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122화 (123/185)

122.

숲은 어두웠다.

주변을 채운 검은 안개는 짙고 끈적거렸다.

하지만 호흡하는 데 조금 거슬릴 뿐, 상현에겐 특별한 피해가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마침 핸드폰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시야는 확보되는 상황이었다.

'아쉽게도 들고 다닐 순 없지만…….'

상현이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핸드폰을 보며 생각했다.

손에 쥔 채 랜턴처럼 사용한다면 훨씬 편하겠지만 그렇게 할 순 없었다.

길을 밝힐 수 있다는 건, 주변 지역의 모든 생물이 그 빛을 볼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둔 채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고.

상현은 조심조심 더듬어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그렇게 걸었음에도, 주변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들릴 뿐.

'갑자기 뭐라도 튀어나오는 거 아냐?'

상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온갖 생물의 종으로 가득한 '아마존'. 그런 곳이 고요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인데, 그건 어쩌면.

'몬스터로 변하는 중이라던가…….'

상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어쩌면 지금 곁에 있는 오른손에 닿는 나무조차도 몬스터로 변이 중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상현은 그렇게 바뀌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알 수 없었다.

'…굉장히 불안한 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몬스터로 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런 대처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아마 좋은 꼴을 보기 힘들 터였다.

지금 상현이 기댈 수 있는 건, 양 어깨에 올라탄 두 마리의 요정과 그리고 몇 가지의 아이템 뿐.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잠깐의 시간벌이는 되겠지만, 오래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속도 좀 올려야겠는데.'

생각과 동시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 상현의 분위기를 읽은 건지, 양 어깨의 요정들은 손으로 입을 꼭 막은 채 숨죽이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을 한 번씩 쓰다듬어주곤 상현이 레이더를 확인했다. 몬스터의 위치가 노란 점으로 표시되는 녀석이었다.

이걸 기준으로 삼아, 아까 파티원들과 지나왔던 길을 찾으려는 생각이었다.

주변 지형을 알아야 어떤 일에라도 대처하기 편할 테니까.

하지만 레이더를 확인한 상현은 놀란 눈으로 걸음을 멈춰야 했다.

"……?"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노란색 점들. 즉 몬스터가 점점 줄어드는 게 보였다.

순간 안에 갇힌 헌터들이 움직이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원인은 붉은 점이었다.

아까 UEL이 덮쳐온 순간을 기점으로, 하나둘씩 나타나던 붉은 점들.

그 점들이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 경로에 있는 몬스터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뭐야. 왜 없어지는 거지? 빨간 점이 헌터들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상현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 레이더를 지급받을 때, 표시되는 건 '몬스터뿐'이라는 말을 분명 들었다.

'그럼 기계 오류… 아니지. 설마. 협회에서 준 건데. 그럼 뭐야. 몬스터들끼리 싸운다는 소리야? 색깔은 왜 다른 거지?'

상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혼란스러웠다.

붉은 점의 정체도 모르는 상황인데, 녀석들이 다른 몬스터들을 없애고 있었다.

"후욱."

짧은 심호흡.

상현은 정신을 다잡고 상황을 분석했다.

'붉은 점들은 아마도… 더 강한 몬스터. 그것도 엄청.'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레이더에 표시된다는 점. 다른 몬스터를 '쉽게'처리하며 이동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존 A급 헌터들이 상대하던 몬스터 역시 노란 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 녀석들은 아마 걸어 다니는 재앙에 가까운 존재였다.

'위험해.'

머릿속에 경고음이 마구 터지는 기분이었다.

마주치기라도 하는 순간엔 아마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보이는 붉은 점은 총 일곱.

방금까지만 해도 점은 여섯 개였지만, 한 마리가 늘어났다.

그리고 녀석들의 이동 방향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그건 다행스러운 부분이었지만 녀석들의 속도로 미루어봤을 때, 걸리는 순간 도망가긴 글렀다고 봐야 했다.

'우선 아까 지나온 길목으로. 최대한 빨리.'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상현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거의 반쯤 뛰다시피 하는 수준이었다.

괜스레 불안해 소리도 죽여 가며 움직였던 것인데, 이젠 그것보다 자리를 잡는 게 중요했다.

'내가 아는 곳으로.'

