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139화 (140/185)

139.

"감응력이라. 그건… 상당히 괜찮네."

말하며 성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생각했던 부분이긴 하다.

그게 가능하다면, 거리낄 게 없다.

그러나 그전에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하나 물어보자. 그게 사람한테도 적용되는 거 맞아? 그 사람이 기억을 숨긴다거나, 아니면 까먹었을 수도 있잖아. 아니면 리플리 증후군처럼… 알지?"

리플리 증후군은 거짓말에 심취한 나머지, 그게 진실이라 믿어 버리는 인격장애를 말한다.

성대원이 말하는 바는, 그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흔적을 읽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하지만 상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상관없어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서. 이건 뭐랄까… 제 기준에서의 범죄. 거기에 중심을 두고,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온 과정을 읽는…."

상현의 표정이 복잡하게 바뀌었다.

"아무튼 그 과정을 읽는다고 해야 할까요. 설명이 좀 이상하긴 한데, 그렇게밖에……."

자신 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성대원은 개의치 않았다.

"그게 당연한 거다. 원래 본인이 아니라면, 누구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거거든."

가령 성대원이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설명한다고 해도, 해당 아이템의 사용자가 아닌 이상에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호롱이라는 별의 소유자가 끊임없는 단련으로 그 '감'을 익힌 것이었으니까.

"근데 그거. 그냥 '성장'한 거냐? 아니면… 설마 별에 잠식당한 거 아냐?"

급격한 능력의 증가.

이건 별이 상현의 자아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그거라면, 능력이고 뭐고 당장 멈춘 다음.

지금 당장이라도 훈련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닐 거예요."

아마존에서 마족들과 대치했던 그 날 상현은 뾰롱이를 통해 무언가에게서 힘을 빌렸지만, 빌려오는 대상이나 그 과정을 이해하진 못했다.

그저 어떻게 쓰는 것인지의 그 방법만을 깨달았을 뿐.

"그게 별의 효과였겠죠. 이해할 필요 없이, 그냥 힘만 키워주는. 하지만 이번 건 달라요. 제가 확실히 이해하고 있거든요. 그 메커니즘을."

"괜찮군."

단순한 성장이다.

성대원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미지의 영역으로 가득한 능력이었다.

거기에 상현의 재능이 더해졌으니, 이 정도의 성장을 보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이건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부탁인데, 한 번 보여줘 봐."

"보여 달라는 게…."

"나한테 적용시켜 보라고. 내가 숨기고 싶은 기억. 그리고 머리에서 지워진 기억. 두 가지만 읽어보란 뜻이야."

이건 검증임과 동시에,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대체 상현의 능력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그게 알고 싶은 것이었다.

"…이건 기억을 읽는 게 아닌데요. 그게 가능했으면 벌써, 음, 아무튼. 단순히 그 '범죄'만을 확인할 수 있는 거라서요."

"범위를 지정한 부분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는 건가."

"그렇죠. 그것도, 좀. 제 의지가 강렬한 부분만 가능하죠. 가령 이번 건… 저희 가족이 납치됐던 일 때문에. 제가 강하게 알고 싶어 하는 거니까."

아. 성대원이 이해했다.

일종의 정신계 아이템인 만큼, 사용자의 정신력에 따라 탐색 범위가 한정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충분했다.

상현이 알아야 하는 건, 지원자들이 살아온 인생이 아니라, 그들의 범죄 참가 여부였으니까.

"그럼 그것만 해봐. 한 번 보자고. 얼마나 정확한지."

"좋습니다. 그럼……."

후우우. 상현은 길게 숨을 내쉬곤, 눈에 힘을 준 채 성대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상현이 입을 열었다.

"17년 전.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슬쩍 하셨네요."

"…아이스크림? 17년 전이라고?"

성대원이 피식 웃었다.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무렵의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탐색 범위가 넓은 건가.

감탄과, 대충 짚은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반씩 섞인 그 순간.

