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5/264)

뷰뷰뷰뷰뷰.

나는 한나의 초진동으로 클레어가 빠진 구멍을 확장했다.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준비한 구덩이 함정처럼 알맞게 땅을 깎아내고,

빈자리에 살점을 채워 넣는다.

"큿…!!"

꿀럭꿀럭꿀럭.

마치 땅에 묻은 사람을 붉은 시멘트로 가두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 채우지는 않았다.

<살점 변형>

추악한 살점에서 비롯된 이 스킬은 살점이라는 환경 자원을 제공한다.

이 <살점>은 내 몸과 기능을 공유하기 때문에 원하는 형태의 촉수를 기를 수도,

필요한 즙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맨땅을 살점으로 뒤덮는 건 중요한 사전 준비다.

흙 표면에 꼼꼼하게 펴 발라서 촉괴수를 모판에 심기 적합한 <묘상 공간>으로 만든다.

클레어는 점착 덫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클레어의 힘으로는 죽어도 탈출 불가능이다.

현재 내 힘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왕국 하수도 전투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촉수 달팽이의 강력한 분비물이 묻게 되면 클레어도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때라면, 입에서 뭐 뱉기도 전에 죽었겠지만.

내 감각대로 움직이는 살점 덩어리를 응용.

클레어를 가둔 구덩이 함정에 지붕을 만들어준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사냥감은 더욱더 발버둥친다.

"응…. 끄응……. 흣…!!"

힘이 쭉 빠진 은발청안의 미소녀는, 소리쳤다.

"죽여!"

「나는 네가 좋아」

"……."

촉감각으로 클레어의 피부 표면을 핥듯이 느낀다.

소름 돋았구나. 내 말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운 괴물에게 구애받으면 그럴 만도 하다.

예쁜 여자를 포식하고, 곁에 두는 것이

촉수 괴물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생태일지 몰라도.

아직 남녀의 사랑조차 배우지 못한 클레어에게, 괴물의 애정 표현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하지 못할 영역일 것이다.

"무슨…."

「널 사로잡은 기쁨으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야」

기분 좋게 취한 것 같이.

「클레어」

"…부, 부르지 마."

싸울 때는 그렇게 용감했던 그녀가.

겁에 질린다.

나는 그것만으로 벌써 쌀 것 같았다.

내 애정 표현이 그렇게 무서워?

"내 이름을 부르지 마!"

「후후후」

삼류 악당처럼 웃는다.

클레어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점착액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안 된다.

촉수 괴물은 사로잡은 여자에 한해서는 무적이다.

위험 요소가 몇 가지 있다면 아직 이 도시에는 용사가 있고, 좀 전에 촉감각을 돌려 봤는데…

본부 쪽에 정체불명의 엘프도 나타났다.

목적이 뭐지?

식사 전에 매끄러운 처리를 필요로 하는 안건이 몇 가지,

내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그러니까, 신선하게 보관해 볼까.

[마비액 분비]

클레어의 힘이 빠질 정도로만.

팔에다 가시 촉수를 꽂아서 내 분비물을 주입한다.

꿀럭꿀럭.

"윽, 하…. 큿…. 죽이라니까…."

응. 절대 안 죽여.

순진한 처녀한테는 이 앞에서 벌어질 일은,

상상도 못 할 미지의 영역이다.

[이빨 촉수 변태]

콰직.

나는 클레어가 알뜰하게 써먹은 칼을 부숴버렸다.

"안 돼!"

「내가 좋은 걸로 다시 맞춰줄게」

"언니가…. 준 칼이…."

「언니 살아 있잖아. 또 사달라고 해」

"……윽, 큿…!!"

클레어가 어둠 속을 째릿 노려본다.

내가 어딨는지 모르고 그저 느낌으로만,

예쁜 푸른색 눈에 힘을 넣고 쳐다보고 있지만.

아아. 그래.

싸울 때는 그렇게 자신만의 초월적인 영역에 들어가 있던 그녀도,

이렇게 되면, 그냥 예쁜 여자다.

예쁜 여자가 몸서리쳐질 정도의 혐오감을 눈빛에 담아 나를 쏘아보는 것.

촉수 괴물에게는 일상 같은 일이면서도,

나를 어두운 열기로 들뜨게 한다.

「그 언니가 좀 다쳤으니까, 보살펴주는 동안 얌전히 있어」

"……."

클레어는 처음으로 내 말을 듣고 몸에서 힘을 뺐다.

하.

진짜 최고야.

