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마고가 말한 정기 보고 시간이다.
나는 마고가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한발 앞서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목적은 하나.
부회장 시에나 아스트린데를 낚는다.
천리안이란 미친 능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둘 순 없어.
그리고 내 능력 역시 <천리안>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
핑!
마고를 중심으로 촉감각을 넓게 퍼뜨린다.
화질 운운은 이해를 돕기 위한 농담이지만, 시야각이 말도 안 되게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역시 <전충>…….
통신 특화 촉괴수 답게, 단지 보는 창만 바뀌었을 뿐인데 입수하는 정보량부터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촉수 기사단!」
티아, 페유리, 릴시르 자매.
단장 시로코까지 촉수 갑옷 A 타입으로 무장하고 왕성에서 대기 중이었다.
시로코의 촉수 갑옷도 검은 재질에 붉은색이 뒤섞여 있는 치장이 들어간 버전이라, 단장이란 느낌이 풀풀 난다.
머리까지 묶어 올린 시로코는, 앞에 정렬한 기사단원을 내다보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적은?"
「도시에 숨어든 쥐새끼를 처리하는 일을 너희에게 맡긴다」
"그게 다야?"
「아카데미의 부회장을 꾀어낼 거야. 너희는 내가 타깃의 위치를 읊으면 즉시 가서 화려하게 전투를 시작해」
"네!"
"네엣!"
쌍둥이 자매가 기운차게 대답한다.
시로코는 씩 웃었다.
"화려하게 말이지. 알았어. 파괴 피해가 또 늘어날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어쩔 수 없어」
왕립 아카데미 상대로 싸우는데 조용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수습은 또다시 여왕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지」
"고생스럽네. 정치인도. 매일같이 부서져 나가는 도시가 안전하다고 말해야 하다니."
「내 손으로 박살 내지 않는 게 어디야」
한 번 더 촉수 드래곤 다이브를 시도했다간,
이번에는 정말로 도시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리아나, 에피, 리비아는 지금 바쁘니까 여기 있는 인원으로 대처한다」
티아는 눈빛을 보니 이미 전투 태세였다.
"쥐새끼는 용서 못 해요. 촉괴 씨, 알려주세요. 저희의 보금자리를 염탐하는 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즉시 가서, 촉괴 님을 방해하는 자들을 치겠습니다."
금발 왕맘마통 페유리까지, 아주 든든하다.
「곧 알려줄 테니 그대로 대기해」
"네!!"
나는 전충 다리를 휘저어서 마고의 보지를 자극했다.
쥬봇쥬봇쥬봇.
"응! 꺄아!"
「가자!」
"아, 알았어… 부회장을 꾀어내면 되는 거지?"
「숙소 위치는 알아?」
"알고 있어. 하지만 위치를 갑자기 바꿨으면 어떡해?"
「기사단에 명령을 하달했어. 네가 말해준 쥐새끼들 위치에 기사단을 투입, 그사이에 방비가 허술해진 시에나를 납치한다」
"음…! 알았어."
「가는 길에 천리안에 발각될지도 모르니까, 저 골목으로 진입해」
마고는 뒤쪽을 돌아보고 흠칫했다.
"대체 어디서 보고 있는 거야?"
「보지 속에서」
"……."
「나도 천리안 비슷한 걸 갖고 있거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힘 같은 건 없지만.
촉괴수를 수족처럼 부리고, 어디서든 내 모판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힘.
촉수 괴물만의 특수한 마력 파장. 그것이 촉감각이다.
'또 위험할 땐 부탁한다. 살싶충……. 아니.'
마이 프렌드.
[…검은 태동이 대답합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음. 알았어. 알았어. 도배 그만해, 씹년아.'
나도 죽을 생각은 없거든?
온 세상을 적으로 돌려서라도 살아남아 주겠어.
마왕과 싸우기 위해 힘을 키운,
재능 넘치는 아카데미의 귀족 영애를 모조리 보지 노예로 만들더라도!!
마고와 함께 골목으로 접어든 그때.
우리는 뜻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뭐야. 저건?
"읏!"
어디서 본 적 있는 물빛 머리 여자가 단검으로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를 계속해서 찌르고 있다.
푹, 푹, 푹…….
몸에 난 몇백 개의 구멍에서 흘러넘친 피로 바닥에는 검붉은 웅덩이가 고여 있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던 거야?
마고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뒷걸음질 치지만,
늘 그렇듯.
봐선 안 될 것을 본 이는 끔찍한 운명에 처한다.
"봤어?"
물빛 머리 여자는 단검을 쥐고 유령처럼 일어난다.
누구지? 분명히 본 기억이 있는데.
"봤구나?"
"지, 지나가던 길이야!"
마고는 본능적으로 발에 <가속> 스킬을 발동한다.
엄청난 속도로 튀어 오르는 마고.
「내가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움직이면 어떡해, 인마!」
"하, 하지만!! 저 여자 눈이 맛 갔어. 진짜 위험하다고!"
"아하하하핫!"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고의 움직임은 내가 봤을 때도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상대가 시로코였어도 한 번도 안 돌아보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도망치면 충분히 위험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
아마 이런 점을 높이 평가 받아서 여자인데도 정찰대에 들 수 있었겠지.
