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그러니까… 원래는 몬스터들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맞습니다."
단박에 돌아오는 대답.
상현은 얼빠진 얼굴로 방금 튀어나왔던 녀석을 가리켰다.
"쟤도 원래는 물고기였고요?"
수면 아래로 비치는 모습은, 그저 단순한 물고기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물이 깊어 그리 보일 뿐, 막상 올라오면 상현 자신보다도 덩치가 큰 녀석이었다.
생김새 역시도 그냥 '물고기'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고.
역시나 김희원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김희원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아마존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대부분은 기존의 생물체들이, UEL의 영향을 받아 변한 것이라 했다.
가령 평범한 파리였던 녀석이 거대한 곤충형 몬스터로 변한다던가, 바로 곁에 서있는 나무가 사실 식인식물이라던가 하는 식이었다.
"그럼 저 몬스터도 원래 잉어나 그런 거였어요? 엄청 작았는데 저렇게 커진 건가요?"
"원래라면 3미터 정도 크기에 불과했을 겁니다."
"역시… 아니, 3미터?"
"네."
"제대로 들은 거 맞죠? 3미터? 물고기가요?"
상현이 미간을 좁혔다.
돌고래라면 모를까, 물고기가 그 정도 크기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하지만 김희원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학명은 Arapaima gigas. 피라루쿠, 혹은 아라파이마라 불립니다. 성체의 몸길이는 3미터에서 5미터로……."
"잠깐. 잠깐만요. 그러니까, 그런 물고기가 실제로 있다는 거죠?"
"네."
"맙소사……."
상현이 하얗게 질린 채 숨을 내쉬었다.
몬스터로 변한 것도 물론 위협적이었지만, 상현은 지금 그보다도 아마존이라는 지역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덩치의 물고기가 실제로 있다니.
상현이 아마존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저 '나무가 많은 밀림'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생명체라곤 피라냐 정도.
하지만 지금 저 물고기를 보아하니, 몬스터가 없더라도 이미 충분히 위협적인 곳으로 느껴졌다.
"거기 뭐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몬스터 종류는 당연히 예상 못하겠네요?"
"그렇습니다. 다만, 그 한계치는 명확합니다. 방금 보신 피라루쿠나, 자그마한 곤충이나 몬스터로 변했을 때의 최대 크기는 같습니다."
"약하다는 말씀이시고… 알겠습니다. 감당 못할 만큼 센 몬스터는 없다는 말씀이시죠?"
"네."
상현이 내심 안심했다.
아까 강 밑에서 튀어나온 녀석은 단지 놀랐을 뿐, 솔직히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B급 던전에서 만났던 가고일 따위가, 위험하다는 측면에선 녀석을 앞섰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상현이 말했다.
"그러면 저희가 청소를 하는 건데. 그러니까… 저런 몬스터들을 보이는대로 다 잡으면 되는 거예요? 너무 많지 않아요? 저희끼리 잡기엔."
"그래서 이걸 하나씩 나눠드릴 겁니다."
달그락.
김희원이 테이블 위에 노란 무전기처럼 생긴 물건을 올려두었다.
"주변 지역의 몬스터를 감지해주는 장치입니다. 최대 반경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1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투입되는 인원수를 감안하면 여유롭습니다."
"한 만 명쯤 오나요? 너무 넓을 것 같은데요?"
상현이 갸웃하며 말했다.
그 말대로 하기엔 지금 눈앞의,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지도에 표시된 면적이 너무 넓었다.
그러나 그때.
삐릭!
기계음과 함께, 아마존 중앙 부분에 붉은색 원이 나타났다.
좁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마존의 전체 면적과 비교하면 1/10 수준.
김희원이 지시봉으로 그곳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현재 몬스터들의 활동 범위는 이 원입니다. 직경 20킬로미터가량. 청소는 이 안에서 해결하게 될 겁니다."
"…생각보다 좁네요? 그런데 원이라니.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는 없어요?"
"없습니다. 몬스터에게 던전의 UEL은 인간에게 있어 산소 같은 존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희원이 단언했다.
사람이 고산지대로 올라가면 숨이 차고 행동이 힘든 것처럼, 몬스터들은 UEL 농도가 낮은 곳은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몬스터의 크기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덩치가 일정치 이상으로 커진 개체는, UEL의 흡수가 원활하지 못하고, 그래서 말라 죽는 것이다.
"확실히… 그 정도 범위면 가능하긴 하겠네요."
듣고 나서 상현이 수긍했다.
이런 제약이 없었다면, 지금쯤 아마존 주변의 도시들은 이미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을 터였다.
"하긴. 그러니까 저희 같은 후발주자를 기다릴 수 있는 거겠죠. 안 그랬으면 진작 시작했을 테니……."
