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108화 (109/185)

108.

'…호오?'

상황을 지켜보던 이주완이 눈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영부영하던 상현이 벌떡 일어나더니,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냥 찍은 게 아니라 무언가를 깨우쳤다는 듯한 얼굴이다.

'벌써 적응한 건가? 그렇다는 건…….'

이주완은 김희원에게 물었다.

"장소 좀 옮겨도 될까요? 이러다 걸리겠는데요."

"안 됩니다. 피했다간 오히려 기껏 잡은 감각에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빠른 적응을 위해서는 차라리 잡혀주는 게 좋습니다."

"그건 또 그러네……."

이주완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가 지금 위치한 곳은, 맨 처음 상현이 테스트를 치렀던 보드게임 방이었다.

첫 방이라고 상현이 대충 지나갔던 게 아니었다. 나름대로 구석구석, 꼼꼼히 뒤져보았다.

하지만, 보드게임을 가득 올려놓은 단상 '위'에 투명하게 되어 올라 앉아 있으니 못 찾은 것이다.

"그럼 이 방 안에서 위치 옮기는 건 상관없죠?"

"예."

김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말했던 규칙은 '장소'이지,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이주완이 히죽 웃곤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상현이 빠른 속도로 방을 하나씩 체크하는 게 영상으로 들어왔다.

하나의 방에 들어서면 순간 멈칫하곤.

- 여기도 없네요! 전진합니다!

이런 식으로 외치며 바로바로 나아가고 있었다.

처음 비행기 안을 탐색할 때완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방 안엔 절대로 없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어디가 좋을까……."

이주완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알아도 찾을 수 없는.

쉽게 손이 닿을 수 없는 그런 자리가 어딜까 생각하며.

수색하던 상현은 어느새 이곳이 비행기라는 것도 잊고, 건물의 한 장소처럼 느끼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 같은.

흡사 B급 시험에서 경험했던 그런 기분이었다.

타다다다닥! 콰당!

부서질 듯 문을 열고, 상현이 한 번 주위를 훑었다.

처음 왔던, 크리스마스 파티장 같은 구조의 방이었다.

그리고 한 순간 뒤 움찔! 틱에라도 걸린 듯 왼손이 꿈틀거렸다.

"여기도 없어! 바로 넘어갑니다!"

상현은 다른 방을 체크하며 조금씩 익숙해졌다.

질문을 던졌을 때 왼손이 움직이면 부정이었고, 오른손이 움직이면 긍정이라는 사실.

"남은 시간은… 10분!"

상현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처음의 보드게임 방까지 남은 건, 기껏해야 네다섯 개.

빠듯하지만 이대로라면 충분히 이주완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머가 어케 되는건데??]

[이젠 뭐가뭔지 몰겠음ㅋㅋ]

[어떻게 알고 지나가는 거임??]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채팅창을 가득 메웠다.

'투명해진' 이주완과 그런 대상을 찾고 있음에도, 당연하다는 듯 방을 넘어가는 상현의 모습.

평소라면 깔끔하게 설명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지금의 상현은 거기에 대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설명은 나중에! 충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탓. 파바밧!

상현이 다시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문을 박차고, 다음 공간으로 뛰어든다.

잠깐 멈춘 채 이주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다음 방으로.

그렇게 몇 번인가 문을 젖히고 돌파하던 한순간.

"여기도 없… 있다!"

처음의 그 보드게임 방에서, 상현은 관성으로 달려 나가려던 몸을 홀린 듯 멈추었다.

"여기… 있습니다. 찾았습니다, 형님들!"

상현이 거의 희열을 느끼다시피 하며 외쳤다.

이주완이 이곳에 있냐는 물음에 돌아온 건, 이전까지와는 달리 긍정이었다.

이주완은 분명히 이 장소에 있다!

확신을 얻은 상현이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홱홱 둘러보았다.

구석진 의자에 김희원이 앉아 지켜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주완 씨, 여기 있죠?"

상현이 확 들뜬 눈으로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신경하게 시선을 내렸다.

"뭐……."

