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106화 (107/185)

106.

스스스스슷! 스스스스슷!

일곱 개의 컵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위치를 바꾸었다.

이주완의 손놀림은 카드를 섞을 때보다도 더욱 빨라진 것 같았다.

상현은 눈에 힘을 바짝 준 채 노려보았지만, 거의 잔상 비슷하게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 오른쪽… 다시 가운데로. 오른쪽. 그대로 오른쪽.'

상현은 '공'의 위치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경지와 비슷했다.

마치 컵을 섞는 이주완이 직접 머릿속에 속삭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어서 탁 컵이 멈추었고, 이주완이 그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당겼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상현에게 물었다.

"위치, 아시겠습니까?"

"…3번. 거기. 가운데요."

상현은 짐짓 긴장된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연기일 뿐, 컵을 향해 뻗는 손에는 일말의 긴장감조차 없었다.

가볍게 손을 얹은 채 씩 웃곤 상현이 컵을 뒤집었다.

그리고 역시나, 붉은 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캬하~! 역시! 이번에도 김상현! 가뿐하게 공을 찾아냅니다! 바로 한 번 더 가시죠! 이번엔 컵 개수… 여덟 개!"

상현이 자신감 넘치는 멘트를 치고, 이주완이 몇 개의 컵을 더 준비했다.

[아니 진짜주작아님??]

[어케찾어저걸ㅋㅋㅋ]

[컵에 표시해둔거아니냐??]

시청자들의 채팅이 다시 갈라질 기미가 보였다.

이렇게 공을 찾아낸 것만 벌써 다섯 번째.

처음엔 무작정 감탄하던 사람들이, 이쯤 되니 어떻게 찾아내는 건질 궁금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할 때마다 컵의 개수를 하나씩 늘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하나 더.'

하지만 상현은 다른 제약을 추가할 생각이었다.

슬슬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려면 시청자들의 분위기를 다듬어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희원 씨."

"예."

"안대 있나요? 아니면 뭐, 눈을 가릴 수 있는 천이라도 상관없어요."

"있습니다."

김희원은 대답하더니 금세 검은 천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곤 눈가에 두를 수 있도록 몇 번 접어 상현에게 건네었다.

상현이 받아든 채 카메라를 얼굴 쪽으로 돌린 다음, 천천히 눈을 가렸다.

"갑자기 왜 이러나 싶으실 텐데! 아무래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요.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려면, 확실하게 보여드리고 가야지 않겠습니까, 형님들?"

상현이 히죽 웃었다.

눈을 가려 채팅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어떤 내용들이 올라오고 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물론 이거 하나만으로 의심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여론을 이쪽으로 돌려두기만 해도, 어차피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면 확 기울 게 분명했으니.

'희원 씨는 바쁜 것 같고. 아쉽지만… 그냥 간다.'

상현이 살짝 혀를 찼다.

그녀가 실패할 거라는 식으로 한마디만 해준다면 분위기를 잡기 더 쉬울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웬 수첩에 빠르게 메모를 적어대고 있었다.

바쁘다는 듯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탓에, 상현은 그녀에 대해선 빠르게 포기했다.

"자, 그럼… 주완 씨? 바로 가시죠."

"시작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주완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대로 가린 탓에 시야엔 보이지 않았다.

스스슷! 스스스스슷! 스스스슷!

엄청난 속도란 걸 알려주듯 종이의 마찰음만이 귀를 파고들 뿐.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상현이 감각을 곤두세웠다.

시작할 때 어느 컵에 공이 들어갔는지도 몰랐지만, 안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어차피 공을 찾아내는 건 오감이 아닌, 거의 육감에 가까웠으니까.

"아."

상현이 짧게 숨을 뱉어냈다.

다시금 느껴지는 공의 위치는,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완전히 끝… 왼쪽.'

움직임을 읽어내는 상현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걸렸다.

'더 빨라진 것 같은데… 놓칠 정도는 아니야.'

눈을 가린 게 문제가 될까 걱정했지만, 아무래도 괜한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오히려 훨씬 잘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음, 이만하면 충분히 섞은 것 같으니… 어? 잠깐. 조금만 더……."

컵을 멈추려던 상현이 당황했다.

공의 느낌이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말 돌릴 틈도 없이, 이주완의 손놀림 역시 멎었다.

그리곤 공을 찾으라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현이 천천히 안대를 벗었다.

여덟 개의 컵은 섞기 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곳에서도 공의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 갔지? 분명 왼쪽으로 빠졌다가… 그냥 찍어야 하나? 왜 느껴지질 않는 거지?'

상현은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이주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확인했다.