그런데.
길 가다 만난 살인귀 따위가 그 속도를 웃돌았다.
'뭐지, 저 이상한 보법은?'
느린 것 같으면서도 빠른 듯한.
구불거리는 그림자와 함께 벽과 녹아드는 것처럼 뒤따라온 여자는,
마고의 퇴로를 끊듯 뒤를 사로잡고 발로 걷어찼다.
"커흑! 어떻…게…!"
"누구 눈이 맛이 갔다고? 어떻게 이런 예쁜 눈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기다려!! 이슬라!」
마고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나는 서둘러 그녀한테 촉신호를 보냈다.
"……!"
이슬라의 동작이 멈춘다.
「걘 내 여자야! 건들지 마!」
그래도 무시하고 찌르면 어쩌지?
그렇게 생각한 찰나.
이슬라는 휙하고 네 걸음은 한 번에 점프해서 물러나더니, 쓰러진 마고 앞에 완전히 머리를 박고 도게자했다.
"죄, 죄송해요오오! 촉수 괴물 님!"
「어……」
"가, 감히, 감히 겁도 없이 촉수 괴물 님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닷!"
「……」
아니….
너 나랑 몇 번이나 봤다고 벌써 그렇게 예절이 주입돼 있냐.
볼수록 신기한 년이네.
이제 선명하게 기억난다.
왕녀 구출하러 성에 들어갔을 때, 지하 감옥에 수감돼 있었던 여자다.
그때도 센스 있게 몸매를 강조해서 내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굴복한 채 나를 거스를 생각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서 그냥 자유롭게 해주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형태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죄송해요… 진짜로 죄송해요. 저, 멍청해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이제 됐어」
"네에!"
좀 전까지 비굴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이슬라는 벌떡 일어나 킬킬 웃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꼭 상어 같네.
분명히 헉 소리 나게 예쁘긴 한데, 괴팍한 컨셉 때문에 개성이 부담될 정도로 뚜렷하다.
"이슬라……?"
바닥을 나뒹군 마고는 힘겹게 일어났다.
「알아?」
"이슬라가 왜 여기에…. 종신형을 받고 왕성 지하에 있었을 텐데?"
「내가 풀어줬어」
마고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도 잇지 못했다.
"바, 바보…. 무, 무슨……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슬라는 어디서 보고 있을지 모를 나를 위해 몸매 자랑하듯,
이리저리 웨이브를 만들며 놀고 있다.
그냥 이렇게 보면, 놀 줄 아는 귀여운 계집애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고 입에서 나온 그녀의 정체는 생각보다 훨씬 살벌했다.
"이슬라는 건국 이래 최악의 연쇄살인마야! 127명이나 참살한!"
「오호」
나는 이미 그보다 많이 죽인 것 같지만.
같은 인간이, 인간의 무엇이 그렇게 미워서 죽이고 다닌 걸까?
재미를 위해서?
이슬라의 킬킬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면 진작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슬라 벤트를 그, 그냥 풀어줬다니… 믿을 수 없어…!!"
「뭐 어때」
"마음씨 넓은 촉수 괴물 님, 사랑해요~♡"
「여기서 뭐 하고 있었냐」
"아, 구멍 뚫고 있었어요~."
…….
그 작업을 '구멍 뚫는 중'이라고 표현하다니.
참신하게 미친 년이다.
따지면 구멍을 뚫고 있었던 게 맞긴 해도…….
"촉수 괴물 님~~ 이슬라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응? 왜 그렇게 생각해?」
"사람 죽이러 가는 냄새가 나서요♡"
역시 미친년이다.
하지만 내 권역에 클레어 같은 여자도 있으면,
이런 년도 있어야지.
사람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난 미친 연쇄 살인마…….
「내 밑에서 일해볼래?」
"네에!! 잔뜩 죽이고 구멍 뚫게 해주세요~!"
"미쳤어!? 이슬라를 같은 편으로 들이다니. 제정신이 아냐!"
「주제 파악은 잘하는 것 같은데」
"저는 알거든요~. 촉수 괴물님이야말로 하찮은 인간 위에 군림할 분이라는 것을."
오염시키기도 전에 이렇게 내 가치관이랑 잘 어울리는 여자는 처음 본다.
[이슬라 벤트 lv.3977] 【희대의 연쇄살인마】SS - 기본기 보정 7배, 대인전 특화
「실력 좀 볼까? 이슬라」
나는 '타깃'의 위치를 이슬라에게 알려주었다.
「빠짐없이 죽여」
"구멍은 몇 개로 할까요?"
「음, 확실하게 서너 개 정도면 충분해」
"접수했어요~."
이슬라는 바닥에 난 검은 그림자 속으로 발을 담그더니, 그대로 빠져들었다.
마고를 따라잡은 기술이 저건가.
한낱 연쇄 살인마가 독자적인 공간 이동을 할 줄 알다니…….
여긴 대체 뭐 하는 세계야?
"정말로 괜찮아?"
마고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여기 그대로 있는 게 더 위험했어」
특히 마고의 목숨이.