"그래서 굉장히 무서워 하셨던 것 같아요. 내가 왜 그랬지. 지금이라도 다시 돌려줄까. 아,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

"마음이 불편했던 탓인지, 배탈이 나셨네요. 그래서 하늘이 벌을 내린 거라고…."

"젠장. 기억났다."

성대원이 토해내듯 말했다.

흐릿하게 일렁이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분명 그런 일이 있긴 했었다.

상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나 더. 3주 전에…."

"……?"

성대원이 살짝 당황했다. 그렇게 최근이라니.

"그 날. 새벽에 길드로 돌아오시면서, 노상방…."

"으랏찻차! 거기까지! 충분해!"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성대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현의 입가에 검지를 갖다 대었다.

끝까지 듣지도 않았으나, 확실하게 기억나 버렸다.

그건 최근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나.'

어째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아마 추궁하는 김희원의 시선일 터였다.

길드장의 품위 어쩌고 하면서, 길게 늘어질 잔소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 여기까지 하자고. 숨기건, 잊었건 의미 없단 소리군. 좋아. 그럼 나머지 진행 방향은?"

성대원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김희원의 잔소리를 피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일단 여건이 확보된 이상 상현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궁금하긴 했다.

그 움직임에 호롱 역시 발을 맞춰야 할 테니까.

"그건 나중에 서면으로 보내드리죠. 일단 지금은…."

찡긋. 상현이 윙크를 하며 뒤의 카메라를 가리켰다.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어쩔 수 없지. 알았다."

성대원이 수긍했다.

그걸 뒤로, 상현은 다시 심사석으로 가 앉았다.

그와 동시에 마이크를 켜고, 외쳤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바로… 오디션 재개하죠!"

*** 박형석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바로 돈이었다.

누군가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만족할 줄 아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따위의 주장을 하곤 했지만.

그는 그런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돈은, 인간 위에 있다. 단 한 가지 부류의 사람을 제외하고.'

그게 박형석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부류의 사람, 그가 돈보다도 높게 치는 부류는 그런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돈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재력을 지닌 사람.

그리고 그건 박형석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헌터를 하자.'

자연스레 나온 결론이었다.

뒷배도 뭣도 없지만, 오로지 능력만 있다면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꿈의 직업.

위험하긴 했지만 그 정도 리스크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때마침 그의 계산적인 성격은 헌터로서 살아가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고.

얼마 전 마침내 B급 헌터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는 같은 시험에서 합격한 이들의 정보를 정리해두고 있었다.

인맥이라는 건 중요하니까.

같은 시험에서 합격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활동하는 데 비빌 언덕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런데 얼마 후 박형석은 그 합격자 중 한 명이 A급 헌터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헌터라는 건 연줄이 있어도, 마땅한 실력이 없다면 등급을 올릴 수 없었으니까.

'김상현.'

그는 그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기억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파티를 통솔해 시험에서 합격점을 얻어낸 남자.

분명 길잡이 포지션이었다.

뛰어나긴 했지만, 그 정도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숨겨둔 한 수가 있었던 건가.'

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

곧 박형석은 상현의 방송을 접할 수 있었고, 헌터가 된지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이 남자는 진짜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헤픈 이미지.

그러나 실전에 임하면, 180도 바뀐 채 실력을 드러낸다.

게다가 어떤 건진 모르지만, 숨겨둔 한 수로 A급 헌터라는 자격까지 따냈다.

'연줄을 대야 한다.'

결론은 났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도 순간 상현이 보일러 어쩌고 했을 땐, 이게 진심인 건가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다시 바꾸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건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그리고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서, 기회가 왔다.

박형석은 직감했다.

그가 지금껏 살아온 이래, 인생 최대의 전환점을 마주했다고.

[CKY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

그는 즉시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 끝에, 오디션 참가 기회를 얻었고… 마침내.

- 박형석 씨! 나와주세요!

지금 대기실 스피커에선 그를 부르는 상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좋아."

박형석은 결연한 분위기로 중얼거리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했다.

