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상현이 달려오는 몬스터를 보며 몸을 낮추었다.
박도진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이주완은 멈추라는 지시에 뒤로 훌쩍 물러난 상태.
울프 그릴스는 다행히도 한참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도진의 방어력을 뚫었다고?'
상현의 머리가 팽팽히 돌았다.
분명 비행기에서 본 몬스터 정보엔 녀석의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고 나와 있었다.
주의할 점이라곤 끽해야 겉의 가시들인데, 박도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 틈에 이주완을 통해 공격하려 했던 것인데.
'시간 없어! 일단 움직인다!'
"두 분은 뒤로 물러나세요! 물고기 어그로! 제가 끌겠습니다!"
상현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박도진은 일시적으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주완 역시 속도만 믿고 접근했다간, 녀석의 가시에 된통 당할 가능성이 짙었다.
상현이 바짝 긴장했다.
녀석의 유일한 공격 수단은 몸으로 들이받는 것.
일견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단순한 만큼 당했다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아옳! 아옳옳옳!"
쿵! 쿵! 쿵!
두꺼운 다리를 빠르게 교차하며 녀석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
일반적인 방법으론 절대 벗어날 수 없겠지만, 상현에겐 한 방이 있었다.
"와 봐! 이 자식아!"
스스스슷!
외치며 한 발을 떼자, 발에서 번쩍 빛이 일더니 상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옳옳옳! 아옳?"
스아앗! 속도를 그대로 실어 달려든 몬스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라면 부딪친 충격이 느껴졌어야 하는데, 허공을 갈랐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쪽이야!"
그때 왼쪽에서 목표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간 건지, 삽시간에 위치가 바뀐 상황에 몬스터가 당황하다가, 이내 다시 발을 구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상현은 그런 녀석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체력 소모가 생각보다 심해!'
방금 상현은 '실라페의 발걸음'을 사용해 녀석의 공격을 피해낸 것이었다.
공간이동에 가까운 효과를 보이지만, 이동 거리의 1백 배에 달하는 체력 소모가 따르는 아이템.
고작 몇 미터 이동했을 뿐인데 전력질주라도 한 듯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아옳옳옳옳!"
"치잇!"
그리고 다시 한 번 달려드는 녀석을 피해, 상현이 아이템을 사용했다.
번쩍! 다시금 상현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번엔 몬스터의 뒤쪽.
다시 어리둥절한 듯 갸웃하는 녀석을 보며, 상현이 어그로를 잡았다.
"이쪽이라고, 멍청한 물고기 새끼야!"
"아옳? 아옳옳!"
녀석이 방향을 틀더니, 열 받았다는 듯 상현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아가리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빼곡한 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고슴도치 같은 녀석이었다.
물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닿기만 해도 뼈와 살이 분리된다!
'방법을 찾아야 해. 저 녀석은… 피라냐! 원래 피라냐였어. 그리고.'
상현이 비행기에서 보았던 정보를 떠올렸다.
몬스터로 변하기 전, 원래 어떤 생물이었는지가 나왔던 도감이었다.
원래라면 손바닥만 한 물고기.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속칭 강의 청소부라 불리는 피라냐였다.
그런 녀석이 UEL의 영향을 받아 이리 거대하게 변한 것이었고.
"아옳옳옳옳옳!"
"안 맞아, 이 자식아!"
파앗! 다시 한 번 공격을 피하며, 상현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예상과 다른 전투력, 하지만 그것 외의 특성들은 대부분 그대로인 것 같았다.
목표물에게 끊임없이 달려드는 것 하며, 위협하듯 끊임없이 아가리를 벌리는 것까지.
'잠깐. 특성이 그대로라는 건.'
상현이 순간 멈칫했다.
도감에 나와 있던 정보는 어디까지나 '몬스터'로서의 특성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피라냐일 때 가지고 있던 습성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상현 씨! 괜찮습니까!"
"뾰롱! 뾰로로롱!"
그때 이주완의 걱정 어린 외침과, 당황한 요정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어 번쩍!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며, 상현이 여유롭다는 듯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괜… 찮아요! 풍선, 풍선 몇 개만 받으면 항상 하던 거니까! 뾰롱아! 괜찮아!"
호흡이 가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지시대로 할 수 없……."
"괜찮다니까요!"
상현이 거칠게 외치며 이주완의 개입을 막았다.
