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129화 (130/185)

129.

"야. 상현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다."

성대원은 한숨을 쉬었다.

마족을 수하로 부려 같은 사람을 잡아 죽이겠다니.

이건 사람이 할 생각이 아니다. 지금 상현은 지나친 동기화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넌 지금 네가 뭘 한 건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박영찬… 그놈은 이미 끝났다. 네가 처리한 거. 이게 바로 그놈이 한 짓일 걸."

성대원은 상현을 달래듯,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게 했다.

마족의 창궐이라니. 수습도 수습이지만 벌어진 일 자체가 역대급이다.

박영찬 그놈도 아마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번지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터였다.

"그놈 아마 지금쯤이면… 뿌리까지 뽑히고 있을 거다. 협회장님이 단단히 화났거든."

"죽을까요?"

"…아마도."

"그건 좀 아쉽네요. 제가 직접 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죠. 협회가 움직인다면… 그럼 이제 더… 할 일은 없는… 거니까…"

상현의 말이 점점 느려졌다. 천천히 눈이 감기더니, 풀썩.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

성대원이 곧바로 쓰러진 상현의 목을 짚었다. 호흡과 맥박, 두 가지를 확인한 그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냥 잠든 거야."

"알아."

"……."

성대원을 머쓱하게 한 하수연이 보충하듯 한마디를 더 보탰다.

"첫 각성에서 폭주까지 해버렸으니. 체력 소모가 엄청났을 거야. 무리했어."

"그러게. 그럼 우린… 뒤처리나 할까? 나 참, A급 헌터 두 명이 뒤처리나 하다니."

성대원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인명피해는 확 줄었고, 음모를 꾸민 놈은 제대로 '빅엿'을 먹게 되었다.

"퍼포먼스로는 충분한 것 같은데?"

거기에다 영웅 만들기. 아직 그가 뭘 해 본 것도 없는데, 알아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번에 보인 상현의 힘은 그 임팩트가 어마어마했다.

"동감이야."

하수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동지로 합류한 이들은 고사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중립파들도 끌어들일 만 한, 그런 강력한 힘이니까.

*** - 그럼 이제 더… 할 일은 없는… 거니까…….

스피커에서 상현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내 상현이 풀썩 쓰러졌고, 성대원과 하수연의 대화가 잠깐 이어졌다.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그만."

그 한마디에, 팟하고 영상이 꺼졌다. 그렇게 말한 헌터협회장, 에드워드 도미닉은 스르륵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이거 참, 유감스럽겠군."

에드워드의 시선 끝엔,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박영찬이 있었다. 박영찬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어댈 뿐이었다.

그에 에드워드가 다시 말했다.

"정말 유감스럽겠어."

그 말은 진심이었다.

에드워드가 협회장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겪어온 수많은 경험들. 그 중엔 이런 비슷한 경우 역시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간신히, 혹은 운 좋게 그런 고난들을 넘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박영찬은 거기서 무너진 셈이었다.

그러나 사적인 감정은 배제해야만 했다. 에드워드는 이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하게 되었네. 이젠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그동안 충분히 고생해주었……."

"…기회를!"

박영찬이 다급하게 외쳤다.

절망적인 표정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연옥의 어느 누구도 본 적 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털썩. 박영찬이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욕심이 과했습니다. 제 분수를 모르고……."

"아니. 자네는 잘 알고 있었네. 그 정도 위치라면 충분히 그리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운이 없었을 뿐이야."

"…부디."

"미안하군."

박영찬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떨었다. 무릎에 올려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하얗게 질렸다.

에드워드는 그런 그를 무시한 채 이곳저곳으로 연락을 넣고 있었다. 그리고 박영찬을 인도할 절차를 모두 밟은 후에,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섰다.

에드워드가 박영찬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추었다.

"질문 하나만 하지."

"…예."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그 안을 들여다보듯 에드워드가 가만히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잡아먹으려던 꼬마가. 장난감 정도로 여겼던 그 아이가 자네를 밀어낸 셈이잖은가. 그런데."

에드워드가 말할 때마다 입가의 자글자글한 주름이 움직였다. 박영찬은 가만히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지금 자네는… 기분이 어떤가? 나도 겪어보지 않은 건 아니네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말일세. 정말…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그런데."

"……."

"오늘따라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야. 패배자의 기분이라는 게 말일세."

박영찬은 대답 대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신이 끝났다는 걸, 일말의 여지조차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은 탓이었다.