상현은 말끝을 얼버무리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게 화면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보니, 그렇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만약 실제였다면.
"아마존이라."
강물에는 피라냐가 돌아다니고, 숲 위에는 아나콘다가 넘실거리는 미지의 땅이다.
상현이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김희원이 곁의 테이블로 향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현 씨는 B급 헌터로서, 외곽 지역을 담당하시게 될 겁니다. 중심부는 각 길드에서 차출한 A급 헌터들이 들어갈 거고요."
"아, 네. 그거야 뭐…."
"우선 자료부터 받으시죠."
그녀가 테이블 위에서 가져온 몇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하나는 상현 씨 훈련 과정을 통해 알아낸 것들입니다. 그리고 각 과정의 목표 역시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방금 말씀드린 것들을 문서화해둔 내용입니다."
"아. 그럼 내릴 때까지 보면 되는 거죠? 시간 꽤 남은 것 같은데."
"다 읽으신 다음엔."
탁탁.
그녀가 지시봉으로 지도를 두드리자, 지도 대신 다양한 몬스터들의 도감 같은 게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중엔 방금 봤던 물고기 역시 있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몬스터들의 정보입니다. 지금까지 게이트가 열렸을 때마다 협회 차원에서 정리해둔 자료들인데, 이렇게 선택하셨을 때."
김희원이 처음 봤던 몬스터를 탁 짚자.
촤아아악!
- 캬아아아아!
아까와 똑같은 모양새로 녀석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가.
첨벙! 쿠르르르릉!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놀란 눈을 한 상현을 보며 김희원이 말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와."
감탄하는 상현에게 김희원이 찌릿 눈빛을 쏘며 긴장 풀지 말라는 얼굴로 말했다.
"아마존은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지역도 방대하지만, 한 해 마다 십여 종의 새로운 생물이 학계에 보고 될 정도입니다. 즉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생물이 UEL에 감염되어 변종이 되게 되면……."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괴수가 되어서 나타난다는 말. 여기서는 상현도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아직도 시간이 많다고 느끼십니까?"
"…아니요."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 시간 40분. 시계를 확인한 다음, 상현이 김희원에게서 지시봉을 받아 들었다.
"바로 시작하죠. 에. 그러니까 이놈은 원래 피라냐였고……."
해당 지역의 생물 종은 적게 잡아도 수 백여 종!
1분에 하나씩 외우라니.
여유 있기는커녕 터무니없이 빡빡할 지경이었다.
*** 사방에서 사람들이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포르투갈어 특유의 부드럽지만 어려운 발음 탓에, 거의 서로 암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번씩 타바코니, 빵이니 하는 익숙한 단어가 들리는 걸 보면 대화는 대화인 모양이었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의 국제공항에도 VIP들을 위한 입국 수속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성대원은 발 꽁무니를 들어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상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슬슬 올 때가 됐지?"
그가 팔로 옆의 남자를 툭툭 치며 묻고, 남자가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성대원보다 머리 반 개 정도는 더 큰 키에, 우람한 덩치.
그 위에 걸친 꽃무늬 남방과 반바지 밖으론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가 드러나고 있었다.
헌터 자격을 따고, 성대원이 상현에게 붙여주었던 전투계열 헌터. 박도진이었다.
그는 한 손엔 나무 팻말을 들고, 오른쪽엔 세로로 된 플랜카드 비슷한 걸 들고 있었다.
- BJ김상현 B급 헌터시험 합격!
- 히어로 김상현! 브라질을 구해라!
그렇게 두 개의 내용이었는데, 아무 감정도 없는 듯 무뚝뚝한 표정과 지독히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의 남자는 깔끔하게 쳐올린 금발 머리에, 알이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었다.
깔끔하지만 유행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에, 허리춤엔 80년대나 썼을 법한 검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가 탁탁. 성대원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손을 뻗어 정면을 가리켰다.
"오, 저기 보이는군요. 저 사람들 아닌가요?"
"어? 맞아요. 어이! 친구들!"
성대원이 확 밝아진 얼굴로 세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제나처럼 도도한 모습의 김희원.
그리고 생각 모를 웃음을 짓고 있는 이주완과, 눈가가 시퍼렇게 멍든 상현까지.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한 와중에도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고, 한쪽 옆구리엔 요정 항아리를 꼭 챙긴 채였다.
남자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상현을 가리켰다.
"저 청년이… 그 길잡이?"
"아. 맞아요. 일단……."
저 앞에서 상현 일행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때 박도진이 조금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말했다.
"이주완. 저 사람도 무조건 동행해야 합니까?"
