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이번 던전, 정말 특이한데요."
상현이 중얼거렸다.
복어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이곳은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심해에 위치한 건물 내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공간의 양쪽 벽면에 촘촘하게 설치된 등불 덕분이었다.
'아, 등불이 아닌가?'
다시금 확인하니 등불이 아니라 주먹만 한 구슬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빛의 세기가 너무 강한 탓에 착각한 모양이었다.
"무슨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느낌이네요. 저걸 뭐라고 하더라? 야명주?"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로의 좌우로는 졸졸 흐르는 물길이 있고, 그 옆 벽면에는 동양의 용과 수련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끼 낀 바위가 곳곳에 있어 마치 호수 위의 정자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성대원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뭐 보여?"
"네?"
"나도 흐릿하게 윤곽만 겨우 보이는 걸… 상현이 네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내 착각인가?"
"마찬가지야. 너무 어두워."
비키까지 말을 받고, 다른 파티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의 몸이 굳었다.
'…벌써.'
인식장애 때문에 상현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이곳을 어둡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잠깐 쉬었다 가죠. 지쳤나 봐요."
"여기서 쉬자고? 조금 더 가서 쉬지?"
"점검 좀 하고 가게요. 복어가 말한 대로면, 이 다음 방부턴 몬스터가 나오니까."
"싸우더라도 좀 밝은 곳에서 쉬는 편이… 아니다. 네 말이 맞아."
성대원은 반박을 멈추었다. 그리곤 털썩 바닥에 대충 앉아 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얼굴엔 불편하다는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다.
어둠 속에서 쉰다는 건,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드니까.
'이거, 나도 안 보였으면… 그냥 패스했겠는데?'
상현 자신도 밝은 곳을 택했을 게 분명하다.
지금의 전력은 충분히 강하고, 몬스터 무리가 나온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상대한다.
'망할. 대체 뭐지?'
상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공략하는 파티원들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타이밍이었다.
인식장애.
이게 던전의 자연적인 장치라기엔, 너무 묘한 상황 아닌가.
마치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조치해둔 것처럼…….
'만약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일부러 이곳을 지나치게 하려는 게 목적일 터.
상현은 얼핏얼핏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언가를 놓치게 한다거나, 혹은 다음 방에 대한 대비를 갖출 수 없게 하는 정도.
그렇다면 이 방에서 상현 일행이 얻을 수 있는 걸 찾아야만 한다.
'원래 계획했던 던전이랑… 구조는 비슷하니까.'
상현이 복어의 설명을 듣다가 느낀 부분이 있었다.
지금 공략중인 던전의 전체적인 구조만을 봤을 땐, 기존에 공략하기로 했던 사막 던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사막 던전의 경우엔 '표지판'이 있고,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길 찾기'를 해야 했었다.
그게 이 바닷속 던전에선 '인어'와 '미로'로 대체된 것이다.
이 다음 과정도 비슷했다.
휴식 및 충전을 위한 공간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바로 몬스터를 만나 처리해야 한다.
마치 기존 사막 던전의 뼈대에 살만 다르게 붙였다는 느낌이었다.
'사막 던전에서의 휴식처는 오아시스였지. 공략을 마칠 때까지 필요한 물을 챙겨가야 하는 스팟이었어. 식수보다도 그 열기에 저항하려… 어라?'
생각을 하다 보니 사막 던전과의 차이점이 생각났다.
지금 있는 공간은 물로 채워지지 있지 않았다. 바닷속 같던 다른 장소와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마치 지상의 건물에 들어오기라도 한 듯한 상황.
'왜 다른 거지?'
바깥의 물에선 호흡이 가능하다.
어차피 그럴 거라면, 굳이 이곳의 물을 빼둘 필요가 없을 텐데.
'만약 저 문 너머부터 달라진다면? 그럴 듯해. 그리고 그곳에선 호흡이 안 되는 거지. 정말 바닷속에라도 온 것처럼…….'
오싹 소름이 끼쳤다.
충분한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다들 잠깐 모여주세요. 이쪽으로."