협회장, 에드워드 도미닉. 그는 악동 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

"흐흥~ 흐흥~ 루루루~"

강현석. 헌터 협회 한국 지부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았다. 그는 오랜만에 기분이 잔뜩 들뜬 상태였다.

그는 운전대를 잡고 홱! 뒤를 돌아보며 쾌활하게 말했다.

"수연이가 먼저 연락을 할 줄이야! 게다가 연락 내용도 마음에 쏙 들다니! 내 책상 달력에 꼭 적어 둬라! 하수연이 선톡한 날이라고. 알았지?"

"…운전이나 하십쇼. 지부장님. 사고 납니다."

제복 차림의 청년이 말을 받았다.

부우우웅!

방탄 옵션을 장비한 스타렉스 SUV 차량. 그 안에는 청년처럼 제복을 쫙 빼입은 남자들이 만전의 태세로 각을 잡고 있었다.

협회 소속의 헌터집단, 특무부였다.

게이트, 균열, 그리고 헌터가 개입한 범죄 발생 등, 긴급 상황 외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그들이 지부장이 솔선한 가운데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직접 하시고요."

부지부장 청년의 말에, 지부장 강현석은 아랫입술을 비죽 내민 채 장난스럽게 이죽거렸다.

"그 정돈 직접 하십쇼~라니. 야 인마, 너무 쌀쌀맞은 거 아니냐? 쿨시크한! 그것도 아리따운 여성분이어야 매력적인 거지, 칙칙한 사내놈은 아무 의미 없다고!"

"별로 매력을 보일 생각은 없습니다만. 어쨌든. 다 왔습니다.

"오, 그렇구만. 전원 정지!"

- 치익! 전원 정지.

- 치익! 클리어. 사주경계.

무전기로 지시사항이 전파되고, 예닐곱 대의 차량이 쫘아악 뻗어 나갔다.

끼이이익! 척! 척!

타다다닥!

문이 열리고, 모든 특무부대원들이 일제히 차에서 튀어 나왔다. 지부장도, 농담 따먹기를 하던 청년도, 지금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저. 저거 뭐야?"

"어어?"

제복을 쫙 빼입은 특무대의 움직임에, 주변의 민간인들이 놀라는 모습이 역력하다.

- 치익. 민간인 소개. 민간인 소개.

- 치익. 알았다. 정문 확보. 후문은?

- 치익. 확보. 지하 통로 막아라.

- 치익. 이미 완료.

무전기가 쉴 틈 없이 소리를 울려댔다. 바쁘게 지시를 내린 강현석이 홱.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으리으리한 고층 빌딩. 꼭대기 층을 보려면 고개를 직각으로 꺾어야 할 정도다. 강현석은 감흥 어린 얼굴로 타박타박 건물 입구로 걸어갔다.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건물 외부에는 경비실조차 없었다. 안에서 바깥으로 말을 전달하는 스피커 하나가 달려 있을 뿐.

똑똑똑!

강현석이 육중한 강철의 셔터문 대신, 중지를 굽혀 스피커를 가볍게 두드렸다.

- 방문 목적을 말씀해주십시오.

스피커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현석은 거기에 얼굴을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나랑 눈사람 만들래?"

-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왠지 카메라 렌즈에 얼음이 낀 것처럼 느껴졌다. 강현석은 푸핫! 폭소를 터뜨리곤 말했다.

"농담이고, 특무부에서 나왔습니다. 아, 저는 한국 지부장이고. 그보다 유머 감각이 없으시구만? 여기선 '당신 뭐야! 누구야!' 그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 지부장님이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다른 게 아니고… 에이, 무슨 용무기는? 솔직히 당신들도 내가 왜 왔는지 알잖아? 여기서 오크들 매일 끼니 챙겨주셨다며? 그것도 아주 비싼 메뉴로?"

-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얼핏,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에서 살짝 긴장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제 강현석은 킬킬 웃었다.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 아, 혹시 완전 말단이신가? 그럼 진짜 모를… 리가 없지! 애초에 연옥 문지기. 외부 손님을 분별하는 자리를 짬밥 없이 할 수 있나?"

-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길드장님께 용무가 있으신 거라면 추후에…….

"어이. 어이. 말장난은 여기까지 할까? 당신네 길드장 자리 비운 건 우리도 알고 있어. 그리고 당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여기서 문을 열어줬다간 그 길드장한테 개박살 날 거란 것도."