"그래야지.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니까. B급 티오가 그리 많지 않다고. 불편해도 참아. 박영찬. 아마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그때 상현이 그를 부르더니, 일행을 끌고 금세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박도진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다음, 곁의 남자를 가리켰다.
"이분은 누구… 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굉장히 유명한 것 같은.
어째서인지 아마존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자라고 느낀 순간.
"반가워요. 생존왕 그릴스입니다."
"…그릴스? 울프 그릴스?"
중얼거림과 동시에 번뜩! 어디서 봤던 건지 떠올랐다.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가 나오는 그 채널에서, 언젠가 이 남자가 벌레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걸 봤던 것 같았다.
단백질 어쩌고 하며, 아주 맛있게!
"진짜 그분 맞아요?"
상현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러자 그릴스가 히죽 웃더니, 갑자기 끔찍하단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명대사를 읊었다.
"하얀 애벌레군요. 겉보기에는 징그러울 수 있겠지만… 윽! 이렇게 머리만 떼고 섭취하면, 훌륭한 단백질 원이 되죠."
"…맙소사. 정말이시네?"
상현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곤 성대원을 바라보았다.
"이분이 왜 여깄어요?"
유명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지만, 어째 생소해서 연예인을 본 것 같진 않았다.
그에 성대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따로 섭외 좀 했지. 이번 너희 탐색 때, 이분도 같이 갈 거야. 주제가 아마……."
"헌터와 던전. 그리고 아마존. 이런 내용일 겁니다. 물론 확실한 건 PD가 정하겠지만."
히죽. 울프 그릴스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상현이 경악스런 얼굴로 성대원을 바라보았다.
'무슨 스케일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어떤 이윤지는 모르겠지만, 성대원이 디스커버리 채널에 힘을 쓴 건 확실해 보였다.
거의 옆집 형처럼 느껴져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상현은 이 남자가 왜 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말을 왜 이렇게 잘하시는… 아, 아이템 쓰시는 구나.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갑자기 섭외라니."
김희원은 대부분의 정보를 알려주었지만, '계획'과 관련된 이야긴 성대원이 직접 하겠다며 남겨둔 탓이었다.
그리고 이건, 성대원이 계획의 첫 단추로 삼은 것이었다.
우선 디스커버리라는 채널에, 다큐멘터리처럼, 헌터들 특히 상현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다음에는 방송 영상을 세계의 시청자들이 보는 유튜브 같은 채널에 서비스해서 인지도를 쌓는 것이다.
성대원은 히죽 웃었다.
"자, 설명은 조금 뒤에 자세하게 해줄 테니까. 일단… 먼 길 왔는데 인사는 한 번씩 해야 하지 않겠어?"
"아, 예. 뭐……."
툭툭.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상현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성대원이 한 명씩 눈을 맞추었다.
"다들 반갑다. 일단 희원이. 데이터 상황은 어때?"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좋아. 반가운 소식이네. 그리고 이주완.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 은 아니지만. 아무튼 길드원이 되고 나선 처음이지. 반갑다."
"아하하, 반갑습니다."
그는 가볍게 악수를 나눈 다음, 다시 상현을 바라보았다.
"온다고 고생했다. 내가 약속했지? 이제 숨기는 거 없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곤란해. 이미 장소를 예약해둬서… 일단 움직이자고. 시간이 빠듯하니까.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해주지."
말함과 동시에 성대원이 그릴스와 곁의 카메라맨을 힐끔 보았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모두가 걸음을 옮겼다.
우르르르. 사람들이 성대원의 뒤로 따르는 가운데, 상현이 빠른 걸음으로 곁에 다가가 물었다.
"아, 호텔로 가나요?"
목소리에 기대감이 넘실넘실 묻어났다.
궁금한 게 넘치도록 있긴 했지만, 그건 어차피 말해주겠다 약속했으니.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도 휴식이 급선무였다.
비행기 내부에도 휴게시설은 넘칠 정도로 있었으나 피로를 풀기엔 여유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당장 뜨거운 물로 씻고, 푹신한 침대 위에서 쉴 수만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조금 모호했다.
"음. 호텔은 아니고."
"호텔이 아니라면… 아, 그냥 게스트 하우스나 그런 덴가요?"
성대원이 가진 재력으로만 따지면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의외로 서민적인 모습을 보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 보면 알아."
성대원은 끝내 대답하지 않고, 히죽. 장난스런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
"…맙소사."
상현은 밀려오는 현기증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 상현의 옆. 자그마한 창문 너머론, 온통 녹색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로는 혈관처럼 탁한 강줄기가 흐르고 있었고.
"아니, 바로 가는 게 어딨어어어억!"
상현은 헬기에 탄 채, 아마존 위를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