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골치 아픈 상황이다.
아카데미가 총력으로 저항하면 힘든 상황이 나올 줄은 알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엘프리데의 강함은 내가 지금까지 상대한 적과는 종류가 다르다.
'격이 다르다'는 뜻은 아니다.
분류, 카테고리가 다르다.
엘프리데는 전투가 아닌 전쟁을 할 수 있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
촉괴수 군세를 거느린 나를 상대로 물량전을 펼칠 수 있는 유니크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학생회장 스킬이 사령술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
베아트리체가 넌지시 물었다.
그녀가 불길로 살점을 벗겨낸, 지하 하수도 던전.
마고, 아네스는 대열의 가장 앞에 서서, 시에나와 베아트리체를 왕성으로 안내하고 있다.
"짚이는 점은 있었어요."
"부회장은 천리안이 있으니까. 결국 직접 말해준 적은 없다는 뜻이네."
"……소문나서 좋을 게 없어요. 어떤 식으로든 난처한 일을 겪었을 테니까."
"그런 걸 겁내다니. 바보 같아."
학생회장이 겁을 냈는지는 몰라도, 자기 정체를 꺼려한 건 사실처럼 보인다.
전 성율 기사단 단장이었던 리아나조차 몰랐으니까.
그 여자는 엄밀히 말하면 학원생도 아니다.
졸업을 할 수 없게 된, 부적합자들의 잔여물 같은 것.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그녀의 정체를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회장님이 겁이 나 숨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 지금은 모두를 위해 밖으로 나온 거예요."
"흥…."
"어째, 조용하네요."
아네스가 말했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불로 정화했으니까."
베아트리체는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벽과 천장에 증식한 살점은 모두 까맣게 불타서…….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도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어요. 추가 폭발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시에나는 천리안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뭐 있어?"
"……많아요. 너무 많아서 식별하기 힘들 정도예요."
"다 태우면 돼."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안에 사람이 있는데 깡그리 태울 만큼 무모하진 않으니까."
「왼쪽으로 진행해」
마고와 아네스가 신호를 받는다.
"이쪽이에요."
통로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살점투성이 통로.
다른 쪽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네스가 가리킨 곳은 척 봐도 무더운 괴물 내장 속 같았다.
예상대로 베아트리체와 시에나는 질색했다.
"또? 확 태워 버릴까?"
"저도 매우 동의합니다만, 가는 길을 모두 불태우면서 갈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먼저 갈까요?"
시에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 앞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나요? 두 분."
"…여기까지 와본 적이 없어서, 몰라요."
"전에 와본 듯 차분하길래 물어봤어요."
베아트리체는 옆구리에 손을 얹고 따지듯 말했다.
"이상하긴 하네. 너희."
여자들 사이에서 불편한 분위기가 감돈다.
마고는 연기가 필요한 시점이란 걸 깨달은 듯, 참지 않았다.
"아, 진짜 못해먹겠다."
"……."
"막말로 내가 부회장 말 안 들은 게 뭐가 있어요?"
"마고… 양…."
"위험천만한 임무도 해낸 동료한테 뭐가 섞였단 이유로, 일부러 앞에 서서 전진하고 있잖아요? 무슨 일 생기면 가장 먼저 당하게 생겼는데."
"……."
……연기, 맞지?
마고의 생활 연기는 찐으로 짜증이 묻어 나와서,
시에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당황했다.
"평민이 귀족한테 감히 대들어?"
베아트리체가 끼어든다.
"저도 귀족이거든요!? 이런 곳 싫어요!"
"셀레스트 가문은 하급 귀족이야."
"……크으읏!!"
……연기가 아니구나.
마고는 엄밀히 따지면 내가 심은 스파이지만,
본래 이런 복합적인 연기가 요구될 만큼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 아니었다.
그 스트레스 때문에 진짜로 폭발해버린 듯하다.
이걸 어쩐다…….
'조금만 더 끌어들이면 되는데.'
이쪽에서는 손을 쓰기 극도로 어려운 이유가, 천리안 때문이다.
천리안이 있는 한, 뒤에서 덮쳐도 촉괴수로 함정을 깔아도 모두 무의미.
전부 한눈에 간파되고 만다.
베아트리체가 시작부터 모두 불사를 줄은 나도 몰랐지만.
오히려 천리안 때문에 일부러 입구에는 아무런 촉괴수도 배치하지 않았고,
안쪽에는 상대를 충분히 끌어들였을 때 천리안이 있어도 상대를 농락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법은 매우 수동적이기 때문에…….
어쩌다 스파이로 심어진 아네스와 마고가 베아트리체랑 시에나를 지정 포인트까지 안내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상대로다.
여기까지 어렵게 왔으니,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즉시 돌아가진 않겠지만.
베아트리체도 시에나도 눈앞에 있는 똥구멍 같은 입구를 통해 괴물 내장 같은 굴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합당한 혐오감이다.
그 안에 위험이 있으니까, 혐오를 느끼는 법이다.
'잡아먹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을, 극도로 거부하는 것은 생물에게 있어서 당연한 위기 본능이다.
"부회장 말대로 정말, 너희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어."
"……."
"이런 곳으로 들어가는 게 왕성으로 통하는 비밀 루트라고? 거짓말도 작작 해야지."
베아트리체는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들었다.
자기가 안내하라고 할 땐 언제고, 참 제멋대로인 아가씨다.
들어가기 싫은 건 이해하겠지만 말이야.
"차라리 여길 나가서, 왕성으로 직접 돌격하는 편이 훨씬 직관적이야."
