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훈련이라고?"
강영훈은 한쪽 눈썹을 쭉 밀어 올렸다.
상현의 말이 잘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한 달이라는 제한시간 내에서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을 처리해야 할 이 시점에 뜬금없이 훈련을 한다니….
하지만 상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지닌 별. 그러니까 뾰롱이와의 동기화 훈련이죠. 아시겠지만 지금 제 숙련도로는, 자칫 폭주 상태에 들어설 수도 있으니까요."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그 훈련이란 걸 굳이 지금 이 시점에 하는 이유가 뭔데?"
자신도 모르게 날 선 말투가 나왔다.
만약 지금이 던전 공략 중이어서 길잡이인 상현의 포지션을 수행 중이라면 군말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설명하기 전에."
하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상현은 검지를 세워 보였다.
그 시선은 새로 합류한 마가리타와 마르코에게 향하고 있었다.
"먼저 말씀드릴 부분이 있겠네요. 다른 분들은 이미 들으셨겠지만, 저 두 분은 새로 오시기도 했고, 저희와는 또 다른 입장이시니까요."
상현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마치 경고하는 듯한 분위기에, 마르코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리?"
"네."
"뭐, 뭔데?"
어째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미 모두 내려놓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저런 분위기로 나오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탓이었다.
"이번 계획,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성공률은 대략 80퍼센트 정도. 어디까지나 저희 계산대로 상황이 맞아떨어질 경우죠."
"그래서?"
"그 부분을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만약 실패했다간, 분명 피해를 입으실 테니……."
마르코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분위기를 잡곤 고작 저런 이야기라니.
"그게 전부야?"
"네. 그 부분은 짚어야 할 것 같아서요."
"세상에.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무조건 성공하는 계획이 어디 있다고. 그 정도도 생각 안 하고 왔을까 봐?"
상현은 대답하지 않고, 머쓱하게 웃었다. 그에 마르코가 말을 덧붙였다.
"뭐, 우리가 들어온 꼴이 좀 우습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잊으면 곤란하지. 나나 마가리타는 너보다 몇 년은 일찍 A급 헌터가 된 사람들이라고."
"맞아!"
마가리타의 추임새까지. 마르코는 그 말을 끝으로 힘 있게 상현을 바라보았다.
상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죠.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계획의 성공률은 80퍼센트 수준입니다. 높은 편이지만 확실하진 않은 수치죠. 그래서 제가……."
상현은 순간 말을 멈추었다가, 눈썹을 슥 밀어 올렸다.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실패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요."
"…음."
상현의 말에 옌 훠는 눈살을 찌푸렸다.
새로 합류한 두 사람에게 경고한다는 식이었지만, 지금 상현의 분위기는 마치 말장난을 하는 듯 보였다.
'방송을 의식하는 건가.'
이미 지금도 시간은 흐르는 상황이고, 여유를 부릴수록 성공 가능성만 점점 낮아질 텐데.
"옌."
그때 같은 테이블의 동료가 그를 불렀다. 함께 중국에서 건너온 동료였다.
"말씀하시오."
"우린 당신과 뜻을 함께 하지만, 저런 애송이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낮은 톤의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했지만, 그러나 불만스러운 느낌만은 분명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그건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옌과 동행한 네 명의 헌터 모두,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저는 옌, 당신을 신뢰하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는 헌터들 역시 등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 상현이라는 남자는 아니에요."
연이어 쏟아져 나오는 불만 섞인 말들. 옌은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 시선은 상현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옌, 우리의 신념은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남자는 이런 상황에서까지 쇼맨십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우릴 배경 취급…."
"조금만 더 지켜보시오."
그때 옌이 말했다.
그 묵직한 목소리에 동료들이 입을 닫았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옌을 존중하겠다는 느낌이 강했다.
"곧 알게 될 거요. 무슨 생각인지."
"당신은 알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나도 모르오."
"……?"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태껏 실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아니, 놀라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게 맞겠군."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하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저는 다시 독자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물론이오.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옌은 단언하며 상현을 지켜보았다.
상현은 무언가 분주히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도 상현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지만, 하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뭔가 계획이 있을 거야.'
카메라 앞에서의 상현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담아 움직이는 남자였다.
적어도 옌이 보아온 상현은 그러했다.
그리고 마침내 준비를 마친 건지, 상현은 화면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쪽 보시죠."
떠오른 건 복잡한 형태의 그래프였다.
세 등급의 던전 개수, 한 달의 제한시간과 현재 움직일 수 있는 전력 따위가 빠짐없이 표시되어 있었다.
"조금 복잡하죠? 이건 어디까지나 계산 과정을 보여드리기 위한 거고, 아래쪽 보시면… 적혀 있죠? 대충 70퍼센트라는 거."
상현은 그래프 하단의 숫자를 가리켰다.
그게 지금 예측할 수 있는 성공률을 표시한 숫자 같았다.
옌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대로라면 부족하다. 동료들을 설득하려면, 무언가 확실한 걸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여기엔 보시다시피 저랑 하수연 씨가 배제된 상황이죠. 만약 여기에 저희 두 사람이 추가된다면."
상현이 손을 휙 내젓자 그래프의 모양이 살짝 바뀌었다.
"이렇게, 하나의 A급 파티가 추가되죠. 도합 네 개의 파티. 그렇다고 해도 성공률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그거, 좀 이상한데. 그럼 네가 훈련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닌가? 전력 상승을 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네."
강영훈의 지적에 옌은 고개를 끄덕였다.
C급 던전을 제거한 후에야 추가 공략을 할 수 있다면, 상위 파티가 강해져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제가 훈련을 마치면, 저는 혼자 움직이게 될 겁니다. 수연 씨만 다른 파티로 합류하실 거구요."