헬기에서 뛰어내린 이후부터 파티원들과 헤어지기 전까지.

상현의 머릿속에는 해당 경로의 지형이 느린 속도지만 확실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옆에 나무가 있는지… 강줄기가 흐르는지…, 혹은 몸을 숨길 수 있는 무성한 덩굴이 있는지.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생각하면서도 상현이 빠르게 달렸다.

몇 번인가 나무뿌리에 발이 걸리고, 야트막한 개울을 뛰어 넘고, 무성히 자라난 덤불을 헤쳐 갔다.

상현이 그곳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30여 분이 지난 후였다.

"후우우."

그리고 조금이나마 여유로워진 마음에 안도의 숨을 내쉰 바로 그 순간.

"크오오오오오!"

"……!"

상현은 처음으로 그 몬스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밀림 전체가 웅웅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레이더 상으로 봤을 땐 분명 상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소리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크오오오오!"

"크오오오오오!"

마치 늑대들의 하울링처럼 다른 녀석들의 울음소리도 연달아 들려왔다.

상현이 바짝 긴장했다.

'왜 저러는 거지? 서로의 위치 확인하는 건가? 아니면 사냥? 큰 의미 없는 건가?'

온갖 추측이 떠올랐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삐이이이잇!"

"무슨……!"

어깨에 올려둔 검은 요정.

녀석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쉿! 쉬잇!"

상현이 다급하게 반응하며 녀석을 땅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터져 나온 소리에 한쪽 귀가 먹먹해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상현은 그 귀를 틀어막은 채 녀석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녀석은 다시금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삐이이이잇! 삐이이이잇!"

"쉿! 제발! 조용히 좀……."

상현이 필사적으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크오오오오오!"

화답하듯 돌아오는 흉포한 울음소리에 상현의 몸이 굳었다.

홱, 상현이 레이더를 눈앞으로 당겨왔다. 그리고 반대편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한발 늦은 것 같았다.

"오, 맙소사."

여덟 개의 붉은 점이, 정확히 상현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

"지금 기다릴 상황이 아니라니까!"

성대원은 거칠게 소리쳤다.

주변의 몇몇 헌터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복 차림의 남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진입했다간 피해가 훨씬 커질 테니까요."

"망할!"

성대원이 곁의 나무를 거칠게 걷어찼다.

단순한 화풀이였지만, 콰쾅! 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성대원은 A급 헌터였고, 그럴 만한 힘이 있는 게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남자들은, 성대원 같은 A급 헌터라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방금 그 행동. 브라질 정부가 싫어할 겁니다."

"싫어하라고 해!"

안색하나 바뀌지 않은 남자에게 성대원이 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대답 없이 뒤돌아섰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에 빠득 성대원이 이를 악물었다.

후우우우욱. 후우우우욱.

청소기 따위로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자가 다시 작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성대원이 가만히 그쪽을 지켜보았다.

거대한, 반구형의 검은 막이 경계를 가르듯 숲을 뒤덮고 있었다. 표면에선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에서, 제복 차림의 남자는 자그마한 항아리 같은 걸 통해 그 UEL을 '흡입'하고 있었다.

UEL은 엄청난 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지만, 문제는 남아있는 양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는 것이었다.

"이래서 언제 돌입하겠다는 거야… 빌어먹을!"

성대원은 절망적인 얼굴로 파티원들에게 돌아왔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자식들."

성대원이 우울하게 말하자 데이나가 달래듯 말을 받았다.

"저 사람들은 원래 저렇잖아요. 저게 일이니까."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잖아."

성대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금 그를 제지한 남자는, 협회 직속의 헌터였다.

특무부. 즉 특수무력부대라는 집단에 속한 남자였는데, 이런 식으로 게이트나 균열이 열릴 때마다 대처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지켜보던 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히 공안(公安)이라 불리는 게 아니군."

"공안? 아, 중국 경찰."

성대원이 힘없는 웃음을 흘렸다.

한국에서 그들이 헌터 공무원이라 불리는 걸 생각하면 적당한 표현이었다.

그때 뒤에서 하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협회 쪽에 요청 넣었어. 곧 답장 올 거야."

"요청이라고? 무슨 요청?"

성대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청한다고 들어줄 거였다면 그가 진작 했을 터였다.