이미 마라톤 선수처럼 심장이 쿵쿵대며 뛰고 있었고, 머리는 산소가 부족에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지금 떠오른 단서를 잡아야만 할 것 같았다.
언젠가 보았던 TV프로그램.
아마존 밀림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피라냐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주완 씨!"
번쩍! 외치며 상현이 이주완의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잔뜩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이주완.
그 얼굴을 노려보듯 하며 상현이 말했다.
"아까 그 공! 물고기 밖으로 나오게 한 거! 지금 주세요!"
"공이라니……."
"아옳옳옳옳!"
이주완이 당황하고, 물고기가 다시금 목표를 찾아내 달려오고 있었다.
"시간 없어요! 빨리!"
"몇 개 드립니까!"
"다! 전부 다! 안의 물고기 다 꺼낼 만큼!"
이내 이주완이 건넨 공을 받으며, 타다다닷! 이번엔 신발을 쓰지 않고 상현이 강가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다시 물러나세요! 물고기 시선 안 닿는 곳으로! 바위 뒤로 숨건! 나무 위로 올라가건! 빨리!"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 이 자식아! 네 목표는 여기라고!"
스스스스- 츠캉!
상현이 바닥의 돌을 하나 주워 몬스터에게 던졌다.
강철 같은 가시에 튕겨 나와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녀석의 주의를 끄는 덴 충분했다.
"아옳옳옳옳옳!"
"그래! 날 따라오란 말이야!"
타다다다닷! 상현이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강가에 다다른 순간 홰액!
손에 든 공들을 모조리 강물 안으로 던져 넣었다.
두 자릿수에 가까운 공들이 자그마한 기포와 함께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걸 확인함과 동시에, 파밧!
상현이 몸을 돌려 몬스터를 마주보았다.
그리곤 척! 오른손을 들어 가운데손가락을 세워 보인 다음, 활짝 웃었다.
"조금 뒤에 보자, 개자식아!"
번쩍! 외침에 이어 상현이 아이템을 사용했다.
목표 위치는 아까 이주완이 숨어든 장소였다.
넝쿨이 얼기설기 얽힌 굵직한 나무의 뒤편으로, 몬스터의 상황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상현 씨? 왜 공을 다……."
"후. 후우우. 잠깐. 잠깐만요."
당황한 듯 바라보는 이주완을 제지하며 상현이 숨을 골랐다.
전신이 쿵쿵대며 심장 박동이 울렸다.
내쉬는 숨에선 단내까지 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짜릿한 희열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후우우. 분들은?"
"바로 옆에. 오른쪽요."
홱. 상현의 시선이 돌았다.
"어? 몸은 괜찮으세요?"
언제 온 건 지, 울프 그릴스와 박도진이 곁에서 상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박도진이 무뚝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공 왜 사용하신 겁니까?"
"공이요?"
짐짓 책망하듯 느껴지는 질문에, 상현은 오히려 씩 웃으며 몬스터가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리고 일단……."
상현이 핸드폰을 꺼내어 화면을 톡톡 건드렸다.
촤아아아!
그리고 그때 강물이 역류하듯 솟구쳐 오르더니, 그 틈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오르고.
촤아아아! 촤아아아! 촤아아아!
뒤따라 다른 녀석들도 줄줄이 올라왔다.
물 밑에 있던 몬스터는 죄다 올라온 듯 다양한 종류였다.
가시는 없지만 아가리가 비상식적으로 발달된 녀석이라던가, 입가의 수염 두 가닥이 촉수처럼 꾸물거리는 물고기까지.
'피라냐만 있는 게 아냐. 저건 피라루쿠. 저건 칸디루였나.'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리면서도 상현이 눈에 힘을 주고 녀석들을 지켜보았다.
변화 전에도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메기과 물고기부터, 크기는 작지만 신체 내부로 파고들어 피를 빠는 종류까지.
다양한 어종이었으나 덩치 자체는 모두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희원이 말했던, '성장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얼추 10여 마리의 물고기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속에만 있다가 밖에 나오니 당황스러운 듯 했다.
그러던 순간.
"캬아아아!"
돌아다니던 피라냐의 가시에 물고기 한 놈이 찔리곤, 구멍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걸 신호탄으로.
"아옳옳옳옳!"
"캬르륵!"
"캬아아아!"
