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264)

* * *

"밖으로 도망쳐 나오는 마물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네!"

티아는 단원들에게 주변 감시를 명한 후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돌아다녔다.

단원들은 그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티아 부단장이니까 생각이 있으시겠지' 하며 별다른 액션은 취하지 않았다.

'이쯤이었나….'

티아가 찾고 있는 건 글로바와 시르가 있는 백화 기사단 A조가 침투한 A 맨홀이었다.

이상하게 지금은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맨홀 뚜껑에 관심을 두고 찾으려는 사람도 없다.

그런 와중에 티아만이 눈썰미 좋게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맨홀 뚜껑이 있었던 자리를 슥슥 쓰다듬는 티아.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바닥 타일이지만, 손가락 끝 감각에 집중해서 살살 매만지면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의심하고 아주 세심하게 느껴야만 알 수 있는 작은 차이였다.

이 타일은 바닥 타일을 위장하고 있는 촉괴의 살점이라는 것을.

'역시 촉괴 씨는 굉장해…♡'

살점 변형.

첫 둥지 생활을 함께한 그녀는 촉괴의 방식에 자세할 수밖에 없다.

아직 지하에 숨은 게 촉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기 전,

사람들이 실종되는 방식을 보고 티아는 생각했다.

혹시 맨홀 뚜껑으로 위장해서 집어삼키고 있는 게 아닐까?

티아는 실종자의 프로필에 주목했고,

모두 촉괴 씨의 취향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실종된 여자들의 레벨이 모두 낮고, 일반인들 위주라는 걸 알았다.

'……촉괴 씨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못생긴 여자들.'

…티아가 째릿 노려본 사진에는, 일반인치고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뿐이었지만.

그녀는 서방님이 얼마나 하이 레벨의 암컷을 선호하는지 알고,

자신 또한 그 수준에 걸맞은 모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여자의 얼굴 평가는 자연스레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배탈 나실지도 모르는데…….'

…물론, 이 정도로 엄격한 건 티아가 서방님을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촉괴 씨는 현재 자리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거야. 아무거나 주워 먹어야 하실 만큼.'

사랑에 눈먼 티아였지만 서방님의 몸 상태를 제법 정확히 예측해 냈다.

오히려 사랑으로 일궈낸 기적이라고나 할까.

티아 입장에서는 지하에 도사리는 마물이 촉괴라고 확신할 만한 증거는 없었지만,

아주 작은 판단 재료만을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여기까지 왔다.

넘쳐흐르는 사랑과 헌신으로.

티아는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순간도 서방님을 잊은 적이 없었다.

다른 모판들의 정신 상태와 비교해도 좀 별나다.

그녀가 이미 빛이 들지 않는 중괴해까지 빠져든 모판이라는 것을 고려해도 그렇다.

'다시 촉괴 씨의 곁으로 갈 수 있어. 다시 촉괴 씨의 곁으로 갈 수 있어. 다시 촉괴 씨의 곁으로 갈 수 있어.'

지난 8년간 한 번도 느낀 적 없었던 압도적인 행복감과 흥분으로.

티아는 볼에 홍조를 띠고 야릇하게 웃었다.

티아 부단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흠칫했을 광경이다.

실제로 그녀를 눈여겨보는 성율 기사단 단원이 있었다.

"…티아.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황급히 표정을 숨기며 일어나는 티아.

"적이 입구를 숨겼어요. 백화 기사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입구를?"

보니는 황급히 그녀가 짚어본 바닥을 손으로 만져봤다.

"잘 모르겠는데. 착각한 거 아니야? 이 근처 어딘가에 맨홀 뚜껑이……."

"잘 봐요. 보니 씨. 어디에도 없어요. 맨홀 뚜껑 같은 건."

"……."

티아 말대로였다.

의심하고 계속 문질러 보니, 그녀도 뭔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휴.'

티아는 이럴 때 다른 말로 둘러대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말한다.

그게 때로는 진짜 숨기고 싶은 걸 가릴 때 효과적이라는 것을,

촉괴와 함께 있을 때 배웠기 때문이다.