"그건 그렇지만…."
「다행히 저 녀석은 나한테 호의적이니까, 어떻게 되나 지켜보자고」
저건 적에게도 상상 못 할 변수가 될 것이다.
나도 몰랐으니까.
이슬라는 첫 번째 타깃 앞에 나타났다.
지면에 난 검은 구멍을 통해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본 남자는, 당연히 펄쩍 뛰었다.
"안녕~?"
"누구냐!"
"구멍 뚫으러 왔어요."
이슬라는 킬킬 웃으며 자세를 낮게 잡았다.
어디 페인트칠하러 다닐 것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데다, 바닥에서 기어 나오기까지 해서….
나라도 혹시 지하 설비 작업하던 노동자인가 싶었을 것이다.
여러 의미로 당황하게 되는 등장 연출이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작업복에는 말라붙은 피가 잔뜩 붙어 있고,
심지어 한 사람의 피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빛 머리의 악귀는 킬킬 웃는다. 그런 주제에 얼굴은 상당히 예뻤다.
"이슬라……. 이슬라 벤트?"
남자가 이슬라를 알아보고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상황은 끝나 있었다.
"아하핫!"
이슬라는 세 번의 단검 찌르기로 남자의 양팔과 목 밑에 구멍을 뚫었다.
"커억!"
굉장히 빠르다.
특별히 훈련받은 것 같진 않은데….
사람과 싸우며 익힌 움직임이라고 해야 하나?
물 흐르듯 빠르게 다가가서 구멍을 뚫는 일련의 과정이, 몹시 자연스럽다.
"이렇게 개죽음당할 쏘냐아아…!!"
남자가 주먹을 뻗는다.
하지만 이슬라는 이미, 배후의 게이트에 얼굴을 반쯤 내민 채 웃고 있었다.
"네 번째 구멍은~ 머리에 뚫어 줄게요."
푸욱!!
찌르기용으로만 고안된 송곳 단검이 머리를 파고든다.
남자는 비명도 못 지르고 털썩 엎어졌다.
"다음은, 어디 보자…."
이슬라는 시체에 눈길도 주지 않고,
검은 구멍을 타고 수백 미터 떨어진 다음 타깃의 위치에서 나타났다.
'순식간에 끝나겠는데?'
이슬라가 생각보다 일을 너무 잘해서,
우리 쪽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마고! 가자!」
쥬보봇!
전충 다리를 흔들어 보지를 자극한다.
"응큿…! 알았어!"
마고는 그대로 시에나가 있는 숙소로 뛰어갔다.
시에나는 학생회 임원들의 몸에 생긴 이변을 눈치챈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바로 안아주고 싶을 만큼 가련한 모습이다.
'존나 예쁘잖아!!'
마고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어!
이 백금발 아가씨는 대체 뭐냐? 얼마 전에 본 엘프가 생각날 정도로 예뻤다.
"마고 양?"
"시에나 부회장! 이쪽이에요. 도망칠 루트를 알아냈어요."
마고는 사전에 합의한 대로 시에나를 유도한다.
"어떻게 적한테 발각된 건가요?"
"왕국 기사단이에요!"
아무튼 빨리 가자는 무드로 시에나를 닦달해서 골목으로 들어온다.
"이쪽으로 쭉 가면 돼요!"
도중에 무언가 눈치챈 듯, 시에나는 마고의 손을 뿌리쳤다.
"마고 양…! 당신…."
부회장의 눈이 푸른 이채를 띠었다.
이것이 천리안인가?
설마 내가 숨은 것도 알 수 있나?
"무언가 섞여… 있네요."
"……."
"모두 동시에 공격받은 상황에, 어떻게 당신만 이쪽으로 왔죠? 설명하세요."
어떡하냐는 듯이, 마고가 보지를 계속 조인다.
괜찮아. 다 생각해둔 게 있다고.
"마고! 이쪽이야!"
아네스가 맞은편에서 손을 흔든다.
지원군 등장!
우리 아카데미 여학생 대표, 처제 아네스다!
"저건… 우리 쪽 학원생…?"
"저희를 도우러 이미 도시에 잠입해 있었던 편입 반 애예요."
"그럼……."
"네. 촉괴가 움직이고 있어요. 이쪽 길이 안전해요."
"…알았어요. 갑시다!"
「딱 걸렸어」
쩌억.
아네스가 부회장을 유도한 그곳에는.
거대한 촉수 거머리가 삼각형 입을 벌리고 포식 대기 중이다!!
"아……!"
아무 생각 없이 뛰어온 부회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괴물한테 먹힌다고 생각한 암컷의 긴장한 허벅지.
떨리는 눈빛을 봐라.
아아, 모든 게 가슴 떨리는 순간이다.
냉미녀 부회장 보지를 먹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 그때였다.
"파이어 볼트."
소나기처럼 쏟아진 불세례가 치유 거머리를 산산이 터뜨렸다.
젠장. 정신없네.
이건 또 누구야.
"켁! 콜록…. 콜록!"
"윽…!"
마고와 아네스가 파이어볼트 폭풍의 여파로 콜록거리는 동안,
부회장은 놀란 눈으로 마법 사용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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