피라냐 한 놈이 다친 녀석에게 덤벼들더니, 이내 모두 뒤엉켜 마구 싸워대기 시작했다.
뾰족한 아가리로 살점을 뜯어내고, 가시투성이 몸을 비벼 상처를 크게 벌린다.
그리고 그곳에 주둥이를 처박고 피를 빨아댄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왜…?"
당황한 이주완의 목소리가 들리고, 박도진 역시 '음'하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설명은 나중에. 두 분은 대기하시다가, 제가 부르면 나오시고, 그릴스 씨. 피라냐. 피라루쿠. 칸디루. 이 세 놈들, 특성 아시는 대로 말씀 좀 해주세요."
"저 앞의 물고기들이 그 놈들인가요?"
"맞아요."
"믿기 힘든 일이군요. 하지만 OK. 바로 말씀드리죠. 우선 피라냐. 육식성이고, 상당히 흉포하죠. 호흡 방법은 가슴지느러미로 산소를 공급하는……."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확실히 관련 프로그램을 해서 그런지, 그의 지식은 각 생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캐치하고 있었다.
상현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다, 필요한 부분이 나왔다 싶자 그럴 멈추었다.
"거기까지. 충분합니다. 그럼 두 분은 지시 대기하시고… 우선 저부터!"
"혼자 가신다구요?"
이주완의 물음에, 상현이 끄덕였다.
"같이 가면 어그로 분산되니까요. 어차피 데미지 안 들어가면 저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현이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방송 킨다고 약속했거든요. 시청자들이 기다립니다."
"아……."
상현이 곧바로 은신처 밖으로 나서며 바쁘게 이것저것 세팅했다.
우선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키고, 그 손에 핸드폰을 쥐어준 다음, 바로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어서.
"반갑습니다, 형님들! 저는 BJ김상현! 그리고 이곳은 아마존의 가장 깊은 곳입니다! 제가 도착하면 방송 꼭 켠다고 했죠? 그 약속……."
멘트를 치기 시작하며 물고기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 나가더니 그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지켰습니다!"
지켜보던 이주완의 눈이 커졌다.
무기도 없이, 저 사이로 들어간다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일 텐데.
찌릿! 그가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려던 순간.
"이번에 상대할 적은! 이 녀석들인데요! 생긴 건 끔찍하지만, 지능은 물고기답게 붕어 수준이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상현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이주완이 고개를 스륵 기울이며 자세히 바라보았다.
상현은 물고기들의 움직임에 맞춰, 마치 춤이라도 추듯 이동하고 있었다.
가시투성이 피라냐는 피하고, 다른 녀석의 옆구리를 두들겨 시선을 끌었다.
"캬아아아아!"
방해 받았다고 생각한 건지, 칸디루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상현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리고 콱! 깨물었으나, 그곳에 걸린 건 상현이 아닌 다른 물고기였다.
"보세요, 흐하핫! 정말 멍청하지 않습니까?"
상현은 여유롭게 멘트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주완은 달려 나가려 어정쩡하게 있던 자세를 풀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걸 지켜보았다.
그때 곁에서 울프 그릴스가 입을 열었다.
"저도 방송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지만, 저건 너무 무모한데요?"
"무모하다구요?"
"제가 벌레를 먹는 건, 조난당했을 때를 가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 사람은 스스로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아, 그렇죠. 그런 상황 만드는 거 맞아요."
"……?"
눈썹을 밀어 올리는 울프 그릴스를 향해 이주완이 킥킥 웃었다.
"혹시, '자낳괴'라는 표현. 들어보셨어요?"
"의미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은데요."
그가 통역기를 톡톡 두드렸다.
신조어까지 자유롭게 전달되진 않는 것 같았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Capitalism whore…? 헌터들 돈 많지 않아요?"
"대충 그런 의미긴 한데."
약간 어긋난 의미에 이주완이 입술을 비죽 내밀고 고민하던 찰나.
"이렇게 세 놈 아웃!"
유쾌한 상현의 멘트가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진 물고기는 벌써 세 마리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주완이 피식 웃곤, 말했다.
"사실… 상현 씨는 관종이거든요."
"관종?"
"관심종자란 뜻입니다."
무뚝뚝하게 듣고 있던 박도진이 끼어들고, 울프 그릴스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 픽 웃었다.
"아, attention-spaz?"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듯, 때마침 상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놈 째 아웃! 바로 다음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