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64)

'촉수 괴물이 됐어…!'

아마도 내가 이 시점에 여타 다른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감성의 소유자였다면,

「내가 이런 괴물이 되다니」 고통스러워하며 없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이미 하늘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멋진 촉수 괴물이 되다니!

얼마 전까지 지렁이나 다름없었던 내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며칠 밤을 지새운 거지?'

정신을 잃듯이 잠든 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탈피와 재생을 반복하면서 몸집을 불린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빌딩 같았던 나무가 작게 느껴질 정도다.

이제 사람 한 명 정도는 너끈하게 삼키겠는데?

내 체급은 이제 우리 세계의 가장 큰 뱀과 비교해도 꿀릴 게 없었다.

단, 옆으로 퍼져서 자루 같은 형태가 되었지만.

아마도 이것은 「내부에 먹잇감을 집어넣어 포식하기 위한」 형태로 보인다.

물론 이빨은 없다.

무시무시한 소화액쯤은 분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촉수 괴물의 포식이 뭔지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웃… 우호…!

큰 엉덩이로 날 구원해준 「티아」같은 미소녀만 포획할 수 있다면… 파라다이스!

나는 이미 두 개의 촉수도 손에 넣었다.

촉수 괴물(Lv.8) 여신의 가공 생명체

<미끈거리는 액체> 늘 분비되는 미끈거리는 액체. 잘 마르지 않고 미끄럽다. 오염 계수 0.1

└[소화액] 촉수 괴물의 소화액. 산도를 조절할 수 있다.

<촉감각> 피부로 마력 파장을 감지하는 인지 능력, 주변 사물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원시 촉수> 기본적인 촉수. 특징 없이 심플하다. 상대를 구속하거나 타격할 때 사용된다

밋밋한 촉수라서 조금 아쉽지만, 앞으로 수와 종류를 늘려나가면 되겠지.

덩치에 비해 촉수의 수는 아직도 적은 편이다.

질감도 내 겉면과 같이 회백색으로 평범하다.

이걸 뒤집듯이 '쑤욱' 내 몸 안으로 집어넣어서 돋아나게 하면, 내피가 겉으로 나오면서 분홍빛 촉수가 된다.

예쁜 여자 한 명만 Get하면 폭풍 성장도 노려볼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안 돼.'

누가 봐도 지금 상태로는 여자를 구속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정말 위험한 건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몸집이 너무 커졌어.'

이 몸으로는 숨을 수 없다.

도망칠 수도 없다.

발각되면 끝일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가진 거라곤 밋밋한 촉수 두 개뿐.

거기다….

젊고 예쁜 여자가 철퇴를 들고 숲을 돌아다닌다는 건, 즉 그런 게 자연스러운 세계라는 뜻이지?

사냥꾼들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진짜 좆될지도 몰라.

촉수 괴물인 만큼 감각만은 쓸데없이 예민해서 아픈 건 죽도록 싫다.

'쩝쩝….'

나는 접은 종이처럼 몸을 평평하게 낮추고 기어 다니면서 흙 알갱이와 풀을 섭취했다.

'눈이 더 잘 보이네.'

성장하면서 촉감각이 더 예민해졌어.

이제 내 주변에 뭐가 있는지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영양 + 0]

[영양 + 0]

'…….'

영양가 있어 보이는 구황작물 위주로 먹고 있는데도 영양이 되지 않는다.

통째로 뽑아서 닥치는 대로 입에 넣어도 마찬가지였다.

몸집이 커져서 이제 이 정도는 영양으로 쳐주지도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바닥에 흩어진 소동물의 대변이나 섭취하기는 싫었다.

이제 저런 걸로 영양 챙기는 건 졸업해야지.

단언컨대 똥이나 먹으려고 촉수 괴물이 된 게 아냐.

응애 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했을 뿐.

역시… 사냥?

촉수로 동물을 잡아먹어 볼까?

마침 사슴이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며 지나간다.

'오, 오옷. 사슴이닷.'

덩치도 훨씬 큰 내가 바짝 쫄아 있으니, 사슴이 피식 웃으며 지나가는 것 같다.

'저런 걸 어떻게 먹냐…….'

아무리 촉수 괴물이라지만,

살아있는 짐승을 죽여서 생으로 입에 넣으려니 좀 그렇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촉수 괴물이 되고픈 마음이 간절했던 나조차 사람이었을 때의 기억이 적응을 방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적응하는 수밖에.'

여신님은 어째서 내 기억을 남겨줬을까.

기억이 있으니 이런 기쁨도 누릴 수 있는 거겠지만…….

나는 열매라도 따 먹기 위해 달콤한 냄새를 찾아, 조금씩 땅을 기어갔다.

모두 촉감각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조금만 집중하면 먼 곳에 있는 과일 냄새를 맡는 건 일도 아니었다.

'좋아. 이런 식으로…… 차분히.'

포식자에게 들켜선 안 돼.

촉수로 싸워본 적이 없어서 매서운 들고양이 정도만 나타나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겠다.

[영양 + 0.5]

[영양 + 0.5]

갑자기 너무 짠 거 아냐?