상현이 미간을 좁혔다.

'뭔가 했어. 했는데…….'

아무래도 이주완이 무슨 조치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시야를 가렸으니 어디에다가 숨기는 거론 부족할 터였고, 그렇다면.

'인식장애. 혹은…….'

"선택하시죠."

한창 머리를 굴리는데 이주완이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처음의 콘셉트 그대로였다.

"아, 그래야죠. 자아…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상현이 화들짝 놀라 대답하며 채팅을 힐끔 보았다.

[모르는거아니냐?ㅋㅋㅋㅋ]

[ㄴㄴ연기하는거임]

[아니 시간을 왤케끌어ㅋㅋㅋ]

반응이 또다시 갈리려 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고른다면 차라리 틀릴지언정 분위기는 잡을 수 있지만, 더 지났다간 흐름이 괴상해진다.

"선택하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고를 번호는……."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상현이 눈을 좌우로 정신없이 굴렸다.

조금의 특징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컵을 노려보던 상현이 가장 좌측의 녀석을 향해 손을 뻗으며, 이주완을 슬쩍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모르겠다는 듯 눈을 피했다.

'망할, 주머니에라도 숨긴…….'

그렇게 생각하며 컵을 뒤집으려던 순간.

찌잉-!

"……!"

감각이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상현을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공이 다시 느껴지는 건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그 위치였다.

조금 이상했다.

테이블 위. 그 컵들 중 하나가 아닌…….

[아니 콘텐츠 진행 안함??]

[어차피 다 알면서 시간끄네ㅋㅋ]

채팅창이 점점 루주해지고 있었다.

따지고 들 시간이 없었다.

일단 내지르고, 생각은 그 뒤에 해야 했다.

고개를 들어 이주완을 슥 바라보고, 상현이 입가를 쭉 올렸다.

그러고는 몸을 날리듯 상체를 기울여, 이주완의 겉옷을 파헤치듯 좌우로 확 벌렸다.

"잡았다, 요놈!"

상현은 그 안쪽 주머니에 손을 훅 집어넣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웃음을 터트렸다.

"프하하핫! 이걸 여기 숨겨두셨네! 형님들, 보셨어요? 이거 보이십니까?"

작고 빨간 공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상현이 카메라 앞에 들이밀었다.

"이걸 이렇게 숨겼으니! 제가!"

탁. 탁. 탁. 탁. 탁.

그리고 컵을 하나씩 들었다가,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당연히 그 아래에선 공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하루 온종일 고민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즈기요, 사장님?"

상현이 홱 고개를 돌려 이주완의 눈앞에 공을 들이밀었다.

"이게 왜 거기 들어있을까요?"

"음, 하하하. 글쎄요?"

"글쎄요 라니! 글쎄요라니이이이익!"

상현이 이주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김희원의 손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슥. 스스슥.

펜촉이 종이 위를 구르며 글씨를 적어냈다.

- 의식을 집중한 범위 외는 탐지 불가.

- 감지 가능한 범위, 그리고 인식장애의 정도는.

자료를 적어 내려가던 김희원이 상현을 힐끔 보았다.

"갸아아악! 일부러 숨겼죠!"

"아하하, 아니라니까요. 이게 어쩌다 보니……."

"뭘 어쩌다 보니야!"

김희원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주완과 투덕거리는 모습은 방금 자신이 뭘 한 건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걸 떠나서, 상현의 능력은 단계를 거칠 때마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엄청난 적응 속도.

그러나 기존에 존재하던 경우와는 완전히 상이했기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본인이 자각하는 건 빠른데, 활성화 조건이 문제야. 자기가 말한 대로 방송을 켜는 게 그 조건인지… 아니면.'

아직까진 두 개의 단계가 남아있었다.

1단계. 카드 게임에선 능력 자체의 감을 찾는 게 주요 과제였고.

이번 2단계에선 상현의 집중 범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지 알아내려던 것이었다.

이를테면 두 갈래 길에서 왼쪽과 오른쪽.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순 있을 테지만, 각 길에 함정이 있는지까지 한번에 알아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즉 방금의 과정에서 그녀가 얻어낸 정보는. 한 가지 질문엔 한 가지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능력의 한계였다.

'사용하다 보면 성장할 수도 있는 거겠지만.'

그리고 다음의 3단계.

숨은 이주완 찾기에서 보려는 건, 상대가 숨기려는 것도 알아낼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방금 두 단계는 이주완이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의 공 역시 장소만 예상치 못한 곳으로 옮겼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를 터였고, 이번의 결과에 따라 마지막 단계에서의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게 분명했다.