이 날을 위해 준비한 복장이다.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양복과 구두, 시계를 차지는 않았다. 자기과시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지적인 이미지를 위해 안경을 쓰고, 머리는 최대한 깔끔하고 샤프하게.

박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남은 건, 상현에게 그의 가치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뿐.

또각.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슥.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마침내 그가 무대 조명 아래로 나섰다.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진 않았다.

여유 있다는 듯, 무대 중앙까지 이동한 다음.

박형석이 상현과 눈을 맞추었다.

"안녕하십니까. 박형석입니다."

절제된 동작, 쓸데없는 멘트는 피한다.

허리는 45도까지만 굽힌다. 그 이상은 너무 비굴한 이미지를 주니까.

"반갑습니다! 이야, 잘 생기셨는데요? 시청자 여러분! B급 헌터 박형석 씨 입니다!"

역시나. 오히려 얼빵한 듯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박형석은 방심하지 않고, 즉각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이번엔 상현에게 한 것보다 조금 깊게 인사를 했다.

무엇보다 시청자가 중요하다는 게 지금까지 상현이 보여준 태도였으니.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형님들."

[ㅁㅊ밸런스붕괴 아니냐???]

[잘생겼어요!!!]

[저렇게생겼는데 B급 헌터라고??]

반응이 나쁘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저것 하나만을 위해 포장에 투자한 것이었으니까.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어낸 이상, 오디션 점수는 상당 부분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야, 시청자 형님들 반응이 뜨거운데요! 박형석 씨, 저희 구면이죠?"

"맞습니다."

"맞네. 그때 B급 시험장에서 봤었잖아요?"

"…그렇습니다."

박형석이 살짝 당황했다.

분명 그는 그때 상현의 파티원이었던, 붉은 머리의 남자를 탈락시켰었다.

'사과하라는 건가? 아니면 책임을 묻는?'

의문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야만 한다.

비록 저렇게 행동하긴 하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이미지메이킹일 뿐.

곧 그가 결론을 내렸다.

'책임을 묻는 게 아니야. 당당하게 나간다.'

그때의 일은 일종의, 업무적 과실이나 마찬가지.

자신의 포지션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뿐인데, 그걸 무어라 할 리는 없다.

상현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좋습니다. 그럼. 아, 여기 신청서 란에… 희망 포지션을 적어두셨는데. 이게 좀 이상하단 말이에요?"

"어떤 부분 말씀이십니까?"

"제 직속 비서를 희망하신다고… B급 헌터신데, 굳이 그런 일을 하시려는 이유가 뭔가요? 수입도 오히려 헌터 일이 낫지 않아요?"

역시나. 거추장스러운 이야기 대신,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었다.

이거라면 차라리 긍정적이었다.

박형석은 잡다한 멘트를 보두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핵심만을 떠올렸다.

"마이크 잠시 꺼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 아, 그건 좀 곤란한데…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형님들, 잠시만 껐다가, 바로 켜겠습니다! 양해 좀 부탁드릴게요!"

미안하다는 듯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상현.

그러면서도 망설임 없는, 깔끔한 진행이었다.

"자, 됐습니다. 말씀하세요."

"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현의 분위기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건가.'

새삼 저 자제심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긴장이 풀릴 법 한 상황이었음에도, 상현은 완벽하게 자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다.

박형석이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상현 씨는 얼빵합니다."

"얼빵하다는 게……."

너무 훅 들어온 공격에 상현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유부단하고, 이따금 멍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뜻이죠. 즉흥적인 결정이 잦고, 특히 여자 출연자와 마주했을 때 답답함의 정점을 찍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이제 상현은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왜 갑자기 팩트로 두들겨 패는 거지?'

마이크를 꺼달라는 이유가 이런 이야길 하고 싶어서였던 건지.

상현에게는 박형석의 말이 전부 옳다는 게 더 우울했다.

하지만 지원자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상현이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저기요, 왜 갑자기 막말하시는 건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저는."

지원자, 박형석은 멈추지 않고 말했다.

"그 모든 게 연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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