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흠,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은 걸?"
머피 맥그레인은 경계선 너머의 상현 파티를 보며 말했다.
그에 비키 엘리엇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이라면 저러지 않을 자신 있어?"
"물론! 나는 막 소리 지를 것 같은데? 마치 늑대처럼 말이야. 아우우우우! 어때, 비슷했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머피가 늑대 흉내를 냈다.
그에 비키는 관심을 꺼버리고, 반대편의 상현 일행을 바라보았다.
박민혁, 민찬영, 이주완, 그리고 상현까지.
네 사람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원인은 그녀가 아이템으로 쳐둔 반투명한 막 덕분이었는데, 일종의 매직미러와 같은 녀석이었다.
"개미라도 관찰하는 거야? 미스 엘리엇."
"비슷할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네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그 자식 한방 먹였어야 하는데! 이렇게 끝나는 게 어딨어!"
박민혁이었다.
죽다 살아난 그는 허공에 주먹질을 날리며 짜증스레 외치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새빨간 머리칼은, 마치 성질 나쁜 강아지가 흔들어 대는 꼬리 같았다.
그리고 상현과 민찬영은.
"찬영 씨는 알고 계셨던 거예요?"
"아니. 나도 짐작이 반이었지. 그래도 최초 클리어 보상이라는 건 워낙에 큰 거니까. 일종의 홍보 아니겠어?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아무리 그렇다지만……."
"헤이, 베이비. 지금 그것보단… 우리, 조금 더 돈독한 관계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허니, 아까 분명히 약속했지? 데이트…하기로?"
"히이익……!"
대머리 근육 게이에게 붙잡혀 파닥거리는 김상현.
"사이가 좋네?"
머피는 키들거리고, 비키 엘리엇은 상현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곤 눈두덩을 문질렀다.
시험관들이 나눠준 합격 통지서.
다채로운 색감의 종이 뒷면엔, '우와~ 정말 데단헤! 합격!!'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시험관으로 올 거면, 이 나라의 언어 정도는 익혀두는 게 어때? 통역 아이템이 아니라."
"하하하, 한국의 문자는 너무 어렵다니까? 그리고 공부는 내 철학과 맞지 않다고~"
"…어련하시겠어."
하여간에 제멋대로인 남자다.
비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쪽은 이주완.
신성처럼 이번 시험에서 활약하고, 뒷동네 주민들을 바로 발각해 낸 수험자다.
'아무래도 저 남자는… 좀 걸리는데.'
이주완에게선 기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실실 웃는 얼굴을 하다가, 가끔 칼날같이 날카로운 기세를 드러낸다.
물론 이 정도만이라면 그러려니 한다.
B급까지 올라오는 헌터들 중에서 저 정도 또라이 아닌 놈들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주완은 시험의 합격 여부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굴었다.
그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살피듯, 함께 움직이는 상현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거부감에 비키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
일순. 이주완의 시선이 정확히 그녀를 향했다.
씨익.
그러더니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어주곤, 다시 상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템 효과를 무시했다고?'
비키 엘리엇이 당황하며 머피를 바라보았다.
그도 봤을까 싶어 확인한 것인데, 머피는 어느새 준비한 팝콘만 쉴 새 없이 먹어대고 있었다.
"방금 봤어?"
"하? 뭘?"
"저 녀석, 이주완. 우리 존재를 읽었어."
"헤이~ 그럴 리가 없잖아? 너무 외로워서 환상이라도 본 거 아냐? 그러니까 결혼을 했어야지. 언제까지 올드미스로 남아있을 생각이야? 그러다 주름만 늘어난다고~"
"난 아직 20대야!"
까드득!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머피가 흠칫! 과장된 놀란 표정으로 물러섰다.
"릴랙스~ 릴랙스~ 히스테리는 사양하겠어. 남자가 필요하면 클럽을 가라고."
"이익……! 후우우… 후우."
비키는 막 폭발하려던 감정을 간신히 추슬렀다.
'말려들면 안 돼.'
이 패턴으로 가다가 망가진 것만 몇 번이던가.
