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264)

내 신부들을 두고 어디 갈 순 없잖아.

여신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촉수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도 있다.

죽을 순 없다.

어떤 비참한 꼴로 뒹굴더라도 살아주겠어.

시간이 흘러, 시로코가 숲에 쳐들어오기 전……

나는 모판들에게 「구조받으면 나와 있었던 일을 잊고 일상을 보낼 것」이라는 지시를 해두었다.

모판들이 날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위기 상황에 방패막이라도 하려고 뛰쳐들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응? 뭐, 그래. 알았어."

베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티아 같은 맛이 없네.

"전 이제 서방님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데…."

젠장! 믿고 있었다고. 프라가!

기특해서 티아한테 꿀리지 않는 큰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마지막 발악은 해볼 테니, 너희는 열심히 낳아줘.」

"살아남기 위해 애써 봐. 애아빠. 잘못되면 티아가 많이 슬퍼할 거야."

"티아 씨한테는 서방님뿐이에요."

티아의 각별한 마음은 모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 같다.

음침 폭유 리비아, 금발 엘프 에피랑도 좀 더 놀아주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인간은 내 먹잇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촉수 괴물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발휘해서 싸울 뿐.

그래도 안 된다면.

인간들이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하고 빈틈이 없어서,

어떤 수를 강구해도 안 될 것 같다면.

나는 다시 부활한다.

새로운 몸으로.

[변태 <촉감각>]

[변태 <미끈거리는 액체>]

……성공인가?

나는 처음 전생했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만큼 시야가 좁아져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상황 파악이 먼저다.

어두운 동굴 속을 미약한 불빛으로 탐험하는 것처럼, 감각을 집중한 결과….

주변이 점막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야. 여긴.'

또 다른 촉수 괴물의 몸속…일리는 없고.

사람 몸 속인가?

살짝 움직였다가 기겁했다.

'히익.'

바닥이 뻥 뚫려 있잖아.

내 몸은 절묘하게도 수직으로 된 벽에 박혀 있는 꼴이었다.

꽤 깊이 박혀 있어서 당장은 괜찮은 것 같지만, 그것 때문에 반대로 고민에 사로잡혔다.

여기서 나갈 땐 어쩌지?

그때.

머리 위로 촤아악, 하고 액체 같은 것이 쏟아졌다.

이게 뭐야?

[맥주를 섭취했습니다]

[맥주를 섭취했습니다]

……술?

술이 왜 하늘에서 떨어짐?

……설마.

잠시 몸을 웅크리고 대기했더니 위에서 기름진 고깃덩어리도 떨어졌다.

틀림없다.

여긴 사람 식도야!

'맙소사. 내 몸이 얼마나 작아진 거야?'

이런 작은 몸에 의식을 옮길 수 있다니, 어쩌면 나 불사신일지도?

그런 생각도 잠시.

지금껏 쌓은 모든 영양이 그 하얀 화염과 함께 소실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있지도 않은 위가 쓰렸다.

시발. 어떻게 올린 레벨인데.

재미 보기도 전에……. 아니, 재미라면 꽤 봤지만.

'어쨌든. 여기서 나가야 해.'

이 살점 조각─현재는 내 몸─은 여기서 간간이 떨어지는 액체를 흡수하고 연명했나 본데.

음식물을 캐치할 정도의 조작은 불가능한 데다가.

이 신체의 주인은 분명히 남자다.

여자였으면 진작 체액 쭉쭉 빨고 레벨 올려서 밖으로 빠져나갔을 테니까.

애초에 빨려고 시도해볼 생각도 없었지만, 남자의 체액은 촉수 괴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라는 촉수 괴물의 존재 의의를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잠깐만.'

여기가 식도라면, 굳이 벽을 타고 오르는 위험천만한 짓 안 해도.

잘 때 되면 알아서 누울 테니까 그때 빠져나가면 되잖아?

천잰가?

이것이 2회차 촉수 괴물의 노련함?

나는 몸을 웅크리고 때를 기다렸다.

몸의 주인은 술을 진탕 마셔서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으으윽.

촉감각이 꺼져 간다.

여신님 품에서 태어나, 뭐든 먹고 쑥쑥 자랐던 그때랑은 경우가 다르다.

지금 나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일 만큼 불안정한 상태였다.

정체불명의 은발 소녀에게 소멸당할 위기를 겪고 몸 바꿔치기하듯이 살아난 결과…….

촉수 괴물의 몸도 아닌 살점 파편 중 하나에 의식을 옮겨서 연명을 시도하고 있으니까.

촉감각이나 미끈거리는 액체 같은 본연의 기능을 몇 개 되찾은 것만 해도 엄청난 행운이다.

'모든….'

날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0부터 다시 만들어야 해.

험난한 길이겠지만, 아이는 시련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는 법이다.

그래.

이제 우리 어머니, 프레미아 여신님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어.

나 스스로… 극복한다!!

"콜록! 콜록! 케엑!"

으악! 식도가 흔들린다!

내 움직임으로 불쾌감을 느꼈는지, 수면 중이던 몸의 주인이 기침을 시작했다.

엄청난 충격!

빠져나가려고 가시처럼 깊숙이 박혀 있던 몸을 빼내자마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속절 없이 식도 벽에 이리저리 부딪쳤다.