"그러면 베아트리체 양이 촉괴수를 상대하는 동안, 본체는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겠죠."
뚜벅. 뚜벅.
베아트리체의 학생용 구두 소리가 하수도에 유독 크게 울려 퍼진다.
아네스 코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위압적인 붉은 눈으로 쏘아봤다.
'저, 젖가슴끼리 말랑~하고 닿을 것 같아.'
여러모로 숨 막히는 대진이다.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저는 좀 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을 말씀드릴 뿐이에요."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게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
…너무하네.
살점 구멍이 뭐 어때서.
너희들 몸도 살인데. 내 몸이 그렇게 보기 싫어?
"너, 귀족한테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베아트리체 양이 겁난다면 돌아가도 상관없어요."
"감히!"
베아트리체는 한 손으로 아네스의 멱살을 잡았다.
"저는 괴물에게 가족과 고향을 잃었어요."
"……."
"그게 제가 아카데미의 편입반으로 들어간 이유예요."
"복수를 원해?"
"네. 하지만 제 힘이 역부족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어요."
"그래도 바보처럼 계속 매달렸지."
베아트리체는 살짝 웃고 있었다.
아네스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웃고 있는 건가?
"바보 같다고요?"
아네스는 살짝 욱한 게 보였다.
"절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몰랐어요."
"네가 기특해서 파티로 받아준 줄 알았어? 천만에, 평민 주제에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있는 게 불쌍해서 동정한 거야."
"베아트리체 양! 말이 너무 심합니다."
시에나 부회장이 지적하지만,
베아트리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사회에서는, 너희 같은 평민과 하급 귀족이 나한테 뭐 해달라고 기대어 오는 게 당연해. 너무 약하니까."
"베아트리체 양은…… 저희보다 훨씬 강하시죠."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 줄 알아? 혈통이 다르기 때문이야."
나는 속으로,
건방진 금발 귀족 년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갑자기, 아네스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이를테면, 레벨."
"레벨…."
"인간이란 '종'의 성장 한계치는 9,999레벨이야."
용사가 9,999레벨이었지.
인간을 대표하는 용사라면, 레벨이 그만큼 높은 것도 납득이 간다.
"가엾게도, 너희 같은 평민은 1천 레벨을 달성하는 것도 힘들어서, 힘들어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지."
"……."
베아트리체는 아네스의 멱살을 놓고, 손을 툭툭 털었다.
"고귀한 혈통. 귀족 중의 귀족인 나와 내 친구들은 달라. 처음부터 용사가 되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혈통은, 비교적 간단히 성장 한계치까지 도달해."
"……그래서요?"
"이걸 듣고도 모르겠어? 이 세상에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제 복수가 미련한 짓이라는 거예요?"
"숲을 기어가는 허접한 웜 정도가 복수 대상이었으면 모르겠지만."
베아트리체는 아네스를 대놓고 비웃었다.
"요컨대 힘이 부족하니까, 대신 복수좀 해달라는 거잖아? 내 말이 틀려?"
"그렇게 해서라도 괴물을 죽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럼 감히 평민과 하급 귀족 따위가, 나한테 대들면 될까? 안 될까?"
……결국.
비웃음의 진의는, 마지막에 드러났다.
자기한테 대든 아네스를 굴복시키고 싶어서.
베아트리체는 이 장황한 연설을 펼친 것이다.
"……."
가학적인 광경이었다.
힘으로 갑질하면서, 아네스가 복수를 위해 자신을 굽히는 모습을 보며.
베아트리체는 분명히 기뻐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어떻게 클레어랑 친구 했는지 참 의문이다.
아네스는,
나도 마음이 떨릴 만큼… 예쁜 얼굴로 훌쩍거렸다.
"대들면… 안 됩니다……."
……아네스….
일부러 패배하는 모습이 가장 예쁜, 우리 처제.
아네스와 동성인 베아트리체조차, 다른 의미로 흥분하는 듯 눈빛이 변한다.
새디스트끼리 통하는 게 있구나.
"귀족 중의 귀족이신 베아트리체 양께 대들어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래. 바짝 엎드려야지. 복수하고 싶으면."
"……베아트리체 양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
"옆의 하급 귀족도."
"저도요?!"
마고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불만 있어?"
"……없습니다."
좋아. 들어와. 들어와.
고생 많았어, 얘들아.
살점 구멍에 집중하면, 마치 그녀들을 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마고와 아네스가 모든 밑밥을 깔고 살점 구멍으로 들어간 후.
베아트리체도 다가간다.
"베아트리체 양……. 이 안으로 들어갈 건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로 쟤네한테 화난 거 아니야."
"그럼……?"
"약한 평민들을 위해 마음 써주는 것도 귀족의 의무라는 뜻이지. 부회장."
시에나는 딱히 할 말 없는 듯했다.
그녀의 이상한 가치관에 공감할 가치를 못 느끼는 거겠지.
솔직히 고귀하기로 따지면 시에나가 훨씬 고귀한 귀족 영애처럼 보이고,
베아트리체는 그냥 몸매만큼은 최고로 야하고 예뻐도 성질은 더럽고, 말 맞춰주기 힘든, 자존심 강한 악역 영애 같다.
진짜 고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부회장은, 설치지 않는다.
베아트리체를 보호하러 온, 백금발의 마망.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난처한 모습이다.
시에나는 구멍을 내다보았다.
기분 탓인가? 마치 눈이 마주친 느낌이다.
"먼저 간다. 부회장."
"기다려요. 저도…!"
시에나는 베아트리체를 따라,
뽀얀 다리를 구멍 안으로 넣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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