신념으로 무장한 여기사라는 것들은, 왜 이렇게 날 흥분되게 하는지 모른다.

지금 이 녀석은.

자기 배를 걷어차서 구덩이로 떨군 시로코를 전혀 미워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구속이 풀리면 그녀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로코를 구하려고 할 것이다.

「시로코는 네 도움을 원하지 않아」

"…네가 세뇌했으니까."

「촉수 괴물은 세뇌 능력이 없어요」

"아무튼, 뭔가 했잖아!"

「그게 지금부터 네가 당할 일이지」

"큿…."

클레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상상했더니 너무 두려운 것 같다.

뭐, 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는 거니까 너무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겠지.

클레어 입장에서 어두운 살점에 갇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묘상 되어 모판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냥 찐 공포물이다.

오염되기 전까지는, 실금할 정도로 무서운 게 기본이다.

내 촉감각의 뉘앙스도 다르게 전해질 테고.

일단 클레어가 비 맞지 않도록.

간이 제작한, 고깃집…. 이러니까 뭔가 노릇노릇하게 구울 것 같네.

'보육 장치' 정도로 순화할까.

새로이 태어날 클레어를 위한 살점 보육 장치.

묘상 하기 좋은 상태가 되도록 숙성한다는 느낌으로 미루어 두고,

시로코의 상태를 확인한다.

"……잡았어?"

「잡았어」

"다행이네. 내가 도움이 되어서."

시로코는 목에 빨간 자국이 난 채로,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목뼈에 금이 간 것 같다.

내가 죽일 것처럼 끌고 와서 졸랐기 때문이다.

힘 조절이 조금만 수틀렸어도 뚜두둑 부러질 수도 있었다.

「…금방 죽을 것처럼 말하지 마」

"좀 지쳤을 뿐이야…."

「치유해 줄게」

촉수 드래곤 몸통 안쪽에 치유 거머리가 있다.

작은 녀석들도 많이 있지만, 개중에는 영양을 많이 섭취하고 사람을 삼킬 만큼 비대해진 녀석들도 많이 있다.

거머리들은 배로 붙어있는 게 아니라 꼬리에 달린 평평한 흡반과 삼각형 입으로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 쳐다보면 벽에 몸으로 U자 고리를 만들며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거대 치유 거머리 중 하나에 빙의했다.

꼬리 부분에 힘을 주고 몸통을 아래로 해서, 입을 쩌억 벌린다.

조심스레 시로코를 집어삼켰다.

갑자기 잡아 먹힌 시로코는 긴장했는지, 뽀얀 허벅지를 움츠린다.

모판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든, 정신이 얼마나 오염되었든.

통째로 집어삼킨다는 행위는 생물의 위기 본능을 엄청나게 자극한다.

「안심해」

그러나.

붉은 머리 여기사는, 나의 여자.

내가 잡아먹혀도 된다고 말하면, 그녀는 몸에서 힘을 빼고 받아들이기 위해 애쓴다.

허벅지 힘도 차츰 부드러워졌다.

쮸압.

순식간에 그녀를 안에 삼켜,

시로코의 몸에 거머리의 내부 표면이 들러붙는다.

진공 포장한 것처럼 시로코의 몸매 굴곡이 훤히 도드라졌다.

"후…. 후웃…."

「괜찮아. 할짝할짝해서 먹어」

시로코는 내 입속에서 조금씩 엉덩이를 틀었다.

쪽…. 쪽….

뽀뽀하듯이, 거머리 내부의 표면에 키스하는 시로코.

치유 거머리는,

성국 출신 수도원장 로렌시아가 낳은 촉괴수 답게 빛 마법 뺨치는 치유 능력을 갖춘 촉괴수였다.

요컨대 힐러다.

여성의 체액을 먹고 영양분을 흡수하면, 등가교환 하듯이 엄청난 치유 효능을 지닌 즙을 분비한다.

시로코의 몸에 난 긁힌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금 간 뼈도 붙는다.

과도한 <패자의 불꽃> 사용으로 탈진한 시로코의 기력도 점점 돌아오는 듯했다.

영양액도 조금씩 분비해서 회복을 돕고 있다.

기력을 회복한 시로코의 키스는 더 노골적으로 바뀌어 갔다.

"쭙…. 쭙…."

내 입속에 들어온 여자한테 키스 받는 느낌은, 살짝 재밌다.

가슴 큰 붉은 머리 젖가슴 요정이랑 스킨십하는 기분이랄까?