상현도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기대하고 물어본 게 아니었으니까.

남은 시간은 5분.

이젠 이 시간 안에, 이 방 안에 숨어 있을 이주완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위치. 위치는 어떻게 알아야 하지? 주완 씨가 여기 있나? 아냐. 그건 이미 나왔어. 그러면… 어디 숨어있나? 아니지. 그건 너무 광범위해. 잠시. 정리해보자.'

상현은 술에라도 취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까지 해온 질문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첫 번째는 이 카드는 어디에 있는가, 두 번째는 공이 이 컵에 들어 있는가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 공간에 이주완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질문을 받아줄 대상이 있어야 돼… 그리고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종류여야 하고.'

그렇다면 여기서 할 수 있는 질문은.

'주완 씨가… 저 책장 안에 있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 저기. 테이블 주변?'

이번 역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상현은 차례차례 방 안의 곳곳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꿈틀! 꿈틀!

하지만 반응은 왼손으로 왔다. 아니라는 것의 반복.

'이 공간에 있는 건 맞는 거지?'

꿈틀!

혹시나 싶어 다시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오른손이 꿈틀거렸다.

그는 이곳에 분명히 있다.

"남은 곳은……."

상현이 고개를 돌려 김희원을 바라보았다.

'희원 씨 주변에 있나?'

물어보았다가, 상현이 아차 싶어 질문 내용을 바꾸었다.

"이주완 씨가, 저기. 김희원 씨 주변에 있나요?"

혼잣말하듯 천천히 중얼거린 다음 순간. 퍼뜩! 오른손이 반응한다.

파밧! 상현이 땅을 박차고, 튕기듯 몸을 날렸다.

"요기 숨었구나아아아!"

외치며 상현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텁!

김희원이 앉은 의자의 등받이 위쪽.

분명 허공이어야 할 곳에서, 손에 감각이 느껴졌다.

매끈한 천의 질감. 상현은 그대로 손을 당겨 걷어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머쓱하게 웃음 짓는 이주완이었다.

"아하하, 걸렸네요?"

잠시 상현의 표정이 굳었다가, 이내 폭발적인 희열이 터져 나왔다.

"예에에에에쓰! 잡았다! 형님들, 보셨습니까! 상현이가 해냈습니다!"

허공에 주먹을 마구 내지르며 방방 날뛰는 상현. 상황 파악은 덜 되었지만 시청자들 역시 마구 반응했다.

[아니ㅋㅋㅋ 잡은건 좋은데!!! 설명을 해달라고!!!]

[ㅋㅋㅋㅋ어케알았지??? 초능력이냐?ㅋㅋㅋ]

[개좋아하네 미친ㅋㅋㅋㅋ]

"프하하하핫! 바로 설명해드리죠! 어떻게 찾아낸 건가 하면!"

상현은 폭소를 터트리곤, 이내 카메라를 돌려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리고 잔뜩 신난 채 설명하기 시작하는 상현을 보며, 김희원이 눈을 빛냈다.

'기대 이상이야.'

성공하길 바라긴 했지만, 감응력에 관한 정보가 워낙 없다보니 기대치가 낮았다.

하지만 적어도 몇 번의 실패를 겪은 후에야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스슥. 스스슥.

김희원이 손을 움직여 수첩에 방금의 결과를 메모했다.

그리곤 냉랭하게 선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3단계, 종료되었습니다. 잠깐 휴식시간 가지고, 바로 마지막 단계. 준비하도록 하시죠."

*** 화면을 보던 성대원은 입을 천천히 벌렸다.

"…잡았네?"

하수연을 비롯한 동료들도 끄덕였다.

"그래."

"잡았네요."

"잡았군."

세 사람이 조금씩 시차를 두고 대답했다.

그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인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곧 성대원이 현실을 자각하고 양 팔을 허공으로 마구 내지르며 발을 굴러댔다.

"봤지? 엉? 봤어? 수연아! 데이나! 옌! 봤지!"

그는 거의 상현만큼이나 기뻐 날뛰고 있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완벽한 결과였다.