과장 좀 보태서 과일 한 트럭은 먹은 것 같은데 티도 안 난다.

응애 때 먹었으면 영양 3만은 들어왔을 달콤해 보이는 열매도 맛이 없다.

결국 날 성장하게 하는 건 여자뿐이란 말인가?

'여자를 어디서 찾냐.'

천하의 촉감각도 어디가 끝인지 모를 넓은 숲에서 사람─그것도 젊은 여자─찾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지쳐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대충 몸이 가는 대로 질질 끌고 간다.

「먹는다」라는 행위를 열 시간 내내 했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스트레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초식 동물처럼 사는 건 촉수 괴물의 생태가 아니란 뜻이지.

그때였다.

숲 딸기 향에 이끌려 간 곳에… 여자가 있었다.

"흥흥~."

무방비한 등, 뽀얀 뒷덜미.

쪼그려 앉아 크게 부각된 엉덩이.

가느다란 팔에 바구니를 걸고 약초, 열매 등을 모으고 있는 듯했다.

'여자!!'

대체 여기 여자들은 뭘 먹고 자라길래 가슴이 저렇게 풍만하지?

이런 게 인종의 차이?

온화한 녹색 눈에 갈색 머리를 한 젊은 여성의 혼기 꽉 찬 몸이 나를 충동질했다.

너무너무너무 맛있어 보인다!

절호의 기회!

"응……?"

행동을 시작하려던 그때,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나는 사람 얼굴에서 핏기가 그렇게 빨리 가실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히,ㅇ,히,ㅇ야ㅏ야아악!"

시발, 깜짝이야!

도망치게 둘 것 같으냐, 촉수 어택!

나는 바로 여자의 발목을 휘감아 자빠뜨렸다.

"싫어엇!!"

아차! 입부터 막아야 했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흙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걸 보니 안쓰러웠지만, 이쪽도 필사적이다.

널 따먹지 못하면 굶어야 한다고!

"살려주세요!!"

젠장!

완전히 휘감은 줄 알았는데 여자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세다.

저렇게 큰 비명을 지를 줄 몰랐기 때문에 나까지 패닉에 빠졌다.

"윽, 하아. 하앗…!"

급하게 따라붙는다.

나무를 등진 여자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과호흡이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히윽, 히, 살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도망칠 곳은 없다!

이제부터 에로★크리쳐의 보지 정복 타임이다!

"제발……!"

대체 무슨 생각이지?

말도 안 통하는 괴물에게 손을 맞대고 싹싹 빌다니.

"다신 여기 오지 않을게요. 제발…. 제발…!"

절박한 목숨 구걸이었다.

냉정하게, 내가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생각해서 취한 행동은 아닐 터였다.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에 순수하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행동.

이상하게 더는 촉수를 뻗을 수 없었다.

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아는데, 안 움직여….

조금도 안 움직여!!

"힉!"

여자는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잽싸게 도망쳤다.

'잡을 수…… 없었어.'

첫 실패로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 몸은 아는 모양이다.

촉수물을 보고 즐기는 것과 스스로 촉수 괴물이 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이게 정말로 내가 바란 삶인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떵떵 쳐놓고.

사실 동물 변 먹게 됐을 때 이미 살짝 후회하고 있었지만,

그런 마음에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

사람은 참 간사하다.

괴물의 몸을 얻어도 그런 건 변하지 않았구나.

여신님에게 원하는 걸 모두 뜯어낸 후에는 제멋대로 후회하고 있으니까.

'아니, 후회하긴 일러.'

단지….

어제까진 사람으로 살다가 촉수 괴물로 태어나길 잘했다고 확 전환될 만큼,

내 마음이 단순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선을 넘어서고 괴물로 탈바꿈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걸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잘 모르는 세상에 혼자 떨어졌다는 사실을 몸서리치게 깨달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지쳐서 움직일 힘이 없는 것도 컸지만, 그 이상으로……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그날 밤…….

"저쪽을 찾아!"

마을 사람들이 나를 죽이러 왔다.

촉감각을 집중하자 근처에서 사람들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횃불.

횃불의 불빛이 한밤중의 유령들처럼 떠다닌다.

그 옆으로 비치는, 금속제의 날카로운 무기들.

'헉.'

나는 화들짝 몸을 일으켜 기어가기 시작했다.

"저기서 소리가 났어!"

"프라가의 바구니도 여기 있습니다."

"샅샅이 수색해라!"

"네!"

도망쳐야 해!

기본 촉수 둘만 단 채로는 승산이 없어!

"아빠! 저쪽이에요!"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프라가.

긴 갈발에 부드러운 녹색 눈을 한 젊은 처녀가, 양쪽에 마을의 남자들을 대동하고 나한테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저기 있어요. 죽여요. 빨리! 빨리 죽여버려요."

이제 프라가의 눈에는 공포감도, 살아났을 때의 안도감도 없다.

혐오감.

나를 향한 혐오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을 가져와!"

"정말 흉측하게 생긴 웜이군."

"없애 주세요!"

"뒤는 우리한테 맡기고 물러나 있어."

안돼!