"쭙…. 쭙…♡"

됐다.

지금 거머리의 치유즙은 촉수 드래곤 연명에 대부분 사용되고 있어,

활용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시로코의 체액은 영양소가 넘쳐서, 쭙쭙 빨고 있으면 거머리 즙도 계속 나왔다.

그것을 본체 촉수로 가져와 묘상 공간─살점─에 연결.

내가 만든 간이 보육 장치에 갇혀 있는 클레어의 상처에도,

소독액이 스며든 솜을 톡톡 두드리는 것처럼 조금씩 스며들게 한다.

시로코의 촉수 검으로 찢어졌던 상처가 아물고, 출혈이 멎었다.

자잘한 생채기는 치유 즙이 몸에 스며든 시점에 전부 없어졌다.

"큿!"

문제는.

기껏 상처를 낫게 해주었더니, 다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는 거지만.

혼자 힘 빼겠다는데, 뭐…….

만족할 만큼 하고 있으라지.

「그대로 쉬고 있어」

나는 두 사람에게 모두 같은 말을 전달했다.

시로코는 나한테 아양 떠는 것처럼 쪽쪽 빨리면서 허리를 배배 꼬았고.

은발청안의 여기사는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어쨌든 둘 다 허리를 쓰고 있다.

허리를 쓰는 목적이 전혀 달랐지만.

'마무리 작업이 남았어.'

클레어를 이겼으니,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만.

나는 반으로 갈라진 촉수 드래곤의 절단면에 살점을 붙여, 서로 연결.

가사 상태로 연명하던 촉수 드래곤의 상처를 극적으로 수복했다.

시로코와 나의 촉괴수.

<촉수룡>이 눈을 뜬다.

촉수룡은 나와 시로코, 무수한 촉괴수를 몸통 속에 품고 날아올랐다.

클레어를 가둔 보육 장치를 지키는 역할은 모레스에게 맡겼다.

초진동 배터리─한나─도 함께한다.

든든한 가디언이다.

누가 됐든, 클레어를 구조하기 위해서는 초진동 배터리를 장착한 모레스를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 이른 시각이지만, 동이 트고 있다.

괴물의 밤이 끝나고 인간들의 시간이 온다.

퓌르나울 외곽을 점거한 콜린트 공작의 3,500명 병사들이 진압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저것도 신경 쓰이긴 하지만…….'

촉수룡의 비행 고도를 높인다.

그러면 도시 전체에 꼼꼼하게 촉감각을 전파할 수 있다.

교단 본부 상황을 본다.

「클레어는 잡았어」

리아나는 크게 뜬 눈으로 티아를 홱 돌아봤다.

그것만으로 티아는 알아차렸다.

"꺄아!"

티아는 기쁜 비명을 지르며 리아나를 부둥켜안고 방방 뛴다.

"서방님! 서방님 최고예요!!"

"이겼어!?"

"이겼어!?"

시르와 리르까지 와서 방방 뛰기에 합세한다.

리아나는 강아지 같은 히로인 삼인방의 에너지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짝 곤란한 눈치였다.

「아직 할 일 남았어」

"쉿."

리아나가 제스처를 취하자, 다들 얌전해진다.

긴장한 눈빛이었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모판들이 기뻐하는 걸 지켜보던 백금발 엘프는.

긴 칼을 뽑아 들고 리아나에게 다가왔다.

"당신들 서방님이 이긴 모양이지?"

리아나의 입가가 미소로 물든다.

"네. 이제 서방님과 얘기를 나누어 주시겠어요?"

나는 엘프 머리에 직접 촉감각을 쑤셔 넣었다.

「너 누구냐」

"……엘리."

「칼 치워」

"……."

「다시 말 안 한다. 칼 치워. 여기서 폭격 맞기 싫으면」

엘리는 잠시 나랑 기 싸움을 하려는 듯, 하늘 높이 날아오른 날 노려보다가.

긴 칼을 집어넣었다.

"…내 몸을 보호하려고 꺼낸 거야."

배짱 있네.

내 위협을 직접 받고도 쫄지 않았어.

하지만 나를 조심해서 대하려는 느낌은 있다.

'적대하길 원치 않는' 분위기.

[나엘리 Lv.7019]

……엄청난 레벨.

9999 레벨을 찍은 용사와 누나를 제외하면, 내가 본 두 번째 7천 레벨 대 인물이다.

쫄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대체 이 클레어 급으로 강한 여자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골치 아픈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화 보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