괄목할 만한 성장 속도였고, 앞으로도 저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그의 계획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었으니까.

들뜬 건 성대원만이 아니었다.

"…놀랍네."

하수연은 그녀답지 않게 볼이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정말… 굉장하네요. 정말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건 그냥 초능력자라는 의미 아니에요?"

데이나는 펑키하게 올린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묘한 미소를 보였고.

"저 정도라면, 충분히 인민의 빛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네 계획. 동참하도록 하지."

옌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들에 더욱 신난 성대원이 팡팡! 의자 손잡이를 두들기며 외쳤다.

"그래! 괜히 다른 놈들이 상현이한테 눈독들인 게 아니라고! 역시 하수연! 헌터 계의 살아있는 픽업 아티스트! 굉장한 눈썰미야!"

"……."

하수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성대원은 움직임을 멈추고,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지금 동의한 거야? 천하의 하수연이?"

"…동의라니?"

격한 반응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픽업 아티스트! 최고의 눈썰미를 가졌다는 말에!"

"김상현이. 대단하다고 말한 것뿐이야."

"그게 그거지!"

"달라."

하수연의 눈매가 살포시 일그러졌다.

그에 성대원이 양손을 들어보였다.

"워, 워! 장난이야. 아무튼 친구들? 아, 옌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지들이겠지? 이제 손을 잡았으니까."

"너무 낙관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사를 맞은 놈들로 치면 이제 막 개화하는 햇병아리야. 너무 큰 기대는,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옌은 찬성했음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분명 결과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들의 상대는 가능성만으로 낙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거운 만큼 그는 조금 더 확실한 확증을 요구하고 있었다.

"저는 가능할 거라 봐요. 아까 주신 계획표. 거기서 3단계에 잡았던 시간이 얼마였죠?"

데이나는 그에 비해 조금 긍정적이었다.

"네 시간. 만약 그 이상 지나간다면 힘들다고 봤어."

"그런데 해냈죠. 그것도 단 한 번 만에. 그렇다면… 다음 단계에서도 그 정도는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음."

옌이 끄덕이고 성대원이 따악! 손가락을 튕기며 이번에는 하수연을 향했다.

"역시 그렇지? 자, 그럼. 우리 하수연 양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글쎄. 하지만… 어쩌면."

"답이 나왔잖아? 기대해볼만 하다! 우린 손가락이나 빨면서 기다리면 되는 거라고. 그렇잖아?"

"……."

잔뜩 들뜬 성대원의 뉘앙스와, 동조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하수연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그녀 역시 상현이 보여준 모습에 기대감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이해하기 힘든 부분 역시 있었다.

감응(感應).

어디 종교 단체 혹은 과학적 서술에서나 쓸 법한 단어이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협회는 그런 '애매모호'한 능력치를 검사표에 포함시켜 두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높은 수치의 감응력이 어떤 일을 만들어내는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미심쩍어.'

하수연은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상현이 전까지만 해도. 저런 변화를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 능력항목을, 협회 공인 '검사표'에 추가시켜 두었던 건 왜일까?

"…방송. 끄는 게 좋지 않을까?"

"왜?"

"무슨 말이지?"

시선이 주욱 돌아왔다.

하수연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냥 느낌이."

"하수연의 감이라……."

성대원 또한 턱을 쓸었다.

하수연이 '느낌' 타령을 할 땐, 이미 전후 인과관계를 모두 따져보고 나서 하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거기서 하수연이 말을 바꾸었다.

"아니. 그냥 진행해."

성대원에게 들은 바로는, 앞으로의 계획엔 방송이 큰 틀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끊임없이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그냥 진행하라고?"

성대원이 의아하게 되묻고, 거기서 그녀가 쐐기를 박았다.

"여차하면. 우리가 직접 나서면 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하수연의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에 성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걱정하는 건진 모르지만, 감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군. 알았어. 그럼 일단… 마저 지켜보자고."

그리고 다시 네 사람 모두가 화면 속.

다음 훈련을 준비하는 상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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