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105화 (106/185)

105.

상현은 방송을 시작함과 동시에, 핸드폰을 곁에 놓인 아이템에게 넘겨주었다.

'보이지 않는 손'.

사용자의 의지대로 움직여준다는 녀석을 보며 상현이 혹시나 싶어 걱정했다.

'생각대로 되는 거 맞아?'

아직 떨떠름한 얼굴로, 상현이 저게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아이템이 붕 떠오르며 카메라 각도를 정확히 맞추었다.

상현의 얼굴 정면.

방송의 오프닝에 있어 최적의 각도였다.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것과 동시에, 상현이 멘트를 이었다.

"이곳은 브라질로 향하는 비행기 안입니다! 보시면 보드게임 카페가 아닌가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스스스스.

처음 사용하는 것임에도, 보이지 않는 손은 놀랄 정도로 잘 따라주었다.

카메라를 든 손이 휙 날아 비행기 창가에 붙었다.

"구름이 넓게 깔린! 상공이란 걸 확인하실 수 있죠! 자그마치 고도가… 음, 얼만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현이 그렇게 외치던 순간.

"현재 고도는 1만 미터 부근…아."

김희원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다가, 아차 싶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상현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지금까지 겪어온 김희원이라면 이런 의문에 바로 대답해줄 거라 예상했었다.

평소라면 감사 인사를 하는 걸로 넘어갔겠지만, 오늘은 다른 약속을 해둔 상황!

카메라가 그녀를 향해 휙 돌았다.

"이쪽은 저희 길드 살림을 담당하시는… 아까도 소개 해드렸지만! 김희원 씹니다!"

김희원이 마지못해 고개를 꾸벅하고, 상현이 다시 카메라를 움직였다.

아이템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상단 대각, 그것도 상현의 얼굴은 나오면서도 이주완의 얼굴은 잘 나오지 않는 이상적인 각도였다.

촤라라라락! 촤라라라락!

이주완은 의외로 정말 진지하게 컨셉을 지키려는 듯, 쉴 새 없이 카드를 섞어대고 있었다.

상현이 만족하며 멘트를 이었다.

"김희원 씨를 왜 다시 소개했는지도 궁금하실 겁니다. 프로 방송인! 상현이가 같은 걸 또 할 땐, 분명 이유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전에 우선!"

상현이 이번엔 이주완에게 오더를 내렸다.

"주완 씨? 카드 깔아주세요."

촤라라라락! 스스스슷!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주완이 52장의 카드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제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손놀림.

상현이 힐긋 보니, 역시나.

[미친ㅋㅋㅋ 기계임???]

[저게 사람이 가능한 속도냐??]

[이주완 이쉑ㅋㅋㅋ슬롯머신이었네ㅋㅋ]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방송의 시작 포인트에서 현재 장소가 비행기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이주완을 마치 카지노 딜러 같은 포지션에 배치한 것만으로.

단순한 카드게임에 불과함에도 무언가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준 것이었다.

의도대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상현이 씩 웃었다.

"자, 그럼 김희원 씨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 바로 이 카드들! 52장, 총 26쌍의 카드가 놓여 있는데."

상현이 카메라를 움직여, 카드 판을 수직으로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앞면을 확인하지 않은 채! 모든 짝을 맞출 수 있는가를 두고, 희원 씨와 내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시청자 형님들이 보시는 가운데……."

슥 상현이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카메라 역시 비슷한 속도로 내려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척 카메라에 얼굴이 정면으로 잡히게 한 다음, 상현이 가소롭다는 듯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할 수 있다는 거 보여드리려고, 켰습니다. 카드 짝 맞추기 아시죠? 기억력 좋은 사람이 이기는 그 게임. 하지만 저는, 이 상태에서 바로 찾아낼 겁니다."

오프닝 멘트를 마무리한 상현이 그제야 채팅을 확인하곤, 피식 웃었다.

채팅창은 개판 5분 전이었다.

절대 불가능하다, 상현이라면 가능하다, 규칙을 다시 설명해 달라, 갑자기 무슨 내기냐 등.

도무지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 분위기에, 보충설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상현은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카드만 까기 시작하면 채팅 흐름 넘어와.'

지금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사리 정리될만한 성질이 아니었다.

차라리 모두가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편이 몇 배로 나았다.

상현은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그걸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지 알고 있었으니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주완 씨? 카드 한 번 재배치해 주세요."