"……?"
"물건을 좀 찾아야 돼요. 혹시 주변 밝힐 수 있는 아이템 있으신 분?"
"가능하긴 한데, 전투형 아이템이야."
성대원이었다.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바로 사용하세요."
쿡.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대원이 토템을 박아 넣었다.
화르르륵!
뱀 형상의 거센 불꽃이 일었다.
단번에 확 밝아지는 주변.
불꽃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가 일렁였다.
"이거 들고 움직일 순 없는 거죠?"
"그건 안 돼. 토템이니까. 다른 곳에 새로 설치하면 위치는 옮길 수 있다."
"어쩔 수 없죠. 이거라도……."
"나도 가능하긴 한데."
이번엔 강영훈이 말했다. 그런 기술이 있었던가. 상현은 갸웃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 좀 드리… 으앗!"
상현은 당황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서걱! 강영훈은 칼을 들어 자신의 팔을 그어버린 것이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다만 얕게, 몽글몽글한 핏방울이 맺힐 정도로만.
"아니 왜… 아. 그거 영훈 씨 기술이에요?"
이건 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강영훈의 눈이 붉어지더니, 이내 전신에서 붉은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되냐?"
"감지덕지죠. 충분해요."
일종의 인간 램프 비슷한 셈이었다.
충분한 밝기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수색하는 덴 지장 없을 정도.
"자, 그럼 여러분이 찾아주셔야 할 건."
상현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공기를 담을 수 있는 아이템. 혹은 공기를 생성하거나, 어쨌든 호흡이 가능하게 해주는 녀석을 찾으시면 돼요."
"호흡이라고?"
"네. 아마 이 다음 방부턴 숨을 쉬는 게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당황한 듯 바라보는 눈빛에, 상현은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인식장애에 관련된 정보는 돌려서 말했다.
복어의 설명과 던전의 몇 가지 특징, 그리고 이번 공간에서 알아낸 정보까지.
"그럴 듯한데. 좋아. 물건의 형태는?"
"저도 몰라요. 분명히 그런 게 있을 거라는 정도만 예상하고……."
"감응력 있잖아."
강영훈은 의아하다는 듯 물어왔다.
붉은 눈빛 때문에 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 설명하기 복잡한데.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아서요. 저도 모르는 건, 감응력의 탐색 범위를 넘어간다고 해야 할지."
"그런가. 흠, 너무 까다로운데?"
"이상해 보이는 것들. 왠지 의심스럽다거나, 그런 것들 전부 저한테 가져와주세요. 그 정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끄덕. 파티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빛을 내는 강영훈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대형이었다.
그걸 잠시 지켜보다가 상현은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너희들도 어두워?"
"뾰로롱?"
"삐잇."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뾰롱이와 고개를 도리질하는 삐약이.
요정들에겐 인식장애의 범위가 미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상현은 카메라를 당겨왔다.
[너무 캄캄해양...]
[ㅋㅋ지금 방송보는애들 미래임ㅅㄱ]
[응 아니야~]
전체적으로 루즈한 분위기였다.
시청자들도 어둡다 여기는 건 마찬가지여서 흥미가 확 식어 버린 게 눈에 보였다.
'골치 아픈 상황이네.'
하지만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시청자 형님들, 지금 뭐 보이세요?"
대충 멘트를 시작하며 상현은 휴대폰 라이트를 켰다.
휴대폰 라이트를 키는 것 외에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방금 들으셨겠지만, 지금 좀 찾아야 하는 물건이 있어서요. 아직 저희도 형태는 모르지만……."
상현은 적당히 뒤적거리다가 바위를 하나 골라 앉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당겨와 멘트를 이었다.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밑에 물 흐르는 거 보이시죠? 바깥이랑 물빛도 다르고, 잠시만요."
상현은 흐르는 물에 손을 가져가 한 움큼 펐다.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호흡을 떠나서, 이렇게 낮은 온도라면 저체온증에 걸리는 등 행동에 제약이 많을 터였다.