「끄악」

젠장.

식도 안을 모험하는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저 목젖 부근이 존나 민감하네.

여기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생리 반응으로 기침이 튀어나오고, 나는 다시 안으로 돌아간다.

'안' 이라고 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소화액이 들끓는 위장으로 가는 통로를 말한다.

그건 지금의 나에게 있어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위액에도 자기 몸을 다치게 할 정도로 강한 산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뮤신이라는 점액이 위벽을 보호하고 있지만,

그 점액이 없어지면 본인의 위장에도 손상이 생긴다. 심하면 구멍이 나기도 한다.

그런 곳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내 몸을 구성하는 얼마 안 되는 단백질은 가차 없이 분해 되어, 놈의 양식이 될 것이다.

'촉수 괴물이 사람한테 먹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콜록! 케에엑!"

이런 썅!!

열심히 기어가던 나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위험해. 이 녀석 누워있으니까, 이러다 위액이랑 만나겠어!

'가만…….'

위장도 점액으로 보호받고 있잖아.

그렇다면 점액을 분비하면 내 몸도 보호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나는 애벌레만도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어서 식도를 탈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다 날이 밝아서 놈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바로 위장 직행이다.

'……토하게 하는 수밖에 없어.'

구토를 유도하는 게 가장 간단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여기서 나갈 방법이 있었다.

식도를 손상 입혀서 위액을 식도 쪽으로 역류하게 하면, 그 흐름을 타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라.

문제는, 이 죽어가는 몸으로 소화액을 분비할 수 있느냐다.

"콜록!"

젠장. 시간이 없어.

위액에 닿자마자 녹진 않을 거야. 결단의 시간이다.

「우오오옷!!」

나는 몸에 힘을 주고 아무도 듣지 못하는 기합을 질렀다.

할 수 있어!

내가 한 번 익혔던 능력이잖아.

이런 국밥 먹다 남긴 찌꺼기 같은 몸으로도…….

촉수 괴물의 힘을 발휘해라!!

[변태 <소화액>]

「크아아아앗!!」

분비이이이이!!!!!

"그윽!"

큰 거 온다!

내가 식도를 녹여서 손상을 입히자, 위액이 내 등을 떠밀었다.

「이예!!」

보아라, 이것이 촉괴의 서핑이다!

실상은 그냥 쓰나미에 휩쓸린 건축 자재처럼 밀려나고 있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미끈거리는 액체로 몸을 보호!

"쿡! 컥! 컥!"

됐어. 혀뿌리까지 올라왔어!

여기까지 오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등줄기도 식은땀도 없지만, 아무튼─

괴물같이 거대한 혀와 날 언제든 씹어 삼킬 수 있는 이빨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게 얼마나 변덕스럽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역류한 위액이 식도를 다치게 할 때, 사람은 매우 괴롭다!

"켁! 켁!"

잠에서 깬 남자는 입을 열고 어쩔 줄 몰랐다.

탈출!

떨어진 충격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는 그저 믿는다.

이 새끼가 아무리 술에 취해서 개가 됐어도 잠은 침대에서 자는 사람일 거라 믿는다!

폭신~.

「촉수 점프!」

나는 아크로바틱하게 회전하며 폭신한 매트리스 위에 안착했다.

"으, 쓰라려…."

사람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촉감각이 약해져서 음성 변조된 거인이 말하는 것 같다.

어차피 남자가 누군지는 내 알 바 아니므로, 서둘러 움직였다.

'이럴 수가.'

여기 매트리스 위…지?

마치 하얀 사막 아닌가.

내 몸이 얼마나 작아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머리로는 매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눈앞에 끝도 안 보이는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고 「자, 3초 안에 끝까지 가 봐」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지금 내 상황이 그랬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남자 몸에 깔려서 압사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지금의 나는 위에서 뭐가 떨어져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촉감각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저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데도.

'크으윽…….'

힘을… 벌써 다 쓴 건가?

하다못해 그때의 애벌레 정도 되는 힘만 있었더라도, 나는…….

여기서 허무하게 죽진 않았을 텐데.

예정된 파멸이 찾아온다.

사막에 엄청난 진동이 찾아왔다. 쓰라린 식도를 달래기 위해 물 한 컵 마시고 온 남자가, 다시 몸을 누이기로 한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어어어어!!'

움직여라. 내 몸!

털 수북한 남자 허벅지에 깔려 죽긴 싫다고오오!!

살의 없는 공격이 촉괴를 덮친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흰 사막이 검게 물든다.

'아아.'

미안해. 티아.

반드시 돌아간다는 약속, 지키지 못해서.

푸욱.

"으으응."

"미안. 깼어?"

"술 좀 적당히 마시지…. 에휴."

무거운 뭔가에 깔렸는데… 죽지 않았어?

오히려 힘이 솟아나다니, 뭐지?

그리고 옆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 설마…….

이 녀석, 유부남이야?

"꿀물 타 줄까?"

"괜찮아. 물 마셨더니 좀 나아졌어."

"응…."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로 압사당할 정도의 무게에 짓눌렸는데.

오히려 힘이 솟는다?

이 상황이 내게 말해주는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지금 날 깔아뭉개고 있는 건 남자의 몸이 아니다.

그놈 바로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던 와이프의 몸.

더 정확히는…….

큰 엉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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