머피는 황당한 부분에서 사람 감정을 자극하고, 그에 반응하다 보면 본론이 뭐인지 잊어먹게 만든다.
저런 성희롱적인 멘트 정도야 무시하면 그만.
두어 번 호흡을 가다듬고, 그녀가 말을 꺼냈다.
"저 녀석은 왜 억지로 합격시킨 거야? 이런 걸, 협회장님이 좋아할 거라 생각해?"
이제 그녀는 상현을 가리켰다.
"억지라니? 저 친구라면 끝까지 둬도 합격했을 텐데?"
"정정하지. 왜 '절차를 무시'한 건지 물어보는 거야."
홱. 머피가 의자를 돌려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리곤 정말 억울하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헤이. 무슨 소리야? 나 같은 모범 시험관이 절차를 무시? 그리고 이봐. 시험은 전적으로 시험관 재량 아니었어? 현재 능력을 보고 뽑든, 가능성을 보고 뽑든."
"…아무리 그래도 선이 있는 거잖아. 관례라고."
"워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 아까 말하던 거랑 다르군. 난 징병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협회가 너희를 원한다!"
머피가 팔을 뻗더니, 검지로 그녀를 가리켰다.
그리곤 신중한. 1,900년대 초반 포스터의 근엄한 얼굴을 따라 하며 척, 모자를 눌러쓰는 시늉을 했다.
"I want you! for U.S. Army! 어때, 똑같지? 에이브라함 링컨! 위대한 미합중국의 대통령께서 내린 신성한 징병!"
"…당신. 흑인이거든?"
이 와중에도 말 돌리기인가.
눈을 감고 화를 삭이던 비키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봐. 당신이 저 녀석을 올린 이유. 방송 때문이지? 그것 때문에 합격시켰다면 실수한 거야."
"호, 실수? 내가? 그건 좀 궁금한 걸?"
머피가 처음으로 상체를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비키 엘리엇이 냉소하며 코웃음을 쳤다.
"공공방송 기자도 아니고. 심지어 채널 방송도 아니야. 평균 시청자 수가 기껏해야 몇 만인 인터넷 개인 방송. 그 정도로는 무슨 바람을 불러일으키겠어?"
"아하! 그 뜻이었어? 그런 거라면 내가 실망인데, 미스 엘리엇? 저 친구의 스트리밍 플랫폼은 굉장히 좁아. 그리고 전체 이용자 수도 굉장히 적단 말이야. 그런데… 그 충성도가 대단히 높아."
충성도.
그 말을 하며 머피는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아 보였다.
돈을 뜻하는 의미였다.
보잘것없는 개인 방송의 시청자들이 본인 지갑까지 털며 시청하는 경우는 확실히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시청자의 수가 문제라면, 아예 플랫폼 사이즈 자체를 바꿔버리면 되잖아?"
"무슨 수로? 방송국이라도 살 생각이야?"
"노. 노. 거기까지는 필요도 없어요. 나 그럴 돈 없는 가난뱅이라고."
머피가 두 손을 들며 과장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찰랑찰랑!
그와 함께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목걸이.
비키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저 굵직굵직한 목걸이의 반절은 다이아몬드고, 나머지 반절은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아이템이다.
"그냥 홍보를 하는 거야. CNN에 광고가 나가면 어떨까? Fox TV는? 물론 비싸겠지만, 아무리 가난한 나라도 그 정도는 감당 가능하거든. 나하고 생각 비슷한 친구들도 있고."
"……."
비키 엘리엇은 바짝 긴장했다.
광고보다는, 아마도 특집 다큐멘터리로 편성될 가능성이 높았다.
헌터들에 대한 테마로.
그 정도는 비키 엘리엇, 그녀 자신만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금액이다.
게다가, 돈 많은 머피 혼자만이 아니라,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함께 끼어든다면.
"…당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뭐. 내 작은 즐거움을 위해서지. 협회장파 녀석들이 날뛰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그게 다야."
"하."