살얼음판 같은 스파이 생활을 그녀가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서방님의 체온과 가르침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마음속 깊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부단장 자리까지 오른 티아라고 해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촉괴보다 위험하다고 하면 더 위험한 상황이다.

그녀의 상사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괴짜,

리아나였기 때문이다.

"잘 찾아냈네. 대단해. 역시 티아야."

"백화 기사단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봐요."

"알았어."

팔 년이다.

바로 부단장이 된 건 아니라고 해도 수년간 날 세워진 의심의 칼날 위를 맨발로 타온 티아였다.

그녀는 부단장이 되기 전부터 리아나의 감시 대상이었고,

수년 동료로 생활해온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리아나의 속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단장을 100% 신뢰하냐고 물으면 티아는 자신 있게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증거가 티아의 눈앞에 있는 이 여자다.

보니 페유리.

금발 숏컷에, 날카로운 눈매.

그녀는 티아의 선배이고, 성율 기사단의 전 부단장이다.

이것만으로 둘의 관계는 제법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때 상사였던 사람이 부하가 되고,

부하였던 사람이 상사가 되었으니까.

티아는 리아나가 없을 때는 항상 보니가 단장의 눈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

8년 전 촉괴 사건의 주모자일지도 모른다…….

같은 식의 구체적인 의심은 아니었지만.

'리아나 단장님은… 무서운 사람이야.'

티아가 8년 동안 단장에 관해 알아낸 사실은 그게 다였다.

리아나는 비밀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흥미인지, 본능인지는 몰라도.

티아는 몇 번이고 위험한 다리를 건너야 했다.

기사단은 같은 편이 아니다.

티아는 아직도 적진 한복판에 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보니한테는 꼬리를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방금 웃은 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보니는 단원들을 소집하는 티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위화감을 느낀다.

늘 생글생글 웃는 티아였지만, 방금 그 미소는… 뭐랄까…….

그녀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얼굴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지나친 생각인가.'

보니는 마음이 괴로웠다.

자꾸만 티아를 의심하는 자신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솥밥 먹고 생활하는 자매를 몇 년 씩이나 의심하면서 겉으로는 사이좋은 척한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보니는 오래전, 단장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처녀들 피로 목욕하는 게 취미라느니, 정치범을 고문하는 살인 기계라느니, 온갖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유능한 사람은 대개 죽도록 재미 없고 좆같은 일을 놀라운 효율로 처리해 내는 기계 그 자체다.

보니가 봐온 리아나 단장의 모습 역시 책상 앞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 불렀어요. 보니."

"……."

그날은,

티아가 부단장으로 승격되고.

보니가 부상까지 당하고 강등된 날이었다.

금 등급 모험가도 애먹은 마물, 와이번 <루나폰>을 쓰러뜨린 직후에 있었던 승진이었다.

티아가 활약한 건 맞지만 보니 또한 죽을힘을 다해 싸웠고

그 결과 팔까지 다쳤지만, 리아나 단장은 최악의 타이밍에 티아를 부단장 자리에 앉혔다.

그래서 기사단 내부는 시끌시끌했다.

리아나는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다.

일반인은 이해 못할 감성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하지만 보니는 흐림 한 점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단장님을 생각하는, 충성스러운 기사단원이었다.

"아니오. 저는 리아나 단장님의 결정을 따를 뿐입니다."

"정말로~~? 정말 아~무것도 할 말 없어요~?"

"……."

반짝반짝반짝.

리아나의 푸른 눈이 별빛처럼 빛난다.

보니는 이럴 때 단장이 듣고 싶은 말이 참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장의 이상한 수다에 어울리는 건 매우 힘들지만….

"…티아는."

"네, 티아는?"

"티아는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단장님."

"어머나."

오히려 티아를 칭찬하는 보니.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봐 왔지만, 단장님이 왜 티아를 의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일에 열정적이고, 사람 돕는 일에는 헌신적이고… 동료들에게는 정말 좋은 친구이며, 저 또한 그녀를 존경합니다."

"확실히 보니는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봐 왔죠. 내가 감시 임무를 맡겼으니까."

"……윽."

보니는 매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믿는 사람을 억지로 의심해야 하는 고통.