스으윽. 상현은 물을 입가로 가져왔다.
입술을 댄 채 숨을 들이켜 보았으나 차갑고 짠 물만이 입안으로 밀려올 뿐, 공기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예상대로야.'
상현은 시선을 들어 물이 흘러나오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문이 보였다.
아마 저 문을 열면, 쓰나미처럼 차가운 물이 밀려들 터.
"굉장히 차갑고, 짜네요. 이거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상현은 인상을 찌푸린 채 몸을 일으켰다.
앉아있던 바위를 툭툭 걷어차 보고, 흐르는 물 아래를 확인했다. 혹시나 싶어 벽화까지 더듬어 보았으나,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뭘 찾으라는 거지?'
숨겨져 있긴 한 건가.
상현이 그런 생각까지 할 무렵. 바위 하나가 상현의 눈에 들어왔다.
얼핏 봐선 다른 것들과 같은 모양새였다. 이끼가 한 가득 피어 있는, 오래 방치된 듯한 느낌의.
하지만 상현이 이상하게 생각한 건 그 아래, 물길 속에 위치한 바위의 하단부였다.
'색이 이상하잖아?'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드러난 부분은 이끼에 덮여 알아볼 수 없었지만, 흐르는 물에 잠긴 부분은 투명해서 수정 구슬 같은 색감이었다.
"여러분, 아무래도 찾은 것 같습니다."
바위를 바라보며 상현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쪽 방향으로 다가섰다.
정체는 모르지만, 최소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거라 확신하며.
"아마 열쇠로 짐작되는데요, 여기 바위 색깔 보이시죠? 평범한 바위라면 투명할 리가 없죠! 던전 내부에! 그것도 이렇게 이상한 녀석이 있다면, 확인해 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말하며 상현은 바위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슥 손을 뻗어 바위로 가져갔다.
촉감부터 확인해보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슥 손을 갖다 댄 그 순간.
"……!"
우스스스! 우릉! 우르릉!
위의 이끼가 단번에 떨어져 나가더니, 바위가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상현아!"
뒤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 하지만 상현은 대답해줄 겨를이 없었다.
꿀렁! 꿀렁!
바위가 물컹거렸다. 마치 푸딩처럼 흔들리던 바위는 이내 완전히 녹아버리더니, 빠른 속도로 상현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차갑고, 끈적끈적했다.
상현은 두려움과 불쾌감에 손을 당겼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 움직임에 맞춰 바위가 늘어날 뿐.
마치 슬라임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 이럴까.
마구 몸을 틀어대던 끝에, 상현은 실라페의 발걸음을 사용하려 했다.
'일단 벗어나야……!'
하지만 다음 순간.
불쾌한 감각은 귀신 같이 사라졌다.
"……?"
상현은 순간 멈칫했다가, 바위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숨은 쉬어지고.'
후. 상현이 하나씩 상태를 점검했다.
'아픈 곳도 없는 것 같고… 가만.'
상현은 팔뚝 부근을 살짝 잡아 당겼다.
쭈우욱!
투명한 막 같은 게 길게 당겨졌다가, 놓은 순간 탁.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거 뭐야? 괜찮아?"
"아직… 모르겠어요. 확인해 보죠."
상현은 덤덤하게 말하고 흐르는 물에 손을 넣었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감각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그저 미적지근한 미온수처럼 느껴졌다.
"…이거였구나!"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시했다.
"투명한 바위 찾으세요. 이끼에 덮여서 안 보이니까, 물에 잠긴 부분 확인하시면 될 겁니다. 찾은 후에 그것 건드리시면 돼요."
그리고 상현은 가만히 시선을 떨구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쯤 되면 인식장애는 던전 자체의 장치라기 보단, 상현을 적당히 시험해본다는 느낌 아닌가.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찾으면 사는 거고, 못 찾고 넘어가면… 망할.'
짝! 상현은 자신의 뺨을 세게 두드렸다.
흘러가는 상황이 어째 쉽지 않았다.
길게 숨을 내쉬며, 상현은 복잡한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