"…A급 던전을 혼자 공략하겠다고?"
"아마 가능하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의미가 없죠. 말씀드렸다시피, A급 던전을 공략하는 건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젠장, 대체 무슨……."
"저는 B급 던전을 돌 겁니다."
일순간 회의장에 정적이 흘렀다.
옌은 슬쩍 동료들의 반응을 살폈다. 박차고 나가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오히려 너무 어처구니없는 탓에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상현은 여전히 활기차게 설명을 이어갔다.
"제 별의 능력은 단순히 전투력이 올라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바람의 힘을 빌려올 순 있지만, 그것 역시 능력의 일부에 불과하죠."
"그건 알고 있다만……."
성대원마저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그에 상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던전과 관련된 존재들. 녀석들과 교감하고, 길들일 수 있는 게 바로 뾰롱이의 능력이죠. 덕분에 이전, 아마존에서 따라온 녀석이."
"삐이이이잇!"
단상 아래서 검은 요정, 삐약이가 훅 튀어나왔다.
'새끼 마족'이라고 알려진 녀석은 상현의 어깨 위로 홱 올라앉았다.
"바로 이 삐약이죠. 그리고 한 가지 알아주셔야 할 게, 삐약이는 새끼 마족이 아닙니다.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오히려 성스러운 존재에 가깝죠. 마족들의 숭배를 받는 대상. 그 이유는."
상현은 씩 웃었다. 그리고 할 수 있겠냐 속삭이며 삐약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삐이잇!"
나름 결연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 그리고 녀석이 짤막한 팔을 양쪽으로 들어 올렸다.
쩌적! 쩌저적! 쩌저저저적!
허공이 갈라지고 있었다.
던전의 틈이 찢길 때나 보이는 균열 현상.
헌터들은 전투태세로 들어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미친! 게이트잖아!"
"길잡이! 지시 내려!"
의자가 사방에서 뒹굴고, 테이블보가 휘날린다.
삽시간에 열 명이 넘는 헌터들이 무기를 빼어들고, 상현의 지시를 기다렸다.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무기 내리세요."
하지만 상현은 오히려 헌터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는 사이에도 균열은 점점 덩치를 키워가더니, 이내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확 벌어졌다.
타닷!
무언가가 균열에서부터 튀어나왔다.
인간과 비슷한 형체의 몬스터. 검은 피부와 억센 뿔을 지녔으며, 그와 상반되는 붉은 눈동자와 전신을 뒤덮은 문신.
"…마족."
옌이 짧게 말했다.
그리고 그걸 신호탄 삼아.
타닷! 타닷! 타닷! 타닷! 타닷!
균열로부터 연달아 튀어나오는 마족들.
족히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
A급 던전, 그중에서도 최상위 던전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들이 헌터들을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은 기세였다.
지금 이곳에 모인 헌터들이라면 제압할 순 있겠지만, 피해가 없을 거라 장담할 순 없는 전력.
"대체 무슨……."
옌의 동료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기를 다시 겨눈 채, 마족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상현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무기 내리시……."
"저 자식들이 이빨을 집어넣는다면 그렇게 하지."
"아, 그거라면."
강영훈의 지적에 상현이 으쓱하더니, 삐약이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녀석이 마족들 앞으로 쪼르르 날아갔다.
그리곤.
"삐이이잇! 삐잇! 삐이이이잇!"
마족들을 '혼내기' 시작했다.
"……?"
"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직도 긴장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 꼴에 상당수가 무기를 축 늘어뜨렸다.
작은 요정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무어라 외치자, 기력을 잃은 것처럼 축 늘어지는 마족들.
단순히 기죽은 게 아니라, 정말 힘을 '뺏긴'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얼빠진 채 지켜보는 가운데.
상현은 그 광경을 뒤로하고 걸어 나왔다.
"보시다시피. 이게 삐약이가 마족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힘의 근원이거든요. 삐약이가 마음만 먹으면, 저 마족들은 오히려 C급 몬스터보다도 약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지금은."
말하다가 상현이 그만하라는 듯, 삐약이에게 손을 내저었다.
녀석은 땀을 훔치는 시늉을 하더니, 양팔을 축 내렸다.
우르르르릉!
균열이 거세게 진동했다. 그리고 한 놈씩, 마족들이 게이트 안으로 '빨려'들었다.
마침내 마지막 마족까지 사라지고, 삐약이는 지쳤는지 하늘거리며 날아 상현의 어깨 위에 올라앉았다.
"제 숙련도가 낮아, 오래 지속할 순 없지만요. 하지만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지속 시간이 늘어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소환할 수 있는 머릿수도 몇 배로 많아질 겁니다. 그렇다면."
훅. 상현은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그래프에 자그마한 변동이 일었다. 훈련을 마친 후의 상현이 전력으로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하단에 표기된 성공 확률은, 이제 95퍼센트를 넘기고 있었다.
"제가 B급 던전을 공략할 때마다 발생하는 하위 던전. 그것들의 공략을 마족에게 맡길 수 있다는 말이 되겠죠?"
그의 말대로였다. 몬스터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녀석들 역시 전력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소리니까.
상현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아마 한국의 B급 던전. 그중 절반은 저 혼자 감당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뾰롱이를 통해 힘을 얻는다면, B급 던전을 삽시간에 공략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멋지군."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헌터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다들 잔뜩 놀란 눈으로 상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아직도."
옌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저 남자가 애송이라 생각하시오?"
"……."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당혹스러운 눈빛은 이미 대답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옌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