"예."

촤라라락!

그답지 않게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이주완이 카드를 빠르게 섞었다.

그 속도에 내심 감탄했지만 상현은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무뚝뚝한 카지노 딜러와, 한 방을 노리는 승부사의 구도가 나와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에 더불어 불가능할 거라 부추기는 바람잡이까지 있다면, 이상적인 방송 구도가 완성된다.

상현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손을 내려 김희원을 가리킨 다음, 탁탁. 손가락을 튕겼다.

시선을 돌릴 수 없어 모르지만, 상현은 김희원의 표정이 구겨졌을 거라 확신했다.

스르륵. 카메라가 그녀에게로 돌았다.

그걸 신호탄 삼아, 그녀가 한 발 내딛으며 약속한대로 입을 열었다.

"이 내기. 제가. 이길. 겁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는. 편이 나을. 텐데요?"

딱딱 끊어지는, 기계적인 말투였다.

흡사 국어책을 읽는 듯한 분위기에 상현의 입가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상현은 웃음을 꾹 참아내며, 애써 연기 톤으로 말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형님들? 아무튼!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멘트와 동시에 상현이 첫 번째 카드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그 카드를 뒤집는 것까진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첫 카드는 초승달이네요. 이젠 나머지 51장 중, 같은 카드를 찾아내면 됩니다."

상현이 중얼거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지금부턴 집중해야 했다.

앞서 들었듯, 감응력을 사용해야 한다 의식하기 때문인지, 이미지는 정말 흐릿했다.

그저 막연하게 어떤 종류라는 것 정도만이 보이는 수준이었다.

상현이 카드 위를 눈으로 주욱 훑었다.

'찾아야 할 건, 초승달, 동물? 아냐. 사람… 여왕인가. 아냐. 달, 초승달을 찾아야 한다.'

보이는 건 카드 뒷면뿐.

거기서 상현이, 갑자기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흐릿하게나마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그림 자체를 찾는 다기보단, 달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상현이 스륵 손을 뻗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순 없었다.

아까에 비해 채팅이 올라오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그건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상현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였고, 기껏 끌어온 흐름을 놓쳐선 안 되니까.

게다가 더 본다고 확실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스윽, 카드에 손을 댄 채, 상현이 카메라를 카드 쪽으로 가까이 당겼다.

그리고 홱!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움을!"

헛소리와 함께 카드를 뒤집고, 눈을 떴다.

카드 위에 그려진 건 초승달이었다.

"깔끔한 시작! 핫하, 쉽지 않습니까?"

긴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현은 여유롭게 말하는 체하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운 아님?ㅋㅋ]

[진짜 아는거냐?? 어케찾음??]

[주작임 ㅅㄱ]

역시나 시청자들은 '우연'이라는 쪽과, '설마'하는 반응, 그리고 '짜고 치는' 것이란 세 가지의 반응을 뒤섞여 보였다.

'여기까진 계산대로.'

지금도 시청자들의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아까와는 그 종류가 조금 달랐다.

서로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게 아닌, 그저 자신들의 추측을 혼잣말처럼 적어내는 것뿐이었다.

상현은 다시 카드를 노려보았다.

방금 전의 감각.

비록 흐릿하긴 했어도, 카드를 찾을 수 있게 해준 그 감각을 다시 되새겼다.

처음 시도할 때와는 달리, 한 번 감이 돌아오자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뚜렷해진 기분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현이 첫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이번엔 여왕 카드!"

그리고 그 멘트를 기점으로, 상현이 멘트를 마구 쏟아냈다.

"짝은 이쪽에 있고! 다음은… 검은 기사! 나머지 한 장은 여기! 바로 다음 카드! 붉은 첨탑이 나왔군요! 이 친구의 짝도 찾아주어야겠죠? 바로 여기……."

상현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패를 섞는 이주완의 움직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망설임 없이, 정확하게 한 장씩 남은 카드를 줄여가고 있었다.

곧 카드의 절반 이상이 그림을 드러내고, 남은 카드가 적어질수록 상현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고양이! 사자는 여기! 호, 이건 마녀 카드네요? 남은 카드는 다섯 장인데… 이 친구! 역시, 정확합니다!"

계속 입으로 멘트는 치고 있었지만, 상현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그저 반사적으로 그림에 따라 멘트를 칠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드 네 장이 남은 순간.

