만 하기는 뭐 했던지 월터가 와인을 내왔다.

“지인에게 선물하려고 구한 건데 오늘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센스 있게도 파티 자리에 초대되자마자 코르크 마개를 따뒀단다.

식사 때 먹고 남은 술도 모조리 내왔다.

티나가 나섰다.

“그럼 안주는 제가 해볼까요?”

삼겹살 남은 것과 닭고기를 채소와 같이 간단하게 볶아서 내왔다.

출출한 사람을 위해 라면도 끓여서 내왔다.

먹고 마시고 논다. 어찌 힐링이 되지 않을까.

민우는 와인 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가던 이석하가 땀을 닦으며 민우에게 기타를 내밀었다.

“너도 한 곡 불러.”

“그럴까요?”

씩 웃은 민우가 기타를 받았다.

민우의 화려한 연주와 노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끌어냈다.

파티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술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으며, 즐거운 음악까지 있으니 분위기가 안 좋으려야 안 좋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민우는 닭죽을 끓여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간밤에 과음을 한 사람들이 닭죽을 나누어 먹고는 연락처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룻밤에 불과한 인연이었지만 이런 것도 게스트 하우스의 묘미 아니겠는가.

티나가 한국에 여행 가면 꼭 가이드를 해달라고했는데, 그때 민우가 시간이 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민우 일행은 다시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나?”

정용수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던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자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멤버들이 어리둥절한 와중, 한 여자가 민우를 가리키며 외쳤다.

“화가님 오셨다!”

흩어져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우에게로 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