강현석이 이제 싸늘하게, 냉혹하게 목을 울렸다.

"그런데 말이지, 당신네 길드장. 이제는 전(前) 자가 앞에 붙었거든?"

- 무슨 말씀이신지…….

"방금 말한 그대로라고! 그러니까 이게!"

파락!

강현석이 품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걸 카메라에 비추며 말했다.

"연옥 길드장 박영찬, 지금 일개 범죄자 신분으로 구속된 상태라고. 그러니 당신네 길드. 지금 길드장 자리가 공석이란 의미야. 알겠어?"

- …….

다시 정적이 흘렀다. 강현석은 이제 코웃음을 치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는 살짝 달래주듯 편안하게 목소리를 바꾸었다.

"이제 그 무서운 박영찬 없으니까 안심하란 소리야. 그 양반 이미 감옥행 특급버스 예약했다고. 부릉부릉! 아. 이미 탑승했으려나?"

- 지금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

"어이. 이러면 재미없지? 어? 찬바람 맞으면서 우리가. 어? 얼마나 기다리라고? 우리 심기가 사나워지면 어? 그게 당신한테는 어떻게 될까? 그냥 확 다 부수고 들어가 줘?"

강현석이 으르릉! 맹견처럼 사납게 목을 울렸다. 사정 봐 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점차로 시간이 지나고, 정말 다 때려 부수고 들이닥칠까 고민하던 찰나.

철컥! 스으윽!

자물쇠 열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열렸다. 그와 함께 스피커에서는 예의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들어오십시오. 지부장님.

그 목소리엔 묘하게도, 안도와 희망이 함께 섞여 있었다. 강현석이 씩 웃으며 뒤를 돌아보고 외쳤다.

"특무부 전 대원!"

"옛!"

일사분란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강현석은 척! 손을 들어 열린 철문 안쪽을 가리켰다.

"진입! 다 쓸어 넣어!"

"이얏호!"

우르르르!

증거물 박스, 카메라, 화상 녹음 기록과 무기를 장비한 한 무리의 청년들이 죄악의 소굴로 뛰어들었다.

***

"…나면, 처리하도록 해야……."

"그래서 조치는… 무슨……."

"대체 어떻게 일을… 좋아."

시끄럽다. 상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목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지금의 상현에겐 천둥소리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웅웅 흔들렸다. 동시에 생각도 곤죽처럼 뒤섞이는 기분이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가만히 되새겨 보았으나 오히려 더욱 뒤엉킬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눈을 떠야 하는데.'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한참 끙끙대던 끝에, 상현은 간신히 입술만을 달싹일 수 있었다.

"여긴……."

어디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론 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상현! 정신 좀 들어?"

"상현 씨!"

"…음!"

성대원, 이주완, 박도진 순이었다.

상현은 대답 대신 얼굴을 파르르 떨었다. 한 명씩 외칠 때마다 뒤통수를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그 상태를 읽은 건지, 김희원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목소리 좀 낮추시는 편이 낫습니다. 김상현 길드원, 지금 환자나 마찬가집니다."

"…아차. 미안하다. 아니, 근데. 정신 차린 거 맞나, 이거? 왜 말을 안 해?"

성대원은 조바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상현이 다시 얼굴을 파르르 떨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상현은 조금씩 침을 모아 입 안을 적셨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정신 차렸습… 끄허!"

상현이 입을 쩍 벌렸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 팔만 슬쩍 당겼을 뿐인데.

"왜 그래! 뭐야! 왜!"

"상현 씨! 괜찮으세요?"

"으그그그… 괘, 괜찮아요."

상현이 이를 따다닥 부딪치며 말했다. 아직까지도 욱신거렸지만, 괜찮다는 건 진심이었다.

단지 좀 놀랐을 뿐, 이건 격하게 운동한 다음날의 근육통과 비슷했으니까.

그때 성대원이 말했다.

"좋아. 희원이는 마실 것 좀 준비해주고. 따뜻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걸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 둘은 나가 있어라."

"…예."

"꼭 나가야 할까요?"

"불만이면 너도 A급 헌터 하던가. 시험 잡아줘?"

"…가보겠습니다!"

이주완은 즉각 박도진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상현이 피식 웃었다. 사실 웃었다기보단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 것뿐이었지만.

이내 방 안이 고요해진 가운데, 성대원이 입을 열었다.

"할 얘기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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