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후우….'
보지 축사의 관리인, 강간 보조 일이 끝나면, 다프네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출근 거리를 생각해서 살점 낙원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는 무인 주택을 받기로 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허름하지만, 귀족 중에도 검소했던 다프네는 불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귀족이 아무리 검소해봤자, 무엇 하나 부족함 없던 삶을 살던 다프네다.
찬물로 샤워하면서 몸을 떨어야 했지만,
촉괴의 정액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추, 추워…."
아이라 여왕 집권 36일째.
아카데미의 여학생은 보지 가축이 되거나, 모판이 되거나,
머지않아 그렇게 될 운명에 놓였다.
왕립 아카데미 데세발은…… 오나홀 아카데미가 되었다.
다프네는 애써 무심해지려고 노력했다.
눈앞에 닥친 일만으로 벅차다.
애초에 '오나홀'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알겠다.
[친구들만은 놓아달라고?]
[일을 벌일 땐 친구들끼리 뭉쳐서 하다가]
[잘못되니까 친구를 위하는 마음을 갸륵히 여겨서 풀어달라?]
[그렇게 친구가 소중하다면, 너한테 좋은 직업을 주마]
왕립 아카데미의 정규반, [푸른 달]의 리더.
아스트라 가문의 천재.
공부도 잘하고, 검술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아서 인기가 많았던 청발청안의 미소녀는.
보지 축사의 관리인이 되었다.
고통받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살해당하지 않은 만큼 나은 상황이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무력감에 시달리는 나날.
얼마 전까지 셋이서 부지런히 수련하던 게 거짓말 같다.
'아, 먹을 게 떨어졌어….'
보관고를 열어본 다프네는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가진 지위와 명예를 잃고 바닥까지 떨어진 후에는.
먹고 사는 것이 큰 과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콱 굶어 죽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내 친구와 학생회 사람들 입에는 괴물의 역겨운 분비물─좆밥─을 떠먹인 내가,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자격이나 있을까?
그래서 처음 나흘은 굶었다.
꼬르륵.
그러나, 파멸적인 배고픔은 소녀의 고집을 간단히 부러뜨렸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장을 보러 나간다.
촉괴가 무급으로 일하게 했으면 큰일 날 뻔했지만,
의외로 관리인 일은 봉급이 나온다.
수상할 정도로 인간 사회에 빠삭한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몇몇 여자들과는 친하게 교류하는 것 같으니까,
사람에 관해 잘 알아도 이상할 건 없지만….
'…촉돈 뒷다릿살.'
자취하는 이의 영원한 친구. 돼지 뒷다릿살이다.
양도 많고, 가격도 착하고, 친구의 보지 즙을 먹고 고속으로 자라난 영양 만점의 돼지다.
다프네는 입안에 군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이 돼지고기는 제법 맛있다.
가격도 싸다. 고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 근만 주세요."
"예잇."
처음에는 쳐다보는 것도 싫었는데.
이런 심경의 변화는 말로만 들은 '정신 오염' 때문인가 싶긴 하다.
이런 곳에 살면 누구나 정신이 피폐해질 테지만,
정신이 오염되었다기보단, 아마 적응한 탓일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인간도 짐승이나 다름없어.
왜 인간만 특별하다고 생각했을까?
"꺄앗!"
비명?
대파와 고기를 장바구니에 담아서 돌아가던 다프네는,
촉수 원숭이한테 둘러싸인 젊은 여성들을 발견했다.
다프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이미 연습도 하지 않게 된 세검이었지만, 지난 노력은 다프네를 배신하지 않는다.
'달빛 검술……!!'
촤악!
촉수 원숭이가 저항할 틈도 없이,
다프네는 화려한 세검 찌르기로 촉수 원숭이의 동체에 구멍을 내고, 산산이 조각냈다.
사람을 구할 때는 망설임이 피해를 부른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공격이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종결지었다.
펑!!
창백한 달빛을 쏟아내면서, 다프네는 우아하게 서서 여자들을 둘러보았다.
"괜찮으세요?"
"히, 힉…."
"안심하시길, 괴물은 모두 죽였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구조받은 사람들도.
"누가 구해달래!"
"네?"
"치마를 들치길래 좀 놀라서 소리쳤을 뿐이야. 난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
"하, 하지만……."
다프네가 오히려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난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 다들 봤지? 저는 아무 잘못 없어요…! 이 여자가 마음대로 한 거예요!"
"맞아! 우리 듬직한 괴물 군을 해치다니, 뭐 하는 짓이야?"
어디선가 소란을 듣고 온 촉수 원숭이가 모여든다.
"지, 진짜 별꼴이야. 우리는 팬티 정돈 보여줘도 상관 없었거든? 낙원에 가서 반성해!"
"읏…!!"
다프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세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추, 축사의 다음 보지 가축은… 나……?
비명을 지르는 소녀를 구했다는 이유로?
덜덜덜 떠는 다프네를 중심으로 촉수 원숭이가 둘러싼다.
'안 돼. 가축은… 가축은 싫어…….'
울먹거리는 다프네를 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촉수 원숭이 따위,
백 마리가 덤벼도 이길 수 있는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인 그녀가.
아빠에게 벌을 받는 어린 소녀처럼 가만히 떨고 있었다.
그때.