그가 들어가지 않고 참는 건, 짜증나긴 해도 특무부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으니.

A급 헌터라고 해도 UEL이 저렇게 짙은 상태에서는 상당한 분량의 전투력을 손실할 게 분명했고, 그 상태론 안의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다.

"돌입 허가 신청했어."

이어진 하수연의 말에 성대원이 미간을 좁혔다.

협회 분위기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해줄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그녀의 말투는 덤덤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지만, 지금 말하는 사람은 하수연이었다.

가망 없는 일이라면 칼같이 포기하라 말하는.

성대원의 표정에 희망이 깃들었다.

"이유는?"

"조건 세 가지. 전투를 피할 것. 구출을 최우선으로 할 것. 그리고 경험자에 한해서만 들어갈 것."

"그게 전부야?"

"그래."

성대원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머릿속 주판알이 이리저리 튕겨 다녔다.

그가 기대했던 건 헌터들을 총동원한 '소탕'이었고,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돌입 규모를 작게, 그리고 전투를 피함으로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한다.

게다가 투입 인원은 오로지 경험자들 위주로. 즉, 이 정도 수준의 던전을 공략해 본 사람들만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겠는데."

성대원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그가 바란 건 몬스터를 잡아 죽이는 게 아닌, 상현을 저 안에서 꺼내오는 것뿐이었다.

"그래. 가능하겠어. 좋아. 이 중에 경험자. 몇 명이나 있지?"

성대원이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엔 상현을 꺼내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하지만 스르륵 손을 든 건 하수연 그녀 한 명뿐이었다.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에 아쉬움이 드러났다.

"더 없어?"

"없어. 저 정도라면… 사실상 S급 던전이잖아? 물론 공식적으론 A급이지만. 애초에 급이 다른 걸?"

마가리타가 말했다.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분류한 등급은 A가 끝이었지만, UEL이 6천을 넘어가는 던전은 헌터들 사이에서 S급으로 분류되곤 했다.

성대원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자, 옌이 장포를 슥 쓸어내리며 말했다.

"네가 열일곱 별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 것 같은데. 정신 차려, 성대원. 감정을 다스려야 최상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맞는 말이야. 좋아. 그럼 하수연이랑 나만 들어가지."

"다른 길드에도 있을 텐데."

"그놈들은 지들 길드원 구한다고 바쁠 거야. 협력하기엔 범위가 너무 넓어."

성대원이 쏟아내듯 말했다.

이주완과 박도진. 그리고 울프 그릴스는 안전하게 밖으로 나와 후방에서 대기 중이었다.

하수연과 그 자신. 둘이라면 상현 하나 꺼내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다음 그가 핸드폰을 들었다.

대략적인 위치라도 파악해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화면을 켠 순간, 방송 대신 메시지 한 줄이 떠올랐다.

[방송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뭐야? 지금 방송 보고 있는 사람?"

성대원이 갸웃하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잠깐 다른 일을 한다고 나갔던 것뿐인데, 방송에 들어가지질 않았다.

하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저도 안 되는데요?"

"안 들어가지는군. 조건이라도 있는 건가?"

"나도 안 돼."

하수연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성대원이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방송을 켰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대답하지 않은 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뭐야, 그런 거였어?"

능글맞은 목소리였다.

성대원은 표정이 굳었지만, 마르코는 말을 이었다.

"왜 아무도 말을 안 하나 싶었는데, 다들 안 보고 있었던 거였군? 이거 어쩌나, 상황이 영… 좋지 않은데?"

"…무슨 소리야."

"글쎄? 직접 보는 게 낫지 않겠어? 어차피 이미 늦은 것 같으니까."

마르코가 핸드폰을 돌려 모두에게 화면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모습은, 마족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현의 모습이었다.

성대원이 얼굴을 쓸어내리고,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하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입 허가 떨어졌어."

번뜩. 성대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곧바로 그가 몸을 돌리고, 팟. 파밧.

두 걸음 뛰더니, 이내 콰아아아앙! 땅을 박차고 검은 막으로 뛰어들었다.

엄청난 추진력에 땅이 움푹 파이고, 흙이 사방으로 날렸다.

하수연도 비슷한 속도로 그 뒤를 따르고, 이내 두 사람이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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