비키가 허탈하게 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웃고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이 남자가 '즐거움을 위해서'라고 하는 말은 '이제부터 죽자 사자 달려들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정신 나간… 쾌락주의자.'
다시금 그 생각을 되새기며 그녀가 말했다.
"당신도 협회장파 아니었어?"
"물론이지! 다만…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할까?"
비키 엘리엇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미쳤어……."
"오. 지금 나 칭찬하는 거야?"
"…당신 말고. 협회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당신 같은 정신 나간 사람을 그냥 두는 건지."
대놓고 가시 돋친 말을 하는 비키.
그녀에게 머피는 씨익 이를 보이며 웃었다.
백옥같이 선명한 허연 이빨이 그대로 드러났다.
"글쎄, 그건 나도 몰라서 도와줄 수가 없겠는데? 그보다, 저 친구 길드가 어디였지? 연옥?"
"…호롱이야."
"역시! 지식의 보고!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미스 비키? 내 비서 할 생각 없… 농담이야. 아무튼 거기. 호롱 길드장도 브라질로 오겠지?"
비키가 내지르는 주먹을 풀쩍! 뛰어서 피하며 머피가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으르릉! 거의 짖어대다시피 대답하는 비키에게 머피가 씨익 웃었다.
잇몸까지 드러나는 웃음이었다.
"그간 통화만 했던 친구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겠군. 오, 나랑 생각이 비슷하면 좋겠는데 말이야."
***
"합격이군. 뭐, 예상은 했지만."
타륵. 탁.
상현의 방송을 보던 성대원이 양 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노트북을 덮었다.
막판에 어째선지 마이크가 꺼졌지만, 어쨌든 시험관이 직접 나오는 걸 봤으니 결과는 따 놓은 당상이다.
"이상한 놈들이랑 얽힌 게 조금 걸리지만… 뭐, 덕분에 합격했으니까. 조만간 상현이 보겠는데?"
중얼거리곤 그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작게 뚫려있는 동그란 창문 너머로 새하얀 구름의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관.
이제껏 비행기를 세 자릿수는 넘게 탔었고, 그때마다 보는 광경이긴 했지만, 이 구름의 산맥과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볼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홀린 듯 창밖을 보던 성대원이 피식 웃었다.
"협회 전용기가 훨씬 좋긴 하네. 인터넷도 빵빵하고… 그래, 인터넷도 빵빵하고 좋긴 좋은데……."
환경만 따졌을 땐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비행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이라니… 지구 반대편은 너무하잖아?"
지금 그는 그런 여유를 즐길 겨를이 없었다.
정글, 초목, 그리고 우글거리는 뱀과 독충들이라니 상상만 해도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에엑.'
성대원은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리며,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 띠리리링! 띠리리링!
하루 전. 호롱 길드장실.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성대원은 이제 피로를 넘어 초탈한 표정이 되었다.
요정이 상현의 감응력에 보인 변화.
가히 진화라고 부를 만한 현상에, 각 지의 헌터 사무실에서 계속 연락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 그러니까 그건 우리도 모른다고요. 확실히 규명된 현상이 아니… 뭐요? 해부해? 너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콰당탕!
성질나서 집어던진 전화기가 몇 개던가.
헌터의 힘으로 기기가 박살나자, 비서 김희원이 차악, 익숙한 손놀림으로 부서진 전화기를 치우고 새 전화기를 연결했다.
-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리고 연결하자마자 연신 울어대는 전화기.
"희원아……."
몇 시간째 계속 전화를 받고, 설명하고, 폭발하기를 반복한 성대원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김희원에게 구조요청을 보냈다.
절레절레.
아무래도 이쯤 되면 심했다 싶은 것일까.
웬일로 그녀가 그 대신 전화를 받아 주었다.
"호롱 김희원입니다. 요정 항아리 관련이라면, 지금 길드장님이 자리를 비우셨으니… 예?"
나른한 얼굴로 말하다가, 그녀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아, 네. 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그리곤 화들짝 놀라며 마이크를 끄고, 성대원을 바라보았다.
"협회장님이십니다."