촉수 원숭이 중 하나가 손을 내민다.
그 손에는 좀 전에 그녀가 인명 구조를 하기 위해 뛰쳐들기 직전,
놓고 간 장바구니가 있었다.
"이건……."
「팬티」
일할 때 들었던 촉괴의 목소리다.
"…네?"
「팬티 보여줘」
"……."
그 여자들의 스커트를 들추는 게 실패했으니까…?
나한테 대신 그 값을 지불하라는 것일까?
다프네는 살짝 기가 막혔다.
여자들을,
평생 갈고닦은 검 실력으로 구해주고 나서 괴물한테 팬티를 보여준다.
그 대가로 풀려난다…?
뭐야, 이게…?
「팬티」
"읏……."
「오늘 팬티 무슨 색」
다프네는 세검을 내려 놓고,
팬티 들추기를 방해한 대가로 본인의 스커트를 올려 팬티를 공개했다.
푸른색 스프라이트 팬티였다.
장바구니를 돌려받은 다프네는,
현타 온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귀가했다.
'……인간은, 괴물에게 패배했어요.'
이것이 왕국의 현 모습이다.
모든 게 촉수 괴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사회 구조도 변했다.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마왕을 죽이기 위해 훈련하던 것이.
이제 무슨 소용이지?
예전에는 단지 마왕과 싸우는 걸 준비한다는 이유로,
다프네를 포함한 여학생들의 사회적 지위는 쓸데없이 높았다.
아카데미의 무력은 나라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였으며,
특히 정규반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최고의 환경에서 몸을 단련하는 것만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프네는 사회 규범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정의감을 불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악랄한 괴물이 싫지만, 세상을 부정할 정도로 의욕을 불태울 자신이 없다.
덤빌 엄두가 안 났다.
어쩌면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짐승 같은 교성을 지르며,
촉괴가 주는 엄청난 행복감에 젖은 친구의 하트 눈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건 너무 무섭다.
……어쩌면 죽는 것보다도 더.
용사 파티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생에 걸쳐 만든 자신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남은 건 귀족 영애라는, 태어나면서 입에 문 수저뿐.
그마저도 이제는 없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몇몇 귀족 가문이,
병을 일으켰다가 전멸한 이야기를 들었다.
확인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저 벅찼다.
거리에 들어선 식품 매장에서 몇 가지 식자재와 필요한 물건─생리용품 등─을 사고 돌아온 다프네는.
그것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일부만 가져와서 요리를 시작했다.
'…….'
치익치익.
고기가 익는다.
베아트리체가, 어쩌면 부회장이, 학생회장이, 혹은 다른 축사의 이름 모를 여자가 낳았을지 모를.
촉수 돼지의 뒷다릿살을 먹는다.
여러 가지 생각과 함께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씹을 때마다 기름진 맛, 진한 육향이 배어 나왔다.
"……맛있어."
다프네는 생각했다.
어째서 촉괴는 자기한테 이 일을 맡긴 것일까.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 여력이 충분히 있으면서.
잘못을 반성하게 할 의도였다면 이제 충분하다.
언제 그 축사의 일원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샤워할 때, 자려고 옷을 갈아입을 때…… 묘한 시선을 눈치채는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오싹오싹한다.
기분 탓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일 수고 많았어」
"힉!"
침대 밑에서 촉수가 뻗어 나온다.
식탁 앞에 앉아 있던 다프네는 깜짝 놀라서 뒤로 엎어졌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전투 스킬은 다 까먹었는지, 맨발로 토닥토닥 촉수를 걷어차면서 질겁한다.
"저리 가! 저리 가아!"
「남편한테 무슨 말버릇, 아니 발 버릇이야?」
"누가 남편이에요!"
괴물.
증오스러운 괴물!
그런데도, 이 생활이 지속되는 동안 마음 어디선가.
굳은 신념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사회가 만들어준 정의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프네의 적의는 촉괴를 앞에 두고도 맹렬하게 타오르지 못했다.
"나쁜… 괴물…."
심술부리는 촉수를 발로 차면서 훌쩍거릴 뿐.
다프네는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해 본 적도,
사랑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카데미를 나와서, 자신은 용사가 될 자격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한 달간 동거했으면 사실혼이나 다름없지」
그럼에도.
이 킹받는 촉수의 발언을 하나하나 듣고 있자니,
다프네는 입술을 앙다물고 최대한의 적의를 담아 노려보게 되었다.
"…한 달동안 엿보고 있었어요!?"
「갈아입을 때마다, 화장실 갈 때마다, 샤워할 때마다」
"……윽, 으읏…."
기분 나빠. 기분 나빠.
지금까지 스토커랑 같이 살고 있었다니! 기분 나빠, 혐오스러워!
다프네는 몸을 움츠리고 닭살 돋은 팔을 막 쓰다듬었다.
「자는 얼굴도 귀엽고 예쁘던데, 히히힉」
말하는 게 완전 변태 아저씨였다.
꾸물거리며, 가냘픈 발목을 휘감는 촉수.
방심하면 자기 몸을 꼬옥 죄려고 하니까, 다프네도 계속 발로 걷어찼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깨끗하게 내뻗으면서.
「나이스 킥~」
그것마저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다프네의 볼은 화끈 달아올랐다.
다음화는 10월 26일 23시 업데이트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