"거의 끝나 가는데요!"

양손을 움직여 이번엔 두 장의 카드를 동시에 뒤집어버렸다.

"성당 카드! 남은 건 뭐, 자동차네요. 어차피 끝난 거니까 상관은 없고… 아무튼! 자, 이렇게 끝났습니다. 52장의 카드, 뒷면만 보고 맞추기! 여러분도 이정도만 할 줄 아시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 취미삼아 배워두시는 것도……."

본능적으로 멘트를 이어가던 상현이 채팅을 확인했다.

[응~ 주작이야]

[주작 ㅅㄱ]

[상현이도 주작하네ㅋㅋㅋ]

'주작'이란 리얼한 실시간 스트리밍을 내세운 개인방송에서, 미리 대본대로 하는 걸 말하는 단어였다.

그 단어 하나만으로 채팅창이 가득 차올랐다.

예상했던 분위기에 상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완전히 부정적으로 돌아선 지금의 상황이, 바로 1단계였다.

이 다음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는 순간, 분위기가 일거에 반전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번 휘어잡은 뒤엔, 어떤 컨텐츠를 하더라도 시청자들에게 최상의 몰입감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타이밍 좋게 김희원이 치고 들어왔다.

"아니. 저걸. 어떻게. 한 거죠? 정말. 놀라운 걸요?"

여전히 기계적인 목소리였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핫하! 두고 보라고 했죠, 제가? 시청자 형님들, 이게 주작으로 보이십니까? 아니에요! 정 그러시면… 주완 씨. 이거 카드팩 새 거 있나요?"

상현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이주완을 바라보았다.

"있습니다."

"호오……."

예상대로의 그림!

그럼에도 상현은 놀랐다는 듯 지켜보았다.

흡사 도박 영화에서 보던 그림이었다.

새로운 카드팩. 그 위에 쓰인 비닐을 벗기고, 통을 한 번 돌려 아무런 장치도 없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그런 다음 카메라를 움직여 카드팩에 포커스를 맞춘 다음, 꺼낸 카드를 손에서 현란하게 움직인다.

"다시 깔아주시죠."

상현이 말함과 동시에 촤라라라락! 이주완이 카드를 전체적으로 주욱 훑으며, 테이블 위에 세팅했다.

"자, 그럼 형님들! 다시 갑니다!"

상현이 외치며 카드로 손을 뻗었다.

방금의 감각은 생생하게 남아있었고, 당연히 상현의 손길엔 망설임이 없었다.

시청자들을 휘어잡기 위한 마지막 과정.

"파란 고양이! 사자! 여왕! 왕관! 하얀 마녀!"

이번엔 첫 시도보다 몇 배는 빨랐다.

52장의 카드지만, 모두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 1분도 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유령 카드까지!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를 찾아낸 다음, 상현이 채팅을 탁 확인했다.

[ㅁㅊㅋㅋㅋ진짜 아는거냐???]

[이새끼 무당임?? 어케알지??]

[마술이면 머 트릭 있는거아님???]

온통 물음표로 도배된 채팅창.

상현이 히죽 웃었다.

"에이, 무당이라뇨! 아, 정확히 보신 분들도 꽤 많으시네요. 마술이죠, 마술. 핫하! 자세한 건 영업비밀이라 알려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상현이 만족스레 웃었다.

방송을 켜며 기감이 날카로워진 건지, 방금의 감각이 점점 익숙하고,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본격적인 과정에 들어가기 전, 예열을 충분히 마친 상태였다.

"마술쇼가 겨우 한 가지로 끝날 순 없겠죠? 바로 이어서 갑니다! 컵에 담긴 공 찾기! 숨은 이주완 찾기! 그리고! 아직 밝힐 수 없는, 대망의 하이라이트!"

스르륵. 카메라를 돌려 얼굴에 가까이 맞춘 다음, 상현이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재미를 드리…기 전에! 추천! 즐겨찾기! 한 번씩만 눌러주시고, 편안한 관람을 위해 팝콘과 콜라! 그리고."

거기서 팝콘을 우적대는 제스처를 한 번 보인 다음.

"설레는 마음만 챙기셔서!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찡긋! 장난기 가득한 윙크를 화면에 비추었다.

그리고 이주완이 어느새 준비한 세 개의 컵과, 작은 크기의 빨간 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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