그것이 보니의 고뇌였다.

비밀 임무 특성상, 누구에게도 본인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 없지만,

사정을 알면 많은 사람이 그녀가 사고방식이 괴상한 단장을 만나서 고생하는 가엾은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니는 사람인 척하는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티아를 스카우트한 건… 다름 아닌 단장님이십니다…. 의심을 거두셨기 때문 아닙니까?"

보니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본인이 데려온 사람을 몇 년씩이나 의심하고 있는지를.

리아나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거두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요?"

"예?"

"어떻게 열정적이면서 헌신적이고, 동료들에게는 좋은 친구이며 존경받는 사람일 수 있냐는 얘기에요."

"그건…."

티아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려던 찰나.

단장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못 살죠."

"…다, 단장님?"

"그렇지 않나요? 사람은 누구나 결점이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 완벽할수록… 어딘가 큰 구멍이 나있는 법."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아직도 티아가 '촉괴'와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뇨. 촉괴는 죽었어요. 백화를 정통으로 맞았다면, 마왕이라도 살기는 힘들겠죠."

"그럼 어째서…."

"오히려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대화를 따라갈 수 없다.

보니는 그냥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뭐가 흥미롭다는 건지, 뭐가 문제라는 건지.

그냥… 그냥 인성 좋은 사람을 뒤에서 몰래 괴롭히는 것 같지 않은가.

"촉괴가 죽었는데도 아직 티아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요."

"무언가…?"

"비밀이에요. 엄청나게 큰 비밀."

리아나가 예쁘게 웃는다.

"꼭꼭 숨기고 있는 그것이 뭔지, 알아내야겠어요. 나는."

"단장님…! 이것은 그냥… 악질적인 괴롭힘입니다. 본인도… 괴로울 거예요."

"봐요. 보니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나한테 소리를 치고 있죠."

보니는 흠칫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 것을 인간다움이라고 정의한다면, 티아는 너무 인간과 동떨어져 있어요."

"인간과… 말입니까…?"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를 일부러 건드려 봤어요. 그녀의 인간성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상했나요?"

"아니오. 아주 지극히 정상적이었어요. 하지만……."

리아나가 처음으로 웃음을 거뒀다.

"……지금의 그녀는 어떤가요? 나는 그녀가 화를 내거나 흐트러지는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사석에서 친구랑 얘기하는 중이었으면 그러고 말았을 일이지만,

리아나의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우라다.

리아나가 단장직에 앉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대규모 범죄 계획이 좌절되었는가?

그녀의 의심에는 이유가 있다.

"보니,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그녀가 모험가 생활을 했을 때의 기록을 보면,

매우 소박하고 마음씨 좋은 여성이 그려져요. 큰 욕심이 없고, 주변 사람을 챙기는…."

"……단장님. 모험가 활동 기록까지 보신 겁니까…."

"봤어요. 그런 사람이 지금은 마치… 구국의 영웅이에요. 목숨 걸린 일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돌격해요. 가끔 보면 나까지 무서워질 만큼."

"……."

확실히 티아의 성장세는 이상하다.

지금까지 어떻게 무명 생활을 했냐고 되묻고 싶어질 만큼.

"마물에게 사로잡혔을 적, 큰 위기를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 사건을 겪으면 누구나…."

"누구나 그렇게 된다고요? 설마. 농담이겠죠. 보니?"

"……."

"망가져요.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네. 대부분은 그렇지만…."

이상하게 보니는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티아 같은 사람을 어디선가 본 것 같긴 한데,

말로 꺼낼 만큼 확 떠오르는 게 없어서 어물거릴 뿐이었다.

"나는 어떤 타입의 인간이 그렇게 되는지 알아요."

리아나는 서류를 파락파락 넘기며 중얼거렸다.

"……신의 세례를 받은, 순교자."

'왜 갑자기 단장님과의 대화가… 이렇게 생생히 떠올랐지?'

정신 차리면 보니 페유리는 허벅지에 숨긴 단검을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리아나 단장의 마지막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티아가 섬기는 신이 악신이라면, 죽이세요」

「……망설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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