그녀는 다시 펜을 잡고, 천천히 정보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상현은 다시 방송을 진행하며 유쾌하게 멘트를 쏟아내고 있었다.

"네! 일단 공 찾기는 여기까지!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도록… 에이, 형님들! 주작 아니라니까요? 만약 주작인 거 걸리면, 제가 주완 씨 눈썹 밀겠습니다!"

"아니, 왜 제 걸 밀어요? 상현 씨는요?"

"저도 밀고! 이주완 씨도 밀겠습니다!"

"아니 저는 왜…!"

"그냥 조용히 계세요."

"…넵."

발악하는 이주완에게 면박을 주자 그가 머쓱하게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넣었다.

사실 그렇게 한 이유를 이해는 하고 있었다.

처음 김희원이 말했던 내용.

이번 과정이 무엇을 위한 건지 모르는 편이 낫다고 했던, 그 내용 중 하나였을 테니까.

만약 상현이 그렇게 숨길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방금처럼 고민할 이유가 없었을 터였다.

'내가 신경 쓰는 부분만 알 수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지금 진행하는 방송은 어디까지나 상현의 훈련이 아닌,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쇼였다.

그리고 이주완도 그 사실을 알기에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자… 그럼 다음 게임은! 숨은 이주완 찾기! 여러분들이 다들 아시는, 숨바꼭질입니다! 어떻게 비행기 안에서 그게 가능하냐, 하면!"

스르륵.

상현이 카메라를 크게 돌리며, 비행기 내부를 찍었다.

이미 지금 있는 공간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가정의 방 하나 넓이를 뛰어넘은 상태.

기종 자체가 내부에 기차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녀석이다 보니, 어마어마한 내부공간을 자랑했다.

"이렇게 넓어서 가능하구요… 그뿐만 아니라! 단순히 넓은 것뿐이라면, 시간만 오래 걸릴 뿐이겠죠?"

상현이 옆 테이블에 놓인 천을 확 걷어냈다.

그러나 나타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스륵! 상현이 손을 테이블 위로 얹은 순간.

[뭐야 미친ㅋㅋㅋㅋ]

[야!! 상현아!!! 손!!! 손!!!!]

[보이지 않는 손 뭐 그런거냐?ㅋㅋㅋ]

[애덤스미스ㅋㅋㅋㅋ]

상현의 손이 모습을 감추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상현이 킬킬 웃었다.

그리곤, 촤라라락!

다른 한 손마저 그쪽으로 가져가더니, 이내 무언가를 집어 들어 올렸다.

순간 상현의 몸이 투명해졌다가,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흡사 천 따위가 그 위에서 하늘거리는 듯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투명 망토! 정식 명칭은 따로 있지만… 뭐, 그게 중요한가요? 아무튼! 주완 씨는 이걸 쓰시게 될 거구요, 그걸 제가 찾아내는 게 바로."

상현의 입매가 히죽 올라갔다.

"다음 게임! 숨은 이주완 찾기입니다! 바로 가실까요?"

"알겠습니다."

이주완도 웃으며 상현에게서 아이템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촤라락! 몸에 두르자 그대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허공으로 녹아든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현이 감탄했다.

"이야, 저도 효과를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신기한데요?"

말하며 상현이 손을 뻗어 허공을 더듬었다.

탁. 이주완이 손끝에 만져지는 걸 보니, 인식장애와는 한참 다른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투명'해지기만 한 상태.

상현이 입을 헤 벌린 채 손을 움직였다.

"진짜 없는 것 같은……."

"아앗! 상현 씨, 거긴 안 되는데!"

"뭔 미친 소리야! 여기 팔이잖아요, 팔!"

"저는 팔꿈치가 성감대……."

"그아아아악! 방송 중에 그런 말씀 하시면……!"

상현이 경악하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민찬영 어디갔음?ㅋㅋㅋㅋ]

[게이쉑ㅋㅋㅋㅋ]

[신고했읍니다ㅅㄱ]

[이쁜사랑 응원한다! 힘내자!]

"아니, 형님들! 저는 아니에요! 저는……!"

"간단하게 룰 설명 드리겠습니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어느새 다가온 김희원이 입을 열었다.

"이주완 씨는 10분간 숨어 있을 장소를 선택하실 수 있으며, 선택한 장소에선 벗어나실 수 없습니다."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가 상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상현 씨는 10분 뒤부터 움직이실 수 있으며, 제한 시간은 1시간입니다. 그러면……."

그녀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로 돌았다.

그리고 그 초침이 정확히 12에서 멈춘 순간 말했다.

"시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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