벗어나려고 해봤지만, 나무에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무력하게 포위당한 나는, 곧장 난도질 당하기 시작했다.

촉수를 휘적거렸지만 별다른 위협은 되지 못하고.

내 몸이 찢어지는 걸 내 눈으로 보고 있으려니 너무 섬뜩하고 무서웠다.

새빨간 피가 튄다. 불타는 듯한 고통이 강하게 죄어온다.

아아! 아아아!

너무 아파! 그만둬, 그만둬!!

죽을 것 같아!

"좋아. 경련한다. 효과가 있어!"

"계속 찔러!"

힘을 쥐어짜서 도망치지만, 사람들은 집요하게 쫓아와 나를 찔렀다.

"아직도 움직인다!"

"이런 씨발, 흉측한 게!"

그만해, 그만하라고!!

아아, 여신님, 제발 도와주세요.

이제 그 눈빛의 의미를 알 것 같아.

「괴물로 태어나고 싶다고?」

여신님은 알았던 걸지도 모른다. 내 운명을.

흉측한 괴물을 도륙한다는 숭고한 의무로 똘똘 뭉친 인간 남성들은,

날 죽이는 손을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고통으로 뻣뻣하게 뻗은 촉수를 칼로 잘게 썰고, 창으로 나의 내장을 몇 번이고 찌르고, 횃불로 지지고,

피를 쏟는다.

내 몸에 이 정도로 피가 있는 줄 나도 몰랐을 만큼 쏟아 내리고,

마을 남자들은 피범벅이 되어도 보람찬 일을 하는 것처럼 어딘가 뿌듯한 표정이었다.

"프라가, 안심해. 우리가 제대로 죽여줄 테니까."

"네! 랭글 씨…."

"옷은 다 버려야겠어. 피 냄새가 지독해."

"죽었나?"

"이쯤 할까요, 프린델 씨?"

프린델이라 불린 남자는, 나를 내려보며 가만히 있었다.

"이런 종류의 마물은 뒤늦게 재생하거나 새끼를 칠 수도 있다고 들었다."

"의뢰를 낼까요? 이런 건 모험가들이 잘 알 텐데."

"이 녀석 아직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아빠."

프라가가 불안한 눈빛으로 아빠의 소매를 꼭 쥐었다.

"우선 좀 더 조각내. 시간이 늦었으니 나머지는 자루에 모아서 내일 태운다."

"예!"

찔리고, 베이고, 조각나고, 지져지고, 짓밟히면서.

하나, 하나 나와 같은 더러운 생물체가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인간들의 소원을 꾹꾹 눌러 담은 공격을,

온몸으로 받고…….

내 눈을 대신하던 촉감각도 거의 꺼져서 주변이 보이지도 않게 됐을 무렵.

뜻밖에 날 고통에서 구해준 건…… 비였다.

"다 젖겠어. 돌아가자."

"휴, 질긴 놈."

"계속 꿈틀거리네. 꿈에 나오겠어."

세찬 비가 쏟아진다.

이제 내 뜻대로 움직이는 건 5cm 정도 남은 촉수 끝자락뿐이었다.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내게, 무언가가 다가온다.

'누구….'

힘껏 보려고 해도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누군지 알았다.

흉한 살점과 핏물 범벅이 된 바닥을 배경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아름답게 뻗은 다리.

여신님이다….

여신님….

어쩌면 날 살려주려고 오신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보다 먼저 불쑥 치고 올라온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어머니 앞에, 노골적인 실패를 드러내는… 부끄러움.

프레미아는 작고 초라한 나를 비웃거나 설교하지 않았다.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내 아픔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그것이야말로 너무나도 큰 위로.

그리고 미안함….

나는 촉수를 뻗어 프레미아의 발가락에 닿았다.

그 여자는 그렇게나 기겁했던 촉수인데,

프레미아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내가 기어오르게 둔다.

그러자 날 내려보던 금발의 성스러운 여신이 말했다.

"날 원망해도 어쩔 수 없어."

아니오.

나는 당신을 원망한 적이 없어요.

"괴물로 태어난다는 건, 그런 거야."

촉감각으로 전할 수 없나? 이 기분을.

내 마음에서 흘러넘치는 감사의 기분을.

"다음에는 예쁘고 귀여운, 인간의 아이로 태어날 수 있길 바랄게."

싫어. 그런 건 싫어.

촉수 괴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똑같은 소원을 빌었다.

온 힘을 쥐어짜서 감사의 기분을 전했다.

"……."

전해졌나?

이제 살아날 방법이 없다면, 하다못해….

죽기 전에, 촉수 괴물로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나는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나면 안 됐어.

평생을 인간으로 살았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피부밑으로 뒤틀린 욕구를 숨기고 망가진 인간.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역시 죽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추하게 살고자 하느냐?"

수긍한다.

"모든 것을 짓밟고 망가뜨리는 삶을 받아들이겠느냐?"

수긍한다.

"그렇다면, 살점을 내리겠다."

화악.

빛이 뿜어져 나왔다.

꺼져가던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촉감각이 주변을 밝힌다.

프레미아가 손을 뻗어 올린 곳에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추하게